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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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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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마브로코르다토스페트로스 마브로미할리스요르요스 쿤투리오티스안드레아스 자이미스
제5대제6대
요안니스 카포디스트리아스아브구스티노스 카포디스트리아스
비텔스바흐 왕조
제7대제8대제9대제10대
스피리돈 트리쿠피스알렉산드로스 마브로코르다토스요안니스 콜레티스요제프 루트비히 폰 아르만스페르크
제11대제12대제13대제14대
이그나츠 폰 루트하르트오톤알렉산드로스 마브로코르다토스오톤
제15대제16대제17대제18대
안드레아스 메탁사스콘스탄티노스 카나리스알렉산드로스 마브로코르다토스요안니스 콜레티스
제19대제20대제21대제22대
키초스 자벨라스요르요스 쿤투리오티스콘스탄티노스 카나리스안도니스 크리지스
제23대제24대제25대제26대
알렉산드로스 마브로코르다토스디미트리오스 불가리스아타나시오스 미아울리스요안니스 콜로코트로니스
제27대제28대제29대제30대
디미트리오스 불가리스아리스티디스 모레티니스지노비오스 발비스디오미디스 키리아코스
제31대
베니젤로스 루포스
1차 글뤽스부르크 왕조
제32대제33대제34대제35대
디미트리오스 불가리스콘스탄티노스 카나리스지노비오스 발비스콘스탄티노스 카나리스
제36대제37대제38대제39대
베니젤로스 루포스알렉산드로스 쿠문두로스에파미논다스 딜리요르이스디미트리오스 불가리스
제40대제41대제42대제43대
알렉산드로스 쿠문두로스에파미논다스 딜리요르이스베니젤로스 루포스디미트리오스 불가리스
제44대제45대제46대제47대
알렉산드로스 쿠문두로스아리스티디스 모레티니스디미트리오스 불가리스트라시불로스 제미스
제48대제49대제50대제51대
에파미논다스 딜리요르이스알렉산드로스 쿠문두로스트라시불로스 제미스디미트리오스 불가리스
제52대제53대제54대제55대
에파미논다스 딜리요르이스디미트리오스 불가리스하릴라오스 트리쿠피스알렉산드로스 쿠문두로스
제56대제57대제58대제59대
에파미논다스 딜리요르이스알렉산드로스 쿠문두로스에파미논다스 딜리요르이스알렉산드로스 쿠문두로스
제60대제61대제62대제63대
콘스탄티노스 카나리스알렉산드로스 쿠문두로스하릴라오스 트리쿠피스알렉산드로스 쿠문두로스
제64대제65대제66대제67대
하릴라오스 트리쿠피스알렉산드로스 쿠문두로스하릴라오스 트리쿠피스테오도로스 딜리얀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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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미트리오스 발비스하릴라오스 트리쿠피스테오도로스 딜리얀니스콘스탄티노스 콘스탄토풀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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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릴라오스 트리쿠피스소티리오스 소티로풀로스하릴라오스 트리쿠피스니콜라오스 딜리얀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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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제미스니콜라오스 칼로예로풀로스스피리돈 람브로스알렉산드로스 제미스
제100대제101대제102대제10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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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오스 스트라토스페트로스 프로토파파다키스니콜라오스 트리안타필라코스아타나시오스 하랄람비스
제108대제109대제110대제111대
소티리오스 크로키다스스틸리아노스 고나타스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요르요스 카판타리스
제2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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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파파나스타시우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파나이스 찰다리스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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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오토네오스파나이스 찰다리스
