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ray ( [0] => ||<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000000><bgcolor=#000000> {{{#ffffff '''멜리나 메르쿠리의 주요 수상 이력'''}}} || ||<bgcolor=#ffffff,#19191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Skai TV 선정 위대한 그리스인)] ---- ||<-5><table align=center><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0c0000><bgcolor=#0c0000> {{{#e5d85c ''' 역대 [[칸 영화제|{{{#e5d85c 칸 영화제}}}]]''' }}} || ||<-5><bgcolor=#ffffff,#333333> [[파일:칸 영화제 로고.svg|width=190]] || ||<-5><bgcolor=#0c0000> [[칸 영화제/여우주연상|{{{#e5d85c '''여우주연상'''}}}]] || ||<width=30%><rowbgcolor=#ffe400,#615200> ''' 제12회 [br] ([[1959년]]) ''' || {{{+1 → }}} ||<width=30%> ''' 제13회 [br] ([[1960년]]) ''' || {{{+1 → }}} ||<width=30%> ''' 제14회 [br] ([[1961년]]) ''' || || [[시몬 시뇨레]][br](꼭대기 방) || {{{+1 → }}} ||<bgcolor=#ffffff,#191919> '''멜리나 메르쿠리[br](일요일은 참으세요)'''[br][[잔느 모로]][br](모데라토 칸타빌레) || {{{+1 → }}} || [[소피아 로렌]][br](두 여인) || ||<-5><bgcolor=#0c0000> || }}} || ---- ||<-2><tablealign=right><tablewidth=500><tablebordercolor=#000000><tablebgcolor=#ffffff,#191919><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1 멜리나 메르쿠리}}}[br]Μελίνα Μερκούρη | Melina Mercouri''' || ||<-2>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melinamercouri.jpg|width=100%]]}}} || ||<width=23%> '''본명''' ||마리아 아말리아 메르쿠리[br]Μαρία Αμαλία Μερκούρη || ||<|2> '''출생''' ||[[1920년]] [[10월 31일]] ^^(그레고리력)^^[* [[율리우스력]]으로는 1920년 10월 20일이다. 당시의 [[그리스]]는 [[율리우스력]]을 쓰고 있었다.] || ||[[그리스 왕국]] [[아테네]]|| ||<|2> '''사망''' ||[[1994년]] [[3월 6일]] (향년 73세) || ||[[미국]] [[뉴욕]] || ||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그리스)] | [include(틀:국기, 국명=미국)] || || '''직업''' ||[[배우]], [[가수]], [[정치인]]|| || '''활동 기간''' ||1945년 - 1977년|| || '''신장''' ||173cm|| || '''정당'''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 || '''배우자''' ||파노스 하로코폴스 ^^(1939년 결혼~1962년 이혼)^^[br]줄스 다신 ^^(1966년 결혼)^^ || [목차] [clearfix] == 개요 == [[그리스]]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명배우이자, 그리스 민주화의 영웅으로 꼽히는 정치인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영화판 등으로 20세기 중반을 풍미한 명배우이며, 동시에 모국인 [[그리스]]의 민주화를 성공시키고 장관까지 지낸 [[먼치킨(클리셰)|먼치킨]]이었다. 지금도 [[그리스]]에서는 그녀를 자국의 위인으로 추앙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그리스]]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톱스타였다가, 군사정권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모국에서 추방당하기도 했고, 그러면서도 끝내 굴하지 않고 자국에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간 사람이었다. == 생애 == [[아테네]]에서 부유한 정치 명문가의 영애로 태어났던 멜리나 메르쿠리는 1945년에 [[그리스 국립극장]]에 입단하면서 연극 배우로 데뷔했다. 이때, 그녀는 [[유진 오닐]]의 희곡인 《[[엘렉트라의 비탄]]》에서 [[엘렉트라]] 역을 맡았다. 그녀의 [[리즈 시절]]은 영화 배우 시절이지만, 당시로서는 상당히 늦은 시기인 35살 때에야 영화 《[[스텔라(영화)|스텔라]]》를 통해 영화 배우로 전업했다. 이후에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영화판에 출연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러던 도중 평생을 같이하게 되는 미국 출신 감독 [[줄스 다신]][* 멜리나를 만나기 이전에도 이미 여러 필름 느와르와 범죄 영화들로 영화사에 명망있던 감독이었다. 