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트 프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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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나치 독일의 슈츠슈타펠 무장친위대 및 질서경찰 대장, SS-WVHA 본부장 대리.
2. 초기 행적[편집]
1898년 독일 제국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태어난 프랑크는 1916년에 독일제국군에 입대하여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다. 이후 1919년 군에서 제대하였다.
3. 나치당 행적[편집]
프랑크는 1932년 4월 8일 슈츠슈타펠에 입대하고, 1933년 2월 1일 나치당에 입당했다. 1933년 4월부터 하인리히 힘러의 참모로서 다양한 행정직을 역임했다. 다하우 강제수용소가 설립된 뒤에 관리 책임자를 맡기도 했다. 친위대의 행정관련 업무를 수행했던 프랑크는 1938년 2월부터 오스발트 폴의 대리인이 되었고, 1939년 4월 무장친위대의 관리를 담당했다.
4. 제2차 세계 대전[편집]
프랑크는 1942년 2월 친위대 경제 및 행정본부[1] 에서 A 부서의 국장에 임영되었다. 프랑크는 "아우구스트 프랑크 메모"를 통해 유대인의 재산을 착취하는데 관여하였다. 1943년 프랑크는 국장에서 사임후[2] 질서경찰의 행정 지도자로 임명되었다. 1944년 친위대 대장으로 승진한 프랑크는 한스 위트너 무장친위대 대장의 참모로 배치되었다. 11월부터 종전까지 프랑크는 육군행정실장으로 독일 국방군의 관리 및 공급을 담당했다.
5. 전후 재판과 행적[편집]
전후 "프란츠 뮐러"라는 가명으로 시멘트 공장에서 일하던 프랑크는 1945년 12월 17일 미군에게 체포되었다. 프랑크는 뉘른베르크 폴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15년 형으로 감형되었다. 프랑크는 1954년 5월 7일 란츠베르크 형무소에서 석방되었고, 1984년 3월 21일 향년 85세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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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S-WVHA[2] 프랑크의 후임으로 하인츠 카를 판슬라우가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