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딩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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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곡에 위치한 시가지
장강의 지류 민장의 지류인 다두강이 흐르는 캉딩 시내. 비가 내린 직후에는 물이 옥빛으로 아름답다.
康定
티베트어 : དར་རྩེ་མདོ། (다르쩨도)
영어 : Kangding[1]
중국 간쯔 티베트족 자치주의 현급시. 야안시에서 서쪽으로 90km 떨어진 협곡에 위치한다. 인구는 약 13만명으로, 자치주의 최대 도시이자 치소이다. 과거 차클라 왕국의 수도였고, 시캉성의 성도였다. 캄 지방의 주요 도시로, 중화 문명권에서 티베트 (장족) 문명권으로 넘어가는 관문이자 차마고도의 거점으로 기능한다. 서북쪽 20km 지점의 고원에 간쯔 캉딩 공항[2] 이 있고, 시짱-쓰촨 (촨짱) 철도가 건설 중이다.[3] 해발 2500m의 고지대에 위치하여 여름에도 25도를 잘 넘지 않고 겨울에는 영하 10도까지 떨어진다.
강족이 살던 곳으로, 한나라 대에 착도현 (笮都縣)이 설치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제갈량이 남정 당시 이곳에 대장간을 세워 화살을 조달했기에 타전로(打箭鑪)로 알려지게 되었다 한다. 티베트 발음으로는 다르체도였다. 당나라 대에 가량 (嘉良縣)과 대도현 (大渡縣)이 설치되었다. 원나라 대에는 현지 족장들이 토사 (土司)가 되어 자치를 유지했고, 1407년에는 명나라 영락제의 책봉을 받아 강구사대토사 (康區四大土司) 증 하나인 차클라 왕국으로 개편되었다. 1701년 다르체도 전투에서 청나라 군이 승리한 이래로 일대는 중국령이 되었다.
1730년에는 타전로청 (打箭鑪廳)이 설치되었다. 1786년 1월, 규모 7.75의 대지진이 벌어져 폐허가 되었다. 1904년 타전로청은 강정부 (康定府)로 승격되었고, 다르체도는 캉딩 (강정)으로 명명되었다. 1906년에는 개토귀류의 일환으로 토사 직위가 폐지되었다. 신해혁명 후 캉딩현 (康定縣)이 설치되었고, 1925년 시캉특별구 (西康特别区)가 되었다. 1939년, 중화민국은 캄 (동티벳)을 동화시키려는 의도로 시캉성 (서강성)을 설치하며 캉딩현을 성도로 삼았다. 국공내전 말엽인 1950년 3월, 인민해방군이 캉딩을 점령하였다.
이듬해 1951년, 시캉성의 성도는 더 사천 분지에 가까운 야안시로 옮겨졌고 1955년에는 시캉성이 폐지되었다. 1959년 티베트 봉기 이후 캉딩에는 라오가이 (수용소)가 세워졌고, 많은 티베트 인들이 수감되어 여럿이 희생당하는 비극이 있었다. 해당 수용소는 현재도 노동교화소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악명 높은 감옥으로 남아있다. 2015년 캉딩현은 캉딩시로 승격되었다.
동티벳의 성산인 아라 설산과 청정 물빛을 자랑하는 정상부의 호수가 일대 주요 볼거리이다.
협곡에 위치한 시가지
장강의 지류 민장의 지류인 다두강이 흐르는 캉딩 시내. 비가 내린 직후에는 물이 옥빛으로 아름답다.
1. 개요[편집]
康定
티베트어 : དར་རྩེ་མདོ། (다르쩨도)
영어 : Kangding[1]
중국 간쯔 티베트족 자치주의 현급시. 야안시에서 서쪽으로 90km 떨어진 협곡에 위치한다. 인구는 약 13만명으로, 자치주의 최대 도시이자 치소이다. 과거 차클라 왕국의 수도였고, 시캉성의 성도였다. 캄 지방의 주요 도시로, 중화 문명권에서 티베트 (장족) 문명권으로 넘어가는 관문이자 차마고도의 거점으로 기능한다. 서북쪽 20km 지점의 고원에 간쯔 캉딩 공항[2] 이 있고, 시짱-쓰촨 (촨짱) 철도가 건설 중이다.[3] 해발 2500m의 고지대에 위치하여 여름에도 25도를 잘 넘지 않고 겨울에는 영하 10도까지 떨어진다.
2. 역사[편집]
강족이 살던 곳으로, 한나라 대에 착도현 (笮都縣)이 설치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제갈량이 남정 당시 이곳에 대장간을 세워 화살을 조달했기에 타전로(打箭鑪)로 알려지게 되었다 한다. 티베트 발음으로는 다르체도였다. 당나라 대에 가량 (嘉良縣)과 대도현 (大渡縣)이 설치되었다. 원나라 대에는 현지 족장들이 토사 (土司)가 되어 자치를 유지했고, 1407년에는 명나라 영락제의 책봉을 받아 강구사대토사 (康區四大土司) 증 하나인 차클라 왕국으로 개편되었다. 1701년 다르체도 전투에서 청나라 군이 승리한 이래로 일대는 중국령이 되었다.
1730년에는 타전로청 (打箭鑪廳)이 설치되었다. 1786년 1월, 규모 7.75의 대지진이 벌어져 폐허가 되었다. 1904년 타전로청은 강정부 (康定府)로 승격되었고, 다르체도는 캉딩 (강정)으로 명명되었다. 1906년에는 개토귀류의 일환으로 토사 직위가 폐지되었다. 신해혁명 후 캉딩현 (康定縣)이 설치되었고, 1925년 시캉특별구 (西康特别区)가 되었다. 1939년, 중화민국은 캄 (동티벳)을 동화시키려는 의도로 시캉성 (서강성)을 설치하며 캉딩현을 성도로 삼았다. 국공내전 말엽인 1950년 3월, 인민해방군이 캉딩을 점령하였다.
이듬해 1951년, 시캉성의 성도는 더 사천 분지에 가까운 야안시로 옮겨졌고 1955년에는 시캉성이 폐지되었다. 1959년 티베트 봉기 이후 캉딩에는 라오가이 (수용소)가 세워졌고, 많은 티베트 인들이 수감되어 여럿이 희생당하는 비극이 있었다. 해당 수용소는 현재도 노동교화소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악명 높은 감옥으로 남아있다. 2015년 캉딩현은 캉딩시로 승격되었다.
3. 야라설산 (雅拉雪山)[편집]
동티벳의 성산인 아라 설산과 청정 물빛을 자랑하는 정상부의 호수가 일대 주요 볼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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