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찰 용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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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드라마 《연희공략》의 등장인물.
건륭제의 황후 효현순황후 푸차씨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이다. 실제 역사처럼 드라마에서 건륭제에게 굉장히 사랑받는 황후로 나온다.
2. 작중 행적[편집]
2.1. 초반부[편집]
친아들인 2황자 영련이 요절한 후,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작중 초반에 시작되는데, 이때 고귀비가 득세하게 된다. 이때 용음은 남편에게도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여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은 2황자의 죽음에 여전히 마음이 아파서 견디기 어려운데 건륭제는 겨우 5일 만에 털어내고 2황자의 죽음을 잊어서 그렇다고 한다. 허나 4화에서 동생 부찰 부항이 가져온 건륭제의 밀지를 보면서 건륭제가 2황자를 황태자로 삼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순전히 자신의 오해 때문에 남편을 원망하고 있었다며 울음을 터트린다. 이후 마음의 병을 털어내고 황후의 본분을 다하며 흐트러진 내명부의 기강을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던 중 자신의 생일에 녹미 융털로 봉포를 만들어 바친 위영락의 기지를 알아보고 7화에서 장춘궁으로 불러들여 장춘궁 시녀로 삼는다. 꾀 많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영락의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고, 서예와 그림까지 직접 가르친다. 이러한 모습에 영락도 황후를 친언니와 같이 생각하게 된다.
2.2. 위영락을 신자고로 보낸 후[편집]
영락이 사고를 칠 때마다 늘 앞서서 영락을 변호하고 보호해주는 인물이다. 초반에 황제는 영락을 매우 못마땅해했고, 틈만 나면 영락을 벌주려고 했으나 끝끝내 황후가 변호해주기 때문에 영락은 위기상황을 벗어난다. 허나 유태비가 벼락을 맞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 사건에 영락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자 더 이상 그녀를 보호하지 않고 그녀를 신자고로 내쫓아 버린다. 하지만 이는 영락을 보호하려고 한 행동이었음이 밝혀지는데, 황제가 유태비 사망사건으로 영락에게 중벌을 내릴 것을 예상하고[6] 자신이 미리 벌을 내린 것이다. 황제는 왜 그녀를 그토록 보호하려고 하냐고 묻자, 황후는 그 말에 "영락은 신첩의 희망이니까요." 라고 대답한다. 용음은 원래 자유롭게 살던 과거의 자기자신을 지키지 못했다며, 자신의 과거 모습과 닮은 자유로운 영락을 지키려고 했던 것.
그리고 같은 시기에 회임을 하는데, 30화에서 중앙절 기념 어경정 연회에서 고귀비와 서귀인의 계략에 걸려서 누각 위에서 추락한 뒤 유산과 더불어 기나긴 혼수상태에 빠진다. 이때 신자고에 있던 영락이 혼수상태에 빠진 황후에게 몰래 병문안 오는 것을 황제에게 들키게 되었고, 용음에 대한 영락의 지극정성을 기특하게 여긴 황제는 영락을 장춘궁으로 돌아가게 해주려고 마음 먹는다. 허나 하필이면 그때, 영락을 질투한 이청의 계략으로 영락이 부항과 만나는 장면을 황제가 직접 목격하면서 영락은 시위와의 사통 혐의로 신형사로 끌려간다. 그리고 부항은 어떻게든 영락을 살리려고 마음에도 없는 이청과의 국혼을 받아들였고, 그 직후 용음은 깨어나게 된다. 그러나 오랫동안 의식을 잃었기에 일어서서 걷지 못하게 되었다.
2.3. 위영락의 장춘궁 귀환[편집]
용음이 깨어났다는 소식에 황제는 물론이고 동생까지 바로 그녀를 찾아왔다. 허나 부항이 자기 최측근 궁녀와 혼인하게 되었다는 소식에 절망하게 된다. 용음은 부항과 영락이 결혼하면서 서로 행복하게 지내길 원했지만 잘못된 방식으로 영락을 지키려는 동생에게 실망한 용음은 부항을 보고 싶지 않다면서 내쫓았다. 그리고 용음은 황제에게 부항과 이청의 혼사를 무르게 해달라고 간곡히 청하였지만 황제는 끝내 들어주지 않는데, 이때 황제에게 영락을 미워하는 게 아니라 연정을 품어서 그 아이들을 갈라놓으려 하는 것 아니냐라며 황제 자신도 잘 모르고 있던 황제의 마음을 꿰뚫어본다.
