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호 전차 판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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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강력한 전투력에 생산량도 상당했던 관계로[4] 많은 활약을 했지만 2차 대전 최악으로 꼽히는 정비성, 기동 신뢰성 등의 문제도 함께 가지고 있는 등 유명세에 비해 명암을 가진 전차다. 주포의 경우 75mm 70구경장 장포신의 빠른 탄속으로 관통력이 뛰어났으며 발사 시 안정적인 탄도를 형성하여 우수한 명중률을 보였다.
장갑의 경우 전면 장갑은 동시대의 중전차보다도 뛰어났으나 측면 장갑은 중형전차와 비슷한 수준으로 약점이었다. 기동력의 경우 전투 시 기동력은 뛰어났지만 각종 부품의 잔고장이 잦고 내구성이 낮아 장거리 자력 주행 능력이 형편없었으며 각종 부품의 잔고장 우려와 내구도를 신경써야 해서 조종수의 부담이 가중되었고 판터에 미숙한 조종수가 조종 시 예기치 못한 잔고장의 발생 우려가 매우 높았다. 조종수의 역량이 매우 중요한 전차들 중 하나로 이야기 된다.
2. 제원[편집]
3. 개발[편집]
3.1. 배경[편집]
원래 독일 국방군에게 있어서 구식인 1호 전차와 2호 전차는 물론이고 3호 전차와 4호 전차도 일종의 징검다리에 가까웠다. 앞의 두 전차는 아예 전차가 없는 상태에서 기초적인 기갑부대 훈련 및 최소한의 전력 구축을 위해 개발된 실험적인 전차였고 후자도 독일군이 생각하는 현대적인 기갑부대의 구축을 위한 첫 삽질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3호 전차와 4호 전차의 첫 양산 및 실전배치가 시작되던 1938년부터 독일군은 이들의 대체를 위한 새로운 전차 개발 계획에 착수했다. 당초의 목표는 주력전차와 지원전차로 이중화된 전력체계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으로, 이에 따라 20톤급 주력전차 계획 VK 20.01가 제시되었다. 초기의 계획안은 사실상 기존의 3/4호와 별 차이가 없는 섀시의 전차에 조금 더 강력한 엔진과 조금 더 두꺼운 장갑을 적용하는 것이 목표였다.히틀러 앞에서는 감히 아무도 말도 못했지만, 판터가 T-34의 장점을 모방한 것은 분명했다. 우선 측면의 경사구조 덕분에 중량을 늘리지 않고도 장갑판 두께가 늘어났다. 또한 T-34를 모방한 동륜이 기동력을 높여주었고[5]
, 마이바흐 700마력 가솔린 엔진을 장착해 동력도 4호 전차의 두 배에 달했다. 물론 시간이 충분했더라면 판터는 T-34를 이길 수 있었겠지만, 독일은 실제 성능에 대한 검증도 없이 급하게 생산부터 시작했다.
- 크롬웰 프로덕션 '2차대전사' - 독일 육군의 선봉, 기갑부대 편
그런 개발 목표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한 것이 바로 동부전선이었다. 'T-34 쇼크'로 불리는 독소전 초기의 기갑 조우전은 말 그대로 독일군에게 엄청난 충격을 남겼다. 본 적 없는 경사장갑을 대폭 채용한 형태에 우수한 기동력, 거기에 등장 당시로서는 충분히 강한 화력은, 그때까지 독일군 기갑부대의 주력이던 3호 전차, 4호 전차 초기형보다 우위에 있을 만큼 충분했기 때문이다.
다만 동부전선 초기에는 스탈린의 삽질로 소련군의 참모진이 붕괴되었던 탓에 T-34가 실제로 독일군에 준 피해는 무시할 수준도 못 되었다. 결국 독일군은 VK20.01을 폐기하고 장포신 7.5cm 주포(크루프의 60 구경장 7.5cm 대전차포가 고려되었으나 관통력 부족으로 라인메탈의 70 구경장이 채택되었다.)를 장착할 차세대 주력전차의 개발을 결정, 벤츠의 VK30.01 (D)와 MAN의 VK30.02 (M)이 차세대 전차 자리를 놓고 대결을 벌이게 된다.[6]
3.2. 벤츠와 MAN의 경쟁[편집]
다임러-벤츠 개발안은 기존의 독일 전차와 차별점이 많았는데 토션 바 서스펜션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던 육군병기국에 정면으로 대항하여 전통적인 리프 스프링 서스펜션을 고수했고, 소련전차처럼 후방변속기를 채용하면서 후방변속기의 우수성을 강조하는등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8] 다임러-벤츠의 안이 탈락한 것은 상기한 특성과 디자인이 지나치게 'T-34 짝퉁'에 가까워서 군 수뇌의 심기를 거슬린 것이 원인이라고도 알려져 있으나 사실과는 다르다. 디자인은 오히려 히틀러가 생산 지시를 내릴 만큼 좋아하던 것이었다고 한다. 실제 원인은 전차에 탑재될 만한 크기의 디젤 엔진을 개발하는 데 시간이 지나치게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었고[9] , 기존에 연구되던 포탑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포탑을 개발해야 하는데 전차가 하나라도 급한 시기에 그럴 여유가 없었고, 개발해도 성능이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벤츠 사 계획도 엔진 수급 가능성이 불투명해지자 HL210을 탑재할 수 있다고 입장을 바꾸었고, 이게 오히려 마이너스가 됐다. 벤츠 계획은 디젤인 MB507 탑재가 전제였고 차체도 작았기 때문에 연료적재량 자체가 적어, HL210을 탑재할 경우 항속거리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자면 안 그래도 좁은 차체에 더 많은 연료탱크를 탑재할 수밖에 없었으며, 당연히 승무원의 행동편의나 탄약탑재량 둘 중 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벤츠 사의 안은 포탑링이 너무 작은 관계로, 개발 도중 T-34만이 아니라 KV-1 중전차와도 표준교전거리 (800m) 에서의 교전능력 확보를 요구받으면서 탑재가 확정된 7,5cm Kwk42 L/70 전차포를 탑재하기 힘들다는 문제도 크게 작용했다.
이에 비해 MAN의 VK 30.02는 그때까지의 독일전차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경사장갑을 대폭 채용한 것을 제외하면 전형적인 독일 전차의 구조에 기반하였다. 또한 처음부터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크기의 섀시를 확보했는데, 이는 리프스프링 현수장치를 채택한 벤츠 형과 달리 토션바 현수장치를 채택한 덕이 컸다. 토션바 현수장치는 리프스프링에 비해 같은 폭의 차체라면 더 넓은 차내공간을 확보할 수 있어, 그만큼 포탑링의 폭을 넓게 잡을 수 있었다. 대신 차체 높이가 2~30cm쯤 높아진다는 문제가 있는데, 이에따라 노출면적이 넓어지고, 방어력 증대에 따른 무게 증가가 더 카진다는 악영향도 있었지만, 대신 그만큼 더 좋은 전장 시계를 확보해준다는 장점도 있었으므로 단점이라고만 볼 수는 없었다.
결정적으로 개발 당초부터 티거용 엔진과 사실상 동형인 HL210 엔진을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기 때문에 당장 동력계통의 수급에 문제가 없고 출력 역시 충분하며 현수장치의 지형대응능력 역시 벤츠 사 계획보다 훨씬 높다는 평가를 군부로부터 받았다. 당시 독일군이나 대전 이후의 독일군이나 전차의 기동력을 특히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으므로 결국 독일군은 MAN의 계획안을 '5호 전차', 즉 판터로 결정했다. 물론 580hp 12기통 수랭식 디젤엔진인 MB507엔진의 개발도 계속되어 대형 자주박격포 칼에 1944년 5월부터 장착되어 사용되었다.
