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 다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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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의 내셔널 리그/서부 지구 소속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로스앤젤레스.
미국 서부의 빅마켓 구단 중 하나로서 2013년부터 11년 연속 메이저 리그 총 관중 및 평균 관중 전체 1위에 오를만큼 대표적인 인기 구단이다. 통산 승률은 0.530으로 뉴욕 양키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이어 3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월드 시리즈 7회 우승과 내셔널 리그 최다인 24회 우승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구단 명칭인 Dodgers는 Dodger의 복수형으로 피하다는 의미의 Dodge에 r을 붙인 '회피자'라는 의미다. 이는 브루클린 시절 해당 구단의 경기를 관람하러 오는 사람들이 당시 브루클린에 많이 지나다녔던 노면전차를 피해다니며 경기장으로 이동하는 것에서 유래했다. 브루클린 시절 초창기의 구단명은 노면전차를 피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Trolley Dodgers이었다가 현재는 Dodgers로 줄인 구단 명칭이 오늘 날까지 쓰이고 있다.
메이저 리그 역사적으로 여러 면에서 진보적인 구단이다. 사상 최초로 TV중계를 한 팀,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을 기용한 팀이었고 중남미, 아시아 선수들 영입에 적극적이어서 멕시코 출신으로 큰 활약을 보여주었던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최초의 아시아 출신 메이저 리그 선수였던 무라카미 마사노리 이후 노모 히데오[12] 가 활약하였다. 그리고 투타겸업으로 현 시대를 대표하는 메이저 리그 최고의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와 북미 스포츠 역사상 최대 규모인 10년 7억 달러 계약과 함께 그 인기가 크게 늘었다.
대한민국 선수들 스카웃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데[13]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 리거인 박찬호가 이 팀에서 데뷔하여 2001년까지 전성기를 보냈으며, 이후 최희섭과 서재응도 다저스를 거쳐갔고[14] 2013년부터 2019년까지는 류현진이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이후 2024년에는 산하 마이너에 장현석이 합류했다. 한편 한국에서는 줄여서 주로 LA 다저스라고 부른다.
예로부터 투수 친화적인 홈구장을 바탕으로 하여 메이저리그에서도 익히 유명한 투수 왕국이다. 총 12회로 메이저 리그 최다 사이 영 상 배출 구단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15] 또한 신인 발굴 및 육성에도 강점을 보여 신인왕 배출 또한 14회로 메이저 리그 전체 1위이다.[16] 신인왕을 4년 연속(1979~1982), 5연속(1992~1997) 배출한 것 역시 다저스만의 기록 중 하나다.
자세한 내용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이모저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 개요[편집]
MLB의 내셔널 리그/서부 지구 소속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로스앤젤레스.
미국 서부의 빅마켓 구단 중 하나로서 2013년부터 11년 연속 메이저 리그 총 관중 및 평균 관중 전체 1위에 오를만큼 대표적인 인기 구단이다. 통산 승률은 0.530으로 뉴욕 양키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이어 3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월드 시리즈 7회 우승과 내셔널 리그 최다인 24회 우승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구단 명칭인 Dodgers는 Dodger의 복수형으로 피하다는 의미의 Dodge에 r을 붙인 '회피자'라는 의미다. 이는 브루클린 시절 해당 구단의 경기를 관람하러 오는 사람들이 당시 브루클린에 많이 지나다녔던 노면전차를 피해다니며 경기장으로 이동하는 것에서 유래했다. 브루클린 시절 초창기의 구단명은 노면전차를 피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Trolley Dodgers이었다가 현재는 Dodgers로 줄인 구단 명칭이 오늘 날까지 쓰이고 있다.
메이저 리그 역사적으로 여러 면에서 진보적인 구단이다. 사상 최초로 TV중계를 한 팀,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을 기용한 팀이었고 중남미, 아시아 선수들 영입에 적극적이어서 멕시코 출신으로 큰 활약을 보여주었던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최초의 아시아 출신 메이저 리그 선수였던 무라카미 마사노리 이후 노모 히데오[12] 가 활약하였다. 그리고 투타겸업으로 현 시대를 대표하는 메이저 리그 최고의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와 북미 스포츠 역사상 최대 규모인 10년 7억 달러 계약과 함께 그 인기가 크게 늘었다.
