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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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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배우.
2. 배우 활동[편집]
2.1. 아역 시절[편집]
1988년 MBC 베스트극장을 통해 연예계에 데뷔한 이후 1990년대에 큰 인기를 얻었던 아역 스타였다. 그리고 "아역배우로 성공하면 성인배우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연예계의 불문율을 깬[3] 가장 성공한 아역 출신 배우로 성장했다. 아래의 출연작들을 보면 알겠지만, 아역배우 생활은 1988년 그녀가 6살 때부터 시작했다. 아역배우 이전에 어린이 모델로도 단연 탑급으로 1991년에만 무려 20편의 광고에 출연했을 정도였다. 광고 중에서 "우리엄마는요."하며 엄마를 자랑하는 여자아이가 나오는데 그 아이가 김민정이다.[4] 삼풍백화점 광고에도 출연한 적 있다.[5][6][7] 1993년 초등학교 5학년 때는 동갑내기 정태우와 같이 출연한 키드캅의 여주인공으로 나왔다. 참고로 정태우와 김민정은 훗날 왕과 비에서도 단종과 정순왕후 역할로 다시 호흡을 맞추게 된다. 그리고 중학교 졸업을 앞둔 1997년 12월~1998년 2월에는 KBS 주말연속극 웨딩드레스에서 질풍노도의 사춘기 소녀 제인 역으로 열연했다.[8]
아역배우 시절의 김민정.
워낙 아역 배우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던 탓에 아역 이미지를 벗어나고자 노력했다. 갓 스물을 넘어서 찍었던 영화 《버스, 정류장》과 같이 나름대로 파격적인 작품[9] 에 출연하는가 하면, SBS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같은 시트콤에도 출연하기도 했다. #
2.2. 성인 이후[편집]
사실 아역 배우로 과거에 엄청난 인지도가 있었지만 20대 때는 전반적으로 작품 활동은 꾸준했으나 대박 작품도 적고 해서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 그러나 3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인지도가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꾸준히 쌓아온 작품 활동량이 드디어 빛을 발한 셈이다.
스크린에서 사라지는 아역이 될 뻔 하였으나 고 3말에 시작했던 역사에 남을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 노홍렬의 딸 노민정으로 캐스팅 되어 성인 역할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수준급 외모에 얌체같은 성격으로 얄밉고 여우같지만 때론 푼수같고 어딘가 허술한 미대생 역할을 맡아 신구, 노주현, 이홍렬, 박정수, 배종옥, 권오중과 같은 대배우들의 틈바구니에서 나름의 롤을 구축하였다.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작품은 2004년에 방영한 드라마 《아일랜드》. 아역 출신이지만 현재는 에로배우로 전락한 한시연 역할을 맡았다. 또한 흥행에는 처참하게 실패하였으나 당시 신인이었던 주연배우들의 잠재성만큼은 인정받았던 영화 《발레교습소》에 출연하며, 본인도 가능성을 인정받았으며 이후 23살이던 2005년에 《패션 70's》, 2008년에 본격적으로 방영하였던 《뉴하트》에서 인상적인 연기력을 보여주며 배우로서 자리잡았다. 특히 《뉴하트》에서는 수능 전국 1등에 빛나는 수재로 냉철하고 이성적인 레지던트 남혜석 역을 맡아 지적이면서도 또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캐릭터를 잘 소화해냈다.
《가시나무새》에서는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안고 있는 그러나 본인 또한 남자에게 버림받고 그 남자의 아이를 버리고 영화배우로서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한유경' 역을 맡았다.
연기력은 동년배 여배우 중 수준급으로, 아역 시절부터 많은 작품의 다양한 역을 맡아본 경험 덕인지 연기력 문제로 잡음이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필모그래피를 보면 그다지 흥행하지 못 한 작품도 가끔 끼어 있기 때문에 작품 보는 눈이 나쁘다는 평도 간간이 들린다. 그러나 미스터 션샤인의 쿠도 히나 역처럼 가끔 가다 또 연기력과 시청률을 동시에 잡아낸 대박 흥행작도 3~4년마다 한 번씩 터뜨리기 때문에 선구안에 대해 논하기는 좀 미묘한 편. 이전 아역이나 20대시절 깜찍하고 동글동글한 이미지와 달리 최근 흥행작에서는 대부분 악역이다.
영화 출연에 소극적이라는 말이 많다. 2013년이 마지막 영화 출연이며 2019년, 타짜: 원 아이드 잭에 캐스팅 되었으나 감독과의 이견 문제로 중도 하차했다.
2021년 드라마 악마판사에 출연하면서 뉴하트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 지성과 재회했다. 다만 뉴하트에서는 연인관계였지만 악마판사에서는 메인 빌런으로 대립각을 선보이고 있다. 악마판사는 자체 최고 시청률로 종영을 했으며 퀄리티면에서도 좋은 평을 받았다.
3. 출연 작품[편집]
3.1. 영화[편집]
3.2. 드라마[편집]
4. 그 외 활동[편집]
4.1. 뮤직비디오[편집]
4.2. 방송[편집]
4.3. 광고[편집]
4.4. 홍보대사[편집]
- 1999년 기아대책기구 홍보대사[19] with 정태우 외
- 2008년 대한흉부외과학회 홍보대사 with 지성
- 2010년 제 4회 충무로 국제영화제 홍보대사 with 유승호
- 2012년 보건복지부 금연 홍보대사 with 김종국
- 2019년 제 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홍보대사
4.5. 비디오[편집]
- 재미있는 글자나라(1993)
5. 수상 경력[편집]
6. 여담[편집]
- 어렸을 때 별명은 '입술 썰어서 세 접시'. 실제로 입술이 도톰하다.
