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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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87대 천황
시조 덴노
四條天皇
파일:사조천황.jpg
출생1231년 3월 16일
야마시로국 교토 일조실정전
(現 교토부 교토시)
사망1242년 1월 9일 (향년 10세)
야마시로국 교토 한원내리
(現 교토부 교토시)
능묘쓰키노와릉(月輪陵(월륜릉)
재위기간일본 황태자
1231년 10월 28일 ~ 1232년 10월 31일
제87대 천황
1232년 10월 31일 ~ 1242년 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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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츠히토(秀仁(수인)
부모부황 고호리카와 덴노
모후 중궁 구조 슌시
형제자매2남 4녀 중 장남
배우자여어 구조 겐시
종교불교
원호사조인(四條院(사조원)
시호사조 덴노(四條天皇(사조천황)
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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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에이(貞永(조영, 1232년 ~ 1233년)
덴푸쿠(天福(천복, 1233년 ~ 1234년)
분랴쿠(文曆(문력, 1234년 ~ 1235년)
가테이(嘉禎(가정, 1235년 ~ 1238년)
랴쿠닌(曆仁(력인, 1238년 ~ 1239년)
엔오(延應(연응, 1239년 ~ 1240년)
닌지(仁治(인치, 1240년 ~ 1242년)


1. 개요
2. 생애
3. 후계 문제와 가마쿠라 막부의 관여



1. 개요[편집]


일본의 제87대 천황. 고호리카와 덴노와 구조 슌시의 아들이었다. 후궁으로 구조 겐시가 있었다.


2. 생애[편집]


1231년 2월 12일에 태어나 바로 4월 11일에 친왕이 되었고, 10월 28일에 황태자가 되었다. 1232년 12월 5일에 겨우 두 살의 아주 어린 나이로 즉위했다. 그러나 1233년 9월 18일에 모친이 사망하고, 다음해인 1234년 8월 6일에는 부친인 고호리카와 상황이 붕어했다.

시조 덴노의 모후인 구조 슌시는 구조 미치이에와 사이온지 린시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사이온지 긴츠네의 외손녀였다. 그 때문에 권력은 시조 덴노의 외척인 사이온지 긴츠네와 구조 미치이에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시조 덴노는 1242년 1월 9일, 재위 9년 만에 붕어했다. 궁전에서 넘어진 것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3. 후계 문제와 가마쿠라 막부의 관여[편집]


고호리카와 덴노의 아들은 시조 덴노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차기 천황은 누가 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구조 미치이에는 자신의 친척인 준토쿠 덴노의 6남 타다나리 왕을 즉위시키려고 했다. 여기에는 당시 가마쿠라 막부의 지지를 받아 절대적인 권세를 휘두르고 있었던 사이온지 긴츠네는 물론 조정 귀족 대다수가 동의했다. 그러나 1221년에 고토바 상황이 가마쿠라 막부의 토벌을 시도했을 때(조큐의 난) 준토쿠 상황이 이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유배되었기 때문에, 가마쿠라 막부는 그의 아들이 덴노로 즉위하는 것을 강하게 경계했다.

그 때문에 막부는 사자(使者)를 교토로 파견하여 조정 귀족들의 의사를 제지하고, 고토바 상황의 막부 토벌 계획에 가담하지 않았던 츠치미카도 상황의 7남 구니히토 왕을 천황의 자리에 앉혔다. 그가 바로 고사가 덴노이다. 이 일 이후 황위 결정권은 가마쿠라 막부에게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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