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혁(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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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한국의 의열단 출신 독립운동가.
2. 생애[편집]
1895년 5월 17일 지금의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에서 태어났다. 학생 시절부터 항일 단체를 조직하는 등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부산공립상업학교 졸업 후에는 무역상 일을 하다가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다.
당시 의열단에서는 일명 '진영사건(進永事件)'에 독립운동가들이 연루되어 계속 부산경찰서에 붙잡혀 고문 및 투옥되자 하시모토 슈헤이(橋本秀平) 부산경찰서장을 암살하기로 계획하였다. 마침 의열단에 가입했던 박재혁을 눈여겨 본 의열단장 김원봉의 권유로 부산경찰서[1] 폭파 의거를 결정하였다. 싱가포르에 체류 중이던 박재혁은 김원봉의 호출을 받아 상하이에서 지시를 받고 일본 나가사키와 대마도를 거쳐 부산에 잠입하였다. 1920년 9월 14일 박재혁은 하시모토 서장의 취미가 고서적 수집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중국인 고서적 상인을 가장하여 부산경찰서를 찾아갔다. 예상대로 하시모토 서장은 면회를 승낙하였고 박재혁은 그 자리에서 폭탄을 던졌는데 하시모토 서장은 중상을 입은 뒤 사망하였고 경찰서 건물 일부가 파괴되었으며 일본인 경찰관 2명이 부상을 입었지만 박재혁도 폭탄의 파편에 맞아 중상을 입고 체포되었다. 박재혁은 사형을 선고받았는데 이전에 경찰의 고문과 파편에 입은 상처로 고통받았다. 그래서 옥중에서 자결하기 위해 단식했는데 이 과정에서 폐병에 걸려 사형이 집행되기도 전인 1921년 5월 27일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이때 그의 나이 26세였다.
어제 나가사키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형편이 뜻대로 되어가니, 이 모든것이 그대가 염려해 준 덕분인듯 합니다.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즐겁습니다.
그대의 얼굴을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김원봉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3. 기타[편집]
-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2012년 7월 부산광역시 동구청에서는 그의 생가가 있는 조방로 630m 구간을 '박재혁거리'로 명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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