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티우스 필라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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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폰티우스 필라투스(Pontius Pilatus), 대중적으로 본티오 빌라도는 로마 제국 제2대 황제 티베리우스 시대의 군인으로 AD 26년부터 36년까지 유다이아 속주 총독(프라이펙투스 유다이아, Praefectus Iudaea)이었다.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한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복음서에서는 그 책임을 유대인들에게 돌리고 있으며, 필라투스는 도리어 예수를 사형시키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애썼지만 마지못해 승인하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예루살렘 일대는 이 사람이 어느 정도 자율적으로 통치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 최고의회에 소속된 사제들 중 "열심당원에게 암살당했다"고 기록된 이들이 있는 건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2. 이름[편집]
폰티우스 필라투스(빌라도)는 그의 본명이다.[4] 한국 천주교에서는 라틴어 표기의 -ti 형태를 '시'로 음역하는 관습 때문에 "본시오 빌라도"가 되었다.[5]
폰티우스는 '다섯째'라는 의미로 삼니움 족의 부족이름 중 하나이다. 필라투스는 삼니움족의 가문 이름 중 하나라고 한다(출처). 또는 로마의 창인 필룸에서 유래한 이름일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원래 그의 조상은 삼니움족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삼니움 전쟁은 예수가 태어나기 290년 전에 끝났고 진작에 로마에 합병되고 로마에 동화되었으니 삼니움족 출신 같은 건 의미 없고 그냥 로마인이다. 폰티우스는 로마시대에는 꽤 흔하게 쓴 이름으로 키케로의 친구이자 호민관을 지냈고, 카이사르 암살자 중 하나인 폰티우스 아킬라라는 사람도 있었다.
3. 직위[편집]
필라투스의 직함은 유다이아(Iudaea) 속주의 총독(Praefectus[6] )으로서, 예루살렘을 포함한 유다 중부 지방을 다스렸다.
본래 이 지역은 헤로데 임금의 사후 4개로 분할된[7] 왕국 중 헤로데 아르켈라오스(Ἡρῴδης Ἀρχέλαος)가 다스리던 땅이었다. 그러나 아르켈라오스가 폭정으로 AD 6년에 교체되고[8] 로마제국 유다이아 속주가 되어 총독이 파견되었다.[9]
필라투스의 직함을 총독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냐는 여부에 대해서 문제 제기가 있다. 필라투스는 유다이아 속주를 관할하지만, 또한 더 큰 속주인 시리아의 총독 밑에 있었는데,[10] 이 때문에 그의 직함을 총독으로 번역하는 게 오역이 아니냐 하는 것. 일단 라틴어로 쓰자면 필라투스는 Praefectus이고 시리아 총독은 Proconsul(직역하면 '전직 집정관')이므로 구분이 된다. 당시 필라투스의 직함은 예루살렘 주둔 로마군 군단장이자 시리아 Proconsul의 수석부관 겸 유다이아 속주의 Praefectus이었다.
그러나 당대 사람들도, 성경의 저자들도 속주 총독들의 직함 구분을 엄밀히 하지 않았다. 타키투스는 필라투스의 직함을 엄밀하지 못하게 Procurator라고 전하며, 루가 복음서에서는 시리아 총독과 유다이아 총독 모두 ἡγεμον(헤게몬)[11] 으로 적는다.
사두정치 ~ 테오도시우스 1세[12] 시대의 로마사를 이야기할 때 정제와 부제를 가리지 않고 이해가 쉽도록 모조리 황제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를 보면 무작정 오역이라 몰아붙이긴 힘들 것이다. 성경의 저자들도 당대 사람들도 총독 직함의 구분을 엄격히 하지 않았는데,[13] 성경의 원문을[14] 벗어나서까지 독자들 헷갈리게 번역할 필요는 없다.
4. 역사적 기록[편집]
로마인임에도 정작 성경 외에 그의 신원에 대한 로마 쪽의 기록은 없는 수준이며,[15] 성경 외의 그에 대한 로마의 기록은 유명한 역사가 타키투스가 연대기에서 네로의 기독교 박해를 설명하면서 "티베리우스 황제 시절 예수라는 사람이 폰티우스 필라투스에게 처형당했다" 정도로 짧게 언급하는 정도밖에 없다. 오히려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던 유대 지역의 역사가들의 기록을 통해 그의 행적을 살펴봐야 하는 실정이다.
