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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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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3. 한국도로공사 수목원
2.4. 한지박물관
2.5. 혼불문학공원
3.3. 남부시장 + 청년몰
3.4. 전주 향교
3.5. 자만벽화마을
3.7. 다가공원
3.9. 전라감영
3.10. 치명자산
3.12. 한국전통문화전당
3.13. 전주영화종합촬영소
4. 완주군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전주는 지방 행정 기능에 머문 도시가 아니라 전통적인 멋을 지니고 있는 특색있는 도시이다. 특히 풍패지향[1]이라는 이유로 경기전을 비롯한 여러 대형 시설들이 들어섰고, 한반도 유적들의 주요 몹 중 하나였던 일제는 식민지배를 위해 이왕가의 협조가 필요했기 때문에, 6.25 전쟁 시기에는 전라도에서 남북 피차 아무것도 못하고 밀려났기 때문에 전주의 문화유산들은 다른 도시들에 비해 상당히 보존될 수 있었다. 보통 '한국적 분위기'를 강조하는 관광도시들이 대부분 경주, 공주, 부여 등 옛 수도들임을 생각하면 전주는 대단히 특이한 사례다.[2]

전라도에서 여수시에 이어 2번째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 도시로 여수와 함께 연간 10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도시이다. 여수가 해양문화를 즐기는 지역이라면 전주는 전통문화의 성지인 셈. 다만 여수시가 여름철에 절반 이상의 관광객이 몰리는데 비해 전주는 사시사철 북적거린다는게 차별점이다.

전주 자체도 관광지로써 품질이 우수하지만 인근지역 연계관광 컨텐츠까지 결합하면 범위가 매우 방대해진다. 특히 무진장+임실로 대표되는 전북 동부내륙권 여행시에는 무주 쪽 리조트 이용할 게 아니면 인프라가 우수한 전주를 거점으로 움직이는 편이 여러모로 편리하다. 심지어 김제 금산사전주고속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전주 버스 79번이 김제 시내버스보다 더 자주 다니고 소요시간도 김제와 크게 차이 나지 않으며, 익산 왕궁리 유적은 익산시내에 이거 말고 볼 게 많지 않기 때문에 전주 놀러 가는 길에 잠깐 들르는 정도로 끼워넣는 경우도 많다.

때문에 서울이나 광역시가 아니라고 만만하게 생각하고 당일치기 관광을 시도하면 고작해야 풍남문과 경기전 인근 한옥마을 정도만 둘러보고 사람만 많고 특색 없이 비싸기만 하다며 불평하기 쉽다. 게다가 긴 역사로 인해 난개발과 재개발이 주기적으로 이루어져 교통체계에 혼잡이 많다. 따라서 적어도 하루 이상 숙박을 포함해서 도보 관람과 먹을거리 등을 풍부하게 즐기는 것이 좋다.

한국의 또 다른 관광도시인 경주와 전주를 비교분석한 영상이 있다.#

2. 덕진구[편집]




2.1. 호남제일문 [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정차 노선에 대한 상세 설명 자세한 내용은 호남제일문 문서

의 [[호남제일문#s-"display: inline; display: 앵커=none@"
@앵커@@앵커_1@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external/m.jeonju.go.kr/133248127022018.jpg

전주TG를 지나 전주월드컵경기장이 막 보이기 시작할 때 지나게 되는 한옥 양식의 일주문 겸 육교. 육교 내부에는 전주시와 호남제일문에 관한 짤막한 글들이 써 있다. 현판에 호남제일문(湖南第一門)이라고 크게 써 있는데[3], 말 그대로 호남의 첫 번째 관문이라는 뜻.[4] 참고로 이 현판은 송하진전북도지사의 부친인 강암 송성용의 작품이다. 여기를 지나면 전주시에 온 것을 실감하게 되며, 때문에 많은 대중매체에서 '전주에 왔다'라는 장면을 보여줄 때 자주 등장하는 구조물이기도 하다. 개표방송에서도 역시 전북권역을 나타내는 형상은 대부분 호남제일문이다. 다른 하나는 전주한옥마을이 쓰인다.