대표작으로는 [[리피피]], [[밤 그리고 도시]]가 있다.]을 만나게 된다. 당시 [[줄스 다신]]은 [[매카시즘]]과 [[블랙리스트]]를 피해 미국을 떠나 유럽을 전전하고 있었다. 그들의 첫 협업작인 [[일요일은 참으세요]]는 1960년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결국 둘은 서로의 배우자랑 이혼한 뒤, 결혼하게 된다. 그렇게 세계적인 배우로서 승승장구하던 와중에 1967년에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의 [[그리스 군사정권|군사독재정권]]이 수립되자, 멜리나 메르쿠리는 군사독재정권을 규탄하는 성명문을 발표했다가 이것이 트집잡혀서 [[그리스]] 국적이 말소되었다. 결국 자국 내에서의 활동이 금지된 그녀는 [[프랑스]]에 잠시 정착해서 [[샹송]] 가수로 활동하다가, [[미국]]으로 이민가서 시민권을 얻었다. 그러면서도 모국인 [[그리스]]의 민주화운동을 적극 지원하면서,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80년에 드디어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그리스]]가 민주화되자, 그리스의 좌파 정당인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에 가입하였고, 당시 총리였던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에 의해 그리스의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두번이나 장관직을 수행하였다. 장관으로 재직하던 중이던 1994년에 [[미국]] [[뉴욕]]에서 지병인 [[폐암]]으로 사망하였고, 그녀의 시신은 [[그리스 제1묘지]][* 한국으로 치면 [[현충원]]같은 곳이다.]에 매장되었다. 참고로 줄스 다신은 멜리나 사망 이후 14년이나 더 살았다. == 기타 == 정치적으로는 골수 [[좌파]]여서, [[사회민주주의]]를 적극 지지했다. 배우 시절부터 상당한 [[골초]]로 유명했는데, 이것 때문에 말년에 [[폐암]]으로 쓰러졌고, 그녀의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다. [[엘긴 마블]]의 반환 문제와도 연관이 깊은데, 배우로 유명하던 1962년에 [[영국]]의 [[런던]]을 방문했다가, [[대영박물관]]에 자국의 유물인 엘긴 마블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격분한 적이 있었다[* [[엘긴 마블]]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본래 문화재 보존을 목적으로 [[영국]]으로 옮겨진 것을 영국 정부가 반환을 거부하는 바람에, [[그리스]] 정부가 억울하게 뺏긴 물건이었다.]. 그녀는 생전에 [[엘긴 마블]]이 모국에 반환되는 것을 꼭 봐야겠다고 생각해서, 문화부 장관 시절에 엘긴 마블의 반환을 위해 [[영국]] 정부와 협상을 시도했다. 영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 유물들은 엘긴의 조각이 아니라,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들"이라고 역설하기도 했을 정도. 그러나 몇 번이나 실패로 돌아간 적이 있었다. 당연히 [[영국]] 정부의 [[적반하장]]식 태도에 [[피꺼솟]]한 그녀는 죽을 때까지 [[엘긴 마블]]의 반환을 거부한 영국 정부를 통렬히 비판했다. 줄스 다신 본인에게는 여러모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멜리나는 줄스 다신을 본격적인 그리스빠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 다신의 영화 세계도 멜리나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뉠 정도다. 멜리나를 만난 이후 다신의 영화는 친그리스적인 성향을 띄면서 좀 더 밝고 유쾌해진다.], 다신 본인도 멜리나가 이끌었던 그리스 민주화와 엘긴 마블의 반환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또한 다신과 멜리나가 할리우드 배우들을 이끌어들어 만든 영화들 역시 그리스 영화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때문에 줄스 다신 역시 그리스 내에서 평판이 매우 좋다. 한국에서도 [[일요일은 참으세요]]라던가 [[페드라(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기성세대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하지만 이 영화들을 감독한 줄스 다신은 인지도가 낮다...~~ [[분류:1920년 출생]][[분류:1945년 데뷔]][[분류:1994년 사망]][[분류:그리스계 미국인]][[분류:그리스의 여가수]][[분류:그리스의 여배우]][[분류:그리스의 정교회 신자]][[분류:그리스의 정치인]][[분류:미국 여가수]][[분류:미국 여배우]][[분류:미국의 정교회 신자]][[분류:민주운동가]][[분류:음악가 출신 정치인]][[분류:배우 출신 정치인]][[분류:복수국적자]][[분류:아테네 출신 인물]][[분류:폐암으로 죽은 인물]][[분류: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자]] [include(틀:포크됨2, title=멜리나 메르쿠리, d=2023-11-27 20:49:38)]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