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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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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함경북도 최북단, 한반도 최북단의 군. 면적 720 km2. 회령시, 무산군, 혜산시와 더불어 탈북이 많은 시·군 중 하나이기도 하다.
2. 한반도 최북단[편집]
한반도 최북단 지점[2] 이 이곳에 위치해 있다. 온성은 한반도의 지역들 가운데에서 서울특별시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다. 직선거리로 약 650 km 정도인데 이어도보다 멀고, 중국의 선양시, 칭다오시, 일본의 히로시마시보다도 멀다.[3]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보다 조금 가까운 수준. 부산광역시에서는 오사카시는 물론이고 나고야시보다 멀고 시즈오카까지의 거리와 비슷하다. 제주도에서는 대만의 타이베이시보다 멀다.[4] 심지어 같은 함경도 안에서 가장 큰 도시인 함흥까지의 직선거리는 약 400 km. 서울에서 땅끝마을이 직선으로 약 370 km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거리이며, 함흥에서 대전까지와 같은 반경에 온성이 위치해 있는 셈이다.[5] 이어도에서는 약 1,280 km로 중국의 샤먼시, 가오슝시와 타이난시를 포함한 타이완섬의 모든 지역보다도 멀고 중국 광둥성 동부 산터우 지역이나 필리핀 최북단의 바타네스 제도 잇바얏 섬과 비슷한 거리에 있다. 그에 비해 몽골 동쪽 끝인 눔룩 국립공원까지 거리는 약 920 km로, (마라도와 이어도를 제외한) 한반도 남쪽 끝인 전라남도 해남군까지 거리보다 40 km 정도 더 가까울 정도이다.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고작 150 km로, 같은 함경북도인 청진시와의 거리와 비슷하다. 연길시는 고작 50 km도 안되는 지척인 거리에 있으며 가장 가까운 근처의 한국 도시인 회령시보다도 가깝다.
온성을 원점으로 이어도까지 반경을 원으로 잡으면 일본 혼슈섬을 다 덮는다. 홋카이도 중북부, 규슈 남부, 오키나와 빼고 다 덮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앞서 말했듯 위도가 북위 43도까지 올라가는 한반도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행정구역이다.[6] 한반도의 최북단이기 때문에 하지에는 낮의 길이가 한반도에서 가장 길고, 동지에는 가장 짧다. 하지 무렵 최북단인 풍서동의 일출 시각은 4시 40분, 일몰은 20시 03분이다. 한반도 동북지역이지만 위도가 높기 때문에 일몰 시각이 남한 최서단인 백령도와 같다. 일출, 일몰시간은 저렇지만 실제로 날이 밝아지는 상용박명의 시작시간은 4시 6분에 시작해서 20시 37분까지 지속된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온성 지역의 하짓날은 새벽 4시부터 날이 밝아오기 시작해서 거의 저녁 9시에 가깝도록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는다는 이야기.
한국인들에게는 제법 익숙한 도시이기도 하다. 온성군 남양로동자구에는 온성세관이 있으며 조중친선대교, 통칭 도문대교를 통해 투먼과 연결된다. 반대편인 도문대교에서 30위엔을 내면 다리 한가운데까지 가서 남양구를 정면으로 볼 수 있다. 여담이지만 1954~75년 사이에는 현 남양구가 온성읍이라고 불렸으며, 현재의 온성읍은 1952년 행정구역 폐합시 온성면 서흥리와 동화리 일부를 합쳐 온성읍이라고 했다가 2년 뒤 고성리로 격하된 것을 1975년에 다시 읍으로 지정했다. 이유는 이웃한 왕재산[7] 을 혁명전적지로 꾸리면서 관련 행정일군과 지원시설들을 좀 더 가까이에 주둔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8]
온성군 풍서리는 북위 43도에 위치한 한반도 최북단 마을이다. 투먼에서 훈춘까지 가는 길에 있는 경영촌(Qingrongcun, 庆荣村) 마을에 가면 두만강 건너로 풍서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만 이 마을에는 중국 국경경비대가 주둔하고 있으니, 괜히 강 건너로 손을 흔들거나 소리를 질러서 잡혀가지 않도록 주의하자.
3. 역사·경제[편집]
동관리, 삼봉리 등 지역에서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발굴되어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두만강 유역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숙신, 읍루, 예맥, 옥저, 부여, 말갈 등 부족국가들이 있었으며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영역에 속했다.
고구려가 멸망한 뒤에는 당나라가 차지하였다가 발해 건국 이후 동경용원부에 소속되었다. 926년 발해 멸망 이후에 온성은 중국 요, 금, 원의 지배 하에 있었다.