- 등산 마니아로 혼자서 8~9시간씩 등산할 때도 있다. '달팽이 호텔' 출연 당시 강원도 소재에 있는 산 대부분을 가봤다고 밝혔다.
- 애교도 많고 스킨십도 많이 하는 성격이다. 런닝맨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택시 안에서 유재석과 대화를 주고 받을 때 그의 허벅지를 만지작하면서 애교를 부리는 장면이 방송을 타기도 했다. 영상.
- 작품에서 재회한 배우들이 많다. 지성과는 뉴하트에 이어 무려 13년 만에 악마판사에서 만났고, 김재원과는 라이벌, 술의 나라에서, 천정명은 패션 70's, 영화 밤의 여왕에서 재회했다. 아역 시절부터 함께한 정태우와는 영화 키드캅을 비롯해 드라마시티 《모래섬》, 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 한명회, 왕과 비[23] 베스트극장 《고무신 거꾸로 신은 이유에 대한 상상》, 장사의 신 - 객주 2015까지 무려 7개의 작품에서 만났다. 그 외에도 아역 때 부모-자식 간으로 연을 맺었다가 성인이 된 후 작품에서 만나는 경우도 많다. 노주현, 유동근, 신구, 이덕화, 배종옥, 이정길, 임동진 등이 있으며 이밖에도 수많은 재회 케이스가 있다.
7. 관련 문서[편집]
[1] 당시 행정으론 강동구였으나, 1988년에 송파구로 분구되었다.[2] 2017년 6월을 끝으로 더 이상 게시물이 올라오지 않았는데 3년만에 게시글이 올라왔다.[3] 최초는 아니다. 0세대라 할 국민배우 안성기가 가장 크게 성공한 아역 배우 출신인데, 아역 활동 기간이 초등학교 때까지로 짧고, 중고교-군 생활 이후까지 연기를 중단했기 때문에 아역 출신임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몇 년 후에 나온 김정훈, 이승현 등이 실패한 케이스) 이후에 강수연 등이 아역 출신을 성공한 케이스 1세대로, 김민정 김혜수가 아역 출신 성공자 2세대라 할 수 있다.[4] 1991년 KBS 대학개그제에서 유재석이 이걸 카피해서 최승경과 꽁트를 했고 장려상을 받았다.[5] 정확히는 개점 당시인 1989년 말에 방영된 광고.[6] 물론 대형사고 때문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이나 다름없는 삼풍건설의 설립자이자 회장인 이준 회장과 손님들을 내팽개쳐두고 똑같이 탈출한 고위급 간부에 대한 욕이나 더 나아가 부실한 건물을 저리 좋게 포장해서 화려한 광고로 만드는 게 아이러니하다란 댓글이 대부분이다.[7] 애초에 김민정도 그렇고, 광고에 나온 다른 모델들(특히 마지막 모델인 최명길)도 그렇고 이 건물이 5년 뒤에 그렇게 큰 대형 사고를 맞을 것이라 예상했을 리는 없으며, 광고를 찍은 것이 문제가 된다면 차라리 부실공사로 건물을 중축하고선 아무렇지 않게 최고의 백화점이라고 7년을 속인 이준을 욕해야 하는 거지 광고 모델들에게 문제를 들이미는 것은 삼가야 할 행동이다. 모델들은 단순히 촬영 계획과 촬영 내용만 들은 뒤 거기에 따라 대가를 받고 광고촬영에 임해준 것 뿐이다.[8] 그러나 문제는 이 드라마가 외환 위기로 조기 종영되었다는 것이다. 이 당시는 KBS측에서 외환위기로 인한 공영성 강화 명목으로 다수의 예능프로그램과 일부 드라마를 개편 시기 혹은 시청률과 상관 없이 폐지해대던 시기였다.[9] 원조교제, 낙태 등의 소재가 등장하는데 보수적인 분위기이던 21세기 초에 이런 소재가 나왔다는 점에서 상당히 파격적이었다.[10] 본인은 1990년도 연기 데뷔라고 말하지만 이 작품은 1988년 5월 22일에 방영되었다. 또한 한 언론사에서 창간 30주년 기념으로 했던 인터뷰에 따르면 1988년 데뷔가 맞다. 데뷔 연도 착오가 있어 방송마다 데뷔 연도 정보가 각각 다르게 나가기도 한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본인도 별로 크게 생각하지 않는 듯[11] 당시 편성표 #[12] 시각 장애가 있는 역할을 맡았다[13] 당시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14] 그 유명한 수영복 짤방은 여기서 나온 것.[15] 원래 고정 나레이터가 없었으나, 2014년 2월 9일 방영분부터 김민정이 고정 나레이터가 되었다.[16] 이때 함께 촬영한 김혜수, 송윤아, 유선, 이태란, 한고은, 이영자 등과 현재까지 모임을 갖고 있다고 한다[17] 유라와 공동진행.[18] 유연석의 팬미팅에 깜짝 게스트로 등장[19] 이후에도 꾸준히 활동한 것으로 보이며 2014년도 기사까지 확인할 수 있다.[20] 어깨 근육 주변에 석회가 쌓여 통증을 일으키는 희귀병이다.[21] 고준희 같은 경우는 예명이다. 본명 김은주로 출연했던 드라마 여우야 뭐하니에서의 배역명을 그대로 예명으로 삼은 케이스다.[22] 프로필상 키와 달리 실제로는 160cm 정도라는 증언이 있다. 비율이 매우 좋아 더 커 보이긴 한다.[23] 정태우의 인터뷰에 따르면, 왕과 비에 출연할 때, 김민정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연기를 계속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