대한민국 선수들 스카웃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데[13]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 리거인 박찬호가 이 팀에서 데뷔하여 2001년까지 전성기를 보냈으며, 이후 최희섭과 서재응도 다저스를 거쳐갔고[14] 2013년부터 2019년까지는 류현진이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이후 2024년에는 산하 마이너에 장현석이 합류했다. 한편 한국에서는 줄여서 주로 LA 다저스라고 부른다.
예로부터 투수 친화적인 홈구장을 바탕으로 하여 메이저리그에서도 익히 유명한 투수 왕국이다. 총 12회로 메이저 리그 최다 사이 영 상 배출 구단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15] 또한 신인 발굴 및 육성에도 강점을 보여 신인왕 배출 또한 14회로 메이저 리그 전체 1위이다.[16] 신인왕을 4년 연속(1979~1982), 5연속(1992~1997) 배출한 것 역시 다저스만의 기록 중 하나다.
2. 역대 팀 엠블럼[편집]
3. 역사[편집]
자세한 내용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이모저모[편집]
자세한 내용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이모저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영구결번[편집]
1. 피 위 리즈(Pee Wee Reese): 명예의 전당에 베테랑위원회의 추천으로 입성한 뛰어난 유격수. 1940년대와 50년대 다저스의 유격수로 좋은 수비력을 과시했다. 또한,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흑인 선수인 재키 로빈슨을 인종 차별로부터 보호하여 인종 차별을 완화시킨 공로 역시 널리 인정받는다.
2. 토미 라소다(Tommy Lasorda): 다저스 최고의 명장들 중 한 명. 투수로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했지만, 감독으로는 두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다저스에 안겨주어 팀의 영광을 이끌었다. 특히 1981년 월드시리즈에서는 라이벌 뉴욕 양키스에게 2패를 당한 후 4연승을 일궈내기도 했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통산 1599승에 빛나는 명장으로, 그 1599승을 모두 다저스에서만 거뒀다. 2021년 1월 6일, 향년 93세의 일기로 영면했다.
4. 듀크 스나이더(Duke Snider): 1940년대 말과 1950년대를 대표하는 중견수. 통산 407홈런을 기록하며 다저스의 중견수를 책임졌다. 동시대 같은 포지션에 라이벌 팀인 자이언츠의 윌리 메이스, 양키스의 미키 맨틀이라는 괴수가 나타나는 바람에 살짝 밀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명예의 전당 입성엔 부족함이 없었다.
14. 길 호지스(Gil Hodges): 1955년과 1959년의 월드시리즈에서의 활약으로 우승에 기여하였던 인물로 뉴욕 메츠에 첫 우승을 가져다준 인물 맞다. 명예의 전당에도 베테랑위원회의 추천으로 헌액되었다.
19. 짐 길리엄(Jim Gilliam): 선수와 코치로 26년 야구인 인생을 오로지 다저스에만 헌신한 레전드. 1950년대와 60년대 3루수와 2루수로 뛰면서 4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기여했고, 코치로 다저스에서 활동하던 중 1978년 뇌출혈로 급서. 그의 명복을 빌고, 팀을 위한 헌신을 기리기 위해 영구결번.
20. 돈 서튼(Don Sutton): 통산 324승, 3574탈삼진을 기록한 1970년대 다저스의 최고 에이스. 아쉽게도 우승반지와 인연을 맺지 못했지만, 다저스 역사에 남는 에이스 투수로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현역 은퇴 후 라디오 중계로 제2의 인생을 살다가, 2021년 1월 19일에 향년 7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17]
24. 월터 앨스턴(Walter Alston): 23년간 감독으로 재직하며 4번의 우승 반지를 팀에 안겨준 명장. 1950년대부터 시작된 다저스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다저스에서만 감독 생활을 하며 2040승을 거뒀다.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
32. 샌디 코팩스(Sandy Koufax):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단기 임팩트를 선사한 투수로, 역사상 최고의 좌완 투수 논쟁에 빠지지 않는 대투수이다. 사상 최고로 평가받는 커브볼과 떠오르는 듯한 강속구를 무기 삼아, 그야말로 리그를 초토화했다. 경력 동안 세 번의 트리플 크라운, 4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과 두 번의 월드 시리즈 MVP, 1번의 MLB MVP와 3번의 사이 영 상[18] 을 수상했다. 그러나 팔꿈치 부상이 너무 심해졌던 탓에 선수 경력이 남들보다 짧은 편이라 누적 성적은 좋지 못했는데 다른 명예의 전당 투수들의 기록과 비교해 보면 그의 통산 165승은 다소 초라해보일 수 있으며 과대평가란 의견도 종종 볼 수 있으나, 전성기가 그야말로 MLB 역사에 남아도 무방한 영웅 그 자체였는데다가 무엇보다도 정점에서 떠났기에 그 모습은 영원불멸의 전설로서 팬들에게 각인됐다. 당연히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됐다.