한편 위영락은 다시 장춘궁으로 돌아가기 위해 황제가 내건 두 가지 조건 중 하나[7] 를 받아들이면서 자금성의 첫눈이 오는 날 건청궁을 시작해 '소인의 죄 죽어 마땅합니다.'를 외치며 삼보일배를 하면서까지 다시 용음을 찾아간다. 하지만 용음은 너무나도 완고하게 장춘궁의 문을 닫은 채 영락을 만나주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보다못한 명옥이 문을 열어주면서 마침내 37화에서 두 사람은 재회하게 되었다.
용음은 과거의 자신처럼 자유로운 성격의 영락이 자기 때문에 황궁 내의 잔혹한 권력투쟁에 휘말리게 된 것에 미안한 마음이 있었기에 애써 매몰차게 대한다. 하지만 명옥이 여기에 끼어들면서 용음은 사실 영락을 누구보다도 걱정했으며, 영락은 용음을 정말로 자신의 친가족으로 여겼다고 눈물로써 호소하며 속마음을 털어놓게 된다. 영락은 그렇게나 말하고 싶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얘기를 용음에게 털어놓고, 자신은 더 이상 갈 곳이 없으니 제발 황후의 곁에 남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영락에게 있어서 용음은 단순히 글을 가르쳐준 스승이 아니라 어머니이기도 했고, 또는 언니이기도 했던 것이다. 사실상 영락에게 있어서 집이라고 불릴 만한 곳은 장춘궁 하나 뿐이었다. 결국 용음은 영락의 진심에 마음을 열게 되었고, 더 이상 자신과 영락에게 아픔이 될 이별을 강요하지 않으며 남은 시간 동안 서로를 위해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다시 영락을 받아준다.
그렇게 용음은 장춘궁으로 되돌아온 영락과 명옥의 도움으로 꼬박 1년의 노력 끝에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고, 이후 이청이 준 약으로 다시 회임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때 영락에게 약을 복용하면서까지 회임을 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아 영락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다만 황후로서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이 황후를 가장 염려하는 영락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필사적으로 이를 말리려고 했겠지만, 자식이 생겨야 대우를 받는 비빈들의 현실 또한 무시할 수 없기 때문.
용음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황제가 만취한 상태로 장춘궁으로 찾아오고, 그동안 용음은 황제에게서 항상 냉정한 군주의 모습만을 봤는데 그 또한 황후 못지 않게 2황자 영련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감격해한다.
2.4. 자식들의 요절[편집]
그러나 40화에서 한귀비가 입김을 넣은 순비 소정호의 모략으로 7황자 영종은 화재로 목숨을 잃게 되고 황후는 실성한다. 공교롭게도 이때 위영락은 아버지가 낙마 사고를 당하여 잠시 친정으로 돌아가있었다. 원래 영락은 출세를 위해 두 딸을 외면한 아버지를 경멸하여[8] 집에 가기 싫어했지만 용음이 모든 덕행 중에 가장 위가 효도라며 설득하여 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영종마저 떠나보낸 용음이건만 황제는 그런 용음에게 따뜻한 위로보다는 냉정한 채근을 하였다. 이에 용음은 자신은 책임밖에 없는 거냐며 완전히 좌절에 빠지게 되었다. 게다가 용음의 상태가 심상치 않게 됐음을 직감한 부항은 누이를 잠시나마 친정으로 보내 요양하게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황제는 "그럴수록 황후는 더더욱 이 자금성에 있어야 한다." 라는 이유로 단칼에 거절한다.
2.5. 최후[편집]
이것까지만 해도 문제인데 여기에 용음의 시녀였다가 동생인 부찰 부항과 결혼해 올케가 된 희탑랍 이청이 황제와의 간통으로 회임을 한 사실을 말하며 최후의 일격을 날린다. 이에 용음은 모든 삶의 의지를 잃어버리고 절망한다. 용음은 마지막으로 명옥에게 찹쌀떡을 만들어오라고 하며, 명옥이 떡을 만들러 간 사이에 맨발에 소복 차림으로 장춘궁을 나와 전각 위로 올라간다.
