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제서(南齊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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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서(梁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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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량의 대신 영도교자(寧都驕子) 蕭子顯 | 소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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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 교(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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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호
| 영도현자(寧都縣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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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 소(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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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자현(子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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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경양(景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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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
| 소억(蕭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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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 487년 ~ 53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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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 양나라 남난릉 사람으로 자는 경양(景陽)이다.
소자현은
제를 건국한
소도성의 손자로 예장왕 소억의 팔남이다. 영명 연간에 태어나 영도현후에 봉해졌다. 소자현은 어린 시절에 총명하여 소억의 총애를 받았고, 영원 연간에는 급사중으로 임명되었다. 제가 멸망할 때에는 겨우 14살이었다. 494년 명제
소란이 소도성의 자손들을 거의 다 죽였으나 소자현은 5세였는데 어떻게 살아 남았다.
양나라가 들어선 뒤에는 작위가 자로 강등되었지만
양무제가 그의 능력을 총애해 태자중사인, 건강령, 국자좨주, 시중, 이부상서 등을 역임하면서 안정적인 관료생활을 했다.
[1] 소연은 선양의 과정을 거치면서 소도생(蕭道生)의 자손들을 모조리 죽였으나 나머지 종실(宗室)들은 해하지 않았다. 어느날 소연을 소자현의 형 남강후(南康侯) 소자각(蕭子恪)과 동생인 기양후(祁陽侯) 소자범(蕭子範)이 알현하자 소연은 옛날 두려움과 질투로 왕족들을 살해한 여러 고사를 얘기하며 자신은 소자각 형제를 죽일 생각이 없다는 것을 밝혔다.
소자현은 양무제와 정계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었는데 양무제가 직접 저술한 『
통사(通史)』를 그가 예찬하였고, 양무제의 이름으로 국학에서 편찬된 『오경의(五經義)』를 논했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
후한서』 100권, 『제서』 60권, 『보통북벌기』 5권, 『귀검전』 30권, 『효경의소(孝經義疏)』 1권, 『효경경애의』 1권 그리고 문집 20권을 남겼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
남제서』하나만 전하고 있다. 국자좨주(國子祭酒), 이부상서(吏部尙書)와 시중(侍中) 등을 역임했다. 거기에다 본인의 기록은 손실되어서 그의 기록은 오직 양서 소자각 열전에서 볼수 있다.
[2] 물론 자서전에는 본인의 생애보다 가문의 역사가 대부분 실려있다.
소자현은 장중하고 검소한 성품을 지녔지만 자신의 재능을 과신하는 면도 있었다. 소자현은 이부상서를 맡을 때 여러 빈객을 만났지만 그들과는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부채를 들어 자기에게 흔들기만 했다. 재능을 과신하는 면 때문인지 소자현은 죽은 뒤에 교(驕)라는 시호를 받았다.
자각(子恪)의 형제는 모두 16명인데,모두 양(梁)에서 벼슬을 하였으며,자각(子恪)、자범(子范)、자질(子質)、자현(子顯)、자운(子雲)、자휘(子暉)는 나란히 재능으로 알려졌고,청관과 현직을 두루거쳤으며,각자 천수를 다하고 마쳤다。
子恪兄弟凡十六人,皆仕梁,子恪、子范、子質、子顯、子雲、子暉竝以才能知名,歷官淸顯,各以壽終。
『자치통감(資治通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