유대 철학자 필로는 필라투스를 "거칠고 악의가 있으며 잔인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으며,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유대 고대사에서 "필라투스가 부임하고 나서 곧 유대인들을 적대하였다"고 지적한다. 유대 고대사는 당대의 기록 중에 예수와 폰티우스 필라투스에 관해 쓴 거의 유일한 문헌이다. 그의 행적에 대한 유대인 역사가들의 평가는 좋지 않은데, 필라투스는 로마 제국에 저항하는 유대인들을 유혈 진압하는 군사적인 탄압 외에도, 유대교 성전에 로마식 신상(神像)을 달았다가 반발로 철회한다거나, 성전의 자금을 가져다가 로마식 수도관을 건설하는 정책을 세웠다가 유대인들의 항의에 직면하기도 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폰티우스 필라투스는 서기 26년에 발레리우스 그라투스의 후임으로 유대 지방에 부임했다. 이 시절 유대 지방은 심심하면 폭동을 일으키는 험지라 로마 제국에서 골치 아픈 지역으로 여겼고,[16] 이전 로마 총독들은 번번이 안정적인 통치에 실패했기에, 당시 로마 황제였던 티베리우스는 만만한 인물을 파견하지 않았다. 이때 로마 제국에서 유대인에 강경책을 쓰자는 세야누스의 추천으로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임명받았다고 한다. 당시 로마 총독의 임기는 관례적으로 3년이지만 티베리우스가 이례적으로 장기집권을 맡겨 필라투스는 서기 36년까지 10년 동안 유대를 통치했다. 이는 티베리우스 황제의 지론 때문이기도 한데, 신하들을 극히 불신하던 티베리우스는 지방관들을 '파리'에 비유하며 "상처 부위에 여러 파리가 와서 빨아먹는 거보다, 처음부터 빨아먹던 파리 한 마리가 계속 빨아먹는 편이 낫다"면서 필라투스에게 장기간 통치를 보장하여 힘을 실어주었다.
폰티우스 필라투스는 세야누스의 예상대로 강경한 정책을 자주 시행했는데, 우선 부임할 때 카이사레아 지역에 주둔하던 로마 군대를 유대 왕국의 수도이자 유대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으로 재배치했고, 더불어 유대의 행정 장관 중 처음으로 유대인이 우상으로 여기며 혐오하던 황제의 초상을 예루살렘으로 들여왔다가 유대인들의 강경한 반발로 다시 철수시킨 일도 있었다. 더불어 치수공사를 통해 예루살렘에 물을 끌어왔는데 이것이 성수 장사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불만을 내비쳤다. 유대인들이 필라투스에게 항의하는 집회를 계속 열었는데, 처음에는 그냥 해산시켰지만 갈수록 먹히지 않았고, 결국 진압은 유혈사태로 비화되지만 일단은 소요를 잠재우는 데 성공한다.
그즈음 예수가 처형당한다. 그러나 기록을 토대로 판단해볼 때 필라투스를 유대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 예수를 처형하는데 주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17] 당시 로마 제국은 이미 유대인들을 억압하고 있었다. 현재 유대교 학자들은 당시 산헤드린 재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성경 구절이 산헤드린 공회법정의 재판절차와 권한과 실제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기독교 측에서는 이 불일치를 종교권력이 사법절차에 개입하여 정상적인 절차를 망칠 정도로 부패한 결과라고 본다. 사실 기독교측의 주장을 빼더라도 전근대 시절 그 어떤 나라도 나라의 모든 지역에서 엄정한 절차대로 모든 일이 처리되기는 어려웠다. 진실은 저 너머에. 필라투스가 손을 씻은 것과 유대인들이 적극 처형을 주장한 것이 후대 복음서 성립 시 기독교를 거부한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섞여 왜곡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18]
필라투스는 유대인들에게 관대하지도 않았다. 앞서 총독으로 부임하자마자 유대인에게 반감을 샀고, 통치시기에도 유대인의 풍속으론 유대인들의 유월절 기간에 군기나 장비에 있는 황제의 형상을 가려야 하지만 일부러 대놓고 무시했다. 그리고 더군다나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두가이인들에게 정기적으로 상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따로 성전자금을 유용하기도 했는데 유대인 풍속에 따르면 성전자금은 고아나 과부들의 구휼자금으로 써야만 했다. 그런데도 착복하고 나서 수로작업에 썼다고 변명했다. 그럼에도 수로작업에 들어갈 공사비가 모자라 다시 세금을 걷었다.[19] 이처럼 필라투스는 유대인들에게 정직하지도 유화적이지도 않았다. 예수의 사형 집행 과정에서도 어떤 주저함이나 망설임조차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20]
이후 사마리아인들의 종교 집회를 무력으로 해산시키는 과정에 티라타바라는 마을 근방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사마리아인들은 시리아 총독인 루키우스 비텔리우스[21] 에게 항의한다. 비텔리우스는 필라투스를 10년 동안 있었던 유대 지사에서 해임시키고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유대에서의 폭력사태에 대해 답하도록 로마로 보낸다. 하지만 그가 로마에 도착할 때, 티베리우스가 죽는다.[22]
유대인들은 사두가이인, 바리사이인, 열심당원 모두 가리지 않고 필라투스를 증오한 걸로 보인다. 예수뿐만 아니라 다른 폭동에서도 필라투스는 유대인의 종교를 무시했고, 유대인들은 이런 간섭에 대해서 반감이 컸다.
