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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캠퍼스/종합화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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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2. 캠퍼스 목록
2.1. 동숭동 캠퍼스
2.1.1. 문리과대학
2.1.1.1. 문리과대학 전경
2.1.1.2. 문리과대학 정문
2.1.1.3. 문리과대학 본부
2.1.1.4. 문리과대학 교사
2.1.1.5. 문리과대학 백계산장
2.1.1.6. 문리과대학 시계탑
2.1.1.7. 문리과대학 세느 강
2.1.1.8. 문리과대학 마로니에 나무
2.1.2. 법과대학
2.1.3. 미술대학
2.2. 연건동 캠퍼스
2.3. 공릉동 캠퍼스
2.4. 종암동 캠퍼스
2.5. 용두동 캠퍼스
2.6. 소공동 캠퍼스
2.7. 남산동 캠퍼스
2.8. 수원 캠퍼스
1. 개요[편집]
서울대 개교 당시에는 각 단과대들의 소재지가 여러 곳으로 나뉘어 있었다. 즉 동숭동(문리과대학[1] , 법과대학, 미술대학[2] ), 연건동(의과대학, 약학대학), 공릉동(공과대학)[3] , 종암동(상과대학[4] ), 을지로(사범대학, 가정대학[5] ), 소공동(치과대학[6] ), 남산동(음악대학)[7] , 수원시(농과대학[8] , 수의과대학)로 캠퍼스가 나뉘어져 있었다. 각각 따로 설립된 학교들을 통합하다 보니 나온 결과인데, 그나마 동숭동캠과 연건동캠은 도로 하나를 사이로 대학로에 모여있었지만, 이 정도면 뭐 거의 파편화에 가깝다.(…)
고로 관악캠퍼스에 통합하기 이전에는 다른 단과대학과의 교류가 매우 적었을 뿐 아니라 아예 다른 대학 취급하는 분위기도 있었다.[9] 관악캠퍼스로 통합 당시 단과대학 명칭 개편 및 유사학과 통폐합이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엄청난 반발이 있었다고. 단, 시대가 시대인 만큼 크게 항의하지는 못했다.
1968년에 와서야 서울대학교 총동창회가 발족했다. 서울대 특유의 개인주의적 분위기는 여기에서부터 유래한 것일 수도 있겠다.[10] 문리과대학이 기초학문의 중심지란 상징성 때문에 서울대 대학본부가 동숭동에 위치하는 등 동숭동 캠퍼스가 명목상 서울대학교의 중심 역할을 하긴 했지만, 이런 파편화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었다.
2. 캠퍼스 목록[편집]
2.1. 동숭동 캠퍼스[편집]
문리과대학[11] , 법과대학, 미술대학[12] 이 사용하던 부지이며, 종합화 이전 서울대의 본부가 있던 곳이다. 서울대가 위치해 있어 주변 거리에 대학로[13] 라는 이름이 붙었다.[14]
2.1.1. 문리과대학[편집]
현재 관악캠퍼스의 상징이 서울대 정문인 것과 대비해, 당시 캠퍼스 상징은 시계탑이었다. 시계탑은 문리과대학 학생들의 만남의 장소로도 활용이 되었다. 대학에는 학생들의 낭만이 살아있었는데, 문리대 앞으로 흐르는 개천을 세느 강으로 불렀으며, 그 위로 지어진 다리를 미라보 다리[15] 라고 했다. 문리과대학 정문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미라보 다리를 건너야 했다. 마로니에 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아름다운 캠퍼스였다.[16]
2.1.1.1. 문리과대학 전경[편집]
2.1.1.2. 문리과대학 정문[편집]
2.1.1.3. 문리과대학 본부[편집]
2.1.1.4. 문리과대학 교사[편집]
2.1.1.5. 문리과대학 백계산장[편집]
2.1.1.6. 문리과대학 시계탑[편집]
2.1.1.7. 문리과대학 세느 강[편집]
2.1.1.8. 문리과대학 마로니에 나무[편집]
2.1.2. 법과대학[편집]
서울대학교 출범 초기에는 청량리에 위치했으나, 1949년 대학 본부가 있던 동숭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법과대학의 상징은 정의의 종이었으며, 이 종은 현재 관악캠퍼스 법학전문대학원 부지에 옮겨져 지금도 볼 수 있다.[18]
2.1.2.1. 법과대학 본관[편집]
2.1.2.2. 법과대학 교사[편집]
2.1.2.3. 법과대학 교사[편집]
2.1.2.4. 법과대학 사법대학원[편집]
2.1.2.5. 법과대학 정의의 종[편집]
2.1.3. 미술대학[편집]
미술대학은 예술대학 미술부에서 출발하여 1953년, 미술대학으로 승격했다. 동숭동 캠퍼스의 문리과대학 건물 일부와 자체 목조 건물을 사용하던 미술대학은 1963년부터 종합화 이전까지 연건동 캠퍼스 내부에 위치하기도 했다.
