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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하는 수령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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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하는 수령동지

파일:경수동.jpg

장르
대체역사, 정치
작가
괄목상대
출판사
KW북스
연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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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기간
2019. 05. 12. ~ 2020. 08. 21.

1. 개요
2. 줄거리
3. 연재 현황
5. 개변된 역사
5.1. 북한
5.1.1. 정치적 변화
5.1.2. 경제적 변화
5.1.3. 외교적 변화
5.1.4. 군사적 변화
5.2. 남한
5.3. 미국
5.4. 중국
6. 기타



1. 개요[편집]


한국의 대체역사물 레프트 노벨 웹소설. 작가는 괄목상대.

남한 사람이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되어 역사를 바꾼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북한이 자본주의 개발독재 국가가 되는 대체역사물인 동시에 북한을 개발시키는 영지물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명예훼손으로 고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북한 및 외국인들은 실명을 사용했으나 한국 정치인[1], 기업인들은 가명을 사용했다.


2. 줄거리[편집]


'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자기만은 잘 대비해서 전철을 밟지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그러나 결국은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

정말? 내가 틀렸다는 걸 증명해주지!

한국개발연구원의 연구원 이정환, 어느 날 자신 앞으로 온 수상한 이메일을 열고 환생하게 된다.

그런데 그 장소가...... 무림도 아니고 이세계도 아니고, 왜 하필 북한이냐고!

한국개발연구원 소속 연구원인 이정환은 술자리에서 TV에서 중계되는 국회 공성전을 보며 저 따위로 중우정치를 하느니 자신이 절대 권력자가 되어 플라톤식 철인 정치를 펼치는 게 낫겠다는 말을 하고 그날 밤 이상한 메일을 전달받는다.

위대한 영도자 동지께 민족과 겨레의 부름을 전합니다.

그 메일을 열어보는 순간, 이정환은 정신을 잃고, 깨어나보니 1985년 북한에, 김일성 종합대학 학부생이며, 북한 주석 김일성의 숨겨진 사생아인 '김정환'이 되어있었다. 30년의 시간을 거슬러 독재국가의 주석의 자식이 되어버린 자신을 확인한 정환은, 나라를 자기 뜻대로 움직이기 위해 차후 나라를 망칠 것이 확실한 차기 주석과 음지에서의 권력투쟁을 시작한다.


3. 연재 현황[편집]


문피아에서 2019년 5월 12일부터 연재되었다.

2019년 7월 21일자로 71화에 걸친 무료연재를 끝내고, 맛보기 25화만 무료로 남기고 유료연재로 전환했다.

2019년 12월 13일자로 180화에 걸친 1부가 마무리되었다. 일주일간의 휴재 후 2부를 시작하였다.

2020년 7월 8일 330화로 본편이 완결되었다.

휴재 후 2020년 7월 20일부터 외전이 시작되었고, 2020년 8월 21일 20화를 추가로 완결.

카카오페이지에서도 연재되었으며 2020년 8월 21일 350화로 완결됐다.


4. 등장인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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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5. 개변된 역사[편집]



5.1. 북한[편집]


당연히 작중 배경인 만큼 그야말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싹 다 바뀐다.


5.1.1. 정치적 변화[편집]


현재는 김정환 본인의 독재국가이지만 김정환 본인이 은퇴하면서 자기와 같은 사람을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한 만큼 민주주의 국가가 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애초에 백두 혈통이라 불린 김일성의 우상화를 깎아내는 등 차근차근 준비를 갖췄으며, 마지막에는 자신 스스로도 명예로운 은퇴로 북한을 독재 국가에서 민주주의 국가로 바꾸는 데 성공한다.


5.1.2. 경제적 변화[편집]


북한 석유 및 자원의 효율적인 개발로 경제가 급성장했다. 더 격화된 천안문 사태를 이유로 많은 나라들이 중국에 경제 제재를 건 사이 영국과 수교를 시작하면서 많은 나라들의 중국의 대체재로서 투자를 받았다. 그리고 유전이 발견되고, 생산성이 있는 것이 확정되면서 일본의 버블 시기에 일본에서 얻었던 많은 양의 돈을 이 유전의 이익으로 스리슬쩍 치환하면서 국부펀드인 피오니 홀딩스를 만들었고, 김정환 본인이 기억하고 있는 큰 이슈들을 바탕으로 투자를 지속해 많은 이익을 얻어냈다.

