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AI SPI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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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SPIW(특수 목적 개인화기, Special Purpose Individual Weapon)는 AAI(에어크래프트 아머먼트, Aircraft Armaments, Inc) 사에서 개발된 미군의 돌격소총이다.
2. 역사[편집]
1962년에 개시된 미합중국 육군의 특수 목적 개인화기 사업에 참여한 AAI 사에서는 과거의 샐보(Salvo) 계획 시기부터 설립자 중 한명인 어윈 R. 바(Irwin R. Barr)가 줄기차게 제시해온 플레셰트 탄약을 사용하는 뇌관 작동식(Primer-Actuated) 돌격소총이 1964년에 제출되어 다른 3개[2] 기종들과 경합을 벌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발발한 베트남 전쟁에서의 수요로 XM16E1의 정식 운용이 가까워지자 높은 요구 조건에 한참 미달되는 성능 평가까지 더해져 점점 나중을 위한 연구개발품 수준으로 격하되었으며, 창설된지 얼마 안 된 미합중국 육군무기사령부와 미합중국 육군전투개발사령부(현 미합중국 육군전투능력개발사령부)의 입장 차이로 인한 마찰로 개발 지연을 겪다가 후속의 미래형 소총 사업의 XM19를 포함한 그 어느 기종도 실전에 쓰이지 못한채 록 아일랜드 조병창 박물관의 한켠을 장식하는 신세로 남게 되었다.
3. 특징[편집]
곧은 탄도로 400m의 거리에서 0.25인치(6.35mm) 두께의 철판을 뚫는 관통력을 보이는 플레셰트 탄약을 2,400발이라는 빠른 발사 속도의 점사로 점 표적을 맞힐 수 있도록 설계되어 M14 및 M16에 비해 압도적인 성능 차이를 보여줄 것이라 여겨졌지만 실제로 보여준 것은 기대 이하의 낮은 명중률과 살상력 뿐이었다.
범위 표적을 상대하는데 필요한 3연발 반자동식 유탄발사기는 운용이 불편하고 신뢰성마저 낮은데다 4.5kg 이하의 전체 중량을 달성하는데 있어서 큰 걸림돌로 작용했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탄피가 약실과 포신을 겸하는 형태로 바뀌었음에도 단가 상승 및 기존 규격과의 호환 불가로 효율성 평가를 통과하지 못했다.
4. 종류[편집]
4.1. 플레셰트 산탄총[편집]
이중탄두 및 이중총열[3] 개념에만 몰두한 미합중국 육군작전연구소 대신 1952년에 미합중국 해군연구소와의 계약을 통해 개발된 플레셰트 관련 구상으로, 기종 불명의 12게이지 산탄총을 가지고 약 460m의 거리에서 M1 철모의 측면을 관통시키는 놀라운 결과로 화살촉이 차세대 탄자 중 하나로 쓰일 수 있음을 증명했다.
4.2. APHHW[편집]
1959년의 APHHW(다목적 휴대화기, All Purpose Hand-Held Weapon) 사업에 제출된 원형으로, 5.6x53mm XM110 탄약의 성능을 시험하는데 주안점이 맞추어졌기 때문에 극도로 단순한 원통형 외관으로 연필이라는 별칭이 붙여지기도 했다.
미국 알래스카 포트 그릴리(Fort Greely)에서의 극지 환경 실험 이후에 당시의 제식 소총인 M14 보다 만족스럽지 못한 명중률과 관통력을 보였음에도 미합중국 육군탄도학 연구소에서의 평가는 다소 긍정적이었기에 미합중국 육군병기부장의 승인 아래 추가 개발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4.3. SPIW[편집]
4.3.1. 1세대[편집]
SPIW 사업의 시작을 함께한 1964년의 제1차 심사용(Phase I Trial) 초기형으로, 상술된 APHHW 사업과 병합된 니블릭[4] 계획의 부산물인 총열 하단 부착식 유탄발사기의 개발도 함께 진행되었으나 요구 조건에 미달되는 제원으로 다른 경쟁자의 제출품과 똑같이 선정되지 않았다.
4.3.2. 2세대[편집]
SPIW 사업이 절정에 달한 1966년의 제2차 심사용(Phase II Trial) 중기형으로, 무게를 어떻게든 줄이려는 시도에서 탄생한 무총열 DBCATA(일회용 범위 표적 탄약, Disposable Barrel and Case Area Target Ammunition) 유탄발사기가 적용되었지만 당대의 X-1 등과 마찬가지로 휴대 및 사용이 불편한데다 보병용 유탄의 표준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40×46mm 규격에도 맞지 않아 효용성 문제에 부딫혀 채택되지 못했다.
4.3.3. 3세대[편집]
SPIW 사업이 중단된 1967년의 후기형으로, 발사 시에 생기는 과도한 소음을 줄이려는 노력으로 소음기가 기본적으로 달리거나 하모니카식 탄창의 3연발 유탄발사기 구성 등으로 바뀌었으며 동시기의 SAWS(종합 소화기, Small Arms Weapons System) 사업을 의식한 여러 파생형들도 제시되었다.
4.4. XM19[편집]
연장 목적의 미래형 소총 사업을 노린 3세대형 SPIW 기반의 개량형으로, 재설계된 5.56×57mm XM645 탄약에 맞춘 바나나형 탄창과 30mm 유탄발사기에서 차이점을 찾을 수 있으며 1971년의 좋지 못한 성능 평가를 끝으로 단종되고 말았다.
5. 출처[편집]
- https://guns.fandom.com/wiki/AAI_SPIW
- https://modernfirearms.net/en/assault-rifles/u-s-a-assault-rifles/spiw-eng/
- https://www.forgottenweapons.com/aai-2nd-gen-spiw-flechette-rifles/
- https://www.historicalfirearms.info/post/182746955044/aai-flechette-prototype-the-late-1950s-saw-aai
- http://pewpewpew.work/usa/r/spiw/spiw_aai.htm
- https://www.ebay.com.sg/itm/134187612843?hash=item1f3e347aab:g:H8kAAOSw7Mxi5~L-
6.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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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뒤에는 왼쪽을 기준으로 찰스 P. 바토(Charles P. Bartow) 스프링필드 부조병창장, 페이퍼클립 작전을 거쳐 1946년에 미국으로 귀화한 독일 마우저 사 출신의 오토 H. 폰 로스니처(Otto H. von Lossnitzer) 계획관리부장, 허먼 F. 호손(Herman F. Hawthorne) 소화기연구개발부장이 있다.[2] 올린-윈체스터, 해링턴 & 리처드슨 사의 것은 결함이 많아 애초에 탈락했으므로 실질적인 경쟁 상대는 미합중국 육군보병위원회의 편파적인 지지를 받고 있던 스프링필드 조병창 뿐이었다.[3] M1 개런드의 아버지 존 C. 개런드(John C. Garnad)가 직접 설계한 T31 외에도 T44와의 경쟁에서 탈락한 FAL 기반의 T48로도 실험이 진행되었다.[4] 이는 9번 아이언 골프클럽의 별칭으로, 미합중국 육군 소화기 연구개발부장 르네 R. 스터들러(Rene R. Studler) 대령의 부관인 잭 버드(Jack Bird)가 미합중국 국방부 청사 뜰에서 스프링을 넣은 파이프를 가지고 날려보낸 골프공의 포물선 궤적에서 비롯되었다.[5] 왼쪽을 기준으로 탄띠식 경기관총형, 불펍형, 유탄발사기 부착형, 일반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