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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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15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第15回参議院議員通常選挙
14회 참원선15회 참원선16회 참원선
||
투표율65.02%
선거 결과
파일:1989년참원선결과.png
정당지역구
비례대표
총합
(기존의석 포함)
비율


21석15석109석49.4%


26석20석66석17.2%


4석6석20석5.10%


1석4석14석8.18%
연합
11석0석12석6.82%


1석2석8석3.63%
세금당
1석1석3석1.56%
이원클럽

0석1석2석0.59%


0석1석1석0.45%
샐러리맨 신당

0석0석1석0.45%
제파

1석0석1석3.02%

무소속

0석10석15석12.94%
1. 개요
2. 선거 전 상황
3. 선거결과
3.1. 정당별
3.2. 지역별
3.3. 비례대표
4. 선거 이후



1. 개요[편집]


일본에서 1989년 7월 23일에 치러진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로 자민당이 참패하고 일본 사회당이 사상 처음으로 개선1당이 되었다.


2. 선거 전 상황[편집]


1986년 자민당과 나카소네 내각경제호황과 야권분열 등으로 제3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와 함께 치러진 14회 참의원 선거에서 총 443석 (중의원 300+참의원 143)이라는 과반수에 20석 가까이 늘어난 대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러나 그 뒤로의 앞날은 순탄치 않았다. 1987~1988년에 걸쳐 농산물 수입 자유화 이슈가 크게 일어나면서 자민당 지지층의 한 축인 농민쪽에서 지지이탈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1988년에 터진 리크루트 사건에 전임 총리인 나카소네 야스히로와 현직 총리인 다케시타 노보루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다케시타 내각과 자민당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케시타 총리는 큰 폭탄을 일본에 또 투척했다. 전임 총리였던 나카소네 총리를 자리에서 내려오게 만들고 야당, 국민 대다수도 강한 반감을 드러냈던 소비세 제도를 경제 안정화[1]를 이유로 관철시키면서 소비세 도입이 확정되었다. 이 결단으로 인해 다케시타 총리는 당 내에서도 비난을 받게 되었다.

결국 리크루트 사건에 현임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가 연루된 것이 확실해지면서 내각 총사퇴를 하게 되었고, 당 내 주류였던 나카소네-다케시타 파는 당 내에서도 비난과 소외를 받게 되면서 정치적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게 된다. [2]

전국적으로 자민당 심판 분위기가 심하게 불면서 모든 이목은 몇 개월 뒤 치러지는 참의원 선거에 집중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후임 총리로 지명된 우노 소스케가 게이샤 스캔들로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되었고, 참의원 선거 2개월을 앞두고 자민당은 완벽한 수세에 몰리게 되는 위기에 빠졌다.[3]

한편 사회당 등 야당은 소비세 폐지와 리쿠르트 사건, 우노 총리의 스캔들 문제를 집중 추궁했고, 전국 곳곳에서 야권 무소속 연대가 이루어지는 등 자민당의 실책을 발판 삼아 기세를 올려가고 있었다.

3. 선거결과[편집]


선거일1989년 7월 23일
선거내용지역구(소선거구제, 중선거구제 혼합) 73명 + 전국 비례대표 48명
선출인원126명
투표율65.02%

의석 구성
여당[4] - 102석 (27.3%)야당[5][6] - 124석 (72.6%)
정수 : 252석


3.1. 정당별[편집]


정당지역구비례대표개선
의석
비개선
의석
총합선거이전의석증감
자유민주당17,466,40630.70%3615,343,45527.32%153673109142-33
일본사회당15,009,45126.38%4619,688,25235.05%2042246622+24
공명당2,900,9475.10%106,097,97110.86%610102022-2
일본 공산당5,012,4248.81%13,954,4087.04%4591417-3
연합3,878,7834.30%11불출마불출마불출마0112신당+11
민사당2,066,5333.63%12,726,4194.85%235811-3
세금당889,6331.56%11,179,9392.10%11132+1
이원클럽337,2500.59%11,250,0222.53%11122-
스포츠평화당불출마불출마불출마993,9891.77%1000신당+1
샐러리맨 신당256,6780.45%0872,3261.55%11111-
제파1,718,8053.02%04,064,5477.24%10102-1
무소속7,362,72312.94%10---105154+6