이렇게 개발된 판터는 기존의 설계안에 더욱 강한 장갑을 더한 결과 무게가 크게 늘어 무장을 완비하면 47톤에 달하는 무게를 자랑했고 이는 6호 전차 티거 설계 초기 당시의 무게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후에 일어난 트랜스미션의 과부하와 엔진 누수는 기초 설계 당시에 비하면 지나치게 무거운 무게가 차체 전면에 집중되어 벌어진 일이었고 이는 독일 전차들의 특징이나 마찬가지였다. 이후 판터는 연합군의 지속적인 폭격과 소재 부족 등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1943년엔 한 달에 평균적으로 148대, 1944년엔 315대 생산을 기록하며 독일 국방군 육군의 주력으로 활약했다.
4. 생산[편집]
종전까지 모든 형식을 합쳐 약 6,000대 가량이 생산되었으며 8,558대가 생산된 4호 전차 다음으로 많이 생산되었다.
M.A.N., 다임러-벤츠, MNH 3개 회사 공장에서 생산되었고, 각 공장별로 생산된 차량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M.A.N.과 다임러-벤츠 공장에서 생산된 차량에는 기동륜(스프로켓) 옆에 고무 타이어 림이 있는 작은 궤도 지지 롤러 한 개가 있지만, MNH에서 생산된 차량에는 그 위치에 지지 롤러가 없는 대신에 궤도 가이드용 스키드 슈가 있다.
5. 형식[편집]
5.1. D형[편집]
5.1.1. 초기형[편집]
5.1.2. 후기형[편집]
생산량은 MAN, 다임러 벤츠, 헨셸, MHN에서 총 842량을 생산하였다.
5.2. A형[편집]
생산량은 851호차 이후 MAN, 다임러 벤츠, MHN, 데마크 사에 의해 약 2200량이 생산되었으며 차대번호는 151000 ~ 160000 및 210255 ~ 211000이다.
5.3. G형[편집]
또한 후방 머플러하단이 각진 형태이며 D형처럼 쌍열로 바뀌고 배연관에 철제 보호판을 덧대거나 소염장치를 부착하여 눈에 띄지 않도록 한 것도 특징. 아울러 포탑에도 자잘한 변화가 있으며 소형크레인 설치용 PILZ를 3개소 추가하고 위치측정용 컴퍼스 장치대, 야간투시장비 가이드 링 고정대, 화학전 탐지킷 장착대[11] 3개소 등등의 변화이다.[12]
특기 사항으로 44년 8월부터 육군 병기국의 지시로 공장 출고시에 공장에서 자체적으로 위장도색을 실시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기본적인 3색위장에 더하여 여러 개의 점을 찍어넣은 독일군 특유의 위장패턴이다. 또한 9월부터는 치메리트 코팅이 폐지된다.
MAN, 다임러 벤츠, MHN에 의해 약 3100량의 차량이 연합군에게 공장이 점거당하는 45년 4월까지 생산되었다. 차대번호는 120301 ~ 130000이다.
5.4. F형[편집]
후에 슈말투름(Schmalturm, 좁은 포탑이란 뜻)이라 명명된 이 신형 포탑의 원형이 제시된 것은 43년 중후반으로서 라인메탈 사에서 설계한 설계안을 그 기초로 한다. 이 신형 포탑 은 44년 2월까지 라인메탈에서 개발되지만 이후 다임러 벤츠로 이관되어 그곳에서 우리가 알고있는 슈말투름 포탑의 형태가 완성된다. 이 포탑은 기존의 판터 포탑에 비하여 전면 장갑이 120mm로 강화되고 포방패의 형상이 돌격포에 사용되던 포방패[14] 와 유사하게 변경된 것이 큰 특징으로 전면과 상부의 폭을 줄이고 좀더 가벼운 소재를 사용하는 등의 조치로 인하여 포탑의 중량은 오히려 감소되었다. 또한 포탑의 구조가 간단해지면서 생산성도 더 좋아졌다. 포탑 전면 면적이 줄어듦에 따라 주포는 스코다 사에서 설계한 7.5cm KwK 44/1 L/70으로 교체되었는데, 주퇴복좌기의 성능이 강화되어 머즐브레이크가 폐지되었다. 또 하나의 큰 특징은 신형장비인 스테레오 식의 거리측정기가 도입된 것으로 후에 미국의 M47 패튼에 장비된 것과 같은 방식이다. 기존의 목측식 조준기는 거리측정을 할려면 머리로 계산을 해야 하는데, 인간의 눈처럼 거리측정기를 따로 두면 계산할 필요가 없이 거리측정이 완료가 된다.
차체는 상면장갑이 강화되었고 조종수와 무전수의 햇치는 슬라이드식으로 옆으로 미는 형태로 바뀌었다. 다만 이 차체가 F형 차체인지 판터G의 1945년형 개량형 차체인지는 명확치 않다. 공장에서 촬영된 사진에는 별도의 생산라인이 아닌 일반 G형차체와 나란히 조립중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이와는 별도로 판터II의 슈말투름도 계획[15] 된바는 있으나 시제품조차 만들지 않았다. 주요특징은 포탑정면의 크기만 줄인것. 스테레오 측정기나 88mm 탑재는 애초부터 없었다. 드래곤에서 발매한 판터II의 포탑은 판터에 88mm탑재계획안과 F형 슈말투름안을 상상력을 발휘하여 만든 창작물에 불과하다.
6. 파생형[편집]
만일 전쟁이 지속되었으면 매우 다양한 업그레이드들이 계획되어있던 전차이기도 하다.
크기가 좀 더 작지만 오히려 더욱 튼튼하고 내부 용적도 더 넓은 슈말투름 포탑, 7,5cm KwK 42용 자동 장전 장치, 티거 2와 같은 88mm 71 구경장 주포로 업그레이드, HL-234(800~900마력, 최대 1000마력까지의 출력 요구도 있었다)으로 엔진 교체, 조향장치 개선 그리고 티거2 와 부품호환 등이다.(Doyle et al., 1997, 11) 특이하게도 후속작을 개발하다가 포기한 후(티거2와 부품호환을 해 생산성을 올리려 했지만 오히려 너무 어려워졌다),개발과정에서 얻은 개량점을 기존 전차에 적용해서 G형이나 F형 등의 개량형을 만들었다는 특징이 있다. 이렇게 해서 역사속으로 사라진 후속작 전차가 판터 2다.
실제 양산된 파생형은 구난전차인 베르게판터, 구축 전차인 야크트판터, 그리고 포병용 관측 차량(관측 차량의 특성상 무전기가 설치되고 주포 대신 적군 기만용 속임수인 가짜 나무 포신이 설치된다.)이 사실상 전부. 판터의 차체를 유용한 자주포나[16] 대공전차[17] 등의 페이퍼 플랜도 구상되어지긴 했었지만, 끝내 생산되지는 않았다.(Doyle et al., 1997, 23-45)
6.1. 기술 기반 파생형[편집]
6.1.1. 판터 2[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http://obj-sg.the1.wiki/d/2a/c3/2af8a3cde73220d4d2ce2a2d6cd7ab6096df203a6cf8021431522ae01d6c0ecb.png)
6.2. 구축전차/자주포 파생형[편집]
6.2.1. 야크트판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http://obj-sg.the1.wiki/d/2a/c3/2af8a3cde73220d4d2ce2a2d6cd7ab6096df203a6cf8021431522ae01d6c0ecb.png)
6.2.2. 슈투름판터[편집]
특이한 점은 슈투파나 슈투름티거와 같은 무포탑이 아닌 회전포탑에 대구경 단포신 곡사포인 15cm StuH 43/1을 설치하려고 한 점이다.
최초의 계획은 크루프사에 의해서 계획되었다. StuH 43/1 곡사포는 슈투파에 장착되었던 포다.
크루프사는 슈투름판터에 8호 전차 마우스의 조준기와 6호 전차 티거의 전망탑을 사용하는 것을 계획했다.