2차 글뤽스부르크 왕조
제126대제127대제128대제129대
요르요스 콘딜리스콘스탄티노스 데메르치스요안니스 메탁사스알렉산드로스 코리지스
제130대제131대제132대제133대
엠마누일 추데로스소포클리스 베니젤로스요르요스 파판드레우니콜라오스 플라스티라스
제134대제135대제136대제137대
페트로스 불가리스다마스키노스 대주교파나요티스 카넬로풀로스테미스토클리스 소풀리스
제138대제139대제140대제141대
파나요티스 풀리차스콘스탄티노스 찰다리스디미트리오스 막시모스콘스탄티노스 찰다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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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미스토클리스 소풀리스알렉산드로스 디오미디스요안니스 테오토키스소포클리스 베니젤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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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시스 치프라스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요안니스 사르마스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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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Greatest Greeks
※ 2009년 그리스 Skai TV 방송이 그리스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그리스인 100명'을 선정
TOP 10
1위2위3위4위5위
알렉산드로스 3세게오르요스 파파니콜라우테오도로스 콜로코트로니스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소크라테스
6위7위8위9위10위
아리스토텔레스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요안니스 카포디스트리아스플라톤페리클레스
11위~10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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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위12위13위14위15위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콘스탄티노스 카라테오도리멜리나 메르쿠리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니코스 카잔차키스
16위17위18위19위20위
오디세아스 엘리티스호메로스마노스 하지타키스레오니다스 1세히포크라테스
21위22위23위24위25위
피타고라스콘스탄티노스 카바피마리아 칼라스아르키메데스아리스토틀 오나시스
26위27위28위29위30위
하릴라오스 트리쿠피스엘 그레코콘스탄티노스 11세요르기오스 세페리스리가스 페레오스
31위32위33위34위35위
아리스 벨루키티오스요안니스 메탁사스니코스 갈리스게오르기오스 카라이코스데모크리토스
36위37위38위39위40위
게오르기오스 게미스토스 플레톤디오니시오스 솔로모스야니스 마크리야니스아다만티오스 코레스야니스 리트오스
41위42위43위44위45위
테미스토클레스헤라클레이토스투키디데스유클리드파블로스 멜라스
46위47위48위49위50위
아테네의 크리스토둘로스아타나시오스 디아코스테오도로스 자고라키스디미트리 나노풀로스무명용사
51위52위53위54위55위
페이디아스아리스토파네스코스티스 팔라마스에톨리아의 코스마스마놀리스 안드로니코스
56위57위58위59위60위
소포클레스니코스 벨로야니스코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요르요스 파판드레우니콜라오스 마르지오리스
61위62위63위64위65위
알렉산드로스 파나굴리스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에피쿠로스알렉산드로스 파파디아만티스오톤
66위67위68위69위70위
반젤리스솔론클레이스테네스아이스퀼로스바실리오스 2세
71위72위73위74위75위
콘스탄티누스 1세이온 드라구미스코스타스 시미티스니콜라오스 플라스티라스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
76위77위78위79위80위
테오 앙겔로풀로스니코스 실루리스스텔리오스 카잔티디스차릴로스 플로라키스에우리피데스
81위82위83위84위85위
카롤로스 코운유스티니아누스 1세라키스 라조폴로스헤로도토스다나시스 벤고스
86위87위88위89위90위
헬레네 글리카츠아흐와일러카티나 팍시누알리키 부지욱라키마르코스 밤바카리스그리고리스 람브라키스
91위92위93위94위95위
바실리스 치차니스피로스 디마스마노스 로조스마노리스 글레조스엘레나 무잘라
96위97위98위99위100위
필리포스 2세디미트리스 혼라스카리나 부불리나탈레스프락시텔레스