3.2. 지역별[편집]



도쿄1아이치1효고1오사카1홋카이도1치바1사이타마1도치기1가나가와1
도쿄2아이치2효고2오사카2홋카이도2치바2사이타마2도치기2가나가와2
도쿄3아이치3효고3오사카3홋카이도3
도쿄4이바라키1시즈오카1교토1홋카이도4군마1후쿠시마1니가타1나가노1
이바라키2시즈오카2교토2아오모리군마2후쿠시마2니가타2나가노2
히로시마1구마모토1오카야마1
히로시마2구마모토2오카야마2
후쿠오카1이와테아키타야마가타야마나시도야마이시카와후쿠이미에
후쿠오카2나라와카야마돗토리시가시마네고치야마구치카가와
후쿠오카3도쿠시마사가나가사키에히메오이타미야자키가고시마오키나와

3.3. 비례대표[편집]




4. 선거 이후[편집]



4.1. 자민당[편집]


투표일 다음날 우노 총리는 선거 참패의 패배의 책임을 지고 퇴진을 표명했다. 당시 자민당 간사장이었던 하시모토 류타로가 개표방송 시청 중 처참한 결과가 나오자 분노를 삭히지 못하고 칙쇼라는 말을 한것이 카메라에 잡혔을 만큼 자민당 입장에서는 선거의 대참패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결국 자민당은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7]하면서 과반수는 물론, 많은 의석을 잃게 된다. (143석 → 109석)

자민당은 총리 인준에 관련해서 참의원 의결에서는 야당에게 밀렸지만 중의원 의결에서 가이후 도시키가 총리로 임명되는데 성공하면서 당 역사상 최고의 고비는 겨우 넘길수 있었다.

4.2. 일본사회당[편집]


1986년 중참원선 선거에서 최악의 참패를 당한 사회당은 일본 정치 역사상 최초의 여성 당수인 도이 다카코를 사회당 위원장으로 선출하고 대대적인 쇄신에 나섰다. 그 결과 80년대 일본 버블경제로 요약되는 호경기였을 때였음에 불구하고 선거때 마다 선전하는 모습을 보였고. 1989년 참의원 선거에서는 리크루트 사건과 소비세 도입 문제, 우노 총리의 스캔들 문제로 자민당에 대한 지지여론이 악화되며 드디어 자민당을 제치고 개선 1당이 되는데 성공한다. 이 때 일본 최초의 여성 당수 도이 타가코는 산이 움직였다.라는 발언을 했다. 도이 위원장은 이른바 "마돈나 열풍"을 타고 여성 최초로 참의원 내각 수반 지명을 받는 등 [8] 자민당을 꺾고 총리 자리에 오를수 있는 유력한 정치인으로 꼽혔다.

4.3. 이외 정당[편집]


일본의 노동조합 단체인 렌고(연합)는 참의원 선거에서 사회당-민사당-공명당과 별개로 지역구에 공천을 냈고, 총 11석의 당선자를 내면서 큰 선전을 거두었다.

사회당을 제외한 주요 야3당 (공명당, 일본공산당, 민사당)은 사회당과 연합의 돌풍 속에 의석수가 소폭 줄어드는 출혈이 있었고[9], 그밖에는 신당인 스포츠평화당이 선전해 프로레슬러인 안토니오 이노키가 처음으로 당선되어 국회에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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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9년은 일본 버블경제의 정점이자 끝이었던 시점이다[2] 당시 자민당 간사장이자 총리 1순위였던 아베 신타로도 여기서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게 된다.[3] 결국 우노 소스케는 참의원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총리직 사퇴를 했다.[4] 자유민주당[5] 일본사회당, 연합, 공명당, 일본공산당, 민사당, 세금당, 제2원클럽, 스포츠평화당, 샐러리맨 신당[6] 무소속, 제파 포함 의석[7] 개선 의석 126석 중 36석 획득[8] 중의원에서 가이후 도시키에게 밀려 지명 받지 못했다.[9] 이 현상은 이듬해 치러진 제3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되풀이되었다. 특히 사회당에 표가 쏠리면서 효율적인 표 배분에 실패하면서 자민당의 득표율이 1983년과 비슷한 수준임에도 자민당이 과반을 훌쩍 넘는 의석을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