이 말을 끝으로 황후는 성루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11][12] 그리고 죽기 직전, 영락을 궁에서 떠나 자유롭게 살게 해달라는 교지를 황제에게 남긴다. 황후의 죽음에 대해 분노하여 황제에게 폭언을 했던 영락은 이 교지 덕분에 황제의 명에 의해 순장될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부찰 용음의 죽음에 대해 드라마를 되짚어보면 사실 많은 복선이 깔려 있다. 위영락은 드라마 초반 목을 매서 자살한 이빈을 정신력이 없다고 대차게 비판하지만, 정작 위영락이 자신의 전부를 걸 정도로 따랐던 용음도 같은 방식으로 생을 마감한다. 또한 21화에서 한창 황후의 화장을 따라하던 궁녀 한명이 떨어져 죽었는데, 부찰 용음 역시 다른 방법이 아닌 추락으로 목숨을 끊은 점을 볼 때, 여러 미쟝셴이 느껴진다.
이후 용음이 왜 자살을 했는지에 대해 알게 된 위영락은 그토록 거부하던 황제의 후궁까지 되면서 용음의 복수를 하기 위해 절치부심 하게 된다. 결국 순귀비의 죄를 폭로해 그녀를 냉궁으로 보내 죽게 하고[13] 희탑랍 이청 또한 사약을 먹여 죽이면서[14] 용음의 복수를 완성한다.
3. 성격[편집]
현숙하고, 온화하고, 단정한 황후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보친왕부에 갓 시집을 왔을 때까지만 해도 위영락과 비슷한 자유로운 성격이었다.[15] 그러나 28화에서 용음이 밝히길 보친왕과 결혼하고 나서 옹정제의 황후인 효경헌황후에게 인사를 올리러 갔을 때, 남편인 건륭보다 더 말을 많이 했다는 이유로 호되게 혼나고, 당태종의 정실이었던 문덕황후 장손씨가 쓴 '여칙'을 1백번 필사하라는 벌을 받았다. 결국 이것 때문에 용음은 강제로 현모양처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되었고 남들이 바라던 이상적인 황후의 모습으로 평생을 살아가게 된 것이고, 이 때문에 황후는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위영락을 보호해주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것이다.
다만 작중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시기와 질투의 대상임에도 매우 선량한 성격이기에 다들 은근히 용음을 호구 취급한다. 사사건건 용음에게 시비를 거는 고귀비야 말할 것도 없고, 측근 시녀인 희탑랍 이청도 용음을 자신을 좋은 곳에 시집 보내줄 도구로 여겼다. 게다가 틈만 나면 아랫 사람들이 황후의 치맛자락를 붙잡고 늘어지는 판국에 정작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고, 그렇게나 타인에게 선의를 베풀어줬음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영락이 용음의 곁을 지키고 있었을 때는 누군가가 용음을 해치려 해도 영락의 지략으로 위기를 잘 헤쳐나갈 수 있었지만, 영락이 없을 때에는 용음을 각종 모략에서 지켜줄 이가 없었다. 영락이 신자고에 가있는 동안 아이를 유산하고 혼수 상태에 빠졌으며, 영락이 섣달 그믐 출궁했던 틈을 타 평소 용음을 미워하던 이들에 의해 장춘궁에 불이 나 영종이 죽었고, 결국 이에 절망한 용음은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것과 별개로 분노할 때는 화낼 줄 안다. 4화에서 동생이 2황자 영련과의 추억이 담긴 장명쇄를 빼앗아 던지자 부항에게 화를 내면서 궁녀들에게 어서 장명쇄를 찾으라고 신경질을 부린 적이 있었고, 54화에서 올케가 남편과 사통하여 아이까지 가지자 싸대기를 갈기면서 다시는 황궁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격노를 터트린 적도 있었다.
용음은 사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근검절약을 하는데 이 때문에 용음이 살아있었을 때 자금성의 후궁들은 본의 아니게 그녀를 따라 절약해야만 했다. 그러나 용음이 먼저 솔선수범을 했기 때문에 고귀비를 제외하면 아무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용음의 뒤를 이어 황후가 된 숙신은 근검절약과 더불어 궁 내에서 키우는 농작물을 외부로 팔아 자금을 마련하고 쓸데없는 관행을 줄여 허투로 나가는 돈을 줄였기에, 그녀가 죽은 후에도 사치를 부리는 후궁은 거의 있을 수 없었다.