이후 IMF 사태가 터진 한국의 많은 기업들을 꿀꺽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스스로 북한에 투자를 결심한 기업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근대그룹 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현대그룹.


5.1.3. 외교적 변화[편집]


특히 김정환이 신경 쓴 분야가 외교 분야였다.

우선 천안문 사태를 바탕으로 미국과의 수교를 준비하기 위해 우선 영국과의 수교를 진행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김일성의 유언을 날조하여 북미수교와 남북한수교를 이루어 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대 미국과의 외교 분야에 심혈을 기울여서 동아시아 평화 포럼이라는 이름의 로비 창구를 미국에 뚫어 놓았는데, 실제 역사에서 이 시기에 은퇴한 마가렛 대처를 해당 포럼의 이사장으로 섭외하는 데 성공했고,[2] 원래에도 보수 성향이었던 그녀의 성향에 맞는 '여성 보수주의 정치가'를 양성하면서 미국에 큰 영향을 끼치는 데 성공했다. 대표적인 사람으로 콘돌리자 라이스가 이 포럼 출신이고, 포럼의 추천을 거쳐 현대 미국 부통령이 되었을 정도로 미국 정치계에 넓은 라인을 뚫어 놓았다. 이를 바탕으로 북한 석유를 남한에 수출하고 미국이 창립한 OPEC를 견제하기 위한 석유공동체의 의장국이 되거나, 파이브 아이즈로 불리는 미국 핵심 외교국에 남북한이 동시에 참여하는 성과를 올리는 등 주요 동맹국을 중국이 아닌 미국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5.1.4. 군사적 변화[편집]


군사력 역시 소련 출신 기술자들의 도움으로 북한의 군사력은 심각하게 낙후된 중국에 대항할 정도로 발전했으며, 현실의 북한군과는 다르게 수십만 명을 소수정예 정규군으로 돌리고 수백만의 노농적위대는 예비군으로 재편하였다. 특히 신경을 쓴 부분은 무인기, 전투기 등이며 적어도 자국 방어 분야에 있어서는 준 스텔스기급 효율을 내는 전투기 부대를 편성하는 데 성공했다.

육군 또한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데, 대표적으로 소련출신 개발진들의 도움 하에 만들어진 T-94 전차[3], 현대적인 피카티니 레일과 광학조준경을 기본으로 한 개인화기들이 도입되었으며[4] 해군은 자체 건조한 원산급 구축함[5]을 운용하여 제한적인 대양작전이 가능한 해군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다.

무엇보다 원 역사와 달라진 외교관계에 힘입어 러시아제 무기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제도 일부 도입해서 쓰고 있다. 대표적으로 육군은 AH-64아파치를 도입하여 연변내전에 투입되었으며, 공군은 KA-16에서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을 운영하고 있다. 해군은 미해군의 올리버 해저드 페리급 호위함을 남포급이란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다.


5.2. 남한[편집]


원래라면 캐릭터 이름으로 써야겠지만 그 경우 실제 역사와 차이점을 보기 어려워 부득이하게 여기서는 모티브가 되는 실제 인물 이름을 사용했다.
회귀자인 김정환의 행보로 바뀐 북한은 철저히 국익에 기반해서 남한을 상대했지만, 본의 아니게 남한에 많은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 김정환이 집권한 때는 노태우 정권 때였는데, 남한 정부에선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노선을 틀었다는 것을 감지하고 이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지원해서 북한을 경제적으로 예속시키는 북진 외교의 웅장한 꿈을 품었으나, 북한에서는 미국과의 관계를 더 중시해서 흐지부지 되었다. 그렇지만 북한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길을 걷게 되면서 극우, 극좌파들이 퇴조하는 사상적 변화가 일어났으며, 남북기본합의서는 남한 기업들의 대북 진출에 필요한 재산권 관련 조항들이 추가되어서 원역사와 같이 체결되었다.

  • 14대 대선에서는 정주영이 정계에 진출하는 대신 북한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되자 상대가 안될 거라고 생각한 김대중이 불출마하면서 김영삼이 손쉽게 당선되었다. 작중 변화된 역사의 큰 분기점으로, 지역감정이 심화되지 않았다. 원 역사에서는 14대 대선에서 극대화되고 초원복집 사건을 거치며 돌이킬 수 없어진 것과 달리, 김대중의 불출마로 김영삼이 손쉽게 이기면서 제풀에 꺾인 것. 따라서 원 역사에서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한 PK, 호남이 갈라지지 않아서 민주당도 의석과 지지세를 보존할 수 있었고, 김대중도 이기기 위해서 김종필과 연합할 필요가 없어져서 그의 제안을 거부했다.

