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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만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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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경복궁의 편전 사정전의 보조 전각으로 사정전 동쪽에 있다. 왕과 신하들이 주로 겨울과 초봄에 편전으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편전은 평상시 임금이 신하들과 함께 나랏일을 의논하고 경연을 하던 곳이다.
2. 이름[편집]
'만춘(萬春)' 뜻은 직역하면 '만 년(萬)의 봄(春)'이며 '길고 오랜 세월'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오랫동안 바른 정치를 하기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지은 이름이다.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들도 많은데 그중에서 '만춘'을 이름으로 정한 것은, 만춘전이 사정전 동쪽에 있기 때문이다. 오행에서 동쪽을 나타내는 계절이 봄이므로, ‘봄 춘(春)’ 자를 넣은 것이다. 이와 반대로 서정전 서쪽에 있는 보조 편전의 이름은 '가을 추(秋)'를 넣은 '천추전(千秋殿)'이다.
3. 역사[편집]
언제 처음 지었는지는 모른다. 1394년(태조 3년)에 경복궁을 창건할 당시 기록에는 나와있지 않고, 1437년《세종실록》에 처음 등장한 것을 보아 아마 세종 때 창건한 듯 하다. 임진왜란 때 다시 불탔다가 1867년(고종 4년)에 중건했다.
일제가 조선총독부를 지으면서 경복궁 내 전각들을 철거할 때도 무사히 남았으나 일제가 경복궁에서 조선물산공진회를 열 때 심사실로 사용하는 등 수난을 겪기도 했다.
8.15 광복 이후에는 국립박물관에서 유물창고로 사용했다. 그러다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24일 경에 폭격을 맞아 건물은 물론, 만춘전에 있던 유물들까지 완전히 잿더미가 되었다.
이후 약 40여 년 간 주춧돌만 남은 채 방치 상태로 있었다가 문화재관리국에서 1988년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4. 구조[편집]
영조 때 만든, 조선 초기 경복궁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 《경복궁전도(景福宮全圖)》를 보면 사정전, 천추전, 강녕전 등과 복도로 이어져있다. 이는 완전히 영역이 떨어진 지금과 많이 다른 모습이다.
- 정면 6칸, 측면 4칸으로, 툇간은 남면에 있고 가운데에 대청이, 대청 양쪽으로 온돌방이 있는 형태이다. 출입구는 대청 앞 툇간을 밖으로 드러내어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는데, 전면 칸 수가 짝수이다보니 중앙 칸이 따로 없어 현판을 입구 2칸 중 서편 칸 쪽에 걸어두었다.
- 지붕은 팔작지붕, 처마는 겹처마, 공포는 초익공이다. 지붕 마루에는 취두, 용두를 올렸으나 양성바름을 하지는 않았는데, 이는 양성바름을 한 사정전보다 위계가 낮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합각은 벽돌로 쌓아 만들었다.
[1]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2] 사진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박물관신문》.[3] 맨 아래 한 단은 거의 땅에 묻혀있다.[4] 보통 한옥의 경우 1층보다는 단층(單層)으로 말한다.[5]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6]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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