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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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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의병장에 대한 내용은 이규태(의병장) 문서
참고하십시오.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언론인. 전진한 초대 사회부 장관의 사위이다.
2. 생애[편집]
1933년 9월 6일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면(현 장수군 장수읍) 계정리에서 아버지 이전섭(李銓燮, 1902. 6. 22 ~ 1967. 7. 3)과 어머니 전주 류씨(1901. 12. 20 ~ )[3] 사이에서 4남 3녀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외진 시골이라 본인은 "어릴 때 종이를 처음 보고 너무 신기해 그걸 접어놓고 잠자다가도 펴보곤 했어"라고 회고 하기도...
전주사범학교, 연세대학교 이공대학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후 잠깐동안 군산상업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그러나 이내 평생을 바칠 만한 직장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어 그만두고 무작정 상경했다. 한때 취직할 곳이 없어 종로 음악다방에서 DJ를 하기도 하다가, 1959년 3월 1일 조선일보에 공채 2기로 입사하였다.# 이후 문화부, 사회부, 편집부 기자를 거쳐 논설위원을 역임했으며, 1986~1988년은 논설위원실장, 1988~1989년 논설고문을 거쳐 1989년에 주필이 되었으나, 1990년에 김대중 논설주간에게 주필직을 인계하고 1999년 8월 정년퇴임까지 다시 이사대우 논설위원으로 재직했다.
1961년 사회부 기자로 소록도 나환자촌을 취재하고 '소록도 기행'이라는 연재를 썼다. 이청준은 이를 소재로 소설 <당신들의 천국>을 썼고 이규태도 작중 인물로 등장한다. 이청준은 "그는 내 소설의 주인공이었지만 이제 나는 그의 독자다."라고 하였다.
조선일보에 1983년 3월 1일부터 그가 사망하기 이틀 전인 2006년 2월 23일까지 〈이규태 코너〉를 연재하면서 23년 동안 6702회를 기고하며 대한민국 언론사상 최장기 칼럼 기록을 세웠다. 제1회는 3·1절을 맞아 3·1선언 현장인 명월관의 내력을 쓴 '이완용 집 고목'이고 제6701회는 '책찜질 이야기'이다. 마지막회는 병상에 누운 그의 구술을 옮겨 적은 것인데, 아, 이제는 그만 글을 마쳐야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고별사를 담았다.
1965년 조선일보의 첫 번째 베트남 특파원으로 종군했으며, 귀국한 후에는 우리 역사와 한국인의 의식을 탐사하는 데 일생을 쏟았다. 1968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개화백경'을 시작으로 '6백년 서울'에 이르기까지 많은 기획연재물을 썼으며, <한국인의 재발견>, <한국인의 의식구조>[4][5] , <신바람의 한국학> 등의 저서가 있다.
지하서재에 책이 가득할 정도로 풍부한 독서량에 근거한 많은 식견과 깔끔한 문체로 쓴 이규태 코너는 한민족 우월주의를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후술하겠지만, 서양 문화의 좋은 점도 어떻게든 억까하려고 애를 쓴 부분이 많다.
2004년, 정년퇴임하고 5년간 고문으로 위촉되었고, 고문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칼럼을 계속 기고하다가, 2006년 2월 25일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지병인 폐암으로 인하여 별세하였다. 향년 72세.#
조선일보의 대표 논객이지만 정치 칼럼을 쓰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에 선우휘, 조갑제나 김대중 등처럼 정치적으로는 그다지 큰 논란을 만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후술하겠지만, 문화와 관련해서는 많은 논란을 만들었다. 특히 세대를 고려해도 심할 정도로 꼰대 성향을 보여서 당시 청년층, 청소년들에 대한 비뚤어진 관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이는 2000년대 들어서, 젊은 세대가 안티 조선 운동에 심정적으로 동조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사망 후인 2006년 10월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3. 비판[편집]
씨받이 항목에서도 나오듯이 자신이 어렸을 때 동네에서 본 경우를 에세이에 옮겼다. 이규태는 소학교 때 해방을 맞이했다고 하니 조선시대를 경험한 세대는 아님에도 씨받이가 조선시대 전통이라고 왜곡했다. 그런데 조선시대 기록 어디에서도 씨받이에 대한 건 없다.