호남제일문은 본래 1977년 5월 4차선인 도로폭에 맞추어 건립되었다가 1991년 5월 도로 확장으로 철거 후 지역민들의 복원 요구로 1994년 8월 확장된 도로폭에 맞춘 신 호남제일문이 완공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시외버스> 한일장신대학교 / 임실(전주시외 경유), 전주대학교(전북혁신도시 경유), <고속터미널>의 경유지로 주변에 고속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월드컵경기장, 면허시험장에 가거나, 북전주 혹은 완주군 삼례읍, 봉동읍 등 지역과의 연계도 편하다.

무인 정류장으로, 고속버스 및 시외버스(서울(남부)) 이용시 카드만을 결제할 수 있다. 이외에 티머니GO 또는 고속버스 터미니(고속터미널 한정)의 을 통해서 발권 가능하다.

승차 기준으로 고속 정류장과 시외 정류장의 거리가 떨어져 있다.[구조]

2.2. 전주동물원 [편집]


파일:external/www.sjbnews.com/254766_26360_924.jpg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2.3. 한국도로공사 수목원 [편집]


파일:external/tour.jeonju.go.kr/03010302_img01.jpg
홈페이지

전주톨게이트 옆에 있으며, 한국도로공사호남고속도로를 건설하고 남은 유휴지에 건립했다. 총 157과 1,410종이 있다. 무료 입장이며 월요일은 휴원이다. 전북대학교 생명과학부에서 1학년생들이 2학기 실험시간 때 오는 장소.

한국도로공사 관계자가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 2020년 5월 9일 방송에서 밝힌 바로는, 도로를 건설한 후 나무를 심어야 하는데 민간에 구입하기엔 고정 비용이 만만치 않아 유휴 부지에 나무를 심었다가 예상보다 너무 울창하게 자라 공원화가 되어버렸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대놓고 종자를 심어 수목원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조성된 수목원 치고는 규모가 상당하다. 식재되어있는 식물의 종도 많고 그 양 또한 상당해 연인, 가족들의 데이트나 나들이 장소로 최근 각광받고 있다. 특히 장미가 많이 피는 봄-여름 기간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에 주차나 관광이 쉽디 않다.

다만 전주 시내에서도 상당히 외곽이라[5] 대중교통으로 가기엔 상당히 불편하다. 시내버스 개편 전에는 400번대 버스를 타면 바로 갈 수 있었지만 개편 후에는 시내버스로 여의동우체국이나 월드컵경기장 종점에서 환승하여 마을버스 조촌43번, 조촌48번을 통해야 갈 수 있다. 주변에 전주월드컵경기장이 있다 보니 전북 현대 모터스의 홈경기가 있을 때 관중이 이곳을 경유하기도 한다.


2.4. 한지박물관 [편집]


파일:external/2424.com/050313510329741.jpg

팔복동 전주페이퍼 공장 내에 있다.
초등학생들이 체험학습으로 많이간다

2.5. 혼불문학공원 [편집]


파일:TZsx4aF.jpg

전북대 뒤 건지산에 있는 소설가 최명희의 묘역에 있다. 이름은 최명희의 대표작인 혼불에서 가져 왔다. 참고로, 한옥마을에는 최명희 문학관이 있다.

동백나무가 여럿 있으며, 연결된 기린대로를 따라서 벚꽃길이 펼쳐져 있는데, 사람도 드문 편이라 조용한 봄나들이를 즐기기 좋다.

2.6. 덕진공원 [편집]


파일:20220726114523638.jpg

덕진구를 대표하는 공원이며, 안에 덕진호수라는 거대한 호수가 있다. 그 외에는 팔각정과 큰 철교, 전망대도 있다. 연꽃이 피는 시기에는 호수 한쪽이 온통 연꽃으로 뒤덮혀 사진작가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장소.

이 곳은 원래 전북대학교 부지였는데 동부시장 쪽 평생교육원 부지를 받는 조건으로 전주시에 넘겨주었다.

특히 이 곳은 겨울을 제외한 계절 평일에 하루 3번 음악분수쇼가 열린다. 30분 음악쇼인데, 음악에 맞추어 분수들이 떠오르는데 굉장히 멋지다. 특히 밤에 하는 쇼에서는 조명까지 곁들여 장관이다.

