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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비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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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비서실의 수장으로 장관급 정무직 공무원이다. '비서'라는 직함이 붙는 공무원 중 가장 높은 직급이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때 공식적으로 비서실이 대통령 직속부서로 힘을 갖게 되었고, 중앙정보부장 직위에 비서실장 이후락이 임명되는 등 점차 힘이 생겼다. 초기 비서실은 박정희 정권의 민생계획 등 주요 정치 현안에 관여하기도 했다. 제4공화국 이후에는 군부세력의 힘이 더 커지면서 경호실장 차지철을 중심으로 대통령경호실이 비서실 업무에 간여해 정작 비서실장이었던 김계원은 대통령 만나는 빈도가 차지철에 비해 떨어졌으며 10.26 사건 당시에는 거의 유명무실한 존재였다.[1]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작은 정부' 기조에 따라 청와대의 대통령비서실이 대통령실로 개편되어 대통령실장[2] 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대통령비서실로 환원되었다. 문재인 정부 때는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이 부활하여 비서실장에 몰렸던 업무가 분화되었으며, 비서실장에 수석비서관들보다도 나이가 어린 임종석을 임명하여 비서실장의 위상을 낮췄다.
2022년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비서실장과 함께 양대산맥이던 정책실장을 정책조정기획관으로 격하시키고 민정수석비서관 직책을 폐지함[3] 으로 비서실장의 권력과 위상이 강화되었다.[4]
대통령비서실장은 대통령의 비서로 직무를 보좌하며, 각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추진되는 모든 정부 정책 특히 국정과제의 방향을 설정하고 진행상황을 점검한다. 최측근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권력을 대행할 수 있고, 간언을 할 수도 있다.
제6공화국 성립 이래 대통령의 그림자로, 실질적인 행정부의 2인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요직이다.[5] 명목상으로는 행정부 내 대통령비서실장보다 높은 이들은 국무총리, 부총리 2명이다. 경제부총리는 예산권과 경제정책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이 있지만 대통령과 거리가 상대적으로 멀고 관료출신들이 거의 임명되다 보니 정치력이 없는 경우도 흔하다. 사회부총리는 이름만 거창하지 교육과 관련된 정책 말고는 권한이 없다.[6] 국무총리는 대개 대통령의 방패막이이며, 김종필, 고건, 이해찬, 이낙연 등 거물급 정치인 출신 국무총리가 아니라면 대통령비서실장의 힘이 더욱 강력하다. 법무장관도 지금처럼 존재감이 커진 것은 최근의 일이고 그 반대급부로 정치적 부담도 함께 커졌다.[7] 반면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정치인 출신 정도를 제외하면 장관들 만큼 주목을 받는 자리도 아니기 때문에 실권은 강하되 어그로는 덜 끌리는 천혜의 요직이다.
비서실장의 지시를 받아 이 업무들을 분야별로 담당하는 사람들이 흔히 "수석"이라 부르는 "수석비서관"들이다.[8] 수석비서관실 아래에 관련 "비서관"들이 있고, 그 아래에 행정관으로 이어지는 체계를 가지고 있다. "부속비서관"이나 "의전비서관" 등은 대통령비서실장 직속으로 구성되어있다. 자세한 내용은 대통령비서실 문서로.
국무총리나 여야 당대표와 교섭도 한다. 예컨대 정부여당이 총리공관이나 여의도에서 고위당정청[9] 회의를 하면(대통령을 제외하고)당 정 청의 각 1인자, 즉 여당 대표-국무총리-대통령비서실장 3자를 기본으로 하여 +@로 각각 밑의 고위 인사들(원내대표, 정책위의장, 수석대변인, 해당 부처 국무위원, 해당 부처 관련 수석 등)을 대동하면서 회동한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마치 내각 위에 군림하는 대통령실이라는 옥상옥 형태가 되어서 행정의 비효율을 가져온다는 비판도 많다. 원래 내각 전체의 정책조정 역할은 국무총리와 국무총리를 보좌하는 국무총리실의 역할인데 대통령실로 권력이 집중되면서 국무총리와 총리실은 유명무실해졌다는 것이다. 거기에 이런 권력 집중은 검증되지 않은 대통령 측근들과 비선실세가 활개치기 좋은 환경이 되어서 대통령 주변에 인의 장막이 형성되고, 각종 권력형 비리가 싹튼다는 비판이다. 우리나라의 역대 정권을 보면 소위 문고리 권력을 가진 그룹들이 장악했을때 예외없이 대형 스캔들이 터졌다. 김영삼 정부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안긴 장학로 부속실장 사건(일명 장풍 사건)[10] ,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린 최순실 게이트가 대표적이다.