34. 페르난도 발렌수엘라(Fernando Valenzuela): MLB에서 신인왕과 사이 영 상을 동시에 수상한 유일한 투수로 스크류볼을 통해 80년대 메이저리그를 풍미했던 레전드였다. 사이 영 상 - 실버 슬러거 - 골드 글러브를 모두 수상한 단 3명의 투수[19] 중 1명이며 한동안 비공식 영구결번 상태였다가 2023년 2월 4일자로 공식적으로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39. 로이 캄파넬라(Roy Campanella): 메이저리그 역사상 첫 흑인 주전 포수. 준수한 수비와 뛰어난 타격 실력으로 MVP를 세 번이나 차지하며, 뉴욕 양키스의 요기 베라와 라이벌 관계를 이뤘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면서 일찍 선수 생활을 마쳤지만, 불굴의 의지로 회복해서 더 큰 감동을 안겨준 선수. 1993년에 향년 71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42.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 메이저리그 역사상 첫 흑인 선수로, 메이저리그에 입성해 2루수로 맹활약했다. 인종차별을 극복한, 흑인 인권 운동의 상징격 인물이다. 또한 인종차별을 극복한 그의 상징성도 상징성이고, 리그 MVP와 월드 시리즈 우승도 차지하면서 선수로서도 맹활약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다저스 구단 내에서는 1972년 6월 4일 영구 결번이 되었고[20] 1997년부터는 그의 등번호 42번이 메이저리그 전 구단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21]
53. 돈 드라이스데일(Don Drysdale): 샌디 코팩스와 짝을 이뤄 원투펀치로 맹활약한 우완 투수. 불같은 강속구와 강한 승부욕을 앞세워 다저스의 전성기를 열었던 대투수 중 한 명. 야구 역사상 "빈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투수들 중 한 명일 정도로 위협구를 던지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돈 짐머[22] 가 다저스에서 뛰다가 컵스로 트레이드 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드라이스데일을 찾아가서 자신을 맞히지 말아달라고 부탁(협박?)했다거나, 타석에 바짝 붙는 타자는 자기 할머니일지라도 맞힌다고 했다거나, 우스갯소리처럼 들리는 일화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1993년에 심장마비로 인해 비교적 이른 향년 5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 빈 스컬리(Vin Scully): 다저스의 목소리(The Voice of the Dodgers). 1950년부터 2016년까지 67년간 다저스의 캐스터를 담당한 전설적인 스포츠 캐스터. 1982년 명예의 전당 헌액. 캐스터이므로 결번되는 번호는 따로 없지만 영구결번과 같이 대우하고 있다. 2022년 8월 2일 노환으로 사망했고 당시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 경기를 중계하던 해설진이 다같이 추모했다.
🎙️️. 하이메 하린(Jaime Jarrín): 다저스의 스페인어 목소리(The Spanish Voice of the Dodgers). 1959년부터 다저스의 스페인어 중계를 맡았다. 그의 아들 호르헤 하린(Jorge Jarrín) 역시 2012년부터 다저스의 스페인어 중계를 맡고 있다. 2022년 64시즌간의 중계를 끝으로 명예롭게 은퇴했다.
이처럼 다저스 영구결번 선수 대부분은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만큼 위대한 선수들이었다.
현역 선수중에선 통산 사이 영 상 3회 수상, 내셔널리그 MVP 1회 수상에 빛나는 21세기 최고의 투수 클레이튼 커쇼의 22번이 유력한 영구 결번 후보이다.[23] 또한 켄리 잰슨의 74번 역시 그가 팀을 떠난 이후 누구에게도 지급되지 않고 있으며 다저스 모자를 쓰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다면 영구 결번 가능성이 높다.
은퇴 선수 중에는 스티브 가비의 6번, 오렐 허샤이저[24] 의 55번도 성적상으로는 영구결번감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