호수 옆에는 전봉준 장군상이 있으며, 호수 주변에 포켓스탑이 10개가 넘고 체육관도 호수를 한바퀴 도는 사이 4개가 있어서 포켓몬 GO 유저들도 자주 찾는 곳이다.

호수를 건너는 연지교는 2019년 다리의 노후화로 완전히 철거 후 2021년 3월 17일 완공 되었다.

2021년 8월 현재 공원을 리모델링 중이다.

2022년 9월 기준 현재 모든 리모델링이 완료되어, 천지개벽수준의 경관을 자랑한다.
야간에 가면 공원 야경이 예술이다.

자세한 내용은 덕진공원 참고.

2.7. 한국소리문화의전당[편집]


파일:external/www.jjfc.or.kr/741607560_d04277b7_20067308467_9.jpg
덕진동에 있으며, 바로 옆에 전주 동물원이 있다. 유명가수들의 콘서트 및 대형공연, 각종 행사 개/폐막식 대부분은 이 곳에서 열린다. 전북대 (신)정문에 있는 삼성문화회관과 함께 전북권 공연메카로 불리기도 한다.

201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조사에서 공연과 전시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10대 문화시설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서울의 4개 문화시설과 부산의 문화시설 다음으로 다양하고 많은 문화행사가 열렸다고 한다. 실제로 문화 콘텐츠가 많고 다양하며 서울로 편중된 문화산업 속에서 훌륭한 성과를 이루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3. 완산구[편집]




3.1. 전주 한옥마을 + 경기전[편집]


전주 한옥마을경기전 문서를 참조. 경기전은 한옥마을 바로 옆에 있고, 전동성당은 경기전 맞은 편에 있어 보통 한 번에 세 곳을 동시에 구경할 수 있다. 대외적으로 '관광지 전주' 하면 가장 유명한 곳.[6]


3.2. 전동성당[편집]


천주교 전주교구의 성당. 바로 옆에 전주교구에서 운영하는 천주교 미션스쿨인 전주성심여자중학교와 전주성심여자고등학교가 있다. 한옥마을에 꼭 붙어있다. 자세한 것은 전동성당 항목 참조.

3.3. 남부시장 + 청년몰 [편집]


파일:external/www.ttearth.com/nambu_market002.jpg
완산구 전동에 있으며 한옥마을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시장이다. 피순대국밥이 유명하다. 모범시장으로 선정될 정도로 볼거리가 많다. 특히 금요일, 토요일 밤에 열리는 야시장에는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풍성하다.

이 시장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2층에 청년몰이 있다는 것이다.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가면 아래 재래시장과는 완전히 다른 청년몰이 나타난다. 청년들이 창업한 가게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고 시장의 디자인 또한 멋지고 예술성이 돋보인다. 공예품, 골동품, 문방구, 식당들이 모여 있는 훌륭한 청년시장. 공연도 자주 있으며 냥보도 있는 고양이들이 유유자적 돌아다니고 있어 냥덕들에게는 천국같은 곳이다. 꼭 가보길.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근데 밑에 남부시장에 비하면 좀 비싸긴 하다 청년몰과 연결된 하늘정원에는 탁자벤치가 있어 전주시내 재래시장들 중 유일하게 시장에서 사 온 음식들을 편히 앉아서 먹을 수 있다.

실제로 남부시장은 우수 시장으로 선정되고 청년몰은 모범사례로 뽑혀 다른 시장에도 도입된다고 한다.


3.4. 전주 향교[편집]


파일:전주향교.jpg
사적 제 379호. 위치는 전주시 교동으로 한옥마을과 지근거리에 있다. YMCA 야구단, 성균관 스캔들, 구르미 그린 달빛 등의 영화나 드라마 일부 장면을 이곳에서 찍기도 하였다.특히 가을날 저녁에 가면 곳곳에 있는 은행나무에 빼곡하게 달린 노란 은행잎이 햇살에 비쳐 향교 전체가 노랗게 빛나는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

3.5. 자만벽화마을 [편집]


파일:external/www.cbnews.co.kr/4771_5188_317.jpg
한옥마을 뒤쪽 도로로 나오면 산이 있는데, 그 산 오르막길에 마을이 하나 있다. 평범한 오르막길 주택가가 아니라 벽에 멋진 그림들이 그려진 아름다운 마을.

http://www.s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83400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열차를 그려놓은 벽이 유명하다. 이곳 역시 게스트하우스나 멋진 공예품 가게가 아기자기 모인 곳으로 한옥마을과 함께 꼭 돌아봐야 할 코스.

