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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카와 호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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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91919> 0 코다마 료스케 · 4 야마노베 카케루 · 5 토노사키 슈타 · 6 겐다 소스케 · 8 와타나베 켄토 · 10 사토 류세이 · 30 모토야마 히유 · 31 히라누마 쇼타
32 야마무라 타카요시 · 44 헤수스 아귈라 · 50 타카마츠 와타루 · 52 요카와 나오마사 · 60 나카무라 타케야 · 62 타키자와 나츠오 · 99 무라타 레온 ||
||<-2><bgcolor=#00bfff,#00bfff>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육성선수 ||
||<bgcolor=#ffffff,#1f2023><:><-3>틀: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로 돌아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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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카와 호타카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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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sia_probaseball_champion_ship_2017.png
2017 APBC
{{{#c7bc69 우승

2017


파일: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로고.svg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c7bc69 우승반지}}}
2023





보유 기록(NPB)
일본인 최단 경기 200홈런
714경기

{{{#fff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등번호 33번}}}
호시 히데카즈
(2010~2013)

야마카와 호타카
(2014~2019)


리드 개럿
(2020~2021)

{{{#fff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등번호 3번}}}
아사무라 히데토
(2017~2018)

야마카와 호타카
(2020~)


현역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No.3
야마카와 호타카
山川穂高 / Hotaka Yamakawa

생년월일
1991년 11월 23일 (32세)
국적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출신지
오키나와현 나하시
포지션
1루수, 3루수[1]
투타
우투우타
체격
175cm, 103kg
프로입단
2013년 신인 드래프트 2순위(세이부)
소속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014~)
등장곡
BEGIN - オジー自慢のオリオンビール
TWICE - What Is Love
응원가
かりゆし58 - 雨のち晴れ[2] 3분 25초부터
후원사
미즈노[3]
연봉
2023 / ¥270,000,000

1. 개요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2.2. 프로 경력
2.2.1. 2018년
2.2.2. 2019년
2.2.3. 2020년
2.2.4. 2021년
2.2.5. 2022년
2.2.6. 2023년
3. 플레이스타일
4. 여담
5. 논란
6. 연도별 기록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일본프로야구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소속의 1루수이자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거포 중 한 명.


2. 선수 경력[편집]



2.1. 아마추어 시절[편집]


초등학교 때 「슈리 매리너스」라는 클럽에서 야구를 시작하였고, 중학교 때 오키나와현 대표로서 전국대회에 출전하였다. 이 때 감독으로부터 「너는 홈런 타자가 될 수 있으니까, 절대로 작은 타격을 하지 마라」라는 조언을 받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거포의 싹수를 보이고 있었던듯. 이후 츄부상업고교에 진학하여 주로 1루수, 외야수로 출전했고 2학년 가을부터는 4번타자를 맡았다. 3학년 여름 때는 현대회 결승까지 진출하였으나 결국 오키나와의 강자 코난고교에 2-4로 패했다.

결국 야마카와는 고시엔 출장 없이 통산 27홈런으로 고교를 졸업하였고, 이후 저 멀리 이와테현 하나마키시에 있는 후지대학으로 진학한다.[4] 사실 야마카와는 고등학교 때만 해도 고시엔만이 목표였고, 고교 졸업 후 야구를 그만둘 생각이었다. 그러나 현대회 예선 준결승에서 백스크린을 넘기는 홈런을 친 것을 본 후지대학의 아오키 히사노리 감독[5]이 야마카와의 집 앞에 찾아가 본인과 어머니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의 대학에 진학시켜줄 것을 간청했다고 한다.

이렇게 후지대학으로 진학한 야마카와는 1학년 봄부터 4번 타자를 맡았고 추계리그에서 북도호쿠대학리그 타점왕을 차지하며 자신의 잠재력을 드러냈다. 결국 2학년때는 미일대학야구선수권대회 일본대표로 선발되어 만루홈런을 치기도 했고, 3학년때는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 일본대표로 선발되었다. 4학년때도 미일대학야구선수권대회 대표로 선발되었지만 최종 멤버에서는 빠졌다. 대학리그 통산성적은 78경기 타율 .304 11홈런 55타점을 기록했고 오카 히로미와 함께 대졸 야수 최대어로 꼽혔다. 결국 2013년 드래프트에서 세이부 라이온즈에 2라운드로 지명[6]되어 계약금 7,000만엔, 연봉 1,200만엔에 가계약을 맺었다. 후지대학에서는 4번째 프로진출로, 야수로서는 처음이다.