판터 차체의 한정된 크기와 비용은 크루프사의 계획안이 지닌 효율성에 대해 독일군이 의심을 가지게 했다. 15cm 포의 장포신 버전들은 판터의 차체에 설치할 수 있었는데 이는 전쟁말기인 상황에서 판터 자체에 일반 전차포를 다는게 더욱 효율적이었으므로 결국 기존 단포신 15cm StuH43/1 설치는 귀중한 판터 차체들만 낭비하는 꼴이 되었기 때문에 슈투름판터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만들어지지 않았다.
6.2.3. 게쉬츠바겐 판터[편집]
6.2.4. Gerät 5-1028[편집]
6.2.5. Gerät 5-1211[편집]
6.2.6. Gerät 5-1213 "Skorpion"[편집]
6.2.7. Gerät 5-1228[편집]
크루프 사가 디자인한 15 cm sFH 18 곡사포 탑재 판터 차체의 바펜트레거 계획안.
6.3. 장비 추가형[편집]
6.3.1. 포병관측차량 판터[편집]
6.3.2. 베르게판터[편집]
6.3.3. M10 위장 기만용 판터[편집]
6.3.4. 판터 지휘전차[편집]
6.3.5. 경장갑형 판터[편집]
차라리 판터를 더 만들어서 그 판터를 정찰전차로 쓰는 게 현실적이라 5호 정찰전차는 실제로 한 기도 양산된 바가 없다. 하지만 모 게임에서는 여러모로 가공할 위력과 충격을 발휘하면서 그 위세를 떨쳤었는데, 결국 삭제되었다. 그러다가 2021년 3월에 다시 돌아왔다. 다만 정규트리가 아닌 블랙마켓 한정판매로 돌아왔다. 해당 항목을 참고.
6.3.6. GT 101 장착형[편집]
항공기용 BMW 003 터보제트 엔진을 기반으로 개발한 GT 101 가스터빈 엔진을 장착하려던 계획. 전쟁 말이 나온 계획이며 양산되지 못했다.
6.4. 대공전차 파생형[편집]
6.4.1. 341호 대공전차 "쾰리안"[편집]
6.4.2. 8,8cm FlaK 41 탑재 판터 대공전차[편집]
6.5. 그 외[편집]
6.5.1. 판터투름[편집]
7. 실전[편집]
7.1. 제2차 세계 대전[편집]
우선 신형 전차의 성능이 예상외로 좋지 못했다. 판터 전차들이, 몇 ㎞ 진격도 못 하고 기계결함으로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보수차량의 부재와 병사들의 경험부족으로 작전 개시 첫날에만 200대 판터 중 160여 대가 참가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 크롬웰 프로덕션 '2차대전사' - 독일 육군의 선봉, 기갑부대 편
수뇌부가 큰 기대를 걸고 투입한 첫 실전 데뷔인 동부전선 치타델 작전에 최초 양산형인 D형이 실전투입 되었으나 작전이 시작된지 겨우 이틀 만에 194대 중 40대만 기동 가능할 수준이었다.[22]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판터의 손실원인 중 큰 폭을 차지하는 부분은 독일군 지휘관들의 운용미스가 가장 크다. 독일군은 쿠르스크에서 판터를 보병지원용으로도 사용하였는데, 쿠르스크 특성상 넓은 들판인지라 보병+전차 조합은 거의 자살돌격 수준으로, 적 공격[23] 으로 인해 둘 다 한순간에 손실하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그 결과 소련군의 강력한 공세에 의해 막대한 손실이 나왔고, 이는 판터의 첫 인상이 부정적으로 나오게 된 계기다. 원래는 194대가 작전에 투입되었으나 20대 정도가 이동 과정에서 엔진 화재로 손실되었다. 일부는 철도 적재를 위한 단거리 이동에서조차 사고가 발생, 심지어는 겨우 열차에서 내리는 동안에 판터 2대가 불타버린(...) 사례도 있다. 그나마 더 많은 숫자가 고장이 났던 것을 상당수 수리해서 174대를 가동 상태로 전투에 투입했는데도 이 꼴이 난 것이다.[24]
이렇게 된 것에는 판터의 엔진과 트랜스미션, 현가장치가 기존의 설계보다 지나치게 무거워진 무게를 견디지 못한 데다 설계 자체가 격렬한 전장에 맞지 않게 마모가 심했고, 덤으로 설계 미스 및 소재 선택 실수로 엔진 연료도관에서 연료가 새고 이게 뜨거운 엔진에 접촉하여 불이 나는(!) 문제가 제일 큰 원인이 됐다. 엔진 문제는 이내 개선됐지만 트랜스미션 문제는 근본적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25] 나중에 생산된 A, G형부터 문제 자체는 줄어들었지만, 이는 엔진의 개량뿐만이 아니라 RPM을 2500까지만 올릴 수 있게 억제하는 엔진 출력의 제한조치 덕분이었다.[26]
현가장치에 가해진 부담의 원인은 차체 정면 장갑의 강화로, 프로토타입 격인 VK3002(M) 시절의 차체 전면 60mm 경사장갑을 강화한 80mm 경사장갑의 채택으로 대전기 전차들 중 손꼽히는 방어력을 갖게 된 것은 좋았으나 그 부담이 고스란히 정비로 돌아가게 된 것이었다.
사실 초기형인 A형에서 19톤 이하이던 4호 전차가 후기형인 H형에서 25톤을 찍으면서 차체 전면 현가장치와 여타 구동계에 심한 부담이 간 사례나, 75mm 70구경장 주포, 80mm 경사장갑, 거기에 차체를 돌려 조준해야 하는지라 태생부터 현가장치에 부담이 걸리는 4호 구축전차의 사례를 보면 당초 설계가 잘못되었다고 하기보다는 이미 있는 차체를 개량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라고 보는 편이 옳다. 두 4호 계열의 문제는 차체 전면부의 현가장치를 더 튼튼한 것으로 바꾸는 것으로 어느 정도 해결되었지만 [27] , 판터는 시간이 좀 더 있었더라면 개선할 여지가 있었을지도 모르나 그전에 전쟁이 끝나고 말았다.
우리는 마이바흐 엔진에 불만이 많았다. 이미 많은 문제점이 쿠르스크 전투 이전부터 발생했으며, 기화기부터 시작하여 뜨거워진 배기관 위로 퍼져나간 연료 때문에 발생된 화재를 몇 번 경험하게 되었고 이런 화재는 보통 전기식 라이닝과 개스켓을 태우며 시작되었다. 나중에 이런 문제는 거의 다 해결되었지만 나는 불꽃이 작렬하던 배기관을 결코 잊을 수 없으며 때로 이반은 이 불꽃을 한 밤중에 타켓으로 이용하곤 했다.
- 독일군 전차병의 회고
더구나 그 기계적 결함만으로도 모자라 스펙상 티거와 대등하다고 여겨지는 바람에 판터들을 보병지원없이 밀집화망 속에 밀어넣는 전술적 실책까지 범했다. 이는 현장의 지휘관보다는 전차의 집중운용이라는 당연한 원리를 극단까지 밀어붙여 압도적인 기갑전력으로 적의 보병방어진을 완전히 격멸해 버리기를 기대했던 당시 48기갑군단 군단장 오토 폰 크노벨스도르프 대장 및 그 상급지휘부인 제4기갑군 사령관 헤르만 호트 상급대장 차원의 문제였다는 견해가 더 설득력이 있긴 하다. 또한 예하 판터가 배속된 GD(그로스도이칠란트)사단에서는 황당하게도 10기갑여단과 GD전차연대간 서로 협조없이 앙숙으로 지냈다. 이유는 판터여단인 10기갑여단에게 GD전차연대를 통합지휘토록 하였지만 실제는 같은 규모의 부대이다보니 서로 주도권을 쥐려고 비협조적으로 나왔다는 것. 보병지원없이 판터만 투입한것도 이런 사례중 하나. 원래 중전차는 보병지원 없는 상황에서 전차전을 상정한 것이므로 티거라면 그런 임무에서도 그럭저럭 활약할 수 있는데, 판터는 절대 그럴 수 없다. 4호보다야 조금 낫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기술적으로도 충분히 완성되어 있지 않았다면 답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간지 오래였다.
