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토야 유미 (r1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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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토야 유미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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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일본 골드 디스크 대상 수상자
파일:일본골디.png
일본 골드 디스크 대상[1]
1990년1991년1992년
사잔 올 스타즈마츠토야 유미CHAGE and ASKA
[1] 1991년부터 1996년까지는 '아티스트 오브 더 이어' 대신 시상식 이름을 그대로 따 '일본 골드 디스크 대상'을 대상 명칭으로 사용했다.

마츠토야 유미
松任谷 由実 | Yumi Matsutoya
파일:松任谷由実.webp
본명 松任谷 由実(まつとうや ゆみ (마츠토야 유미, Yumi Matsutoya)[1]
출생 1954년 1월 19일 (70세)
도쿄도 하치오지시
국적
파일:일본 국기.svg

신체 164cm | O형
배우자 마츠토야 마사타카(1951년생)(1976년 결혼 ~ 현재)
학력 타마미술대학 (회화학과[2] / 졸업)
직업 싱어송라이터, 작곡가, 작사가
데뷔 1972년 싱글 返事はいらない
수훈 자수포장 (2013년 수상)
일본 문화공로자 (2022년 수상)
소속사 운모사(雲母社)[3]
레이블 유니버설 뮤직 재팬 | EMI Records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트위터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
2. 경력
2.2. 마츠토야 유미 시대
3. 영향력
4. 어록
5. 디스코그래피
5.1. 앨범
5.2. 싱글
5.3. 베스트 앨범
6. 히트곡
7. 타 아티스트에게 제공한 히트곡 목록
8. 다른 가수들의 커버 목록
9. 기타



1. 개요[편집]


일본싱어송라이터로, 일본 음악계에 한 획을 그은 국민 가수이자 뉴 뮤직의 선구자다.

애칭은 유밍(ユーミン)[4], 작곡시의 예명은 쿠레타 카루호(呉田 軽穂)[5]. 원래의 성은 아라이(荒井)이며 결혼 후 마츠토야 유미로 활동하고 있다.


2. 경력[편집]



2.1. 아라이 유미 시대[편집]


현재도 명곡으로 회자되는 고등학생 때의 작곡한 데뷔곡 'ひこうき雲(비행기 구름)' 만 19세에 작곡한 'やさしさに包まれたなら(상냥함에 감싸이면)

1954년 도쿄도 하치오지시의 '아라이 고후쿠야[6]'에서 태어나 6세에는 피아노, 11세엔 샤미센, 14세엔 베이스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14세에 처음으로 프로로서 데뷔, 15세에는 작사가, 17세에는 작곡가[7]로 차례차례 데뷔하였다.

음악에 본격적으로 눈을 뜬 것은 중학교 시절, 당시 재학 중인 릿쿄 여학원은 개신교로, 매일 예배시간이 있었고 주일 예배도 의무였다. 예배당에는 파이프오르간이 있었는데 그 곳에서 들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토카타와 푸가(BWV 565)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렇게 학교 성가대에도 속하게 되고 클래식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한편, 1966년부터 시작된 후지 테레비의 일본 최초 서양음악 프로그램에 그녀는 또다시 빠져들게 된다. 그 중에서도 프로콜 하럼A Whiter Shade of Pale가 그녀 인생의 전기가 되었고, 그렇게 6살 때부터 6년간 배운 피아노 실력으로 작곡을 하게 된다. 음악 외에도 그림을 좋아했기에 미대를 목표로 했고 입시 미술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집이 있는 하치오지시를 시작해, 학교가 있는 미타카시, 학원이 있는 오차노미즈를 왕복하는 매일이 시작되었고 거리가 거리인 만큼 여러 곳에서 놀기도 했는데 그 중 한 곳인 디스코에서도 종종 얼굴을 내밀어 카마야츠 히로시, 호소노 하루오미, 마츠모토 타카시 등을 포함한 많은 뮤지션들과 안면이 트이게 된다. 이 후 부모에게 들키지 않게 가발로 자는 척을 하고 밤에는 각 계 각 층의 유명인이 드나드는 미나토구의 이탈리아 레스토랑[8]에 자주 출입하였고, 그 곳에서 모인 아티스트들과의 인연이 데뷔의 계기가 되었다. 'The Fingers'[9]사생팬이었다고도 한다. 1972년 18세의 나이로 '返事はいらない(답장은 필요없어)' / '空と海の輝きに向けて(빛나는 하늘과 바다를 향해서)'를 발매하며 아라이 유미 이름으로 데뷔. 이 싱글은 300장 밖에 팔리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는 희귀 싱글이 되어있다.