2.2. 프로 경력[편집]


프로 첫해인 2014년은 2군에서 시작했지만 빠르게 적응하며 5월에 2군 월간 MVP를 탔고, 6월 21일 요코하마전에서 5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장하며 프로 1군 데뷔를 달성했다.[7] 그러나 무안타로 침묵하며 2군으로 내려갔고 2군에서는 다시 투수들을 폭격해버리는 2군 본즈의 모습을 보여주며 7월 17일 2군 올스타전에 선발되었다. 이때 2점 홈런을 포함해 3타수 2안타 1볼넷을 기록하며 우수선수상을 탔는데, 이때 또다른 우수선수상 수상자인 오쿠나미 쿄(오릭스)와 MVP 수상자인 이노우에 세이야가 모두 100KG을 넘는 거구여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다시 1군으로 콜업되어 9월 15일 라쿠텐전에서 카라시마 와타루를 상대로 15타수만의 첫 안타를 홈런으로 장식하였다. 이때는 지금보다 많이 말랐다. 이 시즌 2군에서 21홈런 62타점을 때리며 이스턴리그 홈런왕, 타점 2위를 차지, 스포츠닛폰 선정 신인상을 차지하였다.

2015년에는 에르네스트 메히아가 1루수로 완전히 자리잡으며 1군으로 거의 올라오지 못했고 본인의 부상도 있어 1군에서 1경기 출전 1타수 1안타라는 성적만을 남겼다. 그러나 그 와중에 「일본 대학 대표 대 NPB 선발」 전에 선출되어 4번 1루수로 선발 출전, 첫 타석에서 홈런을 치기도 했다.

2016년에는 부상에서 회복하여 개막전에서부터 7번타자 1루수로 선발출전하였고 8월 19일과 21일 지바 롯데전, 9월 20일 오릭스전 3경기에서 연타석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1군과 2군을 왔다갔다하며 2군에서는 64경기 22홈런으로 2번째 홈런왕을 차지하였고 1군 최종 성적은 139타수 36안타 14홈런 32타점으로 0.259의 타율과 0.590의 장타율을 기록하며 '오카와리 2세'로서 본인의 이름을 1군에 각인시켰다.

2017년에도 개막전부터 1군에 등록되었지만 0.111의 타율로 부진하면서 5월 1일 1군에서 말소되었고 2군에서 3할을 기록하며 컨디션을 끌어올려 7월 8일 1군에 등록되었고 부진한 에르네스토 메히아를 대신하여 1루수로 출전하기 시작했다. 이후 타격 재능이 만개, 8월 2일 라쿠텐을 상대로 3연타석 홈런을 뽑아내는 등 8월 성적 9홈런 28타점 OPS 1.147을 기록하며 개인 첫 월간 MVP를 수상하였다. 그리고 9, 10월에도 10홈런, 장타율 0.739를 기록하며 퍼시픽 리그 사상 3번째, 라이온즈 선수로서는 첫번째 야수 2개월 연속 MVP 수상을 달성했다. 야마카와는 9월부터 4번타자에 자리를 잡았고 결국 13연승을 달리며 파죽지세의 성적을 기록한 세이부 후반기의 큰 원동력이 되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242타수 72안타 23홈런 61타점 72삼진을 기록, 타율도 0.298로 끌어올렸다.[8] 참고로 규정타석의 반 정도 나왔는데 23홈런에 장타율은 0.661를 기록했다. 그만큼 파워가 엄청나다는 뜻.

결국 시즌 종료 후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의 와일드카드로 발탁되어 한국과의 예선전에서 선발 4번타자로 기용되었다. 이 날 5타수 2안타를 기록했는데 6회에 구창모의 초구를 밀어쳐 2점홈런을 때리기도 했고,# 수비에서는 8회초 무사 1,2루에서 안익훈의 번트를 빠르게 잡아서 3루로 송구하여 2루주자였던 나경민을 아웃시키기도 했다. 대만전에도 선발 4번타자로 출장했으나 5타수 0안타로 부진했다. 그러나 일본이마나가의 호투를 비롯하여 대만을 꺾고 결승전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서도 역시 한국을 상대로 선발 4번타자로 출전하였고 4타수 1안타 1볼넷 2타점을 기록하며 일본의 우승에 기여하였다.