대통령의 그림자라서 그런지 비서실장이라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은 적다. 이후락도 중정부장, 문희상도 6선 의원과 국회의장으로서 유명하다. 10.26에 직접 관계된 김계원, 김대중의 영원한 비서실장이라는 평을 받는 박지원, 김영삼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치특보를 역임한 김광일, 친노의 구심점 문재인 등이 순수하게 비서실장 이력으로 유명하며, 그나마도 문재인은 비서실장보다 그냥 대통령으로 더 유명하게 되었다. '왕 실장'이라 불리던 김기춘도 실상은 비선실세 최순실보다 아래였는데, 김기춘의 경우에는 권력의 베테랑답게 최순실 밑의 자리에 만족하는 것으로 자기 권력을 지켰다.[11]
다만 예외도 있는데 바로 이원종 비서실장. 2016년 10월 21일 청와대 국정감사 중 운영위원장 정진석 의원이 "우병우 민정수석의 국감 출석 여부를 묻고 확인전화를 하라"며 국감을 중지시켰다. 이원종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이 우병우 민정수석에게 전화 후 "못 온다고 합니다" 라고 답하자, 김대중 정부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의원이 "비서실장이 오라는데 오라고 해도 안 온다는 말이에요?" 라며 격앙된 듯한 말투로 묻자, 이원종은 “의원님[12] 이 비서실장 하실 때와 요 사이는 다릅니다.” 라며 부하인 민정수석에게 사실상 먹혀있는 모습을 보였다. 유시민은 이를 "승지와 도승지가 바뀐 꼴"이라고 비유했다.[13]
과중된 업무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공직으로 유명하다. 최장수 비서실장이었던 김정렴은 재임 중 스트레스성 탈모와 만성신경통에 시달렸는데 비서실장을 사임하면서 해당 현상이 사라졌고, 문재인 정부 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도 과도한 업무로 인해 한포진을 앓고 있다고 한다. 출처 그래서인지 2년을 넘겨 재임하는 게 드물다.
대통령비서실장에게는 재임 기간 동안 거처할 수 있는 공관이 제공된다. 이를 대통령비서실장 공관이라고 하며 별칭은 "실장공관"이라고 부른다. 위치는 국무총리, 헌법재판소장 등의 공관과 함께 삼청동 공관촌인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해 있었다.
정부 조직과 행정에 익숙치 않은 일반인들은 대통령비서실장이 기업 비서실과 같이 일반적인 "비서"의 업무, 즉 일정을 관리하고 사소한 것을 챙기는 등의 업무를 하는 것으로 착각할수도 있지만, 이러한 업무는 대통령비서실장이 직접 하는게 아니라 아니라 대통령비서실에 속한 부속비서관이 담당한다. 제1부속비서관은 대통령, 제2부속비서관은 보통 영부인의 업무를 챙긴다.[14] 윤석열 정부에서는 제2부속실을 폐지시키고 부속실을 부활시켜 본래 부속비서관이 하던 업무를 부속실장이 한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의 해외 순방때는 함께 동행하지 않고, 서울에 남아 대통령실(과거에는 청와대)을 지킨다. 국내에 남아 상황을 점검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라고 하며 경우에 따라서 함께 동행하기도 한다.
1. 개요[편집]
대통령비서실의 수장으로 장관급 정무직 공무원이다. '비서'라는 직함이 붙는 공무원 중 가장 높은 직급이다.