1973년, 현재도 일본 대중음악사의 걸작으로 아직도 회자되는 앨범 'ひこうき雲(비행기 구름)'을 발매하였고 1975년 싱글 'あの日にかえりたい(그 날로 돌아가고 싶어)'가 첫 오리콘 차트 1위를 하며 제 1차 붐을 맞는다.[10] 당시 그녀의 음악은 일본 음악계의 충격을 줬다고 한다. 당시 일본 음악계는 포크송 전성시대였고, 그런 시절의 세련된 팝적인 감각의 아라이 유미의 노래는 많은 음악 팬들과 뮤지션들에게 충격을 줬다고 한다. 이때부터 그녀는 천재 뮤지션 타이틀을 얻게 된다.

1976년은 아라이 유미 시절 인기의 절정이었던 해로, 베스트 앨범인 YUMING BRAND가 연간 앨범 차트 3위에 이르렀다. 이 외에도 앞서 발매한 정규 앨범 3개가 모두 연간 차트 15위권 안에 드는 등 1976년은 그녀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 해 발표한 싱글 あの日にかえりたい는 1976년 연간 싱글 차트 10위를, 1976년 초에 발매한 翳りゆく部屋는 동년도 연간 싱글 차트 43위를 기록했다.

이 시절 아라이 유미는 맑고 고운 캐롤 킹 풍의 부드러운 팝 스타일의 어쿠스틱한 음악으로 주목받았다. 핫피 엔도의 멤버였던 호소노 하루오미[11]스즈키 시게루가 결성한 밴드 틴 팬 앨리(ティン・パン・アレー)가 데뷔 때부터 백밴드를 맡았는데, 이에 힘입어 커다란 인기를 얻었다. 틴 팬 앨리 외에도 코즈믹 라라바이(コズミックララバイ)가 백을 연주하기도 했다.

그녀가 아라이 유미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것은 불과 4년밖에 안된다. 이 시대의 발매한 4개의 정규 앨범(ひこうき雲, MISSLIM, COBALT HOUR, 14番目の月)은 모두 일본 음악계의 대표적인 명반 혹은 수작으로 꼽히고 있다. 음악적으로는 이 시기가 그녀의 전성기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지금까지도 일본에서 계속해서 회자되는 명반과 명곡들을 발표했다.


2.2. 마츠토야 유미 시대[편집]


1976년, 앞서 언급한 틴 팬 앨리의 멤버인 프로듀서 및 작곡가인 마츠토야 마사타카와 결혼.[12]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매년 2개씩 자신의 앨범을 릴리즈함과 동시에 타 가수들에게도 곡을 제공하며 빠른 페이스로 음악을 만들어 낸다. 또한 리조트 등지에서 여는 콘서트라는 것도 이 시기에 처음 도입. 이 분야에서도 황무지를 개척한 여성 아티스트로 평가받는다. 1980년 이후로는 기타 베이스의 잔잔한 멜로디로 '다다미 4장 반(2.25평) 포크'라 불리며 포크송으로 대표되던 일본의 팝을 도회적이고 매우 세련된 '뉴 뮤직'[13] 탈바꿈시키게 만든 공로자로써 평가받고있다.