덕분에 판터 D형은 제대로 된 활약도 실전 데이터도 얻지 못한 채 일개량부터 들어가야만 했다. 이후 본격양산형인 A형이 등장한 이후에는 연합군의 어지간한 경/중형전차는 압도했으며 중전차 상대로도 호각 또는 우세에 가깝게 싸우는 등의 활약을 했다.
숙련된 전차병이 조종하는 판터는 셔먼 전차 3~5대와 싸우는 것이 가능했고, 판터 전차와 겨우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던 전차는 스탈린과 퍼싱 뿐인데 퍼싱 중전차의 실전 배치 시기를 생각해 본다면 무게도 거의 같은 IS-2가 실질적인 판터의 적수이다.
1944년 중반 이후엔 아예 4호 전차보다도 많은 수가 배치되어 독일군의 주력으로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이 상황을 예상하지 못하고 75mm 포 셔먼 전차를 주력으로 내세운 연합군 상층부 앞에는 그 예상을 박살내는 전차손실 보고서와 일선의 아우성이 돌아왔다. 결국 가을안개 작전 이후 아이젠하워는 더 이상 유럽에 75mm 셔먼 전차를 보내지 말고 M26 퍼싱 중전차의 배치를 서두르라고 했다.
판터 에이스들 중 1위는 에른스트 바르크만이 있는데, 전차 격파 수는 80대를 기록했다. 참고로 독일 전차 에이스들 중 최상위권은 최소 168대 이상의 전차를 격파한 쿠르트 크니스펠, 최소 150대 이상의 전차를 격파한 유명한 오토 카리우스, 139~144대의 전차를 격파한 요하네스 뵐터, 138대를 격파했으며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미하엘 비트만 등 죄다 6호 전차 티거 승무원들이 차지했는데 이들과는 다르게 바르크만의 전차 격파수가 티거 에이스들과 비교하면 적어 보일 수 있지만 판터는 어디까지나 중형전차 용도로 만들어졌고 중형전차로서 운용되었기에 판터의 측면 장갑 두께는 중전차인 티거의 측면 장갑 두께에 비해 훨씬 얇고 빈약했고, 따라서 측면 장갑이 불안한 판터로 전차 에이스가 되는 것은 티거로 에이스가 되는 것보다 난이도가 더 높을 수 밖에 없었기에 바르크만의 순수 실력만 놓고 본다면 티거 슈퍼 에이스들 못지 않게 대단했던 것으로도 볼 수 있고, 중형전차 분야의 에이스로서 정점을 찍었기에 높이 평가된다. 동시에 실전에서 판터의 성능 역시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8. 성능[편집]
기어다니는 He 177
초기형의 잔고장을 비롯하여 변변치 못하였던 초기 활약에 대한 보고를 들은 히틀러의 딱 알맞는 한줄 평가였다.[28]
운용이 정착된 뒤는 다음과 같다.
1943년 9월 13일, 제2 SS 기갑사단 '다스 라이히'의 제2 SS 기갑 연대 소속 제1 전차 대대 소속의 홀처 대위(SS-Hauptsturmfuehrer Holzer)가 지휘하는 판터 전차 7대가 콜로마크(Kolomak) 근교에서 70여 대의 T-34와 교전했다. 20여 분간의 전투 끝에 판터는 단 한 대도 피해입지 않고 T-34 28대를 격파했다.
독일 플로버리히(Floverich)에서 벌어진 일이다.
400미터 거리에서 판터의 전면장갑에 철갑탄 3발을 때려넣었지만, 판터는 건재했다.
이후 판터가 같은 거리에서 반격을 가해왔고, 초탄 한방에 우린 끝장났다.
조종수 존 새들락(John Sadlak) 상병
전차에서 주포가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 M4 전차는 독일 4호 전차보다 우수한 75 mm 고속포와 포구 제퇴기(Muzzle brake)를 장비하고 있다. 독일 판터와 티거 그리고 최신예 쾨니히스 티거 전차는 화력 면에서 75 또는 76 mm 주포를 장착한 셔먼을 훨씬 능가한다. 지근거리인 300~500미터 사이의 거리에서조차도 셔먼이 판터와 티거의 전면 장갑을 관통시키지 못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그와 반대로 판터와 티거는 장거리인 1,500~2,000미터 거리에서 셔먼을 격파했다.
게레온스바일러(Gereonsweiler) 근방의 로어(Roer) 강 유역에서 벌어진 11월 공세 동안, 제67 기갑 연대의 전투단이 판터나 티거 1, 2대에 의해 진격을 지연당하거나 돈좌되는 사태가 반복되었다. 같은 시기에 셔먼 1개 소대와 판터 1대가 맞붙는 장면을 보았는데, 800미터 거리에서 벌어진 이 교전 중 판터는 10발도 넘는 75, 76 mm 철갑탄을 맞고도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판터는 단 5분 만에 아군 셔먼 4대를 격파하거나 전투 불능에 빠뜨렸다.
제67 기갑 연대 3대대 부대대장 폴 A. 베인(Paul A. Bane) 소령
1944년 7월 28일부터 29일까지 벌어졌던 Siedice 전투에서 제5 SS 기갑사단 '비킹' 소속 제5 기갑연대 소속의 제2 전차대대는 4호 전차 1대와 판터 전차 5대를 잃고, 대신 소련군 전차 107대(T-34, 셔먼, 발렌타인 포함)를 격파했다.
이건 1944년 11월 20일 아침에 벌어진 일이다. 앞 놈들은 75 mm 셔먼이었지만, 내 건 76 mm를 탑재한 업그레이드된 셔먼이었음을 밝혀둔다. 800미터 거리에서 판터 옆구리에 7발을 넘게 갈겼는데 육시럴 판터는 멀쩡했다! 경악과 불신에 빠진 나는 아군 대전차 자주포 쪽으로 도망쳤고, 이후 판터에 의한 학살극이 벌어졌다.
차장 프랜시스 W. 베이커(Francis W. Baker) 병장
독일 게레온스바일러(Gereonsweiler)에서 벌어진 일이다. 아군 좌익에 위치한 고지에서 등장한 판터 1개 소대가 3,600미터(!) 거리에서 셔먼 몇 대를 격파했다.
이건 우리 셔먼의 75 mm 주포로는 격파가 불가능한 거리다.
반격을 가해 그 짐승 새끼들을 쫓아내긴 했지만, 그놈들이 입은 피해는 전무했다.
포수 버질 타운센드(Virgil Townsend) 상병
800미터 거리에서 판터 2대에게 선빵을 당한 우리 소대는 초탄과 제2사에 3대를 격파당했다.곧이어 나머지 셔먼 2대도 격파당했다.이 와중에 반격을 하긴 했지만 판터 측면에 명중된 75 mm 포탄은 튕겨나갔을 뿐이었다.
소대 선임하사 커티스 H. 애친슨(Curtis H. Atkinson) 하사
판터 전차 한 대를 시인했는데, 대략 1,000미터 쯤에서 정지했습니다.선빵은 제가 날렸는데 빗나갔죠. 망할 놈의 판터 전차는 우측으로 돌아 약 50미터 쯤 떨어진 숲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그걸 본 저는 제2탄을 날렸습니다. 독일 전차는 제리(*Jerry) 놈들의 화약이 좋아서 연기가 덜 나고 포구에서 발생하는 섬광도 약했습니다. 우리 건 한방 쏘면 연기가 자욱하고 포구에서 섬광이 아주 그냥 번쩍번쩍 거렸죠. 이러니 독일 놈들이 우리를 쉽게 발견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죠.