한편 김영삼은 원 역사보다 힘든 임기를 보내는데, 보수 세력에 빚을 안 지고 60% 넘는 득표율로 당선되어서 개혁의 칼날을 휘두르는 그에게 보수 세력의 견제가 쏟아졌고, 회귀자인 김정환이 사고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썼던 문민정부의 난맥상을 활용, 사고가 터질 때마다 북한의 발전상을 상징하는 이벤트를 만드는 방식으로 개혁개방 이후 인민들의 사상 개방에 따른 민주화의 갈망이 커지는 걸 막았기 때문이다.[6] 그래서 김영삼은 김정환에 이를 갈게 되나, 1997년 외환 위기 때 김정환이 북한에서 남한 대기업들이 망하지 않게 지분을 사주는 대신 휴전선을 없애는 것을 포함, 남북 교류를 획기적으로 진전시키는 소위 남북대타협을 제안할 때, 측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락하게 된다. 이에 반발한 보수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이를 진압하면서 마지막엔 인기를 좀 회복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 2002년 월드컵이 한-일 월드컵이 아닌 남-북한 월드컵으로 개최되었다. 김정환이 로비로 H조에서 북한-독일을 진출시키면서[7] 한국은 이탈리아와 싸우지 않았고, 힘을 더 비축해 결승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한다.

  • 15대 대선에서는 김대중이 무난하게 당선된다. 그러나 원 역사에서 김대중의 트레이드마크였던 햇볕정책이 이미 전 정권에서 남북대타협을 이룬 지라 별로 쓸모없게 됐다. 대신 남한 국민들의 자존심이 많이 상한 지라, 이런 여론을 의식해서 원 역사처럼 북한과 관계를 획기적으로 진전시키진 못 하며, 원 역사처럼은 아니지만 경제 면에서 북한에 패했다는 충격으로 인해 신자유주의적인 개혁들도 일부 수용해야 했다. 그렇지만 북한이 중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파병해야 할 병력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 꾸민 'NLL에서의 교전' 계획에 호응해줬고, 2002년 남북월드컵에서 몇몇 경기들을 북한에서 치르게 해주는 대신 국군포로들을 다 돌려 받았으며, 개막식에 참여하기 위해 김정환이 처음으로 서울로 방남하는 등 진전된 남북관계에 어울리는 성과들을 거뒀다.

  • 16대 대선에서는 이회창이 당선되었으나, 노무현도 석패해서 다음을 기약할 수 있게 된다. 북한의 개혁개방 후 남한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나서, 소위 '안보 보수'와 주체사상파가 소멸하게 된다. 대신 경제 보수가 보수 진영의 주류가 되었는데, 좌파에서는 북한의 김정환이 남한의 대기업과 영합하는 것을 보고, 민주당의 정치인들은 남북대타협 이후 호남에 소재한 기업들이 사업하기 더 편한 북한으로 이전하면서 지역구민들의 압박에 시달리게 되자, 보수 진영은 민족주의를 내세워 남북한 협력을 주장하고 진보 진영은 남한 대기업과 영합하는 독재자 김정환을 규탄하며 보수와 진보 스탠스가 서로 완벽하게 뒤바뀌어버렸다. 대한민국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 따라 사전적인 의미와 달라진 보수-진보 진영이 사전적인 의미에 맞게 정치적 입장이 바뀐 셈이다.

이런 상황에 더해서 이회창은 현실에서도 '합리적 보수'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답게 남북관계의 변화를 적절히 수용해서 통치한 것으로 보인다. 남북을 관통하는 고속철도를 개통하기에 이르며, 북한이 주적이 아니게 되었으니 육군보다 해공군 전력을 강화하는 국방개혁 2020도 훨씬 빠르게 등장하게 되었다.

  • 이념 갈등이 완화되면서 극단적인 정쟁도 줄었는지 대통령인 이회창과 제 1야당 대표인 노무현이 청와대에서 속내를 터놓고 독대를 하기도 한다.