본래 이곳은 자만동(滋滿洞)이라고 하여 고려 및 조선시대부터 전주에 사는 백성들이 많이 모여 사는 거주촌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간납대[7] 등등 선비들이 모여 살며 후학 앙성 및 학문을 닦던 곳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선조 목조(穆祖) 이안사(李安社)가 살던 곳으로, 자만동 금표(滋滿洞 禁標)라고 하여 구한말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국권피탈시기에 쓰라린 마음을 부여잡고 조상들의 흔적과 나라의 역사를 잊지 않고 기념하고자 잡인들이나 유래없이 떠돌던 백성들이 함부로 들어와 살지 못하게 옆의 이목대와 함께 비표를 세워 성역 비슷하게 취급되던 곳이었다. 아쉬운 것은 이런 역사가 서린 곳을 페인트 벽화만 그려 놓고, 벽화마을이라 하며 마을의 유래나 역사적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재 이곳은 상업화가 진행되어 주택들이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카페 및 유행가만 들려오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는 지적도 있다. 방문해서 주변 경관을 둘러보면 알겠지만, 근처에 완산팔경 중 2개나 있을 정도로 경관이 수려한 곳인데... 근처 마개조된 건물들과의 조화가 상당히 부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공간을 이렇게 페인트 벽화만 그릴게 아니라, 낙후된 주거지역은 적절한 보수 및 개선을 하고, 구한말 국권피탈시기의 역사적상징물로서 근처의 경기전과 오목대와 연계하여 관광객들이나 학생들에게 역사인식이나 역사학습의 지표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인식하고 ,구한말 고종황제가 어떤 마음이었을지와 나라 잃은 마음이 어떨지 생각하며 자만동 금표를 찾아보자. 더 뜻 깊은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6. 전주 객사[편집]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의 보물
582호

583호

584호
월인석보 목판
전주 풍패지관
구례 윤문효공 신도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Jeonju_Gaeksa.jpg
전주객사(全州客舍). 전주시내 번화가에 있는 문화재. 보물 제 583호.

조선 초기 전주부성이 지어질 때 같이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 때 조정의 칙사나 외국에서 온 사신들이 여기 묵었다. 전주가 태조 이성계 가문의 고향이라 하여 '풍패지관'이라는 현판[8]이 붙어 있는데, 풍패는 중국 전한 고조의 고향. 곧 조선왕조의 발상지로 전주를 우대했음을 알 수 있다.

전주시내 중심에 가깝고 실제로 전주 시내에서 가장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영화의거리가 바로 이 쪽에 있어서 영화제 기간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객사 주변은 그야말로 인산인해가 된다. 도심속에 나홀로 전통 건축물이 있는 모양새.

이름이 객사라 잘 모르는 타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죽는다는 의미의 客死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쪽으로 난 길이름이 객사길이라 처음 본 이들은 식겁하기도.

전주에서 시내라면 대개 객사 부근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세이브존(舊 코아백화점)에서 경기전 부근까지를 시내로 치지만 '시내에서 만나자'라면 열에 아홉은 객사길을 말한다.

시내 한가운데 있는 상징적 문화재이나 전주시 시내버스에 '객사'라 써놓은 버스가 별로 없다. 고속버스터미널/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렸거나 신도심 쪽에서 객사 부근으로 가려면 중앙시장/동부시장과 전동(한옥마을)이 행선지인 버스를 타면 된다. 다만 객사 부근의 정류장명도 '북문, 외환은행, 국민은행, 전북은행경원지점, 원불교전주교당, 흥국화재, 팔달로 예술회관 잘 모르겠으면 갑자기 사람이 우르르 내리는 정류장으로 내려서 사람들이 걷는 쪽으로 걸으면 됨 등으로 제각각이니 주의하자. 정 모르겠다면 기사에게 물어보자.