포수 이브렛 J. 해리스(Everette J. Harris) 상병
우리는 1km 거리에서 90% 이상의 명중률을 기록했다. 여기서 명중률은 적 전차의 완파를 의미하며 심지어 스탈린 같은 중전차도 충분히 제압했었다. 우리의 문제는 적 전차의 성능이 아니라 Pzgr. 40/42 탄을 우리가 원하는 만큼 제때 공급 받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로스도이칠란트 사단 베르게르 대위
8.1. 장점[편집]
8.1.1. 중전차급의 차체 전면 방호력[편집]
전면을 놓고 보면 판터 G형을 기준으로 55도 경사에 80mm 두께를 가졌는데 수직장갑의 두께로 환산하면 128mm에 이르는 방어력을 가진 셈이고, 여기에 60도에 가까운 경사는 실제 관통거리의 증가량보다 절반에 가까운 관통력 저하를 유발한다. 물론 이는 판터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다. 100mm의 포탑 전면은 충분히 두꺼워 보이지 않겠지만 반원형 포방패가 포탑 전면 대부분을 덮고 있었고 포방패도 100-110mm 정도였지만 탄착각이 매우 양호하게 나오지 않는 이상은 관통이 어려웠다. 다만 이 반원형 포방패의 하부에 철갑탄이 명중할 경우, 도탄된 포탄이 차체 상판을 뚫어 버리는 샷 트랩(Shot-Trap) 현상이 왕왕 일어나 문제가 되었는데, 이 결함은 1944년 9월부터는 포방패 하부를 직선화하여 도탄을 방지한 친(Chin. 영어로 턱) 타입 포방패가 후기형 G형에 도입되며 해결된다. 다만 대전 말기의 독일이 그렇듯 기존의 반원형 포방패도 그냥 마구잡이로 뒤섞인채 생산되어 이 샷트랩 문제는 종전까지 완전히 해결되진 못했다.
카탈로그 스펙으로는 납득이 안 가긴 하지만 독일 병기국의 보고서에 의하면 17파운더 APCBC가 판터의 차체 전면을 관통하려면 하단부를 노려야만 400야드, IS-2의 122mm 철갑탄의 경우엔 차체 전면 하단을 노려 100야드에서나 가능하다고 한다.[29] 포탑은 그만큼의 방어력이 안 나오는데 IS-2의 122mm에 포탑전면이 1500m, 포방패도 500m에서 뚫린다. 미군쪽 테스트 자료에서는 76mm M62 APC로 차체 전면은 건드릴 수 없는데 포탑전면을 1천 야드에서, 포방패를 200야드에서 뚫으며 90mm M77 AP로는 차체전면을 600야드, 포방패 1000야드, 포탑전면 1600야드에서 뚫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90mm HVAP로 사격했을 때 기관총 접합부 등을 취약한 부분을 700m 중반대, 차체 하단을 500m에서 관통하는 데 그쳤다. 미군의 신형 90mm T33 철갑탄으로는 차체 상부를 1km 거리에서 문제없이 관통 가능했지만 보급량이 적었다[30] .
이 무지막지한 판터의 정면장갑을 관통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던 소련 병기국은 전쟁 말기에 장갑재의 부족으로 장갑의 질이 나빠져 소련의 85mm에도 정면장갑이 관통되기 시작하면서 한시름 놓았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독일은 소련이나 미국에 비해 경도가 매우 높은 장갑판을 선호했는데, 이 경우 관통될 가능성은 낮아지지만 대신에 장갑재가 일부 금이 가거나 깨져서 대량의 파편을 발생시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고 장갑재의 질 하락과 맞물려 비관통 상태로도 승무원이 파편에 살상되는 경우가 발생하곤 했다.
8.1.2. 주포의 뛰어난 관통력과 압도적인 명중률[편집]
주포의 관통력은 매우 우수했다. 판터의 주포인 7,5cm KwK 42는 판터에서 처음 실전 도입된 물건이었지만, 75mm 계열 전차포 중에서 못해도 1~2위를 다투는 매우 우수한 관통력을 가진 포다. 퍼싱의 90mm 전차포도 HVAP가 아닌 M82나 M77 철갑탄의 경우 경우 판터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관통력이다. 물론 영국의 17파운더도 만만찮은 관통력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31] 명중률까지 고려하면 판터의 주포가 더 우수한데, 17파운더는 시험사격(완벽하게 이상적인 조건, 단 구조적으로 복잡한 분리철갑탄이다. 일반 철갑탄의 경우 반동이 강해서 그렇지 멀쩡한 강선포인데 이렇게 못맞힐 만한 수준은 아니다.)에서도 400야드(약365m) 에서도 56.6%, 800야드(약730m)쯤 가면 21.9%... 거의 기도하면서 쏴야 하는 수준이다. 더군다나 이 시험시 사용한 표적은 폭 2.5m, 높이 2m짜리다! 같은 조건에서 판터쪽은 2000미터에서 48% 수준이다. 따라서 당시에 구할 수 있는 75mm 포 중에서는 최상급이므로 당시의 모든 중형 전차는 손쉽게 격파할 수 있었으며 관통력 면에 있어서는 표준 전투 거리에서 티거의 88mm를 능가했다. 근거리에서 판터의 70구경장 75mm 포가 더 강력한 이유는 탄속이 더 빠르고 탄 구경이 작은 만큼 좁은 면에 그 에너지가 집중되기 때문이었다. 단 고폭탄 성능은 구경의 한계로 인해서 88/56구경장이 강력했고, 표준 전투거리 및 그 이상의 거리에선 무거운 88mm 쪽이 더 오랫동안 자기 운동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어서, 거리가 멀어질수록 88mm가 더 우수한 위력을 보인다.(복원) 작업장에 관광객들께서 종종 찾아오시거든요. 2차대전 때 전차병으로 복무하신 분들께서 셔먼에 탔다가 피탄당했을 때의 사연을 말씀하시고는 하는데, 여기있는 판터를 보시고서는 몸을 부들부들 떠시더라고요. 주포를 보시면서 말이죠. 아직도 그때의 악몽이 떠오르시는 거죠.
2차대전 이후 별다른 후계가 없는 88mm와 달리 이 75/70 주포는 전후 판터를 보상으로 받아 운용했던 프랑스[32] 가 포신을 상당히 줄이는 등의 개조를 하여 AMX-13에 장착하여 냉전시기에도 사용된다.[33] 프랑스가 15톤도 안 되는 경전차에서 쓸 수 있도록 개조한 화포는 체급 대비 화력으로는 매우 쓸 만했다. 그러나 포탄을 바꾸는 등의 개량을 거쳐도 2차 대전 말에 개발되어 46년부터 배치된 신형전차인 T-54와 센츄리온의 전면을 무슨 수를 써서도 관통할 수가 없었기에 결국 AMX-13은 대전차고폭탄을 사용하는 90mm로 바꿔달게 된다.[34] 이스라엘 역시 공여받은 셔먼전차를 개조하여 원래 판터의 주포를 변형한 이 AMX-1375의 주포를 장비하기도 했는데 여기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T-54를 잡을 수가 없어 AMX-30에 장착된 105mm포를 변형한 프랑스제 105mm포를 장착하게 된다.
하여간 2차대전 기준으로 보면 무척 높은 관통력을 가진 주포라고 보면 되고 단지 구경의 한계는 확실하여 아직까지 사용되는 소련제 100mm D-10[35] 등과는 달리 아무리 냉전기 기술을 사용한 개량을 해도 46년형부터의 전차들에게는 이빨이 안먹히는 한계가 확실한 주포라고 보면 된다.