2.2.1. 2018년[편집]


2018년 NPB 최고의 홈런 타자
2018년에는 개막전부터 4번타자를 담당, 4월 성적 11홈런 33타점을 기록하며 월간 리그 MVP를 3개월 연속으로 수상하였다.
6월 25일 기준, 66경기 18홈런 61타점 타율 .275 / 출루율 .411 / 장타율 .583 / OPS 0.994을 기록중이다. 홈런과 타점, 장타율 부문 선두이며 팀 선배 나카무라 다케야의 부진과 대비되는 모습이다.[9] 결국 2018 시즌 첫 20홈런은 물론 8월 10일 솔로홈런을 치면서 양대리그에서 가장 먼저 30홈런을 돌파하였다.

9월 23일 지바 롯데와의 원정 경기에서 9회 초, 43호 홈런을 역전 3점 홈런으로 쳐냈다. 하필 후쿠우라 카즈야의 2000안타 달성 경기에... 9월 24일과 27일에 각각 솔로홈런을 기록하여 홈런갯수를 45개까지 늘렸고 이어서 9월 28일에도 홈런을 하나 추가하며 46호 홈런, 10월 1일 닛폰햄과의 원정에서 47호 홈런을 기록했고 결국 생애 첫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2018년 최종 성적은 143경기 0.281 47홈런[10], 124타점. 생애 첫 홈런왕 타이틀과 MVP[11]를 차지했으며 124타점은 팀 동료 아사무라 히데토에게 불과 3개 뒤진 2위였다.

그러나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타율 1할대의 부진으로 팀 탈락의 원흉 중의 한명이 되면서 포스트 시즌에서의 활약이라는 숙제를 남겼다. 또한 시즌 종료 후 치러진 미일올스타전에도 당연히 선발되었으나 19타수 4안타를 기록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2.2.2. 2019년[편집]


5월 13일까지 15홈런, 42타점, 장타율 0.664, OPS 1.051, 43삼진 모두 퍼시픽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5월 12일에는 닛폰햄전에서 홈런을 치며 통산 100홈런을 달성했는데 통산 321경기만에 100홈런은 아키야마 코지를 넘어서는 일본인 최고 속도였다. 5월 21일 오키나와 나하에서 열린 소프트뱅크전에서 홈런을 치며 고향 사람들에게 자신의 위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6월 6일 2홈런과 3타점을 기록하며 올 시즌 정확하게 25홈런, 60타점 고지를 밟았다. 그러나 6월이 종료 될 때까지 고작 2개의 홈런만 추가하는데 그치며 매섭던 홈런 페이스가 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7월을 기점으로 타격감마저 바닥을 치며 부진하고 있다. 한때 발렌틴의 60홈런 기록을 바라볼 만큼 무시무시했던 홈런포는 7월내내 단 4개에 그쳤고 2할 후반대의 타율도 2할 중반으로 곤두박질쳤다. 8월이 되어서는 조금 살아나는 듯 보였지만 7월보단 조금 나아진 정도에 그쳤다.

8월 29일 기준으로 타/출/장 .249 .366 .536 37홈런 103타점을 기록중인데 홈런 2위 브랜든 레어드와는 6개 차이로 선두를 유지중이고 홈런 페이스는 7월보다 나아질 기미가 보이기 때문에 2년 연속 홈런왕은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여지나 타점의 경우 본인은 득타율 .234로 저조한 반면에[12]팀 선배 오카와리군이 득점권의 악마 수준으로 타점을 먹어치우는 중이라 타점왕은 치열한 집안 싸움이 될 것으로 보여진다.

여름기간 내내 저조했던 타격감 탓에 최근에는 7번타자로 자주 출장하고 있다. 7번으로 내려간 이후에는 타격감이 조금 나아진 모습.

2019 시즌 최종 성적은 143경기 출전 타율 .256, 43홈런, 120타점, OPS 0.912으로 2년연속 40홈런 120타점을 기록하며 홈런왕을 차지했지만 MVP는 수위타자를 차지한 후배 모리 토모야가, 타점왕은 원조 오카와리 나카무라 타케야가 가져갔다. 시즌 종료 후 1억엔 증가한 2억 1천만엔으로 연봉 계약을 갱신했다.