4. 기타[편집]
용음이 황제의 적복진이 된 나이는 15세이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16세에 적복진이 되었다.
영락을 데리고 있을 때에는 황후로서의 체통 때문에 억누르고 있던 어린 시절의 자유분방함을 가끔씩 되찾는 모습을 보였다. 영락이 제 스스로 만든 아이스박스를 이용하여 수박 화채를 만들고, 이를 용음에게 바쳤을 때 맛이 좋다보니 용음은 자기 몸이 약한 것도 잊고 더 달라고 영락에게 보챘으나 영락은 '두 그릇 이상 젓수시면 탈이 나니 안 됩니다'라며 단호히 화채 그릇을 빼앗았다. [16]
영락이 아버지의 낙마사고 때문에 출궁하기 전 그녀를 마지막으로 볼 때, 용음은 영락에게 평안을 빌어줄 거라면서 아끼던 수정 염주를 영락에게 선물해줬다. 영락은 이걸 끝까지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마지막화의 황귀비가 되는 장면에서도 손에 쥐고 있는다.
장춘궁 시절의 클리셰는 위영락이 사고 침,
배우 친란은 건륭제 시대를 다룬 드라마 황제의 딸 시즌 3에서 5황자 영기의 측복진인 지화로 나온 경험이 있다. 지화는 시즌 3에서 각종 불여시짓을 일삼으며 제비를 괴롭히던 악역이었다. 또한 친란은 신 황제의 딸에서도 출연하였는데 구판에서 그렇게나 괴롭히던 제비의 어머니로 특별출연을 한 적이 있다. 게다가 친란은 그 고황후 여씨 역을 두 번이나 맡았는데, 이 이미지를 벗고 선량하고 현숙한 황후를 연기하는데 굉장히 힘들었다고 한다.[17]
동시대를 다룬 다른 드라마인 여의전에서는 같은 인물을 모티브로 한 부찰 랑화라는 캐릭터가 나온다. 랑화는 부찰씨의 부귀영화와 자신의 황후로서의 지위,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 황위를 계승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이는 인물이다. 고증에 어긋나긴 하지만, 여의전에서는 고륜화경공주도 나온다.
용음이 죽은 이후에 그려진 그녀의 초상화는 배우 친란의 외모를 고스란히 그려놓은 형태이다.
후속작인 연희공략: 금지옥엽에서는 이미 사망했으므로 직접적으로 출연하지는 않지만, 후속작의 등장인물들 중 용음의 조카인 복강안에 의해 언급되는 장면이 있다.
이러나 저러나 용음은 중드 역사상 최고로 인기가 많은 황후 캐릭터다. 현숙하면서도 아름답고, 주인공을 절대적으로 지지해주는 선역이었으며 이 때문에 용음이 자살하는 화에서 슬퍼하는 팬들이 굉장히 많았다. 뿐만 아니라 용음은 배우 친란의 인생 캐릭터가 되었으니 여러모로 그 위상을 알 수 있다.
친란 또한 납란 순설 역할을 맡은 이춘원이 그랬듯 연희공략의 OST를 부른 적이 있다. 설락하적성음(雪落下的声音)[18]
5. 실제 역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http://obj-sg.the1.wiki/d/2a/c3/2af8a3cde73220d4d2ce2a2d6cd7ab6096df203a6cf8021431522ae01d6c0ecb.png)
실제 역사에서의 효현순황후 부찰씨는 슬하에 총 2남 2녀가 있었다. 아들로는 황2자 단혜황태자 영련과 황7자 영종이 있었고, 딸로는 황장녀[19] 와 황3녀 고륜화경공주가 있었으며 그 중 고륜화경공주는 장성하여 무사히 혼례를 올렸다. 고륜화경공주는 과이심 친왕에게 하가하였으나 북경에서 살고 있었으며 자주 황궁으로 찾아가 모후를 보았다고 한다. 화경공주는 1792년 6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으니 그 시대로는 나름 장수하였으나 부황인 건륭제보다는 빨리 사망했다. 만일 고륜화경공주가 나왔더라면 황후의 우울증 요소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모든 자녀를 잃어버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리고 자유를 찾아 죽음을 택한 부찰 용음의 캐릭터를 위해서 실존인물을 뺀 듯 하다.