4.1. 카이사레아 석판 유물 출토[편집]
생몰년도나 어디서 나고 어디서 죽었는지도 불명으로, 워낙 기록이 희박한 탓에 한때 기독교에서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라는 설도 있었다. 그러나 1961년 이스라엘 카이사레아에 있는 로마 시대에 지어진 야외극장에서 폰티우스 필라투스의 이름이 포함된 라틴어 석판이 발견되어 그가 실존 인물임이 고고학적으로도 증명되었다.[23]
이 석판은 극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들 중의 하나에서 계단의 층계참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발견될 당시 사람들이 밟고 다녀 이미 돌의 왼쪽 부분이 깎여나간 상태였다. 이 명각에서 폰티우스 필라투스는 유대의 총독이라고 나온다. 정확히는 다음과 같다.
괄호 부분이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깎여나간 부분이다. 이를 번역하면,(DIS AVGVSTI)S TIBERIÉVM
(...PO)NTIVS PILATVS
(...PRAEF)ECTVS IVDA(EA)E
(...FECIT D)E(DICAVIT)
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폰티우스 필라투스 본인이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바치는 의미로서, 석판을 새겨서 야외극장에 놔뒀다는 말이다. 이 점에서 폰티우스 필라투스는 기독교인들이 부른 칭호나 호칭 같은 게 아니라 그냥 태어날 때부터 불린 그의 본명이다.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한 폰티유스 필라투스의 이름으로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석판을 헌정했을 리는 없다. 석판의 글씨가 2000년이 지나도록 컴퓨터 폰트처럼 반듯한 것으로 보아 실력있는 석공이 새긴 것이 분명한데, 본인이 만든 게 아니면 누가 돈을 들여서 이런 걸 만들겠느냐는 것. 이걸로 그가 실존 인물이라는 것도 증명되었다.(존엄하고 신성하신 황)제께 티베리에움을[25]
(폰)티우스 필라투스
유대(의) 총(독)
(헌)정(했다).
5. 기독교의 필라투스[편집]
기록이 부실한 점을 보면 크게 별 볼일 없는 인물이 예수를 처형한 것 때문에 현대까지 알려진 것처럼 보인다. 사실 이건 당연하다. 로마 제국의 지방 총독 휘하의 관료는 많았고, 통치권을 행사한 지역 내에서는 유명인사였겠지만, 중앙정부 입장에서는 그냥 흔하디 흔한 관료 중 하나였다. 실제 이 당시의 필리투스와 비슷한 급의 인물가운데서 현대까지 알려진 인물은 거의 없다. 이 시대의 인물들 가운데 현대까지 인지도가 높으려면 황제 아니면 뭔가 정말로 비범한 군사적·문화적 업적을 세운 사람 정도. 아무리 황제라도 별 업적이 없으면 인지도가 낮은 경우가 많은데, 지방 관료 정도 지위로 현대까지 이름을 알린 건 상대가 다름아닌 예수였다는 점 하나 덕분이다. 뭐 사실 아우구스투스나 티베리우스 같은 당대의 황제들도 아무리 유명하다고 하더라도 2000년이 지난 뒤인 현재를 기준으로 하여 예수에 비하면 인지도가 높다고 할 수 없다. 당장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가 살아 있던 당시 로마 황제가 누군지도 연표 따져보기 전엔 잘 모른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예수가 누군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는 점에서 예수를 죽였다는 오명은 좀 억울한 측면이 있다. 당시 로마의 지배를 받는 지역들 가운데 예수와 같은 종교 지도자는 흔했고, 필라투스 입장에서는 그저 민중소요나 일으키는 듣보잡을 지방 토호들 여론에 따라 처형한 것이다. 당시 민중소요는 드물지 않게 일으났으며, 이에 대한 진압과 지도자의 처형도 비일비재했다. 그 상대가 하필이면 후대에 세계 최대의 신자를 거느리게 된 종교의 신앙 대상이 된 예수였기 때문에, 2천년이 넘는 지금까지 이름(어떤 면에서는 악명)을 남기게 된 것이다.