2. 역사[편집]
대한민국 정부체계에서는 제2공화국 시절인 1960년 처음으로 설치되어, 이재항 실장이 초대 비서실장에 임명되었다. 이후 곧바로 5.16 군사정변이 발생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해 비서실을 개편, 대통령 친정체제를 강화하는 데 사용했다. 제1공화국, 2공화국 때는 비서실 내 정해진 고유 업무가 없어 보좌관들이 비서업무를 대행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때 공식적으로 비서실이 대통령 직속부서로 힘을 갖게 되었고, 중앙정보부장 직위에 비서실장 이후락이 임명되는 등 점차 힘이 생겼다. 초기 비서실은 박정희 정권의 민생계획 등 주요 정치 현안에 관여하기도 했다. 제4공화국 이후에는 군부세력의 힘이 더 커지면서 경호실장 차지철을 중심으로 대통령경호실이 비서실 업무에 간여해 정작 비서실장이었던 김계원은 대통령 만나는 빈도가 차지철에 비해 떨어졌으며 10.26 사건 당시에는 거의 유명무실한 존재였다.[1]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작은 정부' 기조에 따라 청와대의 대통령비서실이 대통령실로 개편되어 대통령실장[2] 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대통령비서실로 환원되었다. 문재인 정부 때는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이 부활하여 비서실장에 몰렸던 업무가 분화되었으며, 비서실장에 수석비서관들보다도 나이가 어린 임종석을 임명하여 비서실장의 위상을 낮췄다.
2022년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비서실장과 함께 양대산맥이던 정책실장을 정책조정기획관으로 격하시키고 민정수석비서관 직책을 폐지함[3] 으로 비서실장의 권력과 위상이 강화되었다.[4]
3. 상세[편집]
대통령비서실장은 대통령의 비서로 직무를 보좌하며, 각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추진되는 모든 정부 정책 특히 국정과제의 방향을 설정하고 진행상황을 점검한다. 최측근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권력을 대행할 수 있고, 간언을 할 수도 있다.
제6공화국 성립 이래 대통령의 그림자로, 실질적인 행정부의 2인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요직이다.[5] 명목상으로는 행정부 내 대통령비서실장보다 높은 이들은 국무총리, 부총리 2명이다. 경제부총리는 예산권과 경제정책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이 있지만 대통령과 거리가 상대적으로 멀고 관료출신들이 거의 임명되다 보니 정치력이 없는 경우도 흔하다. 사회부총리는 이름만 거창하지 교육과 관련된 정책 말고는 권한이 없다.[6] 국무총리는 대개 대통령의 방패막이이며, 김종필, 고건, 이해찬, 이낙연 등 거물급 정치인 출신 국무총리가 아니라면 대통령비서실장의 힘이 더욱 강력하다. 법무장관도 지금처럼 존재감이 커진 것은 최근의 일이고 그 반대급부로 정치적 부담도 함께 커졌다.[7] 반면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정치인 출신 정도를 제외하면 장관들 만큼 주목을 받는 자리도 아니기 때문에 실권은 강하되 어그로는 덜 끌리는 천혜의 요직이다.
비서실장의 지시를 받아 이 업무들을 분야별로 담당하는 사람들이 흔히 "수석"이라 부르는 "수석비서관"들이다.[8] 수석비서관실 아래에 관련 "비서관"들이 있고, 그 아래에 행정관으로 이어지는 체계를 가지고 있다. "부속비서관"이나 "의전비서관" 등은 대통령비서실장 직속으로 구성되어있다. 자세한 내용은 대통령비서실 문서로.
국무총리나 여야 당대표와 교섭도 한다. 예컨대 정부여당이 총리공관이나 여의도에서 고위당정청[9] 회의를 하면(대통령을 제외하고)당 정 청의 각 1인자, 즉 여당 대표-국무총리-대통령비서실장 3자를 기본으로 하여 +@로 각각 밑의 고위 인사들(원내대표, 정책위의장, 수석대변인, 해당 부처 국무위원, 해당 부처 관련 수석 등)을 대동하면서 회동한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마치 내각 위에 군림하는 대통령실이라는 옥상옥 형태가 되어서 행정의 비효율을 가져온다는 비판도 많다. 원래 내각 전체의 정책조정 역할은 국무총리와 국무총리를 보좌하는 국무총리실의 역할인데 대통령실로 권력이 집중되면서 국무총리와 총리실은 유명무실해졌다는 것이다. 거기에 이런 권력 집중은 검증되지 않은 대통령 측근들과 비선실세가 활개치기 좋은 환경이 되어서 대통령 주변에 인의 장막이 형성되고, 각종 권력형 비리가 싹튼다는 비판이다. 우리나라의 역대 정권을 보면 소위 문고리 권력을 가진 그룹들이 장악했을때 예외없이 대형 스캔들이 터졌다. 김영삼 정부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안긴 장학로 부속실장 사건(일명 장풍 사건)[10] ,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린 최순실 게이트가 대표적이다.
