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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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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 1988년 (향년 72세 사이)
1916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관립외국어학교[1] 노어과에 재학하였으며, 재학 중인 1919년 유학생 최팔용(崔八鏞, 1891∼1922) 등과 함께 2.8 독립 선언을 발표[2] 하였다. 동인지 '창조'(創造)의 동인으로 활동하였다.『신동아(新東亞)』의 잡지부장으로도 활동하였으며, 1936년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관련 일장기 말소 사건을 계기로 퇴직[3] 하였다.
해방 후에는 미군정청의 교화국장을 역임하였고, 연희대학 교수를 지내다, 1951년 8월부터 1953년 11월 23일까지 제주도지사로 일하였으며, 1956.12.부터 1960년까지 인하대학교의 전신인 인하공과대학의 학장을 지냈다.
회고록으로 '나의 회고록(回顧錄)'(인하대학교출판부 출판, 1985)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