5.1. 성경에서의 묘사[편집]
Τί στιν αλήθεια;[26]
QUID EST VERITAS?
진리가 무엇인가?
δοὺ ανθρωπος.
ECCE HOMO![27]
자, 이 사람이다.
예수는 본래 신성모독죄로 기소되어 유대 지방 최고 의회(성전)에 출두했는데, 현지인 의회에서는 사형을 내릴 권한이 없었고 로마인들은 여사제와 간통한 정도가 아닌 바에야 신성모독으로 사형을 선고하는 일이 드물어서 성직자들은 예수를 국가반역죄로 몰아 총독부로 보냈다. 성경에 따르면, 필라투스는 예수의 여러 차례 무죄를 확인했으나 끝내 대제사장 카야파 파벌들에게 떠밀려 예수의 사형집행을 방관했다.[28]
[빌라도가 예수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마태복음 21장에서 26장의 판본별 표기] 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총독이 "이 두 사람 중에서 누구를 놓아달라는 말이냐?" 하고 묻자 그들은 "바라빠요." 하고 소리질렀다.
그래서 "그리스도라는 예수는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하자 모두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하고 소리질렀다.
빌라도가 "도대체 그 사람의 잘못이 무엇이냐?" 하고 물었으나 사람들은 더 악을 써 가며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하고 외쳤다.
빌라도는 그 이상 더 말해 보아야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것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폭동이 일어나려는 기세가 보였으므로 물을 가져다가 군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너희가 맡아서 처리하여라.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군중은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지겠습니다." 하고 소리쳤다.
그래서 빌라도는 바라빠를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내어주었다.
총독이 그들에게 “두 사람 가운데에서 누구를 풀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오?” 하고 물었다. 그들은 “바라빠요.” 하고 대답하였다.
빌라도가 그들에게 “그러면 메시아라고 하는 이 예수는 어떻게 하라는 말이오?” 하니, 그들은 모두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였다.
빌라도가 다시 “도대체 그가 무슨 나쁜 짓을 하였다는 말이오?” 하자,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하고 외쳤다.
빌라도는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폭동이 일어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받아 군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말하였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책임이 없소. 이것은 여러분의 일이오.”
그러자 온 백성이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질 것이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빌라도는 바라빠를 풀어 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주었다.
Respondens autem praeses ait illis: "Quem vultis vobis de duobus dimittam?". At illi dixerunt: "Barabbam!".
Dicit illis Pilatus: "Quid igitur faciam de Iesu, qui dicitur Christus?". Dicunt omnes: "Crucifigatur!".
Ait autem: "Quid enim mali fecit?". At illi magis clamabant dicentes: "Crucifigatur!".
Videns autem Pilatus quia nihil proficeret, sed magis tumultus fieret, accepta aqua, lavit manus coram turba dicens: "Innocens ego sum a sanguine hoc; vos videritis!".
Et respondens universus populus dixit: "Sanguis eius super nos et super filios nostros".
Tunc dimisit illis Barabbam; Iesum autem flagellatum tradidit, ut crucifigeretur.
"Which of the two do you want me to release to you?" asked the governor. "Barabbas," they answered.
"What shall I do, then, with Jesus who is called Christ?" Pilate asked. They all answered, "Crucify him!"
"Why? What crime has he committed?" asked Pilate. But they shouted all the louder, "Crucify him!"
When Pilate saw that he was getting nowhere, but that instead an uproar was starting, he took water and washed his hands in front of the crowd. "I am innocent of this man's blood," he said. "It is your responsibility!"