2.1.3.1. 미술대학 교문[편집]
2.1.3.2. 미술대학 교사[편집]
2.1.3.3. 미술대학 교사[편집]
2.1.3.4. 미술대학 연건 교사[편집]
미술대학이 연건동 캠퍼스에 있을 때 사용하던 건물이다.
2.2. 연건동 캠퍼스[편집]
종합화 이전 연건동 캠퍼스는 의과대학[19] , 약학대학이 사용했었다.[20] 이 캠퍼스는 현재까지도 의과대학, 간호대학, 치의학대학원 등이 사용하고 있다. 동숭동 캠퍼스와 도로 하나를 사이로 마주 보고 있었으며, 동숭동 캠퍼스 정문 바로 앞에 연건동 캠퍼스 정문이 있었다.
2.2.1. 의과대학[편집]
2.2.1.1. 의과대학 전경[편집]
2.2.1.2. 의과대학 정문[편집]
2.2.1.3. 의과대학 본관[편집]
2.2.1.4. 의과대학 병원[편집]
대한의원의 역사를 물려 받아 서울대 병원으로 활용했으며, 현재는 서울대 의대의 의학박물관으로 사용 중인 건물이다.
2.2.1.5. 대학신문사[편집]
2.2.2. 약학대학[편집]
2.2.2.1. 약학대학 교사[편집]
2.3. 공릉동 캠퍼스[편집]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의 캠퍼스이다.
2.3.1. 공과대학[편집]
2.3.1.1. 공과대학 전경[편집]
사진속 세 건물들은 왼쪽 위 건물부터 시계방향으로 다산관, 창학관, 대륙관이라는 이름으로서 현재도 사용되고 있다.
2.3.1.2. 공과대학 교사[편집]
현재 다산관이라는 이름으로서 사용되고 있다.
2.3.1.3. 공과대학 교사[편집]
현재 대륙관이라는 이름으로서 사용되고 있다
2.4. 종암동 캠퍼스[편집]
종암동 캠퍼스는 상과대학이 사용했으며, 상과대학에는 상학과, 경영학과, 경제학과, 무역학과가 소속되어 있었다. 종합화 이후 상학과는 경영학과에 흡수되어 경영대학으로서 상과대학의 역사를 이었고, 경제학과와 무역학과는 문리과대학 후신의 하나인 사회과학대학으로 소속을 옮겼다.[22] 상과대학의 상징으로는 소나무로 가득 찬 향상림을 꼽을 수 있다.
2.4.1. 상과대학[편집]
2.4.1.1. 상과대학 전경[편집]
2.4.1.2. 상과대학 정문[편집]
2.4.1.3. 상과대학 본관[편집]
2.4.1.4. 상과대학 연구소[편집]
2.4.1.5. 상과대학 향상림[편집]
2.5. 용두동 캠퍼스[편집]
용두동 캠퍼스는 사범대학과 가정대학[23] 이 사용하던 곳이다. 가정대학은 사범대학 가정과[24] 에서 시작했으며, 1968년 별도의 단과대학으로 독립했으나 용두동에 남아 사범대학과 함께 캠퍼스를 공유했다. 용두동 캠퍼스의 상징은 청량대로 불리던 뒷동산이었다.
2.5.1. 사범대학[편집]
2.5.1.1. 사범대학 교사[편집]
2.5.1.2. 사범대학 부속 국민학교[편집]
2.5.2. 가정대학[편집]
2.5.2.1. 가정대학 교사[편집]
사범대학과 공유하던 건물이다.
2.6. 소공동 캠퍼스[편집]
2.6.1. 치과대학[편집]
2.6.1.1. 치과대학 교사[편집]
2.7. 남산동 캠퍼스[편집]
2.7.1. 음악대학[편집]
2.7.1.1. 음악대학 교사[편집]
2.8. 수원 캠퍼스[편집]
수원 캠퍼스는 농과대학[25] 과 수의과대학이 사용하던 곳이다. 수의과대학은 농과대학에서 독립[26] , 농과대학으로의 편입[27] 을 반복하다 1976년 비로소 수의과대학으로 온전히 독립했다. 이 과정에서 수의과대학은 잠시 연건동에 자리하기도 했었다. 서울대 종합화 이후에도 농과대학과 수의과대학은 수원에 남았으며, 수의과대학은 2002년, 농과대학은 2003년이 되어서야 관악 캠퍼스로 옮길 수 있었다. 현재도 부지와 건물은 그대로 남아있으나 2018년 이후 경기도 소유로, 방치되거나# 문화예술공간으로의 전용이 시도되고 있다.##
2.8.1. 농과대학[편집]
2.8.1.1. 농과대학 전경[편집]
2.8.1.2. 농과대학 본관[편집]
상록캠퍼스에서 대학본부 역할을 하던 행정본관으로, 단과대 행정 사무실과 농경제학과가 위치해 있었다. 그러나, 농경제학과의 실제 수업은 사회대에서 이루어졌으므로, 사실상 강의실 역할 없는 행정본관이었다.
