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역대 로스터
덤프버전 : (♥ 1)
상위 문서: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1997년 국제야구연맹이 프로 선수의 올림픽 출전을 허용한 이 후 처음으로 일본프로야구 선수들이 출전한 대회였다. 다만, 히로시마와 주니치를 제외한 센트럴 리그 팀들은 선수 차출을 거부했고 퍼시픽 리그 역시 각 팀에서 선수 1명씩만 보내며 프로+대학+사회인이 혼재된 어정쩡한 상태로 선수단이 구성됐다. 이 때문인진 몰라도 3,4위전에서 대한민국에 패배하며 노메달의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래도 와타나베 슌스케, 이시카와 마사노리, 스기우치 토시야, 아베 신노스케, 아카호시 노리히로 등이 이후 프로에 입단한 이후 큰 족적을 남기긴 했다.
아래 대표팀에서 본선 선출 당시 프로였던 선수들은 볼드체로, 올림픽 출전 이후 프로에 입단한 선수는 ★로 표시했다.
프로, 아마추어가 혼합된 2000년 올림픽에서 실패를 맛본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은 전면적인 변혁에 나서 이해부터 프로 선수들을 주축으로 한 대표팀이 출범하게 되었다. 다만, 이때도 각 프로 팀들의 전력 균형을 위해 대표팀 차출은 각 팀당 2명으로 제한되었으며 이 때문에 아베 신노스케 등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고도 대표팀에 선출되지 못한 사례들도 생겨났다.
팀별로는 히로시마와 소프트뱅크가 4명으로 가장 많고 닛폰햄, 한신, 야쿠르트, 세이부, 라쿠텐, 오릭스가 2명, 요미우리[19] , 요코하마, 주니치가 1명이고 롯데는 한명도 없다.
사퇴 : 나카자키 쇼타 (히로시마 도요 카프) : 부상, 야나기타 유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부상
대체로 나카무라 아키라, 오세라 다이치 IN
1.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편집]
1.1.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편집]
- 코칭스태프
- 선수단
1.2.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편집]
- 코칭스태프
- 선수단
1.3.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편집]
- 코칭스태프
- 선수단
1.4.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편집]
1.5.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편집]
2. WBSC 프리미어 12[편집]
2.1. 2015 WBSC 프리미어 12[편집]
- 코칭스태프
- 선수단
2.2. 2019 WBSC 프리미어 12[편집]
- 코칭 스태프
- 선수단
3. 올림픽[편집]
3.1. 2000 시드니 올림픽[편집]
1997년 국제야구연맹이 프로 선수의 올림픽 출전을 허용한 이 후 처음으로 일본프로야구 선수들이 출전한 대회였다. 다만, 히로시마와 주니치를 제외한 센트럴 리그 팀들은 선수 차출을 거부했고 퍼시픽 리그 역시 각 팀에서 선수 1명씩만 보내며 프로+대학+사회인이 혼재된 어정쩡한 상태로 선수단이 구성됐다. 이 때문인진 몰라도 3,4위전에서 대한민국에 패배하며 노메달의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래도 와타나베 슌스케, 이시카와 마사노리, 스기우치 토시야, 아베 신노스케, 아카호시 노리히로 등이 이후 프로에 입단한 이후 큰 족적을 남기긴 했다.
아래 대표팀에서 본선 선출 당시 프로였던 선수들은 볼드체로, 올림픽 출전 이후 프로에 입단한 선수는 ★로 표시했다.
- 코칭 스태프
- 선수단
3.2. 2004 아테네 올림픽[편집]
프로, 아마추어가 혼합된 2000년 올림픽에서 실패를 맛본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은 전면적인 변혁에 나서 이해부터 프로 선수들을 주축으로 한 대표팀이 출범하게 되었다. 다만, 이때도 각 프로 팀들의 전력 균형을 위해 대표팀 차출은 각 팀당 2명으로 제한되었으며 이 때문에 아베 신노스케 등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고도 대표팀에 선출되지 못한 사례들도 생겨났다.
