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덤프버전 :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틀:대한민국의 국보 1~30호, version=27,
title2=틀:대한민국의 국보 31~60호, version2=23,
title3=틀:대한민국의 국보 61~90호, version3=18,
title4=틀:대한민국의 국보 91~120호, version4=16,
title5=틀:대한민국의 국보 121~150호, version5=18,
title6=틀:대한민국의 국보 151~180호, version6=15,
title7=틀:대한민국의 국보 181~210호, version7=13,
title8=틀:대한민국의 국보 211~240호, version8=15,
title9=틀:대한민국의 국보 241~270호, version9=13,
title10=틀:대한민국의 국보 271~300호, version10=12,
title11=틀:대한민국의 국보 301~330호, version11=21,
title12=틀:대한민국의 국보 331~360호, version12=14)]
1. 개요[편집]
陶器 騎馬人物形 明器. 일제강점기 1924년 경주시 금령총에서 출토된 토기 한 쌍으로, 신라시대 도자기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자,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과 함께 고대 기마인물을 묘사한 대표적인 걸작 토기로 꼽힌다. 기마인물 도상(騎馬人物陶像) 또는 기마 인물형 토기 등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는 국보 제91호로 지정되었고,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 중이다.
2. 내용[편집]
한 쌍으로 이루어진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는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이 판 위에 올라가 있는 모습이다.
얼핏 보면 단순한 조각상으로 보이지만 엑스레이로 검사한 결과, 말 위에 있는 잔에 구멍이 뚫려 있어 뱃속으로 이어지고, 앞가슴에 대롱은 물이 나오는 구멍으로 일종의 주전자로 확인됐다.
문화재명에서 나타나는 것처럼[1] 무덤에 부장하고자 따로 만들어졌다고 추정되나, 왕이 썼던 것일 수도 있으며 그때 신라 사람들의 생활 양식을 본따 만든 것은 확실하다.
말에 올라 타 있는 인물들은 일반적으로 각각 주인과 하인(또는 시종)으로 보는데, 주인은 하인보다 더 크게 묘사되어 있다. 주인의 경우 타고 있는 말에 하인의 말보다 더 화려한 장식이 더해져 있으며, 주인의 머리에는 삼각뿔 형태의 모자가 씌워졌고,[2] 말 안장 위에 갑옷을 두른 듯한 다리를 늘어뜨리고 있다. 하인의 경우 인물상이나 타고 있는 말이나 장식이 별로 없으며, 하인의 머리는 상투머리를 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령총의 피장자를 모델로 제작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 한 쌍의 토기는 신라시대 유물 중에서도 중요한 유물로 평가 받는데, 신라 시대의 마구[3] 및 말 장식의 형태, 신라 시대의 의복(특히 모자)의 형태, 무기 등이 섬세하게 묘사 되어 있어서, 현재 남아 있는 자료가 거의 없는 당시 신라의 문화에 대해 단편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는 그 미적, 사료적 가치를 인정 받아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91호로 지정되었다.
3. 기타[편집]
-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는 1977년 8월 15일, 1983년 6월 15일에 발행된 80원권 보통우표와 1979년 10월 15일 발행된 20원권 한국미술 5천년 특별 기념우표의 도안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 한국을 대표하는 22개 문화유산의 홀로그램 중 하나로 등장하기도 하였다.
- 처음 발굴한 지 거의 100여 년이 지난 2019년, 금령총을 다시 발굴해 조사했는데 과거에는 찾을 수 없었던, 말의 머리와 앞다리만 남은 토우를 발견했다. 이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의 말과 아주 닮아있어서 같은 장인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차이점은 새로 발견한 토우의 말은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었다는 것뿐이다. 결국 말의 나머지 부분은 재발굴조사에서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관련 기사
4. 외부 링크[편집]
5. 국보 제91호[편집]
경주시 금령총에서 출토된 한 쌍의 토기로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주인상은 높이 23.4㎝, 길이 29.4㎝이고, 하인상은 높이 21.3㎝, 길이 26.8㎝이다. 금령총에서 1924년에 배모양 토기와 함께 출토되었으며, 죽은 자의 영혼을 육지와 물길을 통하여 저세상으로 인도해 주는 주술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두 인물상은 두꺼운 직사각형 판(板)위에 다리가 짧은 조랑말을 탄 사람이 올라 앉아있는 모습이다. 말 엉덩이 위에는 아래로 구멍이 뚫린 등잔이 있고, 앞 가슴에는 긴 부리가 돌출되어 있어 비어있는 말의 뱃속을 통해 물을 따를 수 있게 되어 있다.
두 인물상의 모습은 말 장식이 화려한 주인상의 경우 고깔 형태의 띠와 장식이 있는 삼각모(三角帽)를 쓰고 다리위에 갑옷으로 보이는 것을 늘어뜨렸다. 하인상은 수건을 동여맨 상투머리에 웃옷을 벗은 맨 몸으로 등에 짐을 메고 오른손에 방울같은 것을 들고 있어 길을 안내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이 인물상 형태의 토기는 신라인의 영혼관과 당시의 복식, 무기, 말갖춤 상태, 공예의장(工藝意匠) 등에 대한 연구에 큰 도움을 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1]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에서 말하는 명기(明器)란 장사지낼 때 죽은 사람과 함께 무덤 속에 묻는 그릇 등의 기물을 뜻한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 명기7 明器[2] 삼국시대부터 여말선초까지 엄청나게 자주 쓰던 머릿쓰개인 문라건의 일종으로 보인다.[3] 이를테면 등자와 같은 마구가 적어도 6세기경에는 쓰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4] 1977년 발행[5] 1979년 발행[6] 1983년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