2.8.1.3. 농과대학 교사[편집]
상록캠퍼스 6동 종합관. 종합관이라는 이름답게, 가장 많은 학과들의 강의실과 실험실이 위치해 있었으며, 1992년 설립된 농업과학공동기기센터(현재는 관악캠퍼스 201동)도 이 건물에 있었다.
옛 대학 건물 치고는 생김새가 특이한게, 가운데가 비어있는 중정의 ㅁ자 형태 건물. 사연인 즉슨, '미네소타 프로젝트 (Minnesota Project)'[28] 당시에 미네소타 대학교의 건물 하나를 베껴(..) 지었다고 하는데, 원래 더 높은 건물이던 것을 쑹덩 잘라먹고 3층 짜리로 지었기 때문에, 건물이 무언가 올라가다가 만 것 같은 모습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2.8.2. 수의과대학[편집]
2.8.2.1. 수의과대학 교사[편집]
2.8.2.2. 수의과대학 연건 교사[편집]
수의과대학[29] 이 연건동 캠퍼스에 있을 때[30] 사용하던 건물이다.
[1] 현재의 인문대학, 사회과학대학, 자연과학대학의 전신.[2] 1963년 이후 연건동 캠퍼스로 이전.[3] 현재 공릉동 캠퍼스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가 사용하고 있다.[4] 현재의 경영대학, 경제학부의 전신. 현재는 사범대 부속고등학교가 위치해 있다.[5] 현재 생활과학대학[6] 현재 치의학대학원[7] 처음에는 예술대학 음악부로 출발했다가 음악대학으로 발전했다. 옛 조선신궁 자리였다고 하며 이후 연건동 의과대학 내로 옮겼다가, 1959년에 을지로6가에 있던 약학대학과 캠퍼스를 맞바꾸었다.[8] 현재 농업생명과학대학[9] 연합 대학으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이 때문에 "서울법대", "서울상대", "서울의대"와 같이 단과대학이 마치 하나의 대학처럼 불렸다. 종합화 이후 단과대학으로서 성격이 강해져 차후 발족한 단과대학이 "서울인문대", "서울사회대" 등으로 불리는 일은 거의 없다.[10] 대부분의 대학들이 동창회를 그냥 동창회라고 부르는데 서울대는 총동창회다. 즉 그냥 동창회는 과거 같은 캠퍼스를 쓰는 단과대학만의 동창회라는 것. 참고로 고려대는 교우회라고 부른다.[11] 현재의 인문대학, 사회과학대학, 자연과학대학의 전신.[12] 1963년부터는 연건동 캠퍼스로 이전했다.[13] 한국 연극의 메카[14] 현재 서울대가 위치한 관악구 동은 대학동이 되었다.[15] 프랑스 파리의 세느 강 위로 지어진 다리 이름을 따왔다.[16] 현재 대학 일부 부지가 마로니에 공원이 되었다. 참고로 문리과대학이 있을 시절 대학로는 개천과 왕복 4차로 도로(개천과 의대 사이)였는데, 이 구조는 관악 이전 이후에도 변하지 않다가 1981년 지하철 4호선 건설공사를 할 때 개천도 같이 복개, 현재 보는 대학로의 모습처럼 왕복 7차로 도로로 확장했다. 개천의 흔적은 찾아볼 수도 없다.[17] 뒤에 보이는 민둥산은 낙산.[18] 이전 이후 법과대학 부지에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초등학교, 부속여자중학교가 들어왔으며, 정문은 법과대학 시절의 정문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19] 당시 간호학과는 의과대학 소속이었다.[20] 이후 약학대학이 관악 캠퍼스로 이전했으며, 간호대학도 관악 캠퍼스로 이전할 예정이다.[21] 미네소타 대학교 교환미술전이 개최된 것으로 보아 최소 1954년 이후다. 이 당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은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와의 협력 하에 대규모 연수를 단행하여, 일본식 학제에서 미국식 학제로 대대적으로 개편했고 이후 수십 년간 한국 의료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22] 두 단과대학으로 나누어졌지만, 아직 결속력이 지속되고 있으며, 상과대학 동창회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23] 현재 생활과학대학[24] 가정교육과[25] 현재 농업생명과학대학[26] 1953년[27] 1962년[28] 미국의 대 한국 원조로 미네소타 대학교의 학문 및 기술을 서울대학교에 전수한 ODA 원조 프로젝트[29] 농과대학 수의학부(1947 ~ 1953), 수의과대학(1953 ~ 1962)[30] 1947년 ~ 196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