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성로(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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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구광역시 중구 대구역네거리 대우빌딩뒷편[1] 에서 달성공원 입구까지 이어지는 도로이며 대구은행 북성로지점을 중심으로 동쪽은 북성거리[2] , 서쪽은 인교거리[3] 로 나뉘어진다. 통상적으로 북성로라고 하면 이 도로를 중심으로 밀집한 상업지역인 북성공구골목 또는 북성로 불고기골목을 뜻한다.
2. 역사[편집]
북성로의 역사는 대구군수 겸 경상북도 관찰사 서리인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이 1907년에 대구 읍성을 허물고 난 자리에 도로를 만들고 그 위치에 일본인 상점들이 입점하면서 시작되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명칭은 원정(元町)였으며 그 이름답게 이 거리는 목욕탕, 재목소, 양복점, 조경회사, 백화점[4] 등의 상업과 식당, 영화관 여관 등의 유흥이 함께 공존하는 문화거리로 발전을 하여 6.25 전쟁 이후까지 문화거리로 이어졌다. 아직도 당대의 모던 보이들이 자주 찾던 캬바레나 다방의 흔적들이 남아있으며, 백화점이 있던 장소도 있다. 특히 이곳에서 놀던 유명한 한량으로 구상, 유치환, 이중섭, 조지훈같은 양반들이 있다.[5] 주로 6.25 전쟁 때 피난온 문인 및 예술가의 주요 근거지가 있었으며, 이들이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듣던 다방이 50여년의 세월끝에 문을 닫아 안타깝게 한 바도 있다. 특히 대한민국1호 음악 감상실인 녹향이 근처에 있다.
북성로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바뀐 것은 1947년경 8.15 광복 이후 근처에 주둔한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폐공구들을 모아서 팔기 시작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철물을 다루는 상인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지금의 공구골목이 되었다.[6]
일제 수탈의 상징과도 같은 거리처럼 보이지만 반대로 항일애국지사 150명을 배출한 우현서루(友弦書樓)[7] 가 있어서 일제의 수탈과 항일의 역사가 공존하던 곳이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1909년에 남방순시 중에 대구에 방문했을 때 지나갔던 어가길이며, 옛 순종황제 어가길이라는 이름으로 대구근대골목투어 상품으로 개발하는 중이다.[8]
일제강점기때 부유한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8.15 광복 때 일본인이들이 급하게 도망치면서 훗날 되찾기 위해 땅속에 묻었다가 찾아가지못한 금괴가 있다는 소문이 있다.[9] 이 소문을 믿고 건물주에게 건물값까지 주면서 파해쳤다가 헛탕친 사람도 있다. 2015년에는 대구읍성 터 실태조사를 하던 중 불상이 발굴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여담이지만 삼성그룹의 전신인 삼성상회 터가 북성로에 있다. 그래서 그런지 1910년생인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을 아직도 풋내기 청년[10] 으로 취급하는 어르신들이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