All the people answered, "Let his blood be on us and on our children!"
Then he released Barabbas to them. But he had Jesus flogged, and handed him over to be crucified.
신약성경의 마태오의 복음서와 마르코의 복음서에서 필라투스는 바라빠[29] 를 처형하느냐 예수를 처형하느냐 하는 문제에서 예수를 죽이라는 유대인들의 의견에 떠밀려서 대충 예수를 사형시키기로 결정하고,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 하며 손을 씻은 비굴하고 교활한 법조인 정도로 묘사된다. 다만 비굴하다기에도 억울한 면이 있는데 사실상 저기서 "예수 대신에 바라바가 지은 죄가 더 많으니 바라바를 죽여야 맞소" 라고 한마디라도 했었다간 예수보다 빠르게 이승하직(...)을 하고 천국에서 예수가 인민재판 당하고 있는 꼴을 볼 가능성이 99% 이상이었기 때문...
여기서 가나안 지방의 명절인 유월절에는 광복절 특사 비슷하게 죄수를 1명 풀어주는 전통이 있었다는 배경 설명이 나오는데, 진위 여부를 놓고 여전히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고대 이스라엘에 그런 관습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오직 신약성경의 4대 복음서에만 등장할 뿐 다른 그리스도교/유대교 관련 전승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 선택 자체가 후대의 창작이라고 주장하는 이론이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식민 지배로 불만이 누적되어 있을 유대인들을 위해 유대계 죄수를 명절에 하나 석방한다는 것은 나름대로 말이 되는 조처이기에 실제로 그런 제도가 있었을 거라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원래 고대 로마와 고대 그리스에 존재하던 풍습이라는 이론도 있다. 풍습이란게 수십 수백년을 존속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보다 훨씬 수명이 짧았던 고대인들 입장에서 수년 이상 지속된 행사라면 당연히 의례적인 관습이라고 여겼을 수 있다.
필라투스는 예수의 처형을 막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인물임에도 예수가 죽는 것을 방관했다. 속주의 최고 의회에서는 사형 선고를 내릴 권한이 없었으므로, 필라투스가 끝까지 거부하면 예수는 정치범으로 기소되지 않을 수 있었고 사형 선고를 받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한편 요한의 복음서 19장에 보면 필라투스가 꽤나 적극적으로 예수를 풀어주려고 힘썼다는 투로 기록되어 있다. 필라투스는 "내가 몇 번이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예수는 죄가 없으니 태형만 하고 풀어줄 것이다"라고 했고, 필라투스의 아내 역시 남편에게 예수의 무고를 증언하며 놓아주기를 권했으나 당시 유대인들이 적극적으로 십자가형을 주청하며 민란이 나려고 했다는 언급이 있다.[30] 카야파와 성직자들은 강력하게 필라투스를 압박하여, "만일 그자를 놓아준다면 장관 & 지사님은 카이사르의 충신이 아닙니다."라고까지 했다. 그들이 필라투스를 압박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의 죄목에 있다. 예수의 죄명 패에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되어있었는데, 이는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유대인의 왕을 사칭한 것이 죄라는 이야기이다. 왕을 사칭한 반역자는 사형으로 다스려야 옳다는 것이 유대인의 논지. 그러나 필라투스가 보기에 예수는 신의 아들을 자칭하는 정신질환자에 지나지 않았으므로,[31] 필라투스의 관점에서는 죄가 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성경 텍스트가 필라투스를 억울한 제3자라고 옹호하는 건 결코 아니다.
실제로 복음서 내부의 몇몇 구절을 보더라도 필라투스는 오히려 유대인들의 반란 등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 진압을 잔악하게 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미 복음서에서도 필라투스가 이스라엘인을 학살했다는 구절이 있는데, 루가의 복음서에 필라투스에 대한 부정적 언급이 많다.
바로 그때 어떤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빌라도가 희생물을 드리던 갈릴래아 사람들을 학살하여 그 흘린 피가 제물에 물들었다는 이야기를 일러드렸다.
와 빌라도가 전에는 서로 반목하고 지냈지만 바로 그 날 다정한 사이가 되었다.