대통령의 그림자라서 그런지 비서실장이라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은 적다. 이후락도 중정부장, 문희상도 6선 의원과 국회의장으로서 유명하다. 10.26에 직접 관계된 김계원, 김대중의 영원한 비서실장이라는 평을 받는 박지원, 김영삼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치특보를 역임한 김광일, 친노의 구심점 문재인 등이 순수하게 비서실장 이력으로 유명하며, 그나마도 문재인은 비서실장보다 그냥 대통령으로 더 유명하게 되었다. '왕 실장'이라 불리던 김기춘도 실상은 비선실세 최순실보다 아래였는데, 김기춘의 경우에는 권력의 베테랑답게 최순실 밑의 자리에 만족하는 것으로 자기 권력을 지켰다.[11]
다만 예외도 있는데 바로 이원종 비서실장. 2016년 10월 21일 청와대 국정감사 중 운영위원장 정진석 의원이 "우병우 민정수석의 국감 출석 여부를 묻고 확인전화를 하라"며 국감을 중지시켰다. 이원종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이 우병우 민정수석에게 전화 후 "못 온다고 합니다" 라고 답하자, 김대중 정부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박지원 의원이 "비서실장이 오라는데 오라고 해도 안 온다는 말이에요?" 라며 격앙된 듯한 말투로 묻자, 이원종은 “의원님[12] 이 비서실장 하실 때와 요 사이는 다릅니다.” 라며 부하인 민정수석에게 사실상 먹혀있는 모습을 보였다. 유시민은 이를 "승지와 도승지가 바뀐 꼴"이라고 비유했다.[13]
과중된 업무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공직으로 유명하다. 최장수 비서실장이었던 김정렴은 재임 중 스트레스성 탈모와 만성신경통에 시달렸는데 비서실장을 사임하면서 해당 현상이 사라졌고, 문재인 정부 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도 과도한 업무로 인해 한포진을 앓고 있다고 한다. 출처 그래서인지 2년을 넘겨 재임하는 게 드물다.
대통령비서실장에게는 재임 기간 동안 거처할 수 있는 공관이 제공된다. 이를 대통령비서실장 공관이라고 하며 별칭은 "실장공관"이라고 부른다. 위치는 국무총리, 헌법재판소장 등의 공관과 함께 삼청동 공관촌인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해 있었다.
정부 조직과 행정에 익숙치 않은 일반인들은 대통령비서실장이 기업 비서실과 같이 일반적인 "비서"의 업무, 즉 일정을 관리하고 사소한 것을 챙기는 등의 업무를 하는 것으로 착각할수도 있지만, 이러한 업무는 대통령비서실장이 직접 하는게 아니라 아니라 대통령비서실에 속한 부속비서관이 담당한다. 제1부속비서관은 대통령, 제2부속비서관은 보통 영부인의 업무를 챙긴다.[14] 윤석열 정부에서는 제2부속실을 폐지시키고 부속실을 부활시켜 본래 부속비서관이 하던 업무를 부속실장이 한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의 해외 순방때는 함께 동행하지 않고, 서울에 남아 대통령실(과거에는 청와대)을 지킨다. 국내에 남아 상황을 점검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라고 하며 경우에 따라서 함께 동행하기도 한다.
4. 대통령비서실장(1960 - 2008)[편집]
5. 대통령실장(2008 - 2013)[편집]
6. 대통령비서실장(2013 - 현재)[편집]
7. 창작물에서의 등장[편집]
- tvN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한주승 → 차영진
-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 대통령비서실장
배역명 없음.