  • 17대 대선에서는 원래 이명박이 당선되는 것이 맞으나, 이명박은 사업가로서 꿈을 품고 북한에 투신해 버려서 대신 박근혜가 대선주자로 나왔다. 그녀가 됐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는 김정환은 울며 겨자먹기로 작중에서는 반북정당이 되어버린 민주당의 노무현을 지지해서 당선되도록 도왔다. 노무현은 김정환과 가장 많이 만나면서, 김정환의 주도로 남북한이 함께 파이브 아이즈에 가입하게 된다. 이제 남북관계가 절대 과거로 돌아가지는 못 한다는 확신이 생겼는지, 남한의 군복무도 반은 모병제로 전환되었다는 언급이 나온다. 박근혜도 의외의 수혜자라고 볼 수 있는데, 김정환 퇴임 이후 극비문서가 공개되면서 남한의 선거에 개입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북풍으로 억울하게 선거에서 패배하였다는 동정표를 얻는 데는 성공했다.[8] 게다가 정권재창출에도 성공해서, 노무현은 원 역사와 달리 천수를 누리며 계획대로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여생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당연히 친노세력도 대대적으로 결집해서 별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의 틀 안에 남았을 것이며, 원 역사의 19대 대통령 문재인도 정치에 입문하지 않고 변호사로서 평범한 인생을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9]

  • 18대 대선에서는 과거 이라크 전쟁에도 참전했던 특전사 출신 전인범이 민주당 경선을 거쳐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고 대통령이 된다. 지지층에게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할수 있는 전씨 성을 가진 군인임에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된 것 역시 작중에서 일어난 변화를 실감케 하는 요소.

  • 19대 대선에서는 안희정이 대통령이 된다. 그러나 원 역사에서의 비서 성폭력 스캔들이 여기에서도 터지면서 민주적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이 왜 이 모양이냐고 북한 사람들에게 비웃음받는 처지가 된다.

5.3. 미국[편집]


김정환이 집권 후 중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불량국가에서 벗어나서 서방진영에 진입하고 경제개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가장 가까이 하려는 나라인 만큼 초반부터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많은 부분이 바뀌게 된다.

  • 조지 H. W. 부시가 2선에 성공한다. 빌 클린턴은 김정환과 의견이 일치한 마가렛 대처의 수완에 말려 들어가 마약 스캔들에 휘말려 스스로 대선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부시는 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의 주역이 되었으며, 클린턴이 펼친 대중 유화 정책 대신 견제 정책을 펼친다. 이로 인해 중국 공산당의 지배가 불안정해지는 부수적인 효과도 거두게 된다.

  • 북한에서 석유가 나고, 친미 국가가 되자 중동의 지정학적 가치가 떨어져서 미국도 이스라엘에 관심을 덜 두게 된다.이로 인한 변화로 93년 오슬로 협정이 무산되었는데, 일단 대통령 부시가 아닌 부통령 딕 체니가 협상을 중재하러 간 것을 보면 애초에 협정 자체에 큰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후원자를 잃어가던 이스라엘은 중국과 가까워지게 되는데, 이는 작중 또다른 나비효과를 불러 일으키게 된다.

  • 네오콘이 크게 준동하지 못했다. 물론 그 패권주의적인 성향이 어디 가지 않아서 작중 강경한 모습을 보이고 대처가 현실 역사와 비슷하게 "저들을 이대로 두면 미국과 전 세계의 재앙이 될 것"이란 예측을 하기도 하지만, 상관이 아버지 부시였기 때문에 이들을 통제 하에 둘 수 있었고, 이후 민주당 정권 8년, 그리고 정통 보수라고 할 수 있는 존 매케인이 당선되어서 활개칠 여유가 없어졌다.

  • 9.11 테러가 미국이 아닌 상하이를 대상으로 일어나게 되었다. 작중 역사에서 가장 큰 변화로, 자연스럽게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대신 중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일어났고, 이라크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대침체도 중국 공산당의 정책 실패로 인해 중국에서 일어나서 원 역사와 비할바 없이 적은 피해만 입었다.

  • 조지 부시가 2선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음 대통령은 민주당의 앨 고어가 하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원 역사와 달리 쓴맛을 보지 않은 미국은 중국에 대해서도 직접 개입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출하는데, 다행히도 생각없는 대통령들이 당선되지 않아서 이를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


  • 이후 선거에서는 버락 오바마를 마찬가지로 견제, 존 매케인이 2선을 하도록 지원하는데, 이는 버락 오바마가 동아시아에 무관심하거나 주요 쟁점을 일본에 몰아준 경력이 있어서 그것을 견제하기 위함.