2.2.3. 2020년[편집]


2020년부터 키요하라 카즈히로, 나카지마 히로유키, 아사무라 히데토 등이 달던 등번호 3번을 달게 되었다. 타격 정확성을 살리기 위해 타격 폼을 간결하게 바꿨는데 오히려 타격 정확성이 떨어지는(...) 결과만 낳았다. 그러다가 8월 9일 니혼햄전에서는 스윙 도중 균형을 잃으면서 발목을 삐는 부상을 당하기도 했고, 9월 3일 지바 롯데전에서 거의 6년만에 3루수로 선발출장하기도 했다.

최종 성적 102경기 타출장 0.205/0.357/0.450, 24홈런 73타점을 기록, 규정타석 달성자 중 최저타율로 완전히 망한[13][14]시즌이 되었다. 4번 타자 자리도 내주는 경기가 많아졌으며, 심지어는 선발 1루 자리도 에르네스토 메히아에게 내주는 경우가 많아졌다. 결국 세이부도 야마카와 등 주축 선수들의 부진과 아키야마 쇼고의 이탈 등이 한꺼번에 겹치며 3위로 추락하게 되었다. 시즌 종료 후 4000만엔이 감소한 1억 7000만엔에 연봉 계약을 갱신했다.

2.2.4. 2021년[편집]


개막전부터 4번타자로 출장해 3월 30일 닛폰햄전에서 시즌 1호 홈런을 치고 1루 베이스를 돌 때 왼쪽 햄스트링의 부상을 입어(...) 한달간 1군에서 말소되기도 했고 8월 26일에는 자신의 개인 매니저가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으며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어 등록 말소되기도 했다. 이후 29일 1군에 복귀했지만 타격 부진으로 선발 라인업에 빠지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부상과 부진 등을 겪으며 10월 4일 기준 94경기 0.219/0.315/0.454 20홈런 59타점을 기록중이다. 기록에서 보다시피 컨택이 전혀 되지 않고 그 결과 맞춘 타구도 맥없이 떠 버리기 일쑤였는데, 간결하게 바꾼 타격폼으로는 도저히 타이밍을 잡을 수 없었던 듯. 결국 본인도 포기했는지 후반기 들어 타격폼을 예전 18~19시즌 때로 복구시켰고 이후 타구 질이 살아나고 있다. 그럼 뭐해 팀은 나락으로 떨어졌는데

시즌 최종 110시합 타/출/장 0.232/0.321/0.469 24홈런 66타점으로 시즌을 마쳤다. OPS도 주전 정착 이후 처음으로 7할대로 추락하며 2년 연속으로 아쉬운 성적을 남겼다. 시즌 종료 후 다시 4000만엔이 감소한 1억 3000만엔에 연봉 계약을 갱신했다.

2.2.5. 2022년[편집]


부진했었던 지난 2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개막 이후로 3경기 연속 홈런을 치는가 하면 현 시점 퍼시픽리그 홈런 부문 단독 1위에 올라있다. 이 홈런 페이스가 대단한 것이 3월 30일 닛폰햄전에서 주루하던 도중 오른쪽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해 한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4월 22일 기준으로 홈런 1위를 유지했을 정도.

라쿠텐전에서 부상을 털고 다시 선발 라인업에 복귀하였고 복귀전에서 곧바로 홈런을 신고했다. 4월 27일 소프트뱅크전에서는 멀티 홈런을 때려냈으며 다음날 경기에서도 결승 3점 홈런을 때려냈다. 현재 홈런 8개로 퍼시픽리그 홈런 단독선두. 거기다 4월 29일 기준 타율 .364인데 ops가 아닌 장타율이 1.000을 기록하는 기괴한 성적을 내고있다.

5월 들어서도 타격감이 식지 않으며 퍼시픽리그에서 가장 먼저 10홈런을 돌파하는 등 좋은 타격감을 이어가고 있다.

5월 8일 닛폰햄전에서 연타석홈런을 때려내며 홈런 2위와 홈런갯수 차이가 무려 8개 가까이 벌어졌다. 거기다 5월 8일 기준 타율 .372, 출루율 .437, 장타율 .974을 기록했고, 올해 유난히 심하게 불어닥친 파리그 전체의 투고타저 경향까지 보정하니 wRC+가 무려 353을 기록할만큼 미쳐 날뛰는 중.