8.1.3. 전술적 기동성[편집]
방어력과 화력의 양립으로 무게도 적절하게 맞췄고, 여기에 티거에서 썼던 강력한 마이바흐 HL230 엔진을 탑재해 상당히 우수한 기동성을 가졌다. 게다가 티거와 동일하게 제자리 선회가 가능해 전술 기동은 훌륭했다.[36] 특히 독일 특유의 여러 겹으로 된 보기륜은 정비 면에서는 악몽과도 같았지만 궤도가 지면에 닿는 압력을 줄여서 부드러운 지형에서도 33톤 가량으로 훨씬 가벼운 셔먼 전차에 준하는 적응성을 보일 수 있었다. 스웨덴의 노획 판터 테스트에서는 험지 기동성에서 파이어플라이를 간단히 압도하는 모습을 보인다. # #
내가 보기엔 판터와 타이거가 우리 전차보다 기동성은 물론 험지 주파능력이 뛰어났다. 셔먼이 퍼지는 장소에서도 판터와 타이거가 기동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 미국 전차 소대 부사관 찰스 A. 카든 하사
- M4 sherman at war, michael green & brown
판터 전차 궤도는 1인치 정도 지면을 파고든 상태에서 시속 18마일을 기록함. 같은 조건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M4A3E8의 속도는 대략 동일했다. 일부는 판터보다 늦거나 빨랐다. 포장 도로에서의 비교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판터의 최고 속도는 시속 38마일임. 일반적인 지면에서 판터의 궤도는 기동시 2분의 1인치 깊이의 자국을 남겼다. (광폭 궤도를 사용하는)M4A3E8 역시 비슷하였으나 기존의 좁은 궤도를 사용하는 셔먼 전차들은 궤도가 지면 아래로 파고들었으며 2인치 깊이의 자국을 남겼다. 연결 핀 두 개를 제거하면 분리가 가능한 궤도를 가지고 있으며 궤도 장도는 대형 너트 하나를 통해 조절이 가능하다. 시험에 참여한 승무원들은 판터의 궤도 관리가 미국 전차 궤도보다 간편하다는 점에 동의했다. 75마일 정도 도로와 야지에서 기동했지만 지침서에서 예상된 문제는 드러나지 않았다. 이 전차를 노힉했을 당시 궤도는 손상되어 있었다.
- 1945년 3월 27일 노획된 판터 G형을 셔먼과 비교 테스트한 미군 보고서
다만 후진의 경우 변속기의 기어가 영국의 처칠 시리즈마냥 1단밖에 없다는 문제로 시속 2~4km라는 굼뱅이 기어가는 속도를 보여준다.
8.1.4. 성공적인 생산성과 높은 가성비[편집]
이전 모델인 4호 전차가 중량 25톤에 가격은 10만 라이히스마르크였던 것에 비해 판터는 주포와 조준경, 포탄 등의 무장이 완비되었을 때 중량이 45톤에 달했으나 가격은 약 17만 라이히스마르크 수준으로, 무게가 80% 증가한 반면 생산비용은 70%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또한 4호 전차보다 늦게 양산되었음에도 생산량을 따라잡을 정도로 생산성이 좋았다. 덕분에 연합군의 폭격과 특수강 고갈 등의 악재에 시달리던[37] 1944년에도 판터는 한 달에 약 300대 가량이 생산될 수 있었다.
8.1.5. 야간 투시 장치 장착[편집]
8.2. 단점[편집]
8.2.1. 거대한 차체[편집]
8.2.2. 부족한 포방패, 차체 측후면 장갑[편집]
판터의 측면 장갑은 상부 30도에 초기형 40mm, G형 이후 50mm이며, 하부는 수직 40mm였다. 이 수치는 판터 운용 메뉴얼인 판터피벨에 따르면 소련의 주력 대전차포인 76.2mm 포를 270도 방위 어느 거리에서도 방호할 수 없었으며, 심지어 초기형 대전차포인 영국의 2파운더나, 신포탑 치하의 1식 기동 47mm 속사포에게 마저도 2km 이상의 거리에서 관통될 가능성이 있는 수준이였다.[41] 물론 당시 타국의 중형전차들(셔먼 38mm, 크롬웰 46mm, T-34 45mm)과 비슷하기 때문에 판터만의 약점도 아니였으며 3호, 4호 전차(30mm)에 비해서 발전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판터의 약점이라고 언급되는 이유는 소련군이 주력으로 운용하던 대전차 무기인 대전차 소총탄의 14.5mm탄의 경우, 서멧탄심 사용 시 50m 안이라는 근거리에서 쏘았을 때 최대 관통력이 45mm였기 때문에 크롬웰과 T-34도 방호 가능한[42] 보병이 쏜 총알[43] 을 판터의 차체하부는 100미터 이내에서 관통될 가능성이 있었는데 이는 앞의 중형전차들 보다 한참 무겁고 비싼 판터에게는 문제가 있었다. 때문에 판터 2를 설계하면서 이를 해결하도록 했지만 판터 2는 취소되었기 때문에 측면에 5mm짜리 추가 사이드 스커트 장갑(합계 45mm)을 다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외장형 장갑은 파손될 확률이 높았고 실제로 운용되던 판터의 사진을 보면 중간에 빠져 있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측면은 확실한 약점이었고 실전사례로는 소련의 T-70 경전차가 45mm 주포로 판터의 측면을 관통 격파한 경우도 있었다.
전면 방어력도 강력한데다 국내에서는 무게로 전차를 구분하려는 경향이 강해 "중형 전차의 기능을 제한적으로나마 겸비한 중전차", "나쁘게 말하면 포지션이 애매한 중형전차" 등 어떻게든 중전차와 연관 지으려고 하는데. 확실히 체급은 소련의 IS-2, IS-3 중전차급이 맞으나 운용은 중형전차로 굴렸으며, 소련의 평가는 "구축전차에 더 가까운 전차"였다.
그도 그럴게 위의 이런 낮은 측후면 방어력으로 인해 IS-2는 판터를 상대할 때에 굳이 철갑탄을 사용하는 수고를 하는 대신 그냥 장전되어 있는 고폭탄으로 적당히 측면이 보이는 판터를 쏴버리는 방식이 더 간단했다고 한다. 122mm 고폭탄에 맞으면 포탑 측면이 말 그대로 박살이 났기 때문. #
IS-2가 중전차임에도 중형전차로 운용된 판터를 상대로 대전차전에서 열세인 안습한 수준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역으로 판터의 얇은 측면 장갑이라는 명백한 약점은 티타임을 주지 않는 한 연합군의 평범한 중형전차들에게도 쉽게 관통될 수 있었고, 중전차인 IS-2의 측면 장갑에 비하면 방어력의 한계가 명확히 드러났다.
8.2.3. 포탑 회전간 문제점[편집]
판터 D형은 전기식 모터를 달았음에도 수동과 비교될 만큼 느려터진 포탑회전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A형부터 엔진 출력에 따라서 1회전을 15초 ~ 93초로 선택할 수 있는 유압식 회전 장치를 장착함으로써 회전속도는 개선할 수 있었다. 하지만 판터는 작은 포탑에 70구경장의 긴 포를 장착해 무게 밸런스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차체 각도가 20도 정도면 포탑을 돌리기가 힘들었으며 그보다 더한 경사에서는 포탑이 멋대로 돌아가기도 했다. 이 점은 미군이 노획한 판터를 실험했을 때도 동일했다.
다만 심각한 문제점까진 아니었는데 사실 길 경사가 20도면 엄청나게 가파른 거다. 어지간히 가파른 산복도로도 실제로는 경사 10도에도 훨씬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사 12도를 넘어가면 험지용 차량이 아닌 일반 승용차들은 사실상 통행이 어렵다.
8.2.4. 낮은 신뢰성[편집]
붉은 군대가 3호 돌격포나 4호 전차를 사용하는 것은 그 신뢰성과 부속품의 충분함[44]
으로 권할 만 하다. 하지만 신형 판터와 티거를 노획하여 사용해도 부서지면 고치려는 노력을 하지 마라. 그것들의 엔진과 변속기, 현가장치는 너무나도 나쁘다.ㅡ 소련 병기국 1944
트랜스미션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주행거리 100km 이하일 시 5%가 전투불능수준을 보였고. 주행거리 1500km 이하에선 90%가 전투불능수준을 보였다. 이는, 엔진공간이 협소한 것과 연료배관과 배기관 등의 문제가 겹쳐진 문제로, 결과는 위에 언급된 초기형(D형)의 대량 비전투손실. 추후, 트랜스미션은 개량하고 엔진은 종전 때까지 출력 제한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조치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설계안에서 무게를 지나치게 증가시킨 것도 문제가 되어, 연합군이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엔진의 평균수명을 주행거리 1,000km로 기록하였고, 신뢰성 면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1944년에 영국군이 노획한 판터의 테스트 당시, 경사를 오르던 중 화재가 발생한 뒤, 3단 기어가 고장나 저단으로 시험을 계속했음에도 다시 화재가 발생해 전소되는 사태가 발생했고 # 1945년에 신품 판터를 노획해 테스트했을 때도 온갖 고장과 화재가 식별. 결국 테스트를 중지하였다. #
특히 최종구동장치에서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여, 연합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44년 노르망디에서 방기된 판터의 전차의 50% 이상이 최종구동장치에 이상이 있었다.