80년대 유밍의 최대 히트곡 '守ってあげたい(지켜주고 싶어)' '일본의 인식을 변화시킨 '恋人がサンタクロース(연인이 산타클로스)'
싱글로 발매되지는 않았지만 명곡으로 회자되고 있는 'リフレインが叫んでる(리플레인이 소리치고있어)' 90년대 유밍의 최대 히트곡 '真夏の夜の夢(한 여름 밤의 꿈)'
90년대 또다른 히트곡 'Hello, my friend' 현재까지도 봄의 명곡으로 회자되고 있는 '春よ、来い(봄이여 오라)'

1981년 '守ってあげたい'(지켜주고 싶어)[14]가 당시 음반 구매력이 지금보다 강하지 않았던 80년대의 판매량 수치를 강타하는 60만 장이라는 판매량을 기록하고 제 1회 일본 작곡 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제 2차 붐이 도래. 당시의 일본은 전업 작곡가가 작곡이라는 한 분야만 담당하던 시대로 작사, 작곡, 노래까지 모든 것을 한 명의 가수가 담당하는 '싱어송라이터'라는 구분이 생소했던 시기라 음악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우타다 히카루가 싱어송라이터로써 어린 나이로 데뷔했을 때와 같은 충격이었다고.[15] 이 후의 오리지날 앨범은 17곡 연속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하고 1988년 앨범 'Delight Slight Light KISS' 이후엔 8장 연속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는 등 80년대는 그야말로 '마츠토야 유미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어마어마한 히트를 치게 된다. 크리스마스 무드가 한창이었던 1980년 12월 발매한 '恋人がサンタクロース(연인이 산타클로스)'[16][17]는 신토와 불교의 영향이 매우 강해 그저 산타클로스와 어린애들만의 이벤트나 평범한 종교행사라고 여겨졌던 일본크리스마스연인들의 연애 행사로 변화시킨 곡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이 곡은 아직도 일본에서 크리스마스하면 상위권으로 떠오르는 노래 중 하나.

버블 절정기였던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은 그녀 인기의 최절정기로, 당시 일본은 마츠토야 유미가 지배하다시피 했다. Delight Slight Light KISS, LOVE WARS, 天国のドア 3개 앨범이 연속으로 연간 1위를 달성하여 일명 ‘유밍 붐’을 일으켰다.[18] 당대 인기 영화 ‘나를 스키장에 데려가줘’, 미쓰비시 자동차 광고, 인기 드라마 ‘雨よりも優しく’, 당대 최고 흥행 애니메이션이었던 마녀 배달부 키키에 그녀의 노래들이 쓰이는 등 그녀의 음악은 당대의 아이콘이었다. Delight Slight Light KISS의 수록곡인 ‘リフレインが叫んでる’는 일본에서 버블 절정기를 상징하는 노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마츠코 디럭스는 방송에서 “나, 버블의 무렵의 대유밍의 시대가 20세 전후로 진짜였으니까. 나는 버블은 유밍이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듯 일본에서 마츠토야 유미는 버블 절정기를 가장 잘 체현한 스타로 회자되고 있다.

1983년부터 1991년까지 Merry Xmas from Yuming이라는 크루즈 선상 파티를 개최했는데, 1인당 4만엔이라는 고액의 참가비에도 불구하고 정원 500명에 대해 매년 2000명 정도의 신청이 있을 만큼 인기였다. 요코하마 항에서 출발하는 호화 크루즈에서 라이브 공연을 갖고, 칠면조 요리를 관객들에게 제공했다고 한다. 하선하기 전 유미가 직접 500명과 일일이 악수하고 말을 나눴다고 한다. 해당 파티는 80년대 당시의 풍물시로서 큰 주목을 받았다. 유미의 높은 인기와 당시 일본의 풍족함이 잘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녀가 처음 선보인 보여주는 무대1978년 자동차를 타고 등장하는 무대를 시작으로 무대에 엘리베이터를 설치, 30미터나 되는 용 위에 올라타는 등 갖가지 퍼포먼스로 콘서트라는 영역을 벗어난, 당시로써 획기적인 무대를 보여주며 음악과 무대와 기획력에서 모두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가 되었다. 80년대 후반에는 버블경제의 호황을 타고 마츠토야 유미가 작곡을 주었던 아이돌 하라다 토모요가 주연을 맡은 영화 '나를 스키에 데려가 줘(私をスキーに連れてって)'의 OST스키붐을 일으키며 젊은이들 사이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젊은이들의 카리스마', '연애의 교주'라 불렸다. "실연"이라는 소재를 깊은 감정으로 부르며 시대의 파도를 탄 유밍이었으나 1990년대부터는 민속적인 음악에 심취하여 '真夏の夜の夢(한 여름 밤의 꿈)', '春よ、来い(봄이여, 오라), '輪舞曲(윤무곡)', 'Weaver of Love~ORIHIME'[19] 등의 음악을 만들어 낸다.