전북대학교 대학로와 함께 전주시에서 가장 번화한 곳. 객사 주변은 전주에서 가장 땅값 비싸기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타지인들의 관점에서는 전북대 근처나 서부신도심 등에 비해 상당히 낙후되어 보이는 편이다. 특히 동문예술거리, 영화거리 쪽은 영화관 빼고 완전히 침체되어 있으므로 막상 가면 실망할 확률이 높으니 전주시를 여행하려는 관광객들은 참고하길 바란다.

또한 객사 안으로 들어가서 사진도 찍을 수 있으며 여름철이면 전주 시민들이 객사 건물 안에 앉거나 누워서 햇빛을 피하고는 한다. 최근 전주의 여름은 대단히 무더워 한낮이면 학생이고 어른이고 다들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간간히 그 앞마당에서 공연이 벌어지기도 한다.

자세한 것은 전주 객사길 문서를 참조.

객사 인근 충경로사거리에는 수제초코파이로 유명한 PNB풍년제과 본점이 있다.

3.7. 다가공원[편집]


전주신흥고등학교 맞은편에 있는 공원. 예로부터 유서깊은 활터가 있어 사람들이 훈련 장소로 많이 사용했다. 숙종 28년에 전주의 유지들이 뜻을 모아 정자를 세우고 천양정이라 이름붙였으나 9년 뒤 대홍수로 떠내려가버린 뒤 근처에 정자를 다시 세우고 이번에는 이름을 다가정이라 붙였다. 정조 2년에는 정원을 만들고 활터를 넓히는 등 정비가 이뤄졌고, 순조 30년에 다가정 구내에 일사정을 세우고 남쪽에 과녁판을 설치한 뒤 이름을 다시 천양정으로 바꿨다. 일제강점기에는 신사가 세워지는 수모를 겪기도 했으며, 일제강점기가 끝난 뒤에는 신사를 허물고 그 자리에 신사가 있었다는 팻말을 세워놓았다.

천양정에서는 1995년부터 풍남제 행사의 일환으로 무과 급제 재현이 이뤄지고 있으며, 공원 정상에는 이병기 시인의 시비(詩碑)가 서 있다.

3.8. 풍남문[편집]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의 보물
307호

308호

309호
김천 청암사 수도암 석조 비로자나불좌상
전주 풍남문
정읍 천곡사지 칠층석탑

파일:external/www.japong.com/03_pungnammun.jpg
전주 풍남문 (全州 豐南門)[9]

전동에 있는 전주성의 4대문 중 유일하게 남은 문으로 전주성의 남문이다. 보물 308호. 정유재란 당시 훼손된 것을 영조 때 복원했다가 한번 불탄 적이 있고, 영조 때 다시 복구하면서 풍남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10] 일제강점기 당시 크게 훼손된 것을 1978년부터 3년간 보수를 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풍남문은 전주 남부시장쪽에 파묻혀 있는 모습이라 과거엔 전주에 처음 놀러온 사람이라면 경기전전동성당만 보고 가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풍남문을 둘러싼 길가에는 전부 상점들이 들어차있어 일반적인 문화재를 생각하고 찾는다면 구경하기도 불편하고 답답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었는데, 최근들어 주변 건물을 전주시가 매입해 허무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경기전 방향인 로터리 동북쪽에 전주신협 광장이 조성되면서 시인성이 아주 좋아졌다. 실제로 한옥마을과 경기전, 전동성당까지 한 곳에 모여있고 경기전에서 남부시장 가려면 풍남문을 거치는 것이 정석이라 전주의 대표적인 관광코스가 된 지 오래. 경기전이나 전동성당에서 사거리로 나오면 바로 풍남문이 보인다. 풍남문 일대가 전주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각종 행사나 집회도 많이 열리고 있으며, 지역 연고구단인 전북 현대가 우승을 하면 이곳까지 카퍼레이드를 벌이기도 한다.하지만 이 문 뒤편의 옹성 쪽은 도로보다 아래(0.5~1.6미터)에 있고 해서 썩 좋지는 않다. 서울의 동대문보다도 더 안 좋은 환경. 대신 옹성 쪽에서는 풍남문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문루 옆에는 종루가 있다. 원래 전주성에는 고려시대 때부터 성곽 사대문에 종을 걸어 놓고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고 알려졌지만 일제강점기 때 여지없이 종이 공출 되었다 한다. 현재 걸려 있는 종의 이름 전주의 옛 명칭인 '완산'을 따서 '완산종'으로 불리고 있으며 1977년부터 진행된 전주시민들의 모금을 통해 만들어졌다. 풍남문 옆 종루에 종이 걸린 것은 1980년으로 전국체육대회의 전주 개최를 기념해 타종한 이후 현재까지 전주시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행사 때마다 타종이 진행되고 있다. 매년 12월 31일 밤 제야의 종 전북 타종 행사도 이곳에서 열린다.