  • 물론 이득만 본 게 아니라, 시간회귀자인 김정환이 손을 써서 미국의 혁신적인 기업들을 사들이거나 천재적인 기업인들을 빼돌리는 피해를 입긴 했지만 원 역사에서 미국의 국력을 깎아먹은 그 사건을 회피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작중 바뀐 역사의 수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초 극초강대국에서 추락되지 않았다. 중국이 도광양회는 냅다 던지고, 적만 만드는 전랑외교만 하고 있으니, 미국이 그냥 초강대국으로 보이는 착시이다.

  • 콘돌리자 라이스는 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대통령의 일시적인 유고 상황에 잘 대처하여 최초의 흑인이자 여성 대통령이 된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워런 때문에 재선에 실패한다.

  • 엘리자베스 워런은 라이스의 집권 원인이 PC(흑인, 여성)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더 PC적인 성격을 띄며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PC에 염증을 느낀 미국 유권자가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면서 콘돌리자 라이스와 마찬가지로 재선에 실패한다.

5.4. 중국[편집]


  • 북한의 쿠데타가 성공하면서 중국은 더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적 성향을 보이게 된다.

  • 탱크맨으로 유명한 천안문 사건이 더욱 강경하게 진압된다. 예를 들어, 탱크를 가로막은 사람으로 유명한 저 탱크맨 사건의 경우, 이 역사에서는 탱크에 깔려 사망하고 그로 인해 중국은 강력한 경제 제재를 받게 된다.

  • 덩샤오핑의 남순강화가 실패로 끝나고 이로 인해 덩샤오핑이 홧병으로 사망하면서 태자당의 영향력이 더 커졌다. 경제 제재로 압박을 받은 상하이방이 덩샤오핑을 배신하면서 발생한 일.

  •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과 친하게 지내면서 위구르에서의 이슬람교 탄압이 더욱 주목을 받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9.11 테러가 중국에서 발생하게 된다.[10] 따라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주체 또한 중국으로 바뀌었다.

  • 오사마 빈 라덴은 중국의 사람 추적 기술 + 불운[11]으로 빠르게 붙잡혔고, 이는 장쩌민의 축출에 활용되었다. 장쩌민은 오사마 빈 라덴을 잡아서 사태를 극복해 보려 했으나, 이미 그는 보시라이 직속 병사들에게 구금당해 잡을 수 없게 되었다. 이후 그는 공개처형을 당하면서 순교자로 추앙받게 된다.

  •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중국은 중국이 다른 곳에서 이미 보였던 중국식 동화 정책을 펼치나 미국과 같이 실패하며, 오히려 아프가니스탄의 헤로인이 중국 내로 퍼지는 원인이 된다.

  • 결과적으로 태자당의 시진핑보시라이가 각각 당과 군을 나눠 가졌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테러 위협 대비 등을 빌미로 군대를 베이징 근처에 전개했던 보시라이가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시진핑을 축출하고 정권을 잡는다.

  • 보시라이가 중국의 국력을 착실히 깎을 동안, 김정환과 이석기의 공작으로 연변 분리주의가 심화되자 군을 투입해 진압하려다 결국 북한(&한국)과 전면전이 발생하고, 북한군에게 제공권이 장악당하자 끝내 핵미사일을 발사하려 하지만 후진타오의 쿠데타로 전쟁은 종결되고 연변은 북한에 흡수된다.

  • 후진타오는 다시 '도광양회' 기조로 중국을 이끌며 결국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다. 북중관계는 외교관계는 회복했지만 당연히 중국인들의 감정은 극도로 나빠졌고, 북한과 함께 전쟁을 치른 한국과의 관계도 나빠져서 향후 안보 불안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6. 기타[편집]


  • 현대 한국 정치를 자주 언급하다보니 종종 양극단 정치 성향의 독자들 때문에 댓글창이 불타오를 때가 많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면 소설은 읽어도 댓글창은 무시하는 것이 좋다.