6월 26일 라쿠텐과의 원정경기에서 200호 홈런을 때렸다. 이는 697경기만의 기록으로 타부치 코이치, 아키야마 코지의 714경기를 넘는 일본인 최고 속도이다.[15]

9월 27일 3년만에 40홈런을 기록하게 되었고 퍼시픽리그 홈런왕도 자력으로 확정지었다. 그리고 10월 1일 소프트뱅크전에서 연장 11회 후지이 코야로부터 소프트뱅크의 퍼시픽리그 우승을 막아버리는 끝내기 홈런을 쳤다. 개인 첫 끝내기 홈런. 최종적으로 0.266의 타율에 41홈런 90타점, OPS는 0.953을 기록했다. 홈런과 타점은 리그 1위를 기록하며 센트럴리그의 무라카미 무네타카[16]와 함께 14년만에 양 리그에서 40홈런 타자가 나오는 시즌이 되었다. 그리고 3년만에 베스트 나인에 선출되기도 했다.

시즌 후 구단의 4년계약 제시를 거절하고 2억 7천만엔의 단년계약을 맺었다. 이에 팬들은 이번 시즌 올스타전 때 아사무라 히데토, 야나기타 유키와 얘기했었던‘소프트뱅크 갈 거 같아’라는 발언이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소프트뱅크와 어느정도 말이 오간 게 아니냐는 예측을 하고 있는 바람에[17]팀을 떠날 의지를 보이며 2023 오프시즌 최대어 중 하나로 급부상하게 되었다.[18]

2.2.6. 2023년[편집]


FA 직전 해. 하지만 시즌 초에 삽질만 반복하다가 지인에게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하는 바람에 선수 생활에 있어 악재가 생겼다. 일단 본인은 불륜이라고 주장하는 상황.

8월 29일 도쿄지검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구단에서는 품위 손상에 대한 처벌로서 무기한 출장정지 처분을 내렸다.

이후 구단에 다시 합류해서 3군에서 훈련을 하고 있으며, 시합에는 출장하지 않고 있다. FA 권한 획득까지 17일 남았고 부상자 리스트에 오르는 식으로 이 일수를 채울 수 있긴 하다.

여러 기사에 따르면 올해는 잔여 시즌을 스킵하고, 내년 연봉을 백지위임하고 한 해 더 기회를 얻어 남은 FA일수를 채우고 타 구단에 트레이드든 FA든 나가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는 모양이었으나, 결국 11월 14일에 먼저 FA를 선언했다. 일단 세이부 구단이 잔류에 미온적이라 세이브와 결별할 가능성이 크다.

3. 플레이스타일[편집]



압도적 장타력을 자랑하는 거포로, 레그킥을 최대한 높게 들어 호쾌한 풀스윙으로 모든 체중을 공에 실어 보내는 타격이 특징이다. 그리고 하체가 단단하여 변화구에 타이밍을 잃어도 몸이 앞으로 나오지 않도록 버틸 수 있어 장타를 생산할 수 있다. 컨택은 리그 평균보다 조금 나은 정도로 타율 2할 6~7푼 정도를 기대할 수 있다. 거포답게 삼진은 많이 당하지만 인내심과 상대 투수에 대한 분석, 타석에서의 접근법이 뛰어나 볼넷도 많이 얻어내는 편이다.

수비는 2019년까지는 UZR -6.3을 기록할 정도로 리그 전체 1루수 중 최악인 수준이었으나 2022년 -0.4를 기록하며 리그 평균 정도는 기록하게 되었다. 주루는 의외로 몸집에 비해 발이 빠른 편이다. 대학 시절 50m 달리기에서 6.2초를 기록했을 정도. 그러나 도루는 부상을 우려해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시즌 중에도 주루 플레이 도중 부상을 당하는 경우가 꽤 있다.