출처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파일:1280px-Prinz_Otto_von_Bayern_Koenig_von_Griechenland_1833.jpg
출생1815년 6월 1일
오스트리아 제국 잘츠부르크
(現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주 잘츠부르크)
사망1867년 7월 26일 (향년 52세)
바이에른 왕국 밤베르크
(現 독일 바이에른주 오버프랑켄현 밤베르크)
재위기간그리스 국왕
1832년 2월 6일 ~ 1862년 10월 23일
재임기간제12대 총리
1837년 12월 8일 ~ 1841년 2월 10일
제14대 총리
1841년 8월 10일 ~ 1843년 9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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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비텔스바흐 가문
이름독일어: 오토 프리드리히 루트비히
(Otto Friedrich Ludwig)
그리스어: 오톤 프레이데리코스 루도비코스
(Όθων Φρειδερίκος Λουδοβίκος)
아버지루트비히 1세
어머니작센힐트부르크하우젠의 테레제
형제자매막시밀리안 2세, 마틸데 카롤리네, 루이트폴트, 아델군데, 힐데가르트, 알렉산드라, 아달베르트
배우자올덴부르크의 아말리 (1836년 결혼)
종교가톨릭

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편집]


그리스 왕국의 초대 국왕.


2. 생애[편집]


당시 그리스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나 오스만을 약화시키기 위한 열강의 지원으로 인해 갓 독립된 그리스 왕국의 초대 국왕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와 어떤 관계도 없는 독일인이었고, 이 때문에 그리스인들의 거센 반감을 재위 때부터 받아왔다. 또한 오톤은 권위주의적인 통치[1]를 벌였기에 그리스에서 인기는 그야말로 바닥이었다.

결국, 고대 그리스동로마 제국의 옛 땅과 영광을 되찾겠답시고 참전한 크림 전쟁에서 그리스는 러시아 제국에 줄을 서는 바람에, 러시아의 적인 영국군의 공격으로 큰 피해를 당해야 했다. 이로 인해 많은 배상금을 물어주고 그리스 항구도시 주둔권 및 여러 권리를 영국에게 넘겨준 여파로 안 그래도 바닥이던 인기는 사라질 지경이며 버티다가는 신하들과 국민들에게 폐위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오톤은 1862년에 스스로 퇴위해야 했다. 왕조도 글뤽스부르크 왕조로 바뀌었다. 그가 얼마나 그리스인에게 미움을 받았던지 1863년 그리스 새 국왕을 뽑는 국민투표에서는 24만 1202표 가운데 1표만이 그의 복위를 바란다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이후 오톤은 고국인 바이에른 왕국으로 돌아갔다가 사망한다. 그리스 본토에서 지독하게 인기가 없었던 인물이었지만 그래도 일생의 대부분을 보낸 그리스에 그리움이 심했던지, 바이에른에 돌아가서도 겨우 5년 만에 죽었다. 거기서도 그리스어를 사용하며 그리스 전통 복장을 입고 지냈다고 한다.

3. 여담[편집]


파일:오톤 사진.jpg

  • 위에 잘생긴 젊은 시절 초상화와는 달리 중년기에 찍은 사진을 보면 이런 느낌의 평범한 아저씨였다. 상술한 것처럼 그리스를 많이 그리워했는지 그리스의 전통 복장을 입고 있다.
  • 그 유명한 루트비히 2세의 삼촌이기도 하다. 올덴부르크의 아말리와의 사이에 자녀는 없었다. 만약 오톤이 국왕의 신분으로 사망하여 그리스 비텔스바흐 왕조가 계속 이어졌다면 오톤의 동생인 루이트폴트가 오톤의 뒤를 이어 그리스 왕위에 올랐을 가능성이 높다.[2] 바이에른 국왕 오토가 폐위된 후 즉위한 루트비히 3세가 루이트폴트의 장남이므로, 이론상으로는 루트비히 3세의 후손이며 현 바이에른 왕위 요구자인 프란츠 폰 바이에른이 프란기스코스[3] 왕으로서 그리스 비텔스바흐 왕조의 적법한 왕위 요구자가 된다.
  • 재위 중인 1837년에는 오늘날의 아테네 국립 카포디스트리아스 대학교를 설립했다.
  • 재위 중 그리스의 12대 총리, 14대 총리를 겸직하여 국왕과 총리라는 1인 2역을 수행하기도 했다.

[1] 종교부터도 인구 대다수가 그리스 정교회를 믿는 그리스인과 달리 오톤은 가톨릭을 믿었고 끝까지 개종을 거부했다.[2] 당시 그리스 헌법상 오톤의 형제와 그 자손들도 왕위 계승권이 있었기에, 오톤에게 아들이 없는 상황에서는 오톤의 동생 루이트폴트가 추정상속인이었다. 그러나 이 헌법에 따르면 오톤의 후계자는 반드시 정교회 신자여야 했는데, 루이트폴트가 이 조건 때문에 오톤의 후계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로 상속을 거부하면서 후계구도가 붕 떠버린 것이다. 공화정 전환은 당시 그리스인 절대다수가 왕정을 선호해서 힘을 얻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열강의 조정에 의해 요르요스 1세가 차기 국왕으로 선출되었다.[3] 독일어권의 프란츠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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