1989년에는 앨범 '天国のドア(천국의 문)'이 전년에 발매한 앨범 'LOVE WARS'와 함께 당시 일본 가요계 역사상 첫 더블밀리언을 기록하며 일본의 앨범 시장을 개척했다. 다다음해인 1991년 발매한 앨범 'DAWN PURPLE' 역시 일본 팝 역사상 최초로 발매 첫 주 오리콘 밀리언차트를 기록하며 일본의 팝 역사를 써내려갔다. 1998년 발매한 'Neue Musik'는 380만 장이라는 어마어마한 대기록을 세웠고 이 앨범은 오리콘 역대 앨범 판매량 15위에 랭크되어있다.

CM, 드라마 주제곡으로 쓰인 곡은 셀 수 없이 많으며 1970년대부터 2010년대인 현재까지 자신의 곡 뿐만 아니라 타 가수들에게 만들어 준 많고 많은 곡들마저도 초히트시킨 천재. 2018년 일본에서 방송된 아라시니시야가레에서 한 출연자는 마츠토야 유미가 처음 '유밍'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작곡을 해낸 연령, 마츠토야의 구 소속사 후배이자 2018년 은퇴한 J-POP 여자 솔로계의 레전드 아무로 나미에가 데뷔한 연령, 우타다 히카루가 첫 작곡, 작사를 한 연령 모두가 14세라는 나이였으므로 세상에서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14세에 어떤 일을 일으킨다고 언급하였다. 특히 80년대 전설의 아이돌 마츠다 세이코에게 곡을 많이 주었는데 그 모든 곡들이 전부 히트를 쳤다.

1989년 지브리 스튜디오의 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의 OST 'ルージュの伝言(루즈의 전언)'이 또 한번 히트.
あの日にかえりたい(그날로 돌아가고 싶어,1975)의 원곡자 마츠토야 유미는 자신의 곡을 새롭게 편곡해서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에게 주었고 김윤아는 가사를 붙였다. 김윤아는 같은 해에 발매된 솔로 데뷔앨범 Shadow Of Your Smile에 수록.
2011년 홍백가합전에 출장해 春よ、来い(봄이여, 오라)를 불렀다. 이 무대가 엔딩이 아닌데도 전 출연진이 후반부에 같이 나와 장식해 그녀의 위용이 확인되었다.

2018년 출전한 홍백가합전에서는 '헤이세이 시대의 마지막'이라는 의미로 시청자들의 투표로 선정된 아라이 유미 시대의 'ひこうき雲(비행기구름)'과 'やさしさに包まれたなら(상냥함에 감싸인다면)' 두 곡을 함께 불렀다. 동시대에 라이벌로 평가되는 가수가 있다면, 역시 나카지마 미유키이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고 실제로도 친한 사이라고 한다.

2022년에는 데뷔 50주년을 맞아 베스트 앨범을 발매했다. 싱글로 먼저 발매된 곡 ‘Call me back’은 AI로 구현한 아라이 유미와 현재의 마츠토야 유미가 듀엣으로 노래를 불러 화제가 되었다. 이 앨범이 오리콘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오리콘 사상 최초가 되는 '1970년대 ~ 2020년대' 의 6연대 연속으로 앨범 1위를 기록, 또한 쇼와 시대·헤이세이 시대·레이와 시대의 3시대에서의 앨범 1위 획득도 달성했다.