  • 안타깝게도 인기에 비해 고증은 상당히 좋지 않다.[12] 무료화 일부만 해도 오류사항이 넘쳐난다는 지적. 이는 작가가 전개를 위해 고증을 철저히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13] 실제 북한과 김씨 일가의 정치 특성이나 김정일의 권력 장악 타임라인이 반영되지 않고 김씨 일가를 주인공으로 한 통속극처럼 풀어낸 부분이 있고, 실존 인물들의 캐릭터성도 북한학계나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가 반영되기보다는 대중적 이미지, 특히 예를 들어 '김일성은 그래도 괜찮았는데 김정일이 다 말아먹었다'는 전통적인 레토릭 등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면이 있다.[14] 좀 원색적인 고증 비판으로는 나무위키 보고 쓴 것 같다는 평까지 나오기도.(...) 또한 비교적 사소한 문제지만 단순 대사도 북한에서는 쓰이지 않는 용어들이 나와 어색한 부분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명색이 공화국 지도자인 주인공이 공공연히 자국을 '북조선'이라고 부른다거나, '받들어 총'[15] 같은 표현들. 다만 고증이 대체역사 소설에서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모든 것도 아니니 '흥행에 성공한 훌륭한 작품이지만 이걸 읽고 북한에 대해 뭔가를 안 것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16]

  • 작중 괄호 안 원어명을 추가한 서술이 잦지만 작중 영어의 사용에는 오류가 상당하다. 사람 (human)을 "humman"이라 오기하고 관련 단어인 휴민트(HUMINT)도 "HUMMINT"라 기재하는 한편 레이더(radar)를 "ladea"라 쓴 것이 그 예시. 또한 작중 대립OPEC으로 등장하는 UPEC의 경우에도 단체명으로 흔히 사용되지 않는 "Uniting of"가 사용되었다.

[1] 김영삼 이후의 한국 대통령들은 가명을 쓰지만 전두환, 노태우는 본명으로 나온다.[2] 이는 단순히 돈 문제보다는 워커홀릭이었던 마가렛 대처의 개인적인 성향과 기본적으로 중국을 경계하는 두 사람의 코드가 맞아 떨어졌기에 가능한 섭외였다.[3] 125mm 전차포가 장착된 걸로 보인다.[4] 자동소총 구경이 5.45mm 구경이거나 5.56mm 구경으로 바뀐 걸로 보인다.[5] 130mm 단장 함포가 장착된 걸로 보인다.[6] 성수대교 붕괴사고 당일 평양 증권거래소를 개장하고 조문에 수십만 달러의 위로금까지 보내는 식. 평화롭긴 하지만 남한의 상황을 이용해 체제를 공고히 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대남 도발이다.[7] 북한은 이후 16강에서 탈락했다.[8] 최순실도 죽을 때까지 감옥에 가는 대신 평범한 부동산 투기꾼(...)이 되었으니 이득을 봤다.[9] 애초에 문재인이 청와대에 간 이유는 당시 민주당 비주류인 노무현이 "대통령 만들어줬으면 책임을 지라"면서 데려왔기 때문인데, 작중 노무현은 민주당 부산 국회의원에, 아깝게 패배한 대선 후보에, 참패할 뻔한 총선에서 당을 구했고, 당 내 반대를 극복하고 정권교체를 이뤄내는 등 민주당에서의 입지가 원 역사에 비할바 없이 튼튼할 것이기 때문에 절친이지만 정치에 관심이 없던 문재인에게 굳이 공직을 맡길 필요도 없어졌을 것이다.[10] 따라서 세계 무역 센터가 아닌 동방명주탑이 무너지게 되었다.[11] 원역사의 미국도 더 빠르게 오사마 빈 라덴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2번이나 있었는데 국방부와 CIA 간의 불협화음으로 놓쳤다.[12] 작품을 추천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정치성향이 강한 사람, 고증에 충실한 작품을 원하는 사람이라는 리뷰도 있다. [13] 작중에 등장하는 장성택의 묘사는 현실에 비해 비교적 순화된 것이라고 한다.[14] 그래도 김일성을 까는 묘사가 나오기는 한다. 현실의 김일성이 얼마나 무능했냐면 통속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1960년 중반에 이미 경제적으로 한국이 북한을 뛰어 넘었고 그것의 빌미를 준 것이 김일성이다.[15] 북한군에서는 '영접들어 총'이다.[16] 북한이 아니라 다른 국가에 대한 고증도 마찬가지다. 일례로 조지 워커 부시는 현실에서 예의 바르고 점잖은 신사인데 비해 소설속에서는 경박한 인물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