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트로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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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사보이아 백국의 백작. 작은 샤를마뉴(il Piccolo Carlomagno)[1] 라 불릴 정도로 무예에 출중했고 많은 업적을 남겨 사보이아 백국의 중앙집권화에 기여하였다.
2. 생애[편집]
사보이아 백작 토마소 1세와 제네바의 마르그리트의 7남이다. 부친에 의해 어린 시절부터 성직으로 보내졌으나 성격에 맞지 않아 성직 임무는 때려치고 스위스 서부 시옹 성[2] 에 거점을 두고 사보이아 가문의 영토를 넓히는 확장 정책에 골몰했다.
1236년에 조카 프로방스의 엘레오노르가 잉글랜드 국왕 헨리 3세와 결혼하면서 잉글랜드 왕국으로 건너갔다. 헨리 3세 휘하에서 활약하면서 여러 영지를 받았고 그중 한 곳에 런던 사보이 궁전(Savoy Palace)을 지었다.
형 아메데오 4세가 사망하고 어린 조카 보니파초가 즉위하자 동생들과 함께 사보이아 백국을 분할하려 했으나 섭정을 맡았던 둘째형 피에몬테 영주 토마소 2세의 중재로 재산을 보상으로 받았다. 1263년 보니파초가 전투 중 입은 부상으로 전사하자 가장 나이가 많은 친척[3] 으로 사보이아 백작이 되었으며, 잉글랜드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보이아 백국의 중앙집권화를 추구하였다.
포시니의 아녜스와 결혼했으나 딸 하나만 두었기 때문에 사보이아 백국은 가문의 최연장자였던 막내동생에게 물려주었다.
[1] 프랑스어로는 le Petit Charlemagne[2] 조지 고든 바이런이 지은 시옹의 죄수(The Prisoner of Chillon)의 배경이 되는 성이다.[3] 토마소 2세는 1259년 암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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