2022년에는 일본 문화공로자 칭호를 받았다. 수상 소감으로 "그동안 신세진 분들, 그리고 제 음악을 사랑해주신 많은 팬분들과 이 영예를 나누고 싶습니다. 팝은 듣는 사람에게 닿았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지론이 있기 때문입니다. 듣는 사람 수만큼의 추억이 되고 거기서 더 자유롭게 날갯짓을 해나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


3. 영향력[편집]


일본 음악계를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 중 한 명이다. 1970년대부터 20세기를 넘어 21세기2020년대까지 모든 시대에서 오리콘 차트 1위를 유일하게 기록한 가수이다. 자신이 만든 곡으로 대히트를 친 음악가이지만, 다른 아티스트들에게도 제공한 곡으로도 히트곡을 만든 일본 가요계의 전무후무한 뮤지션 중 한 명이다.

발매작은 앨범이 밀리온 통산 10작품, 앨범 순위 통산 24작품, 2015년 8월 뮤직 스테이션 발표 기준 총판매량 4,004만장으로 역대 6위에 해당하는 기록. 역대 솔로 여가수 중에서는 2위[20]이다. 2012년 데뷔 40주년으로 발매된 앨범 '일본의 사랑과, 유밍과。'[21]가 솔로 아티스트 및 여성 아티스트 역사상 판매 기록 첫 3000만장 돌파라는 대기록을 남겼으며 2018년 새 앨범 '유밍으로부터, 사랑의 노래'가 발매 첫 주 10만장 돌파로 1위를 차지하여 오리콘 통산 여성 아티스트 최연장자로 64세에 1위를 기록.

매년 겨울 니가타에서 열리는 콘서트 동원수(여성 아티스트 부분)도 매년마다 갱신하는 하는 등 현재도 매우 건재하게 활동하며 여성 아티스트의 정점에 올라와 있다. 작사 작곡을 직접 한 곡들로 히트를 많이 치며 일본 대중가요 유행 패러다임까지 바꿔왔던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업적이 대단한 동아시아 여성 대중음악인으로서는 그야말로 독보적인 아티스트라 할 수 있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일본의 국민 그룹인 사잔 올 스타즈쿠와타 케이스케[22]와 자주 비교되곤 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목상태 악화로 예전만큼의 실력은 나오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 음악성과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독자적인 세계관 덕분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가창력과 음악성은 별개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4. 어록[편집]


전형적인 자의식 강한 까칠하고 괴팍한 예술 천재이다. 일본 연예계뿐만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괴팍한 예술가들이 공식석상에서 망언을 해 왔지만, 이 사람은 여성 대중음악사 전체에서 1등으로 꼽히는 역대급 천재라 그런지 어록의 레벨도 가히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천재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이다. 특히 자신만의 확고한 예술적 세계관을 구축하면서도 파격적인 발언도 거침없이 쏟아붓는 괴짜 여성 천재는 일본 대중 음악사와 가요계를 통틀어도 흔치 않은 캐릭터성이라 이러한 부분들이 되려 마츠토야 유미의 매력과 개성을 한층 끌어올렸다.

그래도 이와는 별개로, 큰 논란이나 스캔들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며, 일본에서는 사생활에 문제가 없다면 저 정도는 그냥 관대하게 넘어가는 편이다. 이 어록들도 발언자인 마츠토야 유미가 일본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서 불편해해도 납득하고 넘어가는 거지, 이런 거친 발언들에 뒷받침할 만한 실력도 명성도 없는 일개 개인이 내뱉었으면 순식간에 밉상으로 찍혀서 갱생의 여지도 없이 연예계에서 영구 퇴출당하고도 남았다.

후술되는 어록들은 참으로 유미답다 못해 파격적일 정도이다.