무엇보다, 복음서에서 필라투스가 예수의 무죄함을 언급한 건 문맥상 말 그대로 "로마법상 국가반역죄가 없다"라는 의미지, "필라투스는 예수를 변호했다"가 아니다. 예수의 무죄가 로마 공권력의 입을 통해 인정되었다는 게 중요한 것이지, 여기서 '억울한 제3자 필라투스'라고 독해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예수가 무죄라는 걸 알고 있는 필라투스가 졸속 재판으로 무책임하게 사형을 방관했다는 점에서,[33] 복음서가 묘사하는 필라투스는 예수의 유다인 적대자들과는 다른 의미에서 상당히 악질이라 할 수 있다. 필라투스가 회개했다거나 하는 이런저런 전승들은 있지만, 비평적 성서주석학이 탄생하기 훨씬 전에도 필라투스의 재판에서 예수 죽음 책임의 일정 지분을 물어왔으며, 그렇기에 사도신경에서 "passus sub Pontio Pilato(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에서 고난을 받으시고)"라 적은 것이다.
5.2. 신경에서의 언급[편집]
사도신경과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라틴어 원문에서는,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았다고 적지 않고 "sub(아래에서)"라 적고 있다. 한국 가톨릭과 대한성공회[34] 에서는 이러한 원문을 살려 번역하였다. 반면 개신교에서는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았다고 의역하였다.crucifixus etiam pro nobis sub Pontio Pilato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가톨릭 번역)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개신교 번역)
본티오 빌라도 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시고(성공회 번역)
이러한 의역 때문에 개신교의 번역이 오역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sub Pontio Pilato라는 말은 단순한 시대 명시라기보다는 '십자가형'을 판결한 공권력의 책임자로서 필라투스를 무시한 것이므로, 무작정 오역이라 하기는 어렵다. 또한 복음서의 내용으로 보자면, 자초지종이 어찌되었던간에 채찍질의 형벌도 필라투스로부터 내려진 것이고 최종적으로 필라투스가 사형 판결을 내린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개신교의 그러한 번역이 사실관계를 왜곡한 것도 아니다. 복음서 이외의 자료에서 본다면 필라투스는 우유부단하지도 않고 예수의 재판에 사형을 막아보려고 한 사람은 아니다. 가톨릭에서도 필라투스를 무죄하다 여기지도 않으며 "그는 예수님께 십자가형을 선고한 자이기도 하다"[35] 는 식으로 당연히 책임을 분명히 한다. 아래 교리서 서술에서 보듯, 예수의 수난은 유다인 지도층이 씌운 누명, 필라투스의 졸속 재판, 비정치적 메시아를 거부하는 백성, 도주하는 제자들 등 죄의 다양성이 드러난 사건이기에, 필라투스의 무책임함도 이러한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수난 중에 당신 자비로 죄를 이기시는데, 그 수난을 통해서 죄의 폭력성과 다양성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불신, 살인적인 증오,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거부와 조소, 빌라도의 비열함, 병사들의 잔인함, 예수님께는 큰 아픔이었던 유다의 배반, 베드로의 부인과 제자들의 도망 따위가 그대로 폭로된다. 그러나 바로 어둠의 시간, 이 세상 권력자의(요한 14,30 참조.) 시간에 그리스도의 희생은, 드러나지는 않지만, 우리 죄에 대한 용서가 끊임없이 베풀어지는 원천이 되는 것이다.
가톨릭 교리서 1851항
6. 매체에서의 등장[편집]
- 영화 벤허의 명장면 전차 경주의 개막을 선언한 총독이 바로 이 사람이다. 유다 벤허의 양부가 된 아리우스 제독이 곧 유대 총독이 될 자기 친구라며 벤허에게 그를 소개하는 장면이 나온다.[36] 전차 경주 후 지인의 양자에게 협조를 구하다 유대 총독으로 압박을 주는 등 입체적인 모습으로 나온다. 프랭크 트링(Frank Thring, 1926-1994)이라는 배우가 이 역할을 맡았다.[37]
- 한국 뮤지컬 벤허에서도 등장하는데, 사령관 퀸터스가 1막 후반부에서 죽는 원인을 제공한다. 퀸터스가 벤허를 양자로 인정하자, 이를 메셀라에게 알렸고, 메셀라는 부하들을 시켜 퀸터스와 벤허를 습격한다. 영화에서 마찬가지로 전차 경주 씬에서 레이스의 시작을 알린다.
