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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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미국의 애니메이터이자 감독, 제작자, 성우.
2. 생애[편집]
7남매 중 셋째이자, 유일한 아들로 태어난 그의 아버지는 미국 서부에서 철도, 수도, 하수 관련 사업에 임하던 건설 감독이었던 관계로, 고등학교를 다니기 전까지 해나의 가족들은 여러 차례 이사를 했었다가, 캘리포니아 주 와츠에 정착했다.
와츠에 위치한 콤프턴 고등학교에서 청소년 보이스카우트와 댄스 밴드부 활동을 했었고, 저널리즘과 구조 공학을 배우기 위해 콤프턴 대학에 진학했으나 대공황의 여파로 인해 자진중퇴하였다. 그 뒤엔 잠시 엔지니어 업무를 맡아 극장 건설현장에서 일하기도 했으나 얼마 못 가 직장을 잃고 세차장에서 간간이 일을 해나가게 된다.
때마침 해나의 여동생의 남자친구가 자신이 아는 영화 타이틀 카드 제작사 '퍼시픽 타이틀 앤 아트'에 취직할 수 있게끔 격려해주었고, 타이틀 카드의 도면을 그리는 작업에서 재능을 보여 1930년 휴 하먼과 루돌프 아이징이 설립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2] 로 입사해 잉크&페인트 칠 작업과 가사 작성 업무를 맡게 된다. 1933년에 하먼-아이징 콤비가 워너 브라더스와의 계약을 끊고 메트로-골드윈-메이어로 자진 이직했는데, 윌리엄 해나는 그들을 따라간 스탭 중 1명이었었고, 1936년 해피 하모니(Happy Harmonies) 단편의 감독을 맡으면서 첫 애니메이션 감독 활동을 시작하였다. 1938년부터 1년간 MGM 단편 애니 시리즈 The Captain and The Kids에서 수석 감독을 맡기도 했으나 흥행이 부진하면서 스토리 작가로 좌천당하기도 했었다. 이 시기 평생의 동지가 된 조셉 바베라를 만나 팀을 구성해 1940년 "Puss Gets the Boot"(톰과 제리 1화)를 감독해 아카데미상 수상이라는 대성공을 거두어 미국 애니 업계에 본격적으로 인지도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MGM 카툰 스튜디오(MGM Cartoon Studio)의 제작자인 프레드 큄비는 추가로 톰과 제리 단편 애니를 만들기를 꺼렸으나, 해나와 조셉 바베라는 그에 상관하지 않고 계속 톰과 제리 단편을 제작해 많은 인기를 얻도록 공헌해 주었다.[3] 하지만 큄비는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개최될 때마다 그들을 초대하지 않고 혼자 시상식에 나왔으며, 당시의 관행에 따라 단독 제작자로 등재된 상태로 트로피가 출시되었다고 한다. 1955년 프레드 큄비가 제작자에서 은퇴하자 해나와 조셉 바베라는 MGM 애니메이션 디비전에 배치되어 관련 업무를 맡게 되지만, 얼마 안 지난 1957년에 둘은 MGM의 갑작스런 카툰 스튜디오 폐쇄로 톰과 제리의 제작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해에 해나는 제이 워드와 접촉해 crusader rabbit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제작했지만 곧 제이와의 관계를 끝냈고, 조셉과 다시 결합하여 비즈니스 관리자, 텔레비전 기업 관계자 등과 접촉해 여러 논의를 거친 다음 조지 시드니와 공동으로 해나-바베라 프로덕션을 설립해 컬럼비아 픽처스의 TV 부문을 담당했던 스크린 젬스와 배급 & 자본 거래를 주선하여 TV판 애니메이션 시리즈 제작에 나섰다.
새로 설립한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첫 작품으로 러프 앤 레디 쇼를 공개한 이후 이듬해까지 허클베리 하운드 쇼와 요기 베어 쇼를, 그리고 1960년에 시트콤 The Honeymooners를 패러디한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을 제작했는데 이 작품은 방송된 이래 저연령층과 성인층을 포함한 많은 시청자들에게 해나-바베라 프로덕션의 명성을 끌어올린 히트작이 되었다. 이후로 30여 년간 수많은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제작하여 책임 제작자를 맡으면서 업계 내외적으로 막대한 인지도를 쌓아나갔다.
해나는 말년까지 40여 년간 미국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활동한 경력 기간 중에 8번의 에미상 부문 수상을 포함해 다양한 관련 어워드에서 트로피를 수여받았다.
2001년 3월 22일 수년간 앓고 있었던 지병인 후두암이 악화되어, 로스엔젤레스의 노스 할리우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이 치러진 후 무덤은 캘리포니아 주의 레이크 포레스트에 위치한 Ascension Cemetery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반면 3년 연하인 그의 아내는 무려 101세까지 장수하다 2014년에 세상을 떠나며 그의 곁에 같이 묻혔다.