조선 초 세종 시기 김종서 장군의 4군 6진 개척 당시에 다시 한민족의 영역이 된 곳이다. 그리하여 온성도호부로 명명되었고 진이 설치됐다.
신립 장군이 1583년 온성부사로 근무했던 기록이 있다. 당시 1만 여진족을 불과 500기의 갑사로 격파해서 당대 최고의 무장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 남만주철도와 이어졌던 곳이 함북선 삼봉역, 함북선 남양역, 함북선 훈융역이었다. 각각 룽징시 카이산툰(開山屯 : 개산둔)진, 투먼시, 훈춘시와 연결되어 있었는데, 현재는 철교들은 다 작살나고 남양역 - 투먼역간 철교 하나만 달랑 남았다. 현 온성읍 근처에 도로다리가 하나 더 있었는데 이 역시 박살. 현재 만주와 연결된 다리는 남양과 삼봉에 하나씩 있다. 대부분의 물동량은 남양을 통하고 삼봉 방면은 상대적으로 미약한 편이다. 청진시 방향으로 가는 물동량을 수입하기엔 함경북도에서는 꽤 큰 도시인 회령시가 버티고 있다.
온성군은 원래는 북부에 위치한 군답지 않게 조그만 군이었으나,[9] 이웃한 종성군을 찢어서 나눠먹어서(…) 커진 것. 원래는 면적이 430 km2에 불과했으며, 함경북도에서 가장 작은 군이었다. 현재 함경북도에서 가장 작은 군은 화대군(면적 480 km2).
끊어진 다리들 중 온성다리는 가장 가까운 마을인 양수진(Liangshuizhen, 凉水镇)에서도 무려 5km 가량을 걸어 들어가야 하니, 개인이 가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최북단이라는 점을 빼면 이렇다 할 특징이 없어보이지만, 함경북도의 논농사에서 비중이 큰 지역이기도 하다. 북한 치하에서 종성군을 흡수하면서 함북에 얼마 없는 평야지대를 상당수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함북에서 온성을 제외하면 그럭저럭 평야를 가진 곳은 회령시와 경원군 정도가 전부다.
4. 기후[편집]
냉대기후에 속하며 연교차가 큰 대륙성 기후에 속한다. 최한월은 1월이며 평균기온은 -13℃로 매우 춥다. 한반도 최북단이긴 하지만 위도는 그다지 높지 않은 북위 43도에 불과하다. 프랑스의 마르세유, 일본의 삿포로시, 캐나다의 토론토 그리고 코소보의 미트로비차 비슷한 위도이다.[10][11] 그런데 마르세유의 1월 평균기온은 영상 7.1℃로 온성군보다 20℃ 이상 더 따뜻하다.
옆나라 일본의 삿포로시의 위도가 북위 43°03'으로 온성군보다 조금 더 높은데 삿포로의 1월 평균기온은 고작 -3.6℃로 해주시와 비슷한 수준이다. 온성군보다 위도는 조금 높은데도 온도는 10℃나 더 따뜻하다는 뜻이 된다. 위도가 겨우 북위 43°에 불과한데도 동위도의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추운 셈이다. 이는 기후의 차이를 생각해 봐야하는데 삿포로의 경우 냉대 습윤 기후, 온성군의 경우 냉대 동계 건조 기후이기 때문이다. 대륙성 기후의 경우 해양성 기후에 비해 연교차가 크기 때문에 여름에는 더 덥고 겨울에는 더 춥다.
최난월인 8월의 평균기온은 영상 22.2℃로 함경북도 지역에선 비교적 높고 연교차는 무려 35℃를 넘는다. 연 평균기온은 5.9℃로 매우 낮지만 그래도 주변지역인 무산군, 종성군보다는 조금 더 높다. 강수량은 547.2mm로 매우 적은 편이며, 그나마 겨울에는 햇볕만 쨍하다.
겨울에는 삼한사온이 매우 뚜렷한 특징을 나타내는 곳이며 첫 서리가 9월 상순에 시작하여 마지막 서리가 4월 중순에 내린다. 그러니 무상일수가 최소 133일, 최대 153일에 불과하다.
5. 인근 행정구역[편집]
■ 함경북도 소속
6. 교통편[편집]
도로는 북부의 여러 도시를 연결하는 신의주~우암 간 도로, 온성~종성, 온성~남양, 온성~동포 간 도로가 있다. 북한은 대한민국 기준의 7번 국도 같은 분류체계를 사용하지 않으므로 아래 문단에서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