- 코미디 영화 라이프 오브 브라이언(마이클 페일린 분)에서도 조연으로 등장. 모든 R 발음을 W로 발음하는 언어장애가 있는 것으로 나온다. 브라이언이 아버지가 로마인(Roman)이라고 하자 '자네 아버지가 여자(Woman)라고?' 라고 한다던가…[38] 주인공 브라이언이 빌라도의 부인을 납치하려던 음모가 실패해 그의 앞에 잡혀왔는데, 브라이언을 심문하던 중 자기 친구 중에 '비구스 딕쿠스(Biggus Dickus. '거시기 큰 놈' 이란 이름이다)'란 이가 있다고 하는 바람에 주위 병사들이 웃음을 참으려 애쓰다가[39] 딕쿠스의 아내 이름이 '인컨티넨티아 버톡스'(Incontinentia Buttocks. '음란한 엉덩이' 정도의 이름)라는 빌라도의 말에 그만 빵 터져버리자 그 틈을 타서 브라이언은 탈출한다. 후반에는 이 '비구스 딕쿠스'라는 친구가 빌라도를 만나러 직접 놀러 온다.
-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1977년 TV 드라마 <나사렛 예수>에서는 배우 로드 스타이거가 빌라도 역을 맡아 연기했다. 유대인들을 거북해하며 스트레스에 찌든 중간관리자의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는 불가리아 배우 흐리스토 쇼포프가 분했다.
-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도 '빌라도의 꿈'(Pilate's Dream), '빌라도의 재판'(The trial of Pilate) 2개의 넘버에서 바리톤 테너로 등장하며, 예수에 대한 십자가형을 요구하는 민중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무고한 예수를 죽이고 싶지 않아 고뇌하며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하나 모두 실패하고 결국 예수의 죽음을 방관하고 자신은 잘못이 없다며 멘붕하는 소시민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1974년도 영화판에서는 배리 덴넌(Barry Dennen)이 연기했다. 50주년 기념 한국 공연에서는 뮤지컬 배우 지현준이 연기했다.
- 웹툰작가 오곡(송하)이 베스트도전 시절 그린 만화 '엘레프'에서는 대중적 내러티브를 주로 수용하여 예수에 대해서 상당히 동정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에필로그에서 역사대로 사마리아인 사건 때문에 해임된다.
7. 기타[편집]
- 3~4세기의 교부 에우세비오가 교회 전승에 따라 저술한 교회사에 따르면 가이우스 황제[40] 의 명령으로 자살했다고 한다. 이게 맞다면 티베리우스 대신 가이우스(칼리굴라)가 폭력사태의 책임을 물어 자살을 지시했을 수도 있다는 건데, 티베리우스와 달리 그 후임 황제인 가이우스는 재위 초반부터 과거 아우구스투스처럼 총독이나 지방장관이 명령불복종을 하거나, 명백한 불법행위로 소요를 발생시켜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킨 것이 드러날 경우 "스스로 책임지고 불명예를 씻어라"라는 차원에서 칼을 보내 자결을 명령했다.[41] 아우구스투스의 제정 이후 사형 집행이나 십자가형은 동방은 시리아 총독(Proconsul)이, 서방은 로마의 집정관이 보고 후 황제의 허락이 없이는 형을 집행유예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런데 이걸 유다이아 Praefectus가 멋대로 형을 집행했으니, 즉위 직후부터 황권 강화에 매진하면서 황제와 율리우스 가문의 우월함을 강조한 가이우스가 용서할 이유가 없다는 추측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꿈자리가 사나웠다며 처형을 말렸던 필라투스의 아내가[42] 나중에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전승이 있는데,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도 묘사되었다. 필라투스의 아내의 꿈에 대한 얘기는 메리에타 데이비스의 "천국에서 보낸 9일" 책에서도 다루어지고 있다.
- 야사 중에는 아예 필라투스가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예수를 옹호하다가 순교했다는 것까지 있다. 합성론 계열인 이집트의 콥트 교회와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필라투스의 아내를 성녀로 모시고 있는데, 이 전승에서 필라투스의 아내의 이름은 클라우디아 프로쿨라라고 한다. 그러나 가톨릭과 정교회, 개신교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43] 한편 필라투스 자신이 주교가 되었다는 전설, 필라투스가 처참하게 처형당한다는 외경의 이야기도 전한다. 외경에서 필라투스에 대해 이렇게 말이 다른 것은, 결국 외경이 쓰여진 시절에도 필라투스에 관한 소식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는 뜻이다.
