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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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북한의 군인, 정치인.
원래 남북 군사외교의 실무자였으며 이후 정찰총국장을 거쳐 김양건의 사망 이후 대남비서, 통일전선부장을 역임하며 김정은 시대 대남 정책을 총괄하였다. 2022년 들어서 은퇴하였으나 2023년 6월에 갑자기 현역으로 복귀했다.
2. 생애[편집]
2.1. 초기 이력 및 정찰총국장 시절[편집]
1946년 량강도에서 태어나서 만경대혁명학원,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 이력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1990년 남북 고위급 회담 당시 북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방남한 적이 있다. 당시 계급은 소장이었으며, 인민무력부 부국장을 맡고 있었다. 본명은 김동수인데 김일성의 요구로 인하여 김영철로 개명했다는 주장이 있다. 남북회담 당시에 대한민국 육군준장 박용옥과 대립했는데, 기선제압을 하겠다고 '준장'도 장군이냐고 놀려대곤 했다고 한다. 근데 이후 박용옥이 소장으로 진급하면서 박용옥 소장이 김영철에게 아직도 별 한개냐고 역으로 놀렸다고 한다. 그런데 1993년 7월 19일, 최고사령관 명령 0040호에 따라 소장으로 진급한 김영철이 있는데 동명이인이 아니라면 북한에서 남한을 상대할 때 기선제압을 하느라 김영철의 계급을 실제보다 높게 내세웠거나 강등 후 재진급했다는 소리가 된다.
이후 북한 군부의 대남 초강경파로 활동했으며 2009년, 조선로동당과 조선인민군의 대남 공작기구들을 통합하여 정찰총국이 신설되자 초대 정찰총국장에 임명되었다. 2010년 9월,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 겸 군사위원에 선출되었다. 2011년 12월, 김정일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2012년 2월 15일 최고사령관 명령 003호에 따라 대장으로 진급하였다. 2015년 11월, 리을설 장의위원, 2015년 12월, 김양건 장의위원을 지냈다. 김양건 사망 후 후임 대남비서 겸 통일전선부장 임명설이 제기되었는데, 대남 무력도발 총책임자인 정찰총국장 출신인 그가 대남비서로 조동된 것으로 보아 북한 내부 대남 온건파가 김양건 사망과 함께 모조리 숙청당한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있지만 김양건 숙청설이 별 근거 없는 음모론에 불과하다는 점, 그리고 김양건이 온건파라는 주장은 순전히 남한에서 군인 출신인 김영철에 대비해서 이미 죽은 김양건을 근거 없이 추켜올리는 정황이 있다는 것을 보면[1] 검증이 필요한 주장이다.
2.2. 대남비서(및 부위원장) 시절[편집]
2016년 2월부터 비서국 비서 직함으로 등장하면서 대남비서 임명이 확인되었으며, 2016년 5월, 7차 당대회에서 정무국 부위원장, 정치국 위원, 통일전선부장에 임명되었으며 군사위원에도 재선되었다. 2016년 6월, 최고인민회의 13기 4차회의에서 신설된 북한의 국가최고기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또한 통일전선부장 자격으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에도 선출되었다. 하지만 정찰총국 대좌 출신 탈북자 김국성은 김영철이 자만심이 강해서 마구 떠벌리는 경향이 강했다고 증언했는데 이런 성격이 문제가 되었는지 2016년 8월 31일 통일부는 김영철이 권력남용이 원인이 되어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지방 농장에서 혁명화 교육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후 복귀하여 다시 대남 문제를 전담하였으며 특히 2018년 남북미 화해무드 기간에 국제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는데,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에 북한 대표단장으로 참석하였다. 다만 이는 2018년 북한 김영철 방남 논란으로 이어졌다. 이후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과 2018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 당연히 수행원으로 동행하였으며, 그의 거취가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북미정상회담 직전 김계관과 최선희 등이 막말을 퍼부어 트럼프 대통령이 취소를 통보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그가 수습을 맡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있었으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외무성이 사고치고 통일전선부가 수습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김영철이 무리하게 강수를 두었다가 망한 것으로 보았다. 이후 미국 워싱턴을 방문하여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하였다. 볼턴의 회고록에 의하면, 김영철이 너무 긴장한 나머지 김정은의 친서를 차에 두고 내렸다고 한다.