[1] 심지어 초한전기에서 그 악명높은 여후 역할까지 맡았으니 말 다했다.[2] 황제의 딸 시즌3에서 5황자 영기의 첩이자 제비의 앞길을 막는 악역 지화를 연기했었고, 리메이크버전인 신환주격격에서는 제비&소검 남매의 친엄마 역으로 특별출연했었다. 원래 친란은 연희공략에서 부찰 용음 역을 맡기 전까지는 기가 센 악녀이미지가 강했던지라[1] 친란 본인이 직접 우정에게 이미지변신을 위해 부찰 용음같은 선역을 맡고싶다고 어필했다고 한다.[3] 양황기는 상3기 중에서도 으뜸으로, 청의 황후는 반드시 만주 양황기나 정황기 소속이어야 했다. 용음 사후 황후가 된 계황후는 하5기인 양람기 출신이었으나, 황후의 자리에 오르면서 정황기로 대기되었다.[4] 작중 시점 이미 요절.[5] 순귀비가 장춘궁에 불을 질러 죽음[6] 실제로 진노하여 영락을 사형하려 했다.[7] 다른 조건은 부찰 부항을 찾아가서, 당신을 사랑한 건 다 거짓이었고 전부 부귀 영화를 탐내서 그런 거였다고 말하라는 것이다.[8] 영락은 원래부터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영락이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영락의 아버지는 제 어미를 죽인 자식이라며 갓난아기인 영락을 강에 버렸다. 다행히 영녕이 영락을 찾아 집으로 데려왔지만, 이 일은 두고두고 영락의 마음 속 상처로 남아있었다. 또한 홍주와 영락의 대질에서 영락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 놓고 고작 허울 뿐인 시첩 자리와 금자로 퉁치려는 홍주의 뻔뻔함에 분노했으나, 이미 영락의 아버지가 홍주가 제시한 벼슬에 넘어가 홍주의 겉치레 뿐인 사과를 받아들였다. 이에 영락은 지위를 위해 딸을 팔았다며 아버지를 경멸한다.[9] 아래 대사란의 내용은 7분 32초까지 기재되어있다.[10] 소설판에선 아예 죽은 영종이 살아있는 것처럼 말을 건다거나, 자리에 없는 영락을 부른다거나 하는 등의 행동으로 용음이 정신을 놓았다는 것을 묘사하였다.[11] 장춘궁에 불이 난 게 섣달 그믐이었으므로, 용음은 새해 첫 날 밤에 자살한 게 된다.[12] 황제는 자살이 아닌, '갑자기 병으로 사망했다.'라고 기록하게 명한다. '사랑하는 여인'인 황후의 명예를 지켜주고 싶었기 때문.[13] 다만 순귀비를 직접적으로 죽인 건 그녀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숙신으로, 냉궁에 직접 찾아와 연줄로 순귀비의 목을 졸라 죽인다.[14] 영락과 마찬가지로 용음의 충복이였던 명옥이 직접 옛 친구였던 이청에게 사약을 먹여 죽였다.[15] 이 때문에 계황후가 화친왕 홍주와 결탁하여 반역을 했을 때, 황제에게 "선황후는 (당신이 아닌) 오직 자유만을 사랑했어요!" 라고 용음을 비난해버렸다.[16] 원체 용음이 몸이 약하기도 했고, 황제가 얼린 포도가 맛있다고 차와 함께 많이 먹다 배탈이 나서 하루 종일 매화틀 신세를 져야 했던 것을 생각하면 영락이 옳긴 했다.[17] 다른 역할들은 다 격렬한데 본인만 평범해서 자칫 연기를 잘못했다간 이도저도 아닌 캐릭터가 될 것 같았다고 하였다.[18] "눈이 내리는 소리"라는 뜻이다. 본편에서는 용음이 자살하기 직전에 한 번, 마지막화에서 부항의 부음을 들은 영락이 주변을 물리고 눈물을 흘릴 때 한 번 나온다.[19] 건륭제가 황자일 때 요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