독일군은 이 짧은 수명을 지닌 전차를 어떻게든 더 오래 써먹기 위해 짧은 거리라도 열차에 실어서 이동시켰다고 하는데, 전장상황에서 항상 열차를 쓸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하는 만큼 전략적으로 난점이 되었다.
전후 프랑스가 버려진 판터를 재운용 하였으나, 운용하는 데 힘든 전차인 것만 재확인하고 퇴역시켰다.
8.2.5. 낮은 정비성[편집]
8.2.6. 중량과 그에 비례하는 짧은 항속거리[편집]
판터는 IS-2보다 고작 1톤이 가볍고 M26 퍼싱 보다 오히려 더 무거운 중형전차의 탈을 쓴 중전차급 체격이어서 연합군의 중전차들만큼 무겁고 운송이 힘들고 연료를 많이 소모했다. 판터는 애초에 연료를 다 쓰기도 전에 퍼지기 마련인 낮은 신뢰성을 가진 전차지만 어떻게 안 퍼진다고 해도 T-34의 반도 못 가는 항속거리는 큰 문제가 되었다. 또한 무거운 무게는 교량이나 특수지형의 이용도 불편하게 했다.
위에서 언급되었던 내용을 정리하자면 신뢰성 문제로 오래 자력주행을 할 수 없으며 어차피 기름 먹는 하마라 퍼지지 않아도 항속거리가 짧은데 정비까지 힘들었다. 즉 여러모로 지원체계[46] 와 높은 숙련도가 필요했던 물건.
8.2.7. 부족한 관측장비[편집]
조준경의 경우 TZF 12a 2.5배 ~ 5배로 조정할 수 있는 가변배율 조준경에 시야각도 2.5배율일 때 28도.[47] 5배율에서 14도라는 상당한 고성능이었다. 게다가 SF14Z 같은 삼각관측기 덕에 장거리 조준능력도 좋았다. 다만 소련 전차나 미국 전차에는 달렸던 포수용 보조조준경이 없었기 때문에 시야각이 좋다고는 해도 숙련된 전차장이 정확히 표적 방향을 지시해주지 않으면 포수가 표적을 찾기가 어려웠고, 이는 후술될 프랑스군의 운용 보고서에서도 비판되는 요소다. 사실 이는 독일군 전차들의 대부분이 그러했고 숙련도가 높은 차장과 포수로 극복을 했으나. 말기에는 동부전선의 소모전과 팔레즈 포켓으로 인해 숙련된 승무원들을 잃어버리고 그 자리에 초보 차장과 포수를 바로 전장에 보내는 바람에 말기에 벌어졌던 전차전에서 독일이 예전 명성과 다르게 연합군 전차들에게 털리는 사태가 발생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조준장치를 M4 셔먼과 비교할 경우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조준경이 장착되었기 때문에 간단한 비교는 어렵다. 극초기형 셔먼의 경우는 시대가 시대인지라 무배율 조준경만 달렸을 정도로 뒤쳐졌지만 흔했던 M70의 경우 3배율 13도 스코프로 열세인 정도였다. 그러나 후기형 76mm 셔먼의 경우는 M71처럼 5배율 13도 같은 고성능 스코프도 등장하게 된다. 게다가 이런 후기형 셔먼의 경우 포수용 보조조준경으로 1.x~6가변배율식 M10D 잠망경도 흔히 장착되었고 조종수나 무전수도 회전 가능한 잠망경으로 주변을 감시할 수 있어 근거리에서 위협을 찾는 것이 빨랐다. 덧붙여 미국은 명품 민수용 사냥용 스코프를 만든 경험이 많기 때문에 독일처럼 품질은 좋았다. [48] 전설적인 셔먼 전차장인 에이브람스가 아라쿠르 전투에서 75mm 포로 판터를 때려 잡을수 있던것도 안개낀 환경에서 셔먼의 근거리 표적 획득 능력이 좋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셔먼의 경우 전차장이 탈취레버로 포수가 정밀조준을 하기 앞서 포탑을 선회해 표적에 지향할 수 있었던 데 반해 판터는 그런 것도 없어서 더욱 어려웠다. 결과적으로 후기형 셔먼의 경우 전차장이 지시한 표적을 5~6초 정도면 포수가 사격할 수 있다고 보았는데, 판터는 그 4~5배의 시간(20~30초)이 걸렸다.[49]
8.2.8. 포탑 공간[편집]
포탑 내부가 상당히 좁았다. 실제 내부를 살펴본 영상을 본다면 쉽게 느낄 수 있는 점으로서 특히나 탄약수의 공간의 경우 탄약을 원활히 장전하는 것 자체가 불편해보이는 점으로 이런 좁은 전투공간이 장기적인 전투에서는 상당한 피로도와 전투능력 저하로 직결 된다는 점에서 나름 중요한 문제다. 원래 전차의 포탑 자체가 좁기는 한데 승무원의 거주성에 직결되는 포탑링이 좁은 게 문제. 판터 포탑링은 76mm M4 셔먼보다 작고 T-34-85보다 조금 넓은 수준밖에 안 된다. 심지어 거주성이 매우 불편하기로 유명한 IS-2보다도 좁다. 물론 판터는 포와 포탄의 사이즈가 비교적 작기 때문에 IS-2급은 아니겠지만 T-34-85와 비슷한 포탑링에 크고 강한 포를 달았으니 승무원의 거주성이 좋을 수가 없다. 독일도 어느 정도 포탑의 단점을 인지했는지 F형에 달릴 계획이었던 슈말투름 포탑은 기존의 포탑과 비교해서 무게는 줄어들었는데 더 튼튼하고 내부 공간이 더 넓었다.[50]
8.3. 평가[편집]
즉 판터는 전체적으로 장갑, 화력, 기동성의 주요 요소에서 매우 우수한 성능을 보였고 가성비도 좋은 편이긴 했지만 단순한 스펙만을 놓고 보았을 때는 알 수 없는 문제가 꽤 컸다.[51] 측면을 잡힐 일 없는 장거리 교전, 그리고 장거리 이동이 필요없으며 미리 적들이 올 방향을 예상하고 대비 가능한 방어적 상황과 고관통력과 높은 명중률을 지닌 주포가 유리한 대전차전투에서 확연한 고성능을 발휘했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취약점을 보일 수 있었는데, 이는 특히 수세에 몰린 43년 이후의 나치 독일의 상황에서 우월한 교전비를 내기에 유리했다. 정면 중장거리 교전에서는 판터의 우월한 전투력에 더해 방어상황에 효율을 십분 발휘하여 정면으로 쳐들어오는 적과 싸워 승리했으나, 우회해오는 적들에게 포위당하면 전략기동이 안 되어 도망이 불가능해 후퇴가 더 합리적인 판단인 상황에서도 끊임없는 교전만을 강요받을 수 밖에 없었고 후퇴하다 퍼져서 전차를 자폭시킨 후 버리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러한 경우 죄다 비전투손실로 기록되었다. 판터가 전차의 전투력이 중요한 대전차전에서 명백히 우수한 교전비를 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전투력 이외의 고질적인 문제점들, 그리고 전차 성능 외적인 문제이지만 독일의 제공권 상실 등으로 인한 손실이 훨씬 컸다. 따라서 판터의 교전비를 볼 때에는 단순한 전차간의 교전비가 아닌 유기/자폭/포격/공습 등으로 인한 전차 내외적인 문제로 발생한 손실 등을 모두 고려해서 봐야 할 필요성 또한 제기되고 있다.