8. 둘러보기[편집]
[1] 박정희가 김계원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하면서 했던 유명한 이야기가 "와서 내 말벗이나 해주시게"였지만 실제로는 말벗도 차지철이 다 했고 명색이 군대 선임이었던 김계원은 그런 차지철에 눌려 지냈다. 심지어 경호실장, 비서실장보다도 더 높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도 차지철에 당하면서 울화가 쌓이고 쌓였고, 결국 차지철에게 "너 이 XX 건방져!"라고 울분을 토하며 총을 쏘는 빌미를 제공한다.[2] 경호실을 흡수하면서 경호실장은 실장 밑의 경호처장이 되었다. 대통령실 경호처는 박근혜 정권 때 대통령경호실로 재승격되었다가 문재인 정권 때 대통령경호처로 재격하되었다.[3] 민정수석이 폐지되면서 남게 된 법률비서관, 공직기강비서관이 비서실장 산하로 옮겨졌다.[4]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윤석열 정부 초대 비서실장인 김대기 실장은 임명 초창기 당시에는 역대 비서실장 중 가장 존재감이 적고 통제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었다. 그러나 직제 개편을 단행하고 대통령이 힘을 실어준 지금은 정말로 실세 비서실장이 되었다.[5] 대통령과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이 바로 이 비서실장이다.[6] 사회부총리는 대통령비서실장까지 갈 것도 없이 경제부총리, 법무장관의 권력에도 밀린다.[7] 본래 황교안을 제외하면 유명한 법무장관이 거의 없었을 정도로 무난한 관료직이였으나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를 거치며 국무총리 못지않게 정치적 비중이 큰 자리가 되였다.[8]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잘 아는 우병우와 조국이 민정수석비서관이었다. 각 정책분야를 나누어 담당하는 수석비서관들도 해당 부처 국무위원보다 실질적인 권한과 힘은 더 강하다고 평가하는게 일반적이다.[9] 윤석열 정부 출범 뒤에는 청와대가 모든 국민들에게 개방되면서, 청와대 대신 대통령실을 집어넣으면서 당정대 회의라 불린다. 다만 청와대라는 이름의 관습성이 너무 짙어서 관습적으로는 아직도 당청관계 같은 표현이 쓰이고 대통령실이 '용산 청와대'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10] 장학로는 1977년부터 김영삼의 상도동 사저에서 집사 역할을 했던 사람으로, 1993년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의 일정을 관리하는 제1부속실장으로 청와대에 입성한다. 이후 외부 민심을 듣는다는 명목으로 기업인들로부터 3년동안 수십억을 뜯어내다가 1996년 총선 직전에 야당의 폭로로 구속되었다. 심지어는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외부인사를 면담할때마다 개인당 100만원씩 받았다는 폭로기사도 나왔다.[11] 그와 별개로 사법농단 당시 검찰 출신으로서 그들의 권력을 대변해 사법농단이 일정 이상의 국정농단이 되는 것을 막은 것도 그라고 한다. 물론 사법농단이 국정농단이 될 뻔하는데 이걸 비서실장이 검찰 시절 위세를 이용해 막는 이 상황 자체가 총체적 난국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12] 박지원은 김대중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자 계파의 확실한 넘버 2으로, 왕실장 이상의 권한을 행사했었다. 김대중 정부 이후 왕실장으로 유명한 사람들은 박지원, 문희상, 문재인, 김기춘을 넘어 현재는 임종석 정도가 있다.[13] 승지, 도승지가 잘 와닿지 않는다면, 군대에서 대대장이 중대장에게 전화해서 '저기 지금 나오실 수 있나요?' 했는데 중대장이 '못 옵니다.'라고 대답한 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14] 과거에는 대통령비서실과 별도로 '부속실'이라는 조직이 있었던 적도 있다. 정부조직도 상 확인된 것으로만 최규하 대통령부터 노무현 대통령 시절까지 부속실은 비서실과 별개 조직이었다. 부속실 업무는 전통적으로 대통령 일가의 내밀한 업무를 관리하므로 해당 대통령과 이전부터 계속 관계를 맺어오던 믿을만한 가신이 맡는게 보통이었다(대표적으로 김영삼 대통령과 장학로 부속실장).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야 부속실 업무는 비서실 산하 조직으로 자리잡았다. 영부인이란게 있을 수 없었던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는 바로 이 제2 부속실이 국정농단의 온상이 되어 버린 흑역사가 있다. 결국 윤석열 정부에서는 제2부속실을 폐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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