여담이지만, 경기전 뒷담길 가까운 곳에 '동문사거리'가 있다. 여기는 말그대로 전주성 동문이 있던 자리인데, 도로를 개설하면서 허물어진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만든 직사각형 모양의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다. 舊 한일서점, 現 세븐일레븐 한옥마을점 자리 바로 앞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니 한번 쯤 방문해 봐서 예전 전주부성 사대문이 어떻게 있었는지 가늠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3.9. 전라감영[편집]


파일:전라감영.jpg
전주완산경찰서 앞 옛 전라북도청 부지에 옛 전라감영을 복원하였다.

3.10. 치명자산[편집]


파일:external/www.wonpetro.com/07cmj13.jpg
링크

교동에 있는 해발 306m 높이의 산으로 가톨릭치명자산 성지로 꾸며진 곳이다. 원래 이름은 우리말로는 중바우이고, 한자(이자 공식 명칭)으로는 승암산이라고 불리운다. '치명자'란 천주교 전래 초기 순교자를 가리키던 옛 말이다. 쉽게 말해 '천주교 순교자가 묻혀 있는 산'이라는 뜻.

이곳에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동정부부[11]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 부부를 포함해 유중철의 아버지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가족의 무덤이 있다.[12]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가족의 무덤 아래에는 성당이 있으며, 치명자산 입구에는 주차장 및 기도,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산에 올라가는 길목에 십자가를 세워 만든 십자가의 길이 있어서 매년 사순 시기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기 위해 전국의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으로 많이 온다. 산의 중턱에는 사목 활동을 하다 선종하신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신부님들을 모신 '사제들을 위한 묘지'가 있다.

후삼국 시대 견훤의 거점이었던 옛 전주성의 흔적인 동고산성이 남아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명품버스인 1000번[13] 마을버스인 동서학 14번을 타고 갈 수 있다.

3.11. 국립전주박물관[편집]


파일:external/www.janews.co.kr/6160_2579_2045.jpg
전주시 삼천동에 있으며, 전주 역사박물관이 같이 있다. 김제 금구로 가는 방향에 있다. 자세한 것은 국립전주박물관 문서 참조.

3.12. 한국전통문화전당 [편집]


파일:external/www.ktcc.or.kr/mainbg_01.jpg

전주시청 인근 경원동에 있는 건물로 국비와 시비를 들여 건립하고 2015년 4월에 개관한 문화전당이다. 전통문화산업의 발전과 거점 센터로서의 역할을 하며 규모가 상당히 크다. 전주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전주문화관과 한지나 국악 등 우리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볼 수 있는 전시관이 있는데 상당히 잘 되어 있다. 또한 문화행사와 축제가 자주 열리고 있으며 최근 전주에 새로 생긴 새로운 문화 시설로 자리잡고 있다. 한지산업지원센터 등 전통산업을 육성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여담으로 이 건물 터에는 전북대학교병원이 있었으나 1987년 병원이 금암동 현 위치로 옮겨졌다. 옛 병원 건물은 철거됐고 남쪽의 치과대학 건물은 평생교육원으로 쓰이고 있다.