3. 여담[편집]
- 윌리엄 해나(와 친구 조셉 바베라)가 감독, 제작에 관여한 애니메이션의 우정 파트너쉽, 콤비 캐릭터 구도, 우스꽝스런 개그 슬랩스틱, 가족주의 연출은 미국 애니메이션이 현재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1980년대 후기 이전까지 미국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 당시 그들이 설립한 해나-바베라 프로덕션의 예산 절감, 캐릭터간의 대화 집중적 활용, 배경화면 변경속도 증가, 사용 도면 수 감소는 이후 (사실상) 미국 TV 애니메이션 제작 기법의 표준이 되었으며, 1990년대부터 TV 애니메이션 제작 예산이 증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미국의 수많은 TV 애니메이션 제작사는 해당 요소를 지속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더불어 데뷔 이전에 해나-바베라 프로덕션에서 근무한 겐디 타르타콥스키, 세스 맥팔레인, 크레이그 맥크라켄 등은 현재 미국 애니메이션 업계의 메이저 애니메이터로 활약하고 있다.
- 조셉과는 서로 비교되는 점들이 많았었는데 해나가 알던 지인들은 애니메이터들이 많이 있었지만, 조셉은 할리우드 유명 인사들과 종종 만났었다고 한다. 또한 해나는 야외 활동에 흥미가 있었지만 조셉은 해변이나 맛있는 음식들, 음료를 좋아한 성격이었는데 직장 밖에서는 서로간의 교류를 하지 않았었다고 한다. 심지어 각자 저술했던 전기에서도 서로에 대한 언급을 거의 자제했었지만, 조셉은 훗날 우리는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했고 서로의 작업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다.
- 미국 애니메이션의 황금기에서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업계 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했기 때문에, 월트 디즈니, 척 존스처럼 해나와 조셉 콤비를 다룬 인터뷰 기사들과 TV 인터뷰 영상들을 포함한 관련 자료들이 많이 남아있는 애니메이터이기도 하다.
- 해나가 갑작스럽게 톰과 제리 단편의 제작을 멈춰야 했던 뒷배경은 당시 MGM에서 사업 관리자한테 조셉과 같이 이끌던 카툰 부서를 폐쇄하고 모든 스탭을 해고한 소식을 전화 통화 한 통으로 하달받았었다고 하며, 톰과 제리가 매우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의논조차 없던 결정에 매우 당혹스러웠었다고 한다.
4. 관련 인물[편집]
- 동료
- 전 동료
- 상사
- 프레드 큄비(Fred Quimby)
- 테드 터너
- 라이벌 - TV판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설립자로써 업계에서 서로 경쟁자의 위치에 있었다.
- 루 샤이머 & 놈 프레스콧 - 필메이션 작품들의 주요 책임 제작자.
- 앤디 헤이워드 - DiC 엔터테인먼트 작품들의 주요 책임 제작자.
- 기용한 애니메이터, 연출가
- 에드 바지(Ed Barge)
- 에드 베네딕트(Ed Benedict)
- 톰 레이(Tom Ray)
- 스콧 브래들리(Scott Bradley)
- 조지 고든(George Gordon)
- 케네스 뮤즈(Ken Muse)
- 레이 패터슨(Ray Patterson)
- 어브 스펜스(Irv Spence)
- 마이클 멀티즈(Michael Maltese)
- 워렌 포스터(Warren Foster)
- 아트 데이비스(Art Davis)
- 알렉스 루비(Alex Lovy)
- 샘 레지스터(Sam Register)
- 폴 디니
- 존 크릭팔루시
- 톰 루거
- 세스 맥팔레인
- 부치 하트맨
- 겐디 타르타콥스키
- 크레이그 맥크라켄
5. 관련 영상[편집]
생전 인터뷰 영상 중 하나. 조셉 바베라와 같이 인터뷰하였다.
1988년 라디오 프로그램 tom snider show 인터뷰(조셉 바베라와 공동으로 인터뷰) 영상.
6. 작품 목록[4][편집]
- 톰과 제리 -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대표작 중 하나. 1940년부터 1958년까지 총 114편. 이 중 톰의 목소리를 직접 더빙했다. 특히 톰의 그 유명한 비명 소리들이 바로 윌리엄 해나가 한 더빙. 이 비명소리는 후속 TV 시리즈 제작에도 활용하고 있어 지금도 그의 목소리를 만나볼 수 있다.
- 톰과 제리 쇼(1975)
- 톰과 제리 키즈 쇼(1990)
- 톰과 제리 더 무비(1992)
- 톰과 제리의 요술반지(2002)
- MGM 시절
- Happy Harmonies - To Spring(1936)
- Gallopin' Gals(1940)
- The Goose Goes South(1941)
- Officer Pooch(1941)
- War Dogs(1943)
- 해나-바베라 프로덕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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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임 제작자를 맡은 애니메이션도 이 문단에 포함하는데, TV 애니메이션은 대체로 조셉 바베라와 같이 공동 책임제작자(executive producer)를 맡았다.[2] 명칭은 하먼-아이징 프로덕션, 해나가 입사한 당시엔 루니 툰, 메리 멜로디즈 단편을 제작하고 있었다.[3] 정확히는 해나와 조셉이 프레드 큄비를 만났었는데, 큄비는 루돌프 아이징이 톰과 제리 1편을 제작한 공로를 인정했었지만 실제로 작업한 흔적이 없는 정황을 발견했으며 아이징과 별개로 새 애니메이션 부서를 시작하고 싶었던 그가 고양이와 쥐가 나오는 카툰의 아이디어를 추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 줬다고 한다.[4] 책임 제작자를 맡은 애니메이션도 이 문단에 포함하는데, TV 애니메이션은 대체로 조셉 바베라와 같이 공동 책임제작자(executive producer)를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