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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닝 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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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경주마이자 종마. 오랜 기간동안 달리고 또 달리며, 큰 경기에서의 우승은 없지만 수많은 명경기에서 나름 존재감을 뽐냈던 80년대 후반 일본 경마의 명 조연마다.
2. 혈통[편집]
3. 생애[편집]
별달리 뛰어난 혈통도 아닌 채로 태어나 데뷔 시즌인 1985년에는 신마전부터 내리 3연패, 해를 넘어 클래식 시즌인 86년 들어서야 미승리전에서 겨우 첫 승을 올린다. 이후로도 게시판엔 들지만 아슬아슬 승리를 못 챙긴 채 5전(착순은 4-4-2-2-2)를 거쳐서야 겨우 400만엔 이하 조건전, 이후 다시 다시 5전(5-7-7-3-4)을 거친 후에야 겨우 900만엔 이하 조건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11월에 GIII 후쿠시마 기념에서 승리를 거두며 첫 중상 승리를 얻음과 동시에 오픈 클래스로 승격한다. 그리고 첫 GI 도전을 연내 유일하게 남은 아리마 기념으로 정하지만, 추첨에서 떨어지며 출전불발 된다.
해를 넘겨 고마 시즌인 87년을 맞이하지만 88년 초반까지 이후 6경기를 내리 패배하며 준 오픈 클래스로 오히려 클래스가 하락하는데,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달려 1400만엔 이하 조건전인 국내 타임스배에서 2착을 하며 회복세를 보이고, 다음 경기인 오픈전 마치 스테이크에서 2년만의 승리를 거둔다.
그리고 두번째로 맞이한 GI 경기인 봄 천황상에선 13번 인기라는 저조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당대 최강마로 부상한 타마모 크로스에 악착같이 따라 붙으며 동기 메지로 듀렌을 제치고 2착으로 들어오는 파란을 일으킨다. 이후로는 비록 당대의 최강자들에게 승리를 거두진 못했지만 중요한 경기에는 거의 따라붙으며 거의 대부분 게시판에 이름을 올리는 호성적을 올린다.
7세(현 6세) 시즌에는 연초에 벌어진 닛케이상과 아메리카 쟈키 클럽 컵이라는 GII 경기를 연달아 따내며 마생 최초의 중상 2연승을 달린다.
그리고 이후로 8세 시즌을 넘어 9세 시즌인 1991년 1월까지 13전을 더 뛰며 역시 상당수를 게시판에 이름을 올리는 성적을 남기고 은퇴한다.
4. 은퇴 후[편집]
종마가 되긴 했지만, 혈통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자신의 성적도 딱히 뛰어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많은 자손을 남기지 못했고 성적도 자마들의 성적도 별로 뛰어난 편은 아다. 그래도 야요이상 우승마인 런닝 게임이란 자마를 내면서 중상우승마를 배출하긴 했다.
2004년 12월에 종마에서 용도변경되었으며, 2006년 10월[2] 에 죽었다.
5. 평가[편집]
비록 큰 경기에서의 우승은 없지만 큰 탈도 없이 꾸준히 달리며 나름 준수한 활약을 해서 무사시명마(無事是名馬)[3] 나 "마주에게 효도하는 말"이란 평가를 듣곤 했다.
2년 연속 아리마 기념 4착, GII 우승 2회가 모두 나카야마 경마장이라 나카야마에서만 강한 것 아닌가 하는 평가도 있지만 진영측에선 "특히 나카야마에서 성적이 좋긴 했지만, 다른 경마장에서도 딱히 나빴던 것은 아니다"라며 나카야마 한정 성적이란 평가에는 반박하기도 한다.
6. 기타[편집]
4세 시즌까진 제대로 성적을 못 올리고 5세 시즌인 1988년부터 성적이 안정되고 주요 경기에도 출전하다 보니, 정작 동기의 주요 활약마들과는 거의 붙어본 적이 없고 1년 후배들 중에서도 클래식 주역들과는 거의 역시 대전해 본 적이 없다. 대신 역시 자신처럼 1년 늦게서야 활약하기 시작한 후배 타마모 크로스와 이나리 원, 그리고 88년부터 클래식 세대를 맞이한 오구리 세대 멤버들과 자주 부딪힌 편인데, 이 당시엔 주요 GI 대회에도 거의 빠짐없이 출주하다 보니 분명 우승하는 모습은 못 봤는데, 어째선지 88~90년의 주요 경기를 보면 거의 대부분 이 녀석이 보인다.
대충 보면 타마모 크로스 3번, 오구리 캡 4번, 이나리 원과 슈퍼 크릭 2번, 야에노 무테키와 3년 후배인 사쿠라 호쿠토 오가 거둔 1번의 승리에 모두 조연으로 참여했고, 심지어는 해당기간 중 유일하게 남아있던 2년 선배 스즈 퍼레이드의 우승에도 조연으로 참여했고 페이 더 버틀러와 홀릭스가 우승한 재팬컵에도 참전하는 등 주요 GI과 GII에는 모두 참여하는 미칠듯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이렇게 꾸준히 성적을 낸 만큼 은근히 획득 상금이 많은데, 획득상금 4억엔으로 동기들 중에서는 닛포 테이오만이 유일하게 런닝 프리보다 획득상금이 많을 뿐 다른 말들은 모두 한참 못 미치는 금액만 벌었고, 1년 후배들 중에서도 타마모 크로스, 이나리 원만 런닝 프리보다 획득 상금이 많다. 쉽게말해 86년과 87년 클래식 세대의 클래식 3관을 가져간 말들 중 런닝 프리보다 더 많이 번 말이 없다.[4] 말 그대로 GI 우승이란 영광은 얻지 못했지만 마주에겐 충분한 이득을 안겨준, 웬만한 GI 우승마 못지 않은 "마주에게 효행한 말"이란 단어가 딱 어울리는 말이었다.
활약 시기가 시기다 보니 우마무스메 신데렐라 그레이에도 '롱 리브 프리'란 가명으로 등장한다. 오구리 캡 최후의 경기까지 툭하면 참전하던 사이라 캐릭터 디자인도 모브 치곤 잘 뽑혔고, 또 앞으로도 꾸준히 활약을 할 것으로 보인다.
클락 스틸의 초필살기 런닝 스리는 런닝 프리가 모티브.
7. 경주 성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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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藤島 泰輔. 일본의 소설가 겸 평론가 겸 여행가. 미시마 유키오와 동문의 극우 인사이기도 하다.[2] 정확한 일자는 불명이다.[3] 불교용어인 무사시귀인(無事是貴人)에서 귀인을 명마로 바꾼 것으로, 애써 큰 상을 구하지 않고 자신이 할 일을 묵묵히 해 낸 명마라는 뜻[4] 그나마 88년 세대는 오구리 캡, 야에노 무테키, 슈퍼 크릭, 뱀부 메모리 등이 런닝 프리보다 상금이 많고 역시 오래 활동한 다이유우사쿠도 조금 모자라긴 하지만 3억 7천만을 벌었다. 하지만 G1 2관마 사커 보이와 더비 우승마 사쿠라 치요노 오는 활동기간이 짧다보니 역시 런닝 프리보다 적게 벌었다.[국제GI] A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