3.13. 전주영화종합촬영소[편집]


전주시 상림동에 있으며 기생충, 나랏말싸미, 사도, 남산의 부장들 등 많은 영화를 촬영한 곳이다. 내부에서 영화와 관련된 전시물들을 볼 수 있다. 세트장도 있으나 찍은 후 촬영 바로 철거하여 안타깝게도 이 영화들의 세트는 볼 수 없다. 단, 영화 기생충 세트의 경우 복원한다고 한다.#

4. 완주군[편집]




4.1. 모악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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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관련 문서[편집]




[1] 왕조의 발상지를 고제(전한)의 고향인 패현 풍읍, 줄여서 풍패에 빗대 일컫는 말. 조선시대에는 주로 전주(전주 이씨 본관), 영흥, 함흥을 풍패지향으로 불렀다. 전주는 여기가 전주 이씨의 본관이기 때문이고, 영흥은 이성계가 출생한 곳, 함흥은 이성계가 자란 곳이기 때문이다.[2] 나름 후백제의 수도이긴 했지만 현실은 후백제 왕궁이 어디인지도 불분명하다. 현재 전주의 문화유산 거의 대부분은 조선왕조의 전주 우대로 쌓인 결과물들이다.[3] 과거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썼기 때문에 현판 글자가 문일제남호(門一第南湖)처럼 보인다.[4] 영남제일문도 있다. 이쪽은 경상북도 김천시에 위치해 있다. 다만 호남제일문과 달리 딱히 그 곳을 기점으로 뭔가 분위기가 변하진 않는다(...). 문서조차 없다[구조] 시내버스 - 고속버스 - 호남제일문 - 시외버스[5] 소재지인 동산동/조촌동의 중심가에서도 살짝 벗어나 있다.[6] 실제로 방문해보면 '남부시장-풍남문 로터리-전동성당/경기전-한옥마을-전주향교'로 이어지는 코스로 전주향교 인근에 한옥 숙소가 다수 포진해있기 때문에 관광하기 아주 좋은 지역이다.[7]천주교 전주교구청 자리. 舊 전주공전 및 전주영생고등학교, 舊 영생여상(현 전주대사대부고) 자리다. 한산 이씨 이기발, 이흥발, 이생발 3형제가 살았다고 한다. 한산 이씨는 고려 말 삼은 중 하나였던 목은 이색의 집안으로, 이기발이 사간원 헌납이라는 벼슬에 올랐는데, 병자호란 이후 벼슬을 하지 아니하고 이곳에 내려와 살았다 하여 사간(司諫)의 간(諫) 자와 헌납(獻納)의 납(納) 자를 따서 (諫納臺)라 했다고 한다. 원래는 정자형식의 건물이 있었다 하나, 현재는 오래전에 소실되고 없다.[8] 현판에 글씨를 쓴 사람은 1606년에 명나라에서 파견한 사절단의 정사인 주지번인데, 이 사람이 1593년 조선 사신단의 서장관으로 명에 간 표옹 송영구의 도움을 받아 과거에 합격한 사람이다. 정사로 파견된 후 전주(현 익산 왕궁면)에 기거하던 스승의 행방을 찾으러 내려오면서 객사에서 하룻밤을 잔 김에 써 준 것. 당시 주지번은 명나라 3대 문장가로 손꼽혔다고 한다.[9] 사진 속 왼편에 볼록 튀어나온 둥근 고딕양식의 돔형 지붕이 전동성당의 가운데 종탑이다.[10] 객사의 현판이 풍패지관이 된 것과 같이, 여기도 풍패에서 앞의 풍 자를 따서 붙인 것이다.(...) 지금의 서문교회 부근에 있던 서문도 이때 패서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도시계획에 의헤 철거되어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11] 말 그대로 부부의 연을 맺었지만 서로가 동정을 유지했다는 뜻.[12] 유항검 아우구스티노는 호남지역 최초의 가톨릭 신자였으며 그를 비롯해 그의 아들들인 유중철 요한-유문석 요한 형제, 유중철의 아내 이순이 루갈다, 유항검의 조카인 유중성 마태오 등이 지난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한민국을 방문했을 때 일제히 복자로 시복됐다.[13] 2017년 2월 20일 개편으로 대성동으로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