게다가 이규태의 다른 에세이에서 '조선시대는 백정의 가족을 말처럼 타고 다니면서 운동회 때 놀려먹었다' 는 이야기가 버젓이 있는 것을 보면, 조선시대보다는 사회가 바뀌면서 일부에서 벌어지는 추태를 마치 전통인 것처럼 옮겼다는 의혹이 있다. 해당 사건이 예천에서 벌어졌다는 식으로 언급이 있는데, 예천은 일제강점기 백정의 신분해방운동인 형평사가 크게 일어나면서, 백정과 일반 양인간의 대립이 극에 이르렀던 지역이었다. 무엇보다 애초에 조선시대였다면 백정들은 양민들과 분리되어서 살았고, 양인들이 참여하는 마을 행사에 백정 가족이 참석한다는 일 자체가 벌어질 수가 없었을 일이었으므로, 해당 사건이 벌어졌다면 백정들의 신분해방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을 역으로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명 백정각시놀이가 실제로 조선시대에 존재했던 풍습인 것처럼 인터넷에서 퍼진 것은 이규태의 잘못이 크다.
이런 것도 필요없이 위에 언급된 이규태의 첫번째 글 '이완용집 고목'부터 고증이 엉망이다.
3.1운동이 벌어지던 시기의 명월관은 당시에도 이완용의 소유였다. 원래 명월관 자리는 조선시대 궁궐중 하나였던 순화궁으로 당시 민중들이 이완용의 집을 불질렀기 때문에, 일제에서 이완용에게 준 것이었다. 원래 궁궐이었던 곳에서 살기 뭐했던 이완용이
더불어 1997년 청소년보호법 파동 당시 정부 여당인 신한국당을 옹호하며 '만화가 문제'라고 칼럼을 썼다. 게다가 로쿠데나시 블루스에서 일진이 나온다고 만화가 역사적 왜곡이 많다는 글을 기재하여 당시에도 만화 애호가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90년대에는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근검절약에 대한 그의 칼럼이 실린 바 있다. 할머니가 남이 신다버린 낡은 짚신을 주워다가 펴서 개집 바닥에 깔아뒀다는 이야기를 하며 냉장고를 어떻게 버릴까 고민하는 현대인[7] 을 이야기하며 낭비가 심하다 이런 내용이다. 단순히 낭비가 심하다가 아니라 낡은 짚신을 줍는 것과 냉장고를 버리는 간격 만큼 현대인은 병들고 있다는 말로 끝맺는다.[8]
심지어는 악폐습까지도 휴머니즘이라 미화했다. 농곡(弄穀)에 대한 글에 드러난 시각이 그러한데, 마을에서 못사는 집 아이를 노리개로 찍어 놓고 나무 껍질을 벗겨 알몸에 문지름으로써 옻을 올리는 등 가학적 행위를 하면, 피해자의 어머니가 가해자 집에 찾아가 보상을 요구하고, 이에 보상용으로 곡식을 주는 풍습을 농곡이라 했다. 요즈음 시각으로 보면 '맷값 폭행'인데, 이를 휴머니즘이라 미화한 것이다.
서구의 합리주의 문화에 대한 열등감을 드러낸 부분도 있다. 일례로 돌진하는 기차 앞에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 대처하는 서양 엄마와 한국 엄마를 비교한 글이 있는데, 서양 엄마는 아이를 바깥으로 밀쳐 내서 피하게 하는 반면, 한국 엄마는 무조건 아이를 껴안는다면서, 서양 엄마는 냉정하지만 한국 엄마는 인간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이규태가 소개한 한국 엄마의 대처 방식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방식이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다면, 저 상황에서 올바른 위기 대처법을 홍보해야 맞는데, 아기도 살리고 자기도 산 서양 엄마가 비정하다면서, 둘 다 다치는 잘못된 방법을 선택한 한국 엄마를 올려치기한 것은 비뚤어진 열등감으로 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규태가 비교한 사례가 실제로 일반화할 수 있는 사례인지도 확실치 않다. 서양인이라고 모두 안전 교육을 제대로 받은 것도 아닐 것이며, 한국인이라도 경험에 따른 지혜로 침착하게 올바른 대처를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규태는 통계적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서양은 이렇고 한국은 이렇다라며 일반화를 했다.
4. 관련 문서[편집]
[1] #[2] 합문부사공파(閤門副使公派)-봉례공파(奉禮公派) 30세 규(圭) 항렬.[3] 류위(柳瑋)의 셋째 딸이다.[4] 이 책의 문구 일부가 1990년대 초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서 비판(?)당하기도 했다. 한 사람이 썼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모순된 내용이라던가. [5] 이 책을 낸 뒤에도 ~의 의식 구조라는 제목으로 책 여러 권을 썼다. 선비의 의식구조, 여성의 의식구조 등등 [6] 정작 해당 기사는 1920년대 동아일보 기사, 이규태가 글을 쓰기 전해인 1982년 경향신문 기사에서도 제대로 언급된다. 위키백과 순화궁 페이지의 해당시기 근거자료가 바로 두 기사이다.[7] 바로 자기 아내이다! [8] 애시당초 말도 안 되는 비교에다가 나 때는 말이야...를 시전하는 전형적인 꼰대 마인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