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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치오 클레멘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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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레멘티의 6곡의 소나티네 Op.36. 피아노를 조금이라도 쳐 보았거나 집 근처에 피아노 학원이 있는 사람이라면 프리드리히 쿨라우의 소나티네와 함께 단번에 "아아, 이 곡!" 이라고 반응할 바로 그 곡이다.
1. 개요[편집]
이탈리아 출신으로, 고전파의 클래식 작곡가이자 음악 저술가 및 음악 교사.
2. 생애[편집]
어릴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듣고 컸으며 9살에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 자리를 꿰찼고 이미 20세 무렵에는 피아니스트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후 29세 때에는 빈에서 자신보다 4살 아래인 모차르트와 만나서 피아노 배틀을 벌이기도 했다.[2] 이후로 모차르트는 클레멘티의 연주를 "지나치게 기계적인 테크닉에 의존하는 연주"라면서 틈틈이 까댔는데, 모차르트의 연주 방식이 악보에 충실하기 보다 그때 그때의 감상에 따른 즉흥적인 연주에 가까웠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베토벤은 클레멘티의 아름다운 패시지를 극구 칭찬했으니 흥미로운 비교가 되는 부분.
하지만 모차르트는 클레멘티의 소나타 내림 나장조(Op. 47 No. 2)의 시작 주제를 오페라 마술피리의 서곡에 도입하였다.
당시만 해도 피아노는 피아노포르테(pianoforte) 정도의 전신이 나와 있는 상태였으며, 클레멘티는 사실상 최첨단의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 정도로 인식되었다. 이처럼 피아니즘의 선구자 역할을 했기에 클레멘티는 심지어 "피아노의 아버지" 라는 칭송까지 받고 있다고.
음악 교육과 교수법에도 관심이 있었으며 《Gradus ad parnassum》이라는 연습곡을 출판하기도 했다. 재미있게도, 훗날 이 연습곡은 클로드 드뷔시에 의해 〈어린이의 차지〉의 첫번째 장부터 "그라두스 아드 파르나숨 박사" 라고 비틀어 인용이 되기도 했다. 클레멘티의 연습곡들은 어린이들이 치기에는 어지간히 재미가 없기로 악명이 높았다나.[3]
주로 피아노 독주 작품들을 작곡했으며, 그 중 오늘날까지 남은 것은 64곡이다. 그 외에도 Op.18 등 몇 곡의 교향곡도 작곡한 적이 있다.
2.1. 피아노 소나타 이외의 작품[편집]
피아노곡
- 네 손을 위한 3개의 듀엣 Op.3
- 2개의 카프리스 Op.47
관현악곡
- 피아노 협주곡 C장조 WoO12
- 교향곡 B플랫 장조 Op.18-1
- 교향곡 D장조 Op.18-2
- 교향곡 1번 C장조 WoO32
- 교향곡 2번 D장조 WoO33
- 교향곡 3번 G장조 WoO34
- 교향곡 4번 D장조 WoO35
- 서곡 1번 C장조 WoO36-1
- 서곡 2번 D장조 WoO36-2
실내악곡
- 플루트 소나타 Op.31
- 바이올린 소나타 Op.30
- 피아노, 트라이앵글, 탬버린을 위한 12개의 왈츠 Op.39
- 두 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카논 WoO29
- 9중주 WoO30
- 9중주 WoO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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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2002년 9월 7일에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자신의 첫 국내 리사이틀 앵콜곡으로 연주한 적이 있다. 당연히 관객들은 대폭소. 일단 임동혁의 리사이틀에 직접 찾아간 사람이라면 그들 중에 피아노 학원 여교사들이 적지는 않았을 거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클래식 덕후라면 잘 알겠지만, 2000년대 당시 임동혁의 연주회가 열렸다 하면 지역을 불문하고 순식간에 티켓이 매진되었으며 분위기가 아이돌 콘서트장을 능가할 정도로 뜨거웠었다. 팬 층도 대부분 여성 팬들의 비율이 매우 높았다. 이 인기는 지금도 사그라들지 않아서 당시의 팬들이 현재까지도 잔재하고 있다.) 온갖 난다 긴다 하는 명곡들 놔두고 초딩들이 뚱땅거리는 바로 그 곡을 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역시 프로는 프로답게 화려하고 멋진 테크닉을 선보였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애들이 칠 때는 몰랐는데 피아니스트가 치니까 클레멘티도 어지간히 아름답다는 걸 이제 알았다" 고 술회하기도 한다. 이 이후 임동혁은 이 곡을 연주하지 않다가 2022년 5월 24일에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데뷔 20주년 기념 리사이틀에서 20년 만에 또 다시 앵콜곡으로 연주했다.[2] 이 대결의 승패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대체로 모차르트가 우세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3] 참고로 이 책의 이름은 "파르나수스 산으로 오르는 계단" 이라는 뜻으로 다른 인물들이 쓴 여러 저술들이 존재하는데, 그중 요한 요제프 푹스가 1725년에 대위법을 가르치기 위해 쓴 책은 모차르트나 베토벤 등이 공부했을 만큼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