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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페르디난트 폰 외스터라이히토스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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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페터 페르디난트 대공은 제 1차 세계 대전 당시 오스트리아의 황족, 군인이다. 전후에는 형으로부터 명목상의 토스카나 대공위를 계승하여 토스카나 대공가의 수장이 되었다.
2. 생애[편집]
토스카나 대공국 마지막 대공 페르디난도 4세가 오스트리아로 망명온 후인 1874년에 파르마의 알리체 공녀와의 사이에 3남으로서 태어났다.[3] 1900년에 페르디난도 2세의 손녀인 마리아 크리스티나와 혼인한 후에는 빈의 호프부르크 궁전에 있던 전 황태자비 스테파니의 옛 거처에서 생활하였다.
1908년에 제 66보병연대 연대장으로 임명되었고,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2군단 휘하의 제 25보병사단 사단장으로 갈리치아 전선에서 전투를 수행하였다. 그러나 동년 발발한 코마루프 전투에서의 포위 실패에 대한 책임으로 견책을 받았고, 이듬해 6월 사단장직에서 해임되어 25보병사단은 요제프 폴레셴스키가 지휘하게 되었다.
1917년 육군 보병대장으로 진급하여 이탈리아 전선으로 발령되었으며 카포레토 전투에 참전하였다. 전쟁 말기에는 트렌토 방면에서 오스트리아군을 지휘하였다.
전후에는 스위스로 망명하였으며, 형들의 귀천상혼으로 토스카나 대공가의 수장 자리를 이어받았다. 1935년에 오스트리아로 귀국하여 오스트리아에 거주하다 1948년 오스트리아의 장크트길겐에서 사망했다. 가문 수장 자리는 장남 고트프리트가 이었다.
3. 가족 관계[편집]
3.1. 자녀[편집]
[1] 양시칠리아 국왕 페르디난도 2세의 4남 알폰소 왕자의 차녀다.[2] 부르봉파르마의 치타의 고모[3] 차남은 요제프 페르디난트 대공[4] 루트비히 3세의 3남 프란츠 왕자의 딸이다.[5] 차기 명목상 대공위 계승권자 레오폴트 프란츠(1942~2021) 등.[6] 뷔르템베르크 왕가의 수장, 왕국 멸망 당시 추정상속인이었던 알브레히트의 장남이다. 카를 1세의 고종사촌이기도 하다.[7]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막내딸 마리 발레리 여대공의 외손녀(맏딸 엘리자베트 프란치스카의 장녀)이다.[8] 위의 사람과 동일인물이다. 언니인 헬레나 여대공과 먼저 결혼했다가 사별한 뒤에 로자 여대공과 재혼했다.[9] 명목상 왕위 계승권자 카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