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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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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친일반민족행위자, 정치인.
2. 생애[편집]
1887년 충청도 연기현(현 세종특별자치시)에서 만석 갑부 이기하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2][3] , 호는 지우(至愚). 어려서 한문을 배우고 일본으로 유학, 1912년 나고야의 제8고등학교[4] , 1917년 교토제국대학 법과대학 법률학과를 졸업하고, 1919년까지 동 대학원에서 법제사와 조선법제사 과정을 연구했다.
이후 남만주철도주식회사에서 2년간 근무하고 1921년에는 윤익선이 설립해 운영하던 경성도서관을 인수하여 관장으로 재직했다. 1923년 민립대학기성준비회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1926년 9월부터 고등관 5등 사무관으로 임명되어 조선총독부 식산국 농무과에서 근무했다. 이후 조선박람회 사무위원, 조선총독부 임야조사위원회 위원을 거쳐 경상북도 산업부 산업과장(이사관)을 역임했다. 1940년 9월 경성에서 변호사로 개업했다.
8.15 광복 후 미군정기 때 경성부윤을 지냈다. 1952년 이긍종 국회의원의 별세로 치러진 연기군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남도 연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류지원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충청남도 참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의 조선총독부 사무관 부문과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관료·친일단체 부문에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