4. 여담[편집]


  • 2017년 결혼하였다. 아내는 대학에서 알게 된 전직 소프트볼 선수.
  • 구창모에게 홈런을 뽑아낸 후 인터뷰에서 넘어간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솔직히 기뻤다라면서 최고였다. 나의 야구 인생에 있어서도 추억의 홈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한국의 4번타자인 김하성과 2017 시즌 홈런 개수가 동일하다.(양팀의 4번타자가 홈런개수가 같다!)[19]
  • 입단 첫해에 체중이 108kg.같은 팀의 나카무라 다케야랑 체형이 비슷하고 같은 포지션이여서 입단 당시부터 나카무라 다케야의 애칭이었던 오카와리(おかわり;한 그릇 더)군에 연관하여 '오카와리 2세(おかわり2世)'로 불려지고 있다.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도 나카무라 다케야라고 한다. 또한 오키나와의 돼지인 '아구(アグー)'도 애칭이 되어 자신의 트위터 계정도 「@AGU1123」으로 하고 있다.
  • 그래서인지 일본 돼지로 불리던 나카무라처럼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에서 한국 팬들에게 왜준석(...)이라는 별명을 득템했다. 그러나 2018년 시즌 47홈런을 치며 홈런왕에 등극, 팀 선배인 나카무라 다케야의 홈런왕 이미지도 본인이 접수했다. 2019년 시즌에도 시즌 절반정도 밖에 안 지난 시점에서 27홈런을 기록하며 목표로 하던 시즌 50홈런을 향하여 순항 중. 이제 최준석 따위하고 비교하는게 본인에게 미안할 정도로 거물급 타자로 성장했다.[20]
  • 입단 당시 오른쪽 악력은 무려 83kg를 기록하였다.
  • 안 어울리는 것 같지만 취미는 피아노 연주와 서예.[21]
  • 상당히 유쾌한 성격이라 덕아웃을 늘 시끌벅적하게 만든다. 특히 누가 홈런이라도 치면 제일 먼저 뛰쳐나온다 다만 생긴 것과 하는 짓과는 다르게 학구파로써 타격 이론 및 상대 투수에 대한 연구, 분석을 엄청나게 한다는 듯.
  • 같은 해에 프로에 데뷔한데다 덩치도 비슷한[22] 이노우에 세이야와 2군 본즈 라이벌 경쟁을 펼쳤다. 심지어 둘 다 완벽한 주전으로 거듭난 해는 2018년이 처음이다. 그런데 야마카와는 백업 시절에 이미 1시즌 20홈런을 쳤고 주전 4번타자인 지금은 리그 최강 슬러거로 거듭난 반면에 이노우에는 2017년까지 통산 4홈런밖에 치지 못했다. 하지만 2018년과 2019년에 연속 24홈런을 치면서 보급형 야마카와(...) 수준의 활약은 해주고 있다. 이후 2020~2021년에는 둘 다 부진을 겪었지만[23] 2022년 야마카와는 40홈런으로 지난 2년간의 부진을 만회한 반면, 이노우에는 고작 60경기 출전에 7홈런 .246으로 여전히 삽질했다... 솔직히 이제 비교하기도 민망할 지경...
  • 입단 동기인 모리 토모야와는 사이가 아주 좋아 모리가 4살 형인 야마카와에게 「야, 뚱보」라고 놀릴 정도(!!)였으나 모리가 오릭스로 이적하면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 스모 선수 미타케우미(御嶽海)와 닮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는 이유로 2019년부터 홈런을 치고 난 뒤, 양팔을 쭉 내밀고 양다리를 벌려 "도스코이~!"라고 외치는 세레머니를 한다. 이 세레머니가 팬들 사이에선 반응이 좋은지 야마카와가 홈런을 치면 팬들도 같이 양팔을 내밀며 따라한다.

5. 논란[편집]


2023년 5월, 주간문춘에서 야마카와가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알고 지내는 20대 여성과 식사를 한 후 호텔에 데려가서 성폭행을 하고 부상을 입혔다는 것. 보도에 따르면 해당 여성은 음부 출혈이 있고 침대시트에 핏자국까지 남아 있었다고 할만큼 심각한 폭행이었다고 한다. #일본어 기사

처음에는 보도한 곳이 찌라시로 유명한 주간문춘이니 중립기어 여론이 대세였으나 5월 11일 경시청에서 야마카와를 수사중이라고 밝혔고, 야마카와 본인도 성폭행을 제외하고는 전부 인정하면서[24] 상황이 뒤바뀌었다.