김영철의 이런 똥꼬쇼에도 불구하고 제2차 북미정상회담은 실패로 돌아갔고 이후 통일선전부장에서 해임되었다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2019년 3월, 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면서 숙청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으나 2019년 4월 10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장금철이 후임 통일전선부장에 임명되면서 부장에선 물러났다. 하지만 대남비서 자리에 해당하는 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직함은 여전히 유지하면서 대남정책을 지휘했다.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에서 국무위원회 위원 및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에 재선되면서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2019년 5월 31일, 조선일보가 김영철이 혁명화를 당했다고 보도했으나 그 직후 공개석상에 다시 등장하면서 건개함을 과시했다. 10월 27일, 11월 8일, 12월 9일,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장 자격으로 연이어 담화를 발표해서 미국을 비난했다.
2020년 2월 27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1차 정치국 확대회의에 참석했으며 다른 정치국 위원들과 같이 두번째 열 왼쪽 끝단에 앉아 있음으로 당내 직무를 유지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4월 11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2차 정치국회의에도 참석했으며 착석 서열이 오히려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2020년 6월 8일, 김여정과 함께 대남사업부서들의 사업총화회의에서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사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배신자들과 쓰레기들이 저지른 죄값을 정확히 계산하기 위한 단계별 대적사업계획들을 심의하고 우선 먼저 북남사이의 모든 통신련락선들을 완전차단해버릴데 대한 지시"를 내리기로 결정, 남북 사이의 모든 연락선을 차단해버렸으며 6월 16일에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이 벌어지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후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며 2020년 6월 24일 "남조선군부에 주의를 환기시킨다"라는 제목으로 담화를 발표하여 남한을 위협했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2.3. 통일전선부장 시절[편집]
2021년 1월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에서 정치국 위원에 재선, 통일전선부장에 복귀했으나 대남비서직이 폐지되면서 비서국에는 선거되지 못했다. 8월 11일, 통일전선부장 자격으로 다시 대남 위협 담화를 발표했다.
이후 계속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2022년 5월, 현철해 장의위원을 지냈다. 6월 7일, 조선로동당 제8기 제9차 정치국회의에 참석하였으며, 6월 8일, 조선로동당 8기 5중 확대회의에서 리선권에게 통일전선부장 자리를 물려주었다. 하지만 정치국 위원 자리는 계속 유지하였다. 7월 27일, 전승절 행사에 참가했다. 2022년 8월 10일,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에 참석했다. 2022년 9월 7일부터 9월 8일 사이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14기 7차 회의에서 참석했다. 해당 회의에서 모두의 예상과 다르게 국무위원회 인선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인선은 이루어졌고, 리선권에게 상임위원 자리를 물려주고 소환되었다. 9월 25일, 조선로동당 제8기 제10차 정치국회의에 참석하였다. 12월 17일, 당간부들과 함께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 12월 26일, 사회주의헌법 제정 50주년 기념보고대회에 김덕훈, 조용원, 최룡해, 박정천, 리병철, 리일환, 김재룡, 전현철, 박태성, 박정근, 최선희, 오일정, 박태덕, 김형식, 조춘룡, 한광상, 리철만, 김성남, 김여정, 리선권, 양승호, 주철규, 리창대, 박수일, 우상철, 김영환, 리영길, 정경택, 리태섭과 함께 참석하였다. 그런데 정치국 위원임에도 불구하고 8기 6중 확대회의 집행부로 선출되지 못했으며 8기 6중전회에서 정치국 위원 및 당중앙위원회 위원에서 소환되었음이 후일의 정황으로 확인되었다.