- 유대 장관 외의 행적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 많은 역사 소설의 떡밥이 되는 인물이다.
- 대체역사를 모아둔 만약에라는 책에서는 유대인들의 반항을 묵살하고 예수를 풀어준다. 이 책에서 예수는 무려 97세란 경이적인 장수를 누리고 평온하게, 노환과 지병에 약간 고통받으면서, 그리고 왜 아버지가 자신을 불러주지 않는지 고민하면서 사망한다. 사랑과 순종을 주장하는 예수의 가르침은 통치에 적합하므로 유대교의 개혁 정도로서 로마의 국교가 되고, 게르만까지 일찍 퍼져나가 로마를 안정시켰으며, 로마는 아메리카까지 도달한다. 단 이 세계관에서는 예수는 어디까지나 위대한 예언자이기 때문에 예수가 거짓 예언자라고 주장하는 자들이나 예수가 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이단죄로 화형을 당한다(...)
- 러시아의 문호 불가코프의 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에서 죄없는 예수를 처형한 죄책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모습으로 꽤 비중있게 등장했다. 이 책에서의 빌라도는 예루살렘을 증오하며, 자신의 개 외에는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 자살을 꿈꿀 정도로 성마르고 피폐해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끌려온 예수와 대화를 하면서 자신의 고통을 이해해 주는 그를 자신의 별장이 있는 지방으로 추방시키고자 했으나 결과는… 사실 단순히 잠을 못 이루는 정도가 아니라 그 죄책감, 즉 죄없는 이를 처형시켰다는 자신의 비겁함 때문에 죽어서도 죽지 못하고 무려 1만 2,000번의 잠 못드는 만월을 반복하고 있다고 언급된다. 거장이 자유를 부여하고 나서야 예수의 곁으로 떠났다.
- 한국에서도 임동진[44] 이 주연한 연극 《빌라도의 고백》이라는 1인극이 만들어졌다.
- 필라투스가 예수의 체포와 심문 및 처형에 관하여 티베리우스에게 보냈다는 "빌라도의 보고서"가 있었으나, 위작으로 밝혀졌다.
- 예수를 판결했기 때문에 인지도가 매우 높다. 게다가 사도신경과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 이름이 나오기 때문에 주마다 한 번씩 수십억 명에게 디스를 당하는 신세다. 가톨릭과 성공회의 전례에서 이 인물의 이름이 나오는 신조가 필수이다. 또한 비록 기도문이 아닌 신앙고백이지만 개신교 신자들 중에는 일상생활에서도, 아프거나 자기 전에나 딱히 기도가 떠오르지 않을 때 사도신경을 간단히 외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요일이 아닌 날에도 수억 번 정도는 까이고 있을 거다.
- 요셉의 전 주인이었던 보디발과 비슷한 점이 있다. 둘 다 부인이 있는데다가 높은 관리로, 죄가 없던 사람, 즉 예수와 요셉을 죄인으로 취급하여 처벌을 내렸다. 차이점은 빌라도는 로마 군인 출신인 유대 지방의 총독이고, 보디발은 이집트의 시위대장이었다.
- "진리가 무엇인가?"라는 그의 질문은 후대의 철학자들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이 질문 하나로 인해 필라투스를 높이 평가하는 학자들도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신약성서에서 유일하게 경의를 표해야 할 인물로 필라투스를 들었다.[45]
- 희한하게도 스위스에도 흔적을 남겼는데, 루체른에 관광 가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필라투스 산이 이 인물이 죽은 곳이라 그의 이름을 땄다는 전설이 있다.
- 필라투스는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에 의해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콥트 교회에 의해 6월 25일로 축일로 지정됐다. 복음서가 필라투스를 예수를 처형하는 것을 꺼리는 것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에티오피아 교회는 필라투스가 회개하여 기독교인이 되었고 역사적으로 콥트 교회가 공유하는 믿음인 순교자이자 성인으로 그를 존경한다고 믿는다.
- 먼 훗날의 아돌프 아이히만은 자신을 빌라도에 비교했는데, 그 유명한 "악의 평범성"의 주인공이다. 아이히만이 상부의 명령에 따라서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냈듯이, 빌라도 또한 당시 상황에 따라 자신의 직업 의무를 다한 것 뿐이라면 악의 평범성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