신뢰성 문제의 경우 판터의 평가를 크게 낮추는 요소인데, 1943년 6월 도입된 이후로 계속 문제를 일으켰다. 전반적인 신뢰성은 개선된 부분이 있었으나 최종구동장치의 문제는 끝까지 해결하지 못했고[52] , 구동계와 엔진화재 문제 등도 전후 프랑스와 소련에서도 공장을 한동안 가동하고 특히 프랑스의 경우 판터를 상당한 규모로 운용하면서도 해결하지 못한 것을 보면 사실상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였을지도 모른다.[53] 결국 2차 대전기 독일 전차들[54] 중 가장 오래 사용된 것은 유명한 고중량 전차들이 아니라 전쟁 초기부터 활약한 중형급인 4호 전차였다.
그런 이유로 해서 역사적으로 사용한 측과 상대한 측의 평가가 가장 상반되는 전차 중 하나로 직접 사용한 독일과 프랑스군의 평가는 거의 짜증스러운 분위기였고[55] 당한 측인 미소영 3국의 평가는 아주 높은 전차이기도 하다.
판터를 주력전차, MBT로 분류하자는 주장도 꽤 있다. 그러나 MBT는 자국의 독트린에 맞춰 다목적성과 일원화를 꾀한 전차를 뜻하기 때문에 중구난방이였던 나치 독일의 기갑체계의 일부중 하나에 불과한 판터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56]
또한 판터의 영향을 받아 MBT가 등장했기 때문에 판터가 MBT의 시조라는 주장 역시 많이 나왔는데, 미소영 3국의 1세대 MBT들도 판터의 영향을 특별히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발전한 경향이 높기에 이 주장이 틀렸다. 3국의 주력전차들은 전부 자체개발 전차들이었는데 T-54의 전신인 T-44와, M46의 전신인 M26 퍼싱의 프로토타입인 T-43, T20 모두 판터가 쿠르스크에서 데뷔하기 전에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또한 영국군의 센추리온 전차 MK I의 경우 처음부터 보병전차와 순항전차를 통일한 유니버설 탱크를 목표로 해서 판터와는 거의 관계가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9. 운용국[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http://obj-sg.the1.wiki/d/2a/c3/2af8a3cde73220d4d2ce2a2d6cd7ab6096df203a6cf8021431522ae01d6c0ecb.png)
10. 전쟁 이후[편집]
T-34-76의 경사장갑에 크게 영향을 받아 도입된 전면 경사장갑은 이후 티거 2가 충실히 물려받았다. 이후 레오파르트 1도 이런 경사장갑을 가지게 되는데 레오파르트와 판터는 시간상으로든 설계상으로든 차이가 큰 까닭에 판터와 레오파르트의 관계를 일반적인 후속 전차로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힐러리 도일에 따르면 판터의 후속형으로 기획되었던 E-50/75의 설계 도중 처음 도입되었던 구상들이 1955년 인도 수출용 전차 설계에 접목되었고, 곧 레오파르트로 이어져 계승되었다고 보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레오파르트가 판터의 후속이라는 시각이다. 한편 E-50/75의 뒤를 잇는 전차들은 프랑스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AMX M4나 AMX-50 같은 실패한 전차들이 그것이다. 빠른 항복으로 미국, 소련, 영국 3국에 비해 전차설계능력이 떨어지던 프랑스는 비교적 미국, 소련, 영국 3국의 우월한 전차기술에 어느정도 따라가는 것 처럼 보이던 나치 독일의 전차들을 대량으로 입수하여 분석 발전시켜 새로이 전차를 개발했으나 나치 전차들과 동일한 저 신뢰성 저 정비성 등의 문제가 동일하게 발생하여 그대로 실패하고 이쪽도 독일제 기술을 참고 수준으로만 사용하고 20년간 새로 기술을 발전시켜 AMX-30을 만든다.
판터라는 이름은 원래 푸마 보병전투차에 붙을 예정이었지만 기각되었다.[57] 그리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라인메탈이 선보인 차세대 주력 전차인 KF51 판터에 이름이 계승되었다.
10.1. 2015년 독일 민간인 소유 판터 압류사건[편집]
11. 보존 차량[편집]
가동 가능 차량
- 미국 문화 유산 박물관(American Heritage Museum)[61] - A형 차량.
- 프랑스 소뮤아 기갑 박물관 - A형 차량.
- 독일 전차 박물관(Deutsches Panzermuseum) - A형 지휘차량.
- 독일 Wehrtechnische Studiensammlung - G형 차량.
- 독일 Friedrich Christian Flick Private Collection - G형 차량.
- 러시아 쿠빈카 전차박물관 - G형 차량.
- 호주 기갑 포병 박물관(The Australian Armour and Artillery Museum ) - A형 차량.[62]
가동 불가능 차량
- 캐나다 전쟁 박물관 - 2008년 부로 복원된 A형 차량이 전시됨.
- 스위스 툰 전차 박물관 - 초기 A형 차량이다.
- 영국 The Wheatcroft Collection - 3대의 A형 판터가 보관중이고 그 중 한 대가 복원중이다.
- 네덜란드 Overloon 전쟁 박물관 - G형 차량이며 1944년, Overloon에서의 전투 당시 영국군의 PIAT에 의해 측면이 관통 당해 승무원들이 사망했고 한동안 버려졌다가 그 상태 그대로 전시되고 있는 중이다.
- 요르단 전차 박물관 - A형 차량.
- 프랑스 Musée des Blindés 박물관 - A형 차량과 G형 차량.
- 프랑스 Mourmelon-le-Grand - A형 차량.
- 영국 보빙턴 전차 박물관 - G형 차량. 현재 복원 중.
- 벨기에 Grandmenil - G형 차량.
- 벨기에 Houffalize - 이 지역이 아르덴 대공세의 주 전장이었던 지라 전장에서 발견된 A형 차량과 G형 차량을 전시중이다.
- 미육군 기갑기병 박물관 - 구 에버딘 박물관에서 소장했던 A형 차량 1대와 G형 차량 2대 그리고 판터II 1대를 전시 및 복원 중이다.
- 네덜란드 브레다 Wilhelmina 공원 - 유일한 생존 D형 차량. 폴란드군이 브레다를 해방시킨 뒤 해당 차량을 네덜란드에 기증했다고 한다.
12. 미디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http://obj-sg.the1.wiki/d/2a/c3/2af8a3cde73220d4d2ce2a2d6cd7ab6096df203a6cf8021431522ae01d6c0ecb.png)
13. 모형[편집]
유명한데다가 인기있는 전차인 만큼 여러 모형 제조사에서 다양한 모형을 출시했다. 아래에 서술된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13.1. 프라모델[편집]
- 1/16
- 1/25
- 1/35
- 1/76
13.2. 브릭[편집]
- Buildarmy
- 코비블럭
- 옥스포드
래드리버X건들건들의 합작품으로 판터G형을 한정판으로 뽑아냈다. 생산은 아카데미 과학에서 했으며 금색으로 사출된 골드 에디션과 일반적인 사출색인 블랙 에디션으로 나뉘어지며 판터피벨 독어 한국어판, 엽서, 책과 만화 등을 포함하고 있다.
http://madminute.co.kr/product/list2.html?cate_no=49
13.3. 페이퍼 크래프트[편집]
월드 오브 탱크 러시아 서버에서 D형의 도면을 제공하고 있다.
http://worldoftanks.ru/ru/media/10/armor-box-panther-ausf-d
14. 둘러보기[편집]
![파일:판터2슈말투름.jpg](https://lh3.googleusercontent.com/-8zhkB-QhYwo/W3AQ3oc-w5I/AAAAAAAEBU4/qySlYCEC33U5nPbvGsl1Rq_5_8IQHzSFwCHMYCw/s0/be7cd69618f48d4c9842f6d861f0006c08dae5ee.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