2.4. 은퇴와 복귀[편집]
2023년 1월 17일부터 1월 18일 사이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14기 8차 회의 주석단에 포함되었는데, 정치국 위원이 아니라 국무위원 자격으로 포함되었으며, 따라서 북한 보도에서 이름이 따로 보도되지 않았다. 이렇게 은퇴하는 것으로 보였는데 2023년 6월, 8기 8중전회에서 당중앙위원회 위원에 직접 보선, 정치국 후보위원에 보선됨으로 전격적으로 중앙당 지도부에 다시 진입했다. 당중앙위원회 위원으로 보선되면서 8기 6중전회에서 당중앙위원회에서도 소환되었음이 확인되었으며, 2023년 6월 현재 맡고 있는 직함은 통일전선부 고문으로 이전에 은퇴한 상태임도 확인되었다.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가운데 대남 강경파로 대남도발 및 협상에 오랜 경험이 있는 그가 다시 지도부로 불려온 것으로 보인다. 7월 27일, 전승 70돐 경축 대공연 및 기념보고회와 열병식에 참석하였다. 이후 9.9절 열병식에 참석했다. 9월 19일 김정은 귀국환영식에 참석했다. 9월 26일부터 27일 사이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14기 9차 회의에 참석했다.
3. 경력[편집]
4. 논란[편집]
4.1. 2018년 2월 방남 논란[편집]
2018년 2월 22일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에 맞춰 방남했는데, 방남 허용의 적절성과 관련하여 논란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2018년 북한 김영철 방남 논란 문서를 참조.
4.2. 김성태(기업인)와 안부수의 대북송금 혐의 사건[편집]
김성태와 안부수에 의한 대북송금 사건에서 2018년~2019년 두 차례 금원을 수수한 자가 바로 이 김영철이었다고 한다.
4.3. 2019년 조선일보 숙청설 오보 논란[편집]
2019년 5월 31일 하노이 협상 결렬의 책임을 물어 김혁철은 총살, 김여정은 근신이 처해지고 김영철은 노역형에 처해졌다고 조선일보가 보도했다.#
하지만 이후 연합뉴스를 포함한 여러 언론매체에서 목격담이 보도되는 등 생사여부가 불확실했다.# 일각에서는 잠시 노역형을 살다가 복권된 게 아니냐고도 하지만 북한의 실정상 노역형까지 받을 정도로 권력 중심에서 밀려난 사람이 다시 복귀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김정일이 북한을 지배하던 시절 김정일의 매제였던 장성택도 실각한 뒤에 복귀하기까지 2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했는데, 김영철이 불과 한두 달만에 복귀한다는건 쉬이 납득할 수 없다는 뜻이다. 더욱이 김영철은 통일전선부장에서 내려오긴 했으나 4월 10일 당 중앙위 전원회의와 11일에 열린 최고인민회의에 모습을 보인 부분도 노역형설을 갸웃거리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래서 현송월 때처럼 조선일보가 제대로 팩트 체크도 안 하고 곧장 기사로 실었다가 망신을 자초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2019년 6월 3일, 로동신문을 통해 김영철이 노역형에 처해져 권력에서 밀려났다는 조선일보의 보도는 사실상 오보였음이 간접적으로 확인되었다. 이에 조선일보는 김영철이 재등장했다는 뉴스를 5면에 실었다고 한다. * 김영철 숙청설을 1면에 대문짝만하게 보도했던 것과는 확연히 대조적인 부분이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6월 4일에는 근신 처분을 받았다는 김여정도 함께 등장하기도 했으며 김정은과 리설주 바로 옆에 자리하여 그 위상이 되려 강화된 게 아니냐는 예측까지 나왔다. * 뿐만 아니라 조선일보가 총살형에 처해졌다고 보도했던 김혁철도 여전히 살아있다는 CNN 보도와 우리나라 대북 담당 당국자의 확인이 있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
4.4. 2019년 트럼프 발언 논란[편집]
2019년 12월 9일, 북한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적대적으로 행동하면, 사실상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고에 강하게 반발하였다.#
김영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발표한 담화에서 '트럼프는 조선에 대하여 너무나 모르는 것이 많다”며 “우리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 이라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