3.3. 2008 베이징 올림픽[편집]
선수단 전원을 일본 프로야구에서 현역으로 활동하는 선수들로 꾸렸다.
* 코칭 스태프- 선수단
3.4. 2020 도쿄 올림픽[편집]
- 코칭 스태프
- 선수단
팀별로는 히로시마와 소프트뱅크가 4명으로 가장 많고 닛폰햄, 한신, 야쿠르트, 세이부, 라쿠텐, 오릭스가 2명, 요미우리[19] , 요코하마, 주니치가 1명이고 롯데는 한명도 없다.
4.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편집]
4.1.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편집]
- 코칭 스태프
- 선수단
4.2. 2023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편집]
- 코칭 스태프
- 선수단
5. 평가전[편집]
5.1. 2016년 11월 평가전 엔트리[편집]
사퇴 : 나카자키 쇼타 (히로시마 도요 카프) : 부상, 야나기타 유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부상
대체로 나카무라 아키라, 오세라 다이치 IN
5.2. 2019년 3월 평가전 엔트리[편집]
6. MLB JAPAN 올스타 시리즈 2018[편집]
6.1. MLB JAPAN 올스타 시리즈 2018[편집]
- 코칭스태프
- 선수단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5 02:43:17에 나무위키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역대 로스터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緒方耕一. 현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감독(緒方孝市)과는 동명이인. 이쪽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었다. 둘 모두 1968년생 사가현 출신.[2] 緒方耕一. 현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감독(緒方孝市)과는 동명이인. 이쪽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었다. 둘 모두 1968년생 사가현 출신.[3] 시마 모토히로(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종아리 통증으로 대체선수 발탁.[4] 오타니 룰 적용으로 겸업이 용이해졌으나 일단은 투수로 등록되었다.[5] 허리디스크로 인해 1라운드 종료 이후 대표팀 하차.[6] 쿠리바야시 료지의 하반신 통증으로 인한 대체선수[7] 등록은 내야수지만 실질적으로는 유틸리티 플레이어이다.[8] 등록은 외야수지만 실질적으로는 유틸리티 플레이어이다.[9] 일본계 미국인[10] 교류전 도입 이전 전구단 상대 승리투수라는 대기록을 세운 일본프로야구의 대표 저니맨.[11] 1982년 센트럴리그 타격왕.[12] 2017년 관상동맥질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39세.[13] 콜비 루이스에게 홈런을 허용한 그 분이다.[14] 본래 올림픽 예선을 겸한 2003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까지는 나가시마 시게오가 감독을 맡았으나, 올림픽 개최 전인 2004년 3월에 나가시마가 뇌경색으로 쓰러지면서 당시 대표팀 수석 겸 타격코치를 역임 중이던 나카하타가 감독대행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올림픽 규정에 따라 나가시마의 감독 등록이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올림픽 본선에선 나카하타가 감독으로 등록되었다.[15] 잦은 컨디션 난조로 인해 하차 의사를 밝힌 스가노 토모유키의 대체 선수로 선발.[16] 부상으로 하차한 요미우리의 나카가와 코타를 대신해 발탁되었다.[17] 부상으로 하차한 히로시마의 아이자와 츠바사를 대신해 발탁되었다.[18] 예전 포지션은 포수였고 2020년부터 포수는 사실상 포기.[19] 요미우리는 자국팀은 1명인 반면 도미니카에는 2명(앙헬 산체스, C.C.메르세데스)이 뽑혔다.[WC] A B C D E F 와일드카드[20] 얼굴을 보면 흑인이기 때문에 외국인 용병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종종 있는데 나이지리아인 아버지를 둔 일본인이다.[21] APBC 2회 출전[22] 기존 대표팀으로 뽑혔던 오릭스 쿠레바야시 코타로가 부상으로 인해 낙마되자 대체선수로 내정.[23] 얼굴을 보면 흑인이기 때문에 외국인 용병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종종 있는데 콩고인 아버지를 둔 일본인이다. 제 1회 APBC 당시 오코에 루이랑 비슷한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