결국 5월 12일 야마카와는 1군에서 말소되었다. 성폭행으로 밝혀질 시 방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여론에서는 성폭행이 아니라고 밝혀진다고 해도 결혼해서 애까지 둔 남자가 다른 여자와 호텔까지 가서 뭐 하는 짓이냐는 말이 많은 상황.

추가로 알려진 사실에 의하면 세이부는 선수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더라도 트러블이 생기면 무조건 구단에 알리는 게 구단 방침인데 야마카와 같은 경우에는 문춘에서 폭로하고 나서야 구단에 알렸다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불륜이든 성폭행이든 퇴출될 확률이 상당히 높아졌다.

2023년 8월 29일 혐의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되면서 법적 처분을 면하게 되었다. # 그러나 9월 4일 구단징계로 무기한 공식경기출장정지 처분을 피하지 못했다.#


한동안 위와 관련해 피해자가 터무니 없는 합의금을 요구한다는 등 거짓 보도가 떠돌았으나, 후속 취재 결과 1억엔 요구와 합의금 관련 기사는 모 석간 신문 측의 오보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정확히는 "만일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1억엔 규모일 것으로 예상한다" 라는 카더라성 기사가 잘못 알려진것. 실제 피해자는 합의 의사가 없으며, 혹여 합의금을 받는 상황이 온다고 하더라도 성폭력 피해 재단에 기부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일본의 강제성교죄의 경우 동영상 등의 직접 증거가 남지 않는 이상 기소가 어렵다. 야마카와의 경우 또한 폭행이 아니라 강제성교죄목으로 검찰에 송치되었는데, 문자 내용 등 가해자 측의 직접 증거만이 남아있었기에 기소에 부담이 있었을 것이라는 변호사 측 의견이 전해졌다.

나아가 위와 같은 문제점을 토대로 지난 7월 13일 "강제성교죄"에서 "부동의 성교죄"로 개정된 일본 형법을 소급적용 받지 않았기에 불기소처분에 더욱 유리한 부분이 있었다. 성범죄 전문 변호사의 인터뷰에서, "강제성교가 아닌 부동의 성교죄가 적용되었다면 야마카와가 기소되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2달만 늦게 터졌으면 이미 감옥에 있었을지도..
실제로 해당 불기소 처분으로 인해 일본 내에서도 비난 여론이 일었으며, 아직 민사 재판이 남아있어 사건이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이다.

부상자 특례조치로 남은 FA기간을 충족시킬 수 있는데,[25] 다만 실제 결별보단 사죄의 의미로 연봉을 백지위임하고 내년 FA 재수를 택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 현실적으로 사건발발 전에도 성적이 너무 형편없어서, 한 해 정도 건재함을 보여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6. 연도별 기록[편집]


파일:NPB 로고.svg 야마카와 호타카의 역대 NPB 기록
연도
소속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AR
2014
세이부
14
30
3
0
0
2
3
3
0
4
10
.100
.206
.250
.300
-0.3
2015
1
1
1
0
0
0
1
0
0
0
0
1.000
1.000
1.000
2.000
0
2016
49
139
36
4
0
14
24
32
0
15
36
.259
.335
.590
.925
0.5
2017
78
242
72
19
0
23
46
61
0
46
72
.298
.420
.661
1.081
3.5
2018
143
647
152
24
1
47
115
124
0
88
138
.281
.396
.590
.985
5.3
2019
143
626
134
20
0
43
93
120
1
86
142
.256
.372
.540
.912
3.3
2020
102
401
66
7
0
24
47
73
0
64
100
.205
.357
.450
.807
1
2021
110
414
83
13
0
24
42
66
0
43
101
.232
.321
.469
.791
1.6
2022
129
528
119
17
0
41
62
90
0
68
114
.266
.375
.578
.953
4.8
2023
17
62
15
4
0
0
3
5
0
3
17
.254
.322
.290
.612
-0.4
NPB 통산
(10시즌)

786
3163
681
108
1
218
435
575
1
417
730
.256
.368
.542
.911
19.3


7. 관련 문서[편집]





[1] 2015년 이후로는 1루수로만 출장한다.[2] 山川穂高ここで一発 高らかにアーチ描こうぜ皆の願いバットにのせて 飛ばせ遥か彼方まで山川 山川 山川穂高 山川 山川 山川穂高(야마카와 호타카 여기서 한방을 높이 아치를 그려라 모두의 소원을 배트에 담아서 날려라 아득한 저쪽까지. 야마카와 야마카와 야마카와 호타카 야마카와 야마카와 야마카와 호타카) [3] 미즈노 재팬 후원[4] 야구부는 꽤 좋은 학교지만 학교만 놓고보면 F랭크 소리를 들어도 할 말 없는 대학이다. 즉 연고지에 사는 학생이 아닌 한 공부를 못 해도 일반적으로는 갈 일이 없던 학교.[5] 이 사람이 스카우트해서 후지대학으로 진학했던 선수가 토노사키 슈타타와타 신사부로이다. 말 그대로 세이부의 은인이나 다름없는 인물.[6] 1라운드 지명선수는 모리 토모야, 세이부로서는 2라 연속으로 대박이 터진 셈이다.[7] 첫 타석은 볼넷 출루.[8] 2년 연속으로 안타랑 삼진수가 같다.[9] 오카와리는 올스타 브레이크 후 완전히 각성한 모습을 보여주며 퍼시픽리그 타이기록인 6경기 연속홈런을 기록했다.[10] 헤이세이 태생으로는 최다.[11] 258표 중 148표로 아사무라 히데토를 누르고 차지, 1989년 랄프 브라이언트 이후 29년만에 2할대 MVP가 되었다.[12] 이러고도 올 시즌 양대리그 첫 100타점 타자가 되었다. 초반에 워낙 몰아치면서 쌓은것도 있고 무엇보다 야마카와 앞에 포진된 1, 2, 3번 타자가 어떤지를 생각해보라. 아키야마 쇼고, 겐다 소스케, 토노사키 슈타가 앞에 있는데 득점권 기회가 적게 생길수가 있나.[13] 사실 2020 시즌 세이부의 대다수의 타자가 타격 성적이 추락했다.[14] 다만 앞서 말했듯 출루율이 .357로 타율과 1할 5푼 가까이 차이가 난다. 선구안이 무너져서 생산성마저 바닥인 공갈포가 되지는 않은것이 다행(?)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 결과적으로 애덤 던, 조이 갈로를 연상케하는 타격 성적을 남겼는데 주전으로 정착한 2018년 이후 계속해서 타율이 떨어지는 추세라 특단의 조치가 절실해 보인다.[15] 일본 역대 최고 속도는 알렉스 카브레라의 538경기.[16] 이쪽은 무려 56홈런이지만...[17] 오키나와 출신 선수들은 아무래도 고향과 가까운 소프트뱅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18] 그러나 이런 대박인 기회를 이듬해에 자기 스스로 걷어차버렸다. 자세한내용은 후술한 논란항목 참조.[19] 23개.[20] 사실 일본야구를 보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진짜 최준석과 비슷하다고 평가받는 타자는 야쿠르트에서 2군 타격코치를 맡고 있는 하타케야마 카즈히로. 이쪽은 나이도 동갑에 얼굴도 닮았다(...) 통산 성적도 최준석처럼 전국구 스타가 되기에는 좀 모자라지만 주전 1루수로는 충분히 써먹을 수준이었고, 플레이 스타일도 장타형 교타자로 비슷한데다 커리어하이도 2015년으로 동일하다.(26홈런 105타점으로 타점왕을 차지)[21] 공인 8단의 실력을 자랑한다. 최근에는 팀 굿즈의 서예 도안을 직접 하기도 했다. 출처[22] 이노우에가 키는 4cm, 몸무게는 10kg 정도 더 나간다.[23] 근데 비교하기도 민망한 게 2020년에는 둘 다 공갈포로 전락했지만 15~20홈런씩 쳤으니까 비슷했다고 할 순 있다. 하지만 2021년의 경우 야마카와는 공갈포로라도 20홈런을 쳤는데, 이노우에는 1군에서 거의 나오지도 못하고 1홈런에 그쳤다.[24] 성폭행이 아니면 최악으로 가봤자 불륜이나 상해죄 정도로 끝날테고, 키요타 이쿠히로처럼 불륜을 계속 해대는 것이 아닌 1회성으로는 선수생활이 끝장날 정도는 아니니 나머지는 그냥 빠르게 인정한 듯하다.[25] 4월 10일 부상으로 말소후 27일 2군 경기 출장까지 17일을 FA 일수로 인정받아 FA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