  • "내 음악은 실업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애들이 듣지 말았으면 한다."
  • 팬이 아이를 데려와서 "악수해주세요"라고 말하자 "나 애들 진짜 싫어한다고!"
  • "내가 팔리지 않는다는 건 은행이 망하는 일만큼 있을 수 없다."
  • "저는 천재라구요. 싼 가격으로 내 음반을 살 수 있는 걸 감사히 여기세요."
  • "내 음악은 부르주아용 음악. 가난한 사람을 상대로 하지 않는다."
  • "섹스를 하고 있으면 원시적인 동물이 된 느낌이다."
  • "오늘 내 옷은 27만엔이야. 이딴 게 말이지."
  • 단기대에 다니는 학생이 학교 축제에 출연 요청을 하자 거절하며, "단기 대학을 다닌 사람과 엮이고 싶지 않다."
  • "학력도 없이 노가다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내 라이브에 오면 질이 떨어진다."
  • 점술가에게 코 모양이 부자는 될 수 없는 사주라고 듣자 "벌써 부자거든요!!"
  • "제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팬 여러분들 덕분이 아니라 제 재능 덕이에요."
  • 콘서트에서 다른 사람들과 반대로 손을 흔드는 관객을 보고, "잠깐만, 다들 오른쪽으로 손 흔드는데 왼쪽으로 흔드는 사람 누구야? 지옥으로 떨어져."
  • 오자와 켄지[23]가 싱글 '春よ、来い'의 가격이 왜 500엔인지를 묻자 "이제 돈 따위 필요없어요." [24]
  • "아직도 물 안 가져왔어? 빨랑 가져와! 목 마르단 말이야! 진짜 여긴 도움이 안되는 스탭뿐이구만!"(ANN의 생방송 중 녹음에 목소리가 들어가서 음성이 전국적으로 방송을 탐.)

같은 연예계 관계자들에게 뱉은 망언.

  • 아키모토 야스시: 프로듀스하는 것도 한물 갔다.
  • 야마구치 모모에: 일본의 아이돌 수준이 낮은 걸 느껴버린다.
  • 이츠와 마유미[25]: 한번 굴러서 다시 돌아온 얼굴.
  • 우타다 히카루: 기획사가 만들어 낸 가짜 우타히메.
  • 오기노메 요코: 그 춤 괜찮아? 오카마같은 스텝인데 사기당한 거 아냐?
  • 오니츠카 치히로: 당신 리스트컷할 것 같이 생겼네.
  • 와타나베 미사토: 5등신이군요. / 에너지를 밖에 발산시키는 것만으로는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 자이츠 카즈오: 생건조한 오징어채같다.
  • 사다 마사시: 촌충?
  • 사카모토 큐: 얼굴에 따개비같은 거 붙어있을 것 같아서 기분 나빠.
  • 시이나 링고: 당신 얼굴은 각도에 따라 못난이로도 보이고 미인으로도 보이네.
  • 타마키 코지: 초등학생 레벨의 작사. 캬바레같다.
  • 나카모리 아키나: 가짜 치아(데뷔 전 앞니만 교정)가 예쁜 사람이네.
  • 하마사키 아유미: 그 속눈썹 바퀴벌레 같아.
  • 혼다 미나코: 네가 아티스트라면, 나는 신이야.
  • 마츠다 세이코: 인세 돌려줄테니 내 곡 내놔! 그런 이상한 아이돌한테 곡 안 써줬음 좋았어.[26]
  • 미소라 히바리: 도쿄돔의 복귀 콘서트를 보면서 미소라 히바리의 피라미드도 거기까지라고 생각했다.
  • 오자키 유타카: 날라리같이 생겨서 인상이 안 좋아.
  • 쿠보타 토시노부: (코러스로 참가했을 때)네. 그는 '악기'로써 참가했어요.
  • 쿠와타 케이스케: 뭐든 영어 너무 남발해.
  • 쿠도 시즈카: 그 병든 것 같은 얼굴…
  • 코다 쿠미: 물때.
  • 코무로 테츠야: 가녀리고 병약하다.
  • 코바야시 마미: 몸은 가녀리나 은 두껍다.
  • 타케우치 마리야: 하고있는 게 재미가 없다.
  • 나카지마 미유키: 억울하면 결혼해![27]
  • 마츠토야 마사타카(본인의 남편): 만약 그이가 교통사고를 당해 머리에 이상이 생겨 음악가로서 불능이 되면 나는 그를 버릴 거예요.

물론 이 어록들이 전부 실제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28] 평소에 라디오에서 무례한 발언도 많이 뱉는 걸로 유명하며, 스스로에 대한 자존심이 굉장히 높아 성격이 매우 나쁜 편이라는 말이 많다. 하지만 독설을 내뱉은 타케우치 마리야나카지마 미유키는 개인적으로도 매우 오랜 시간 친분이 깊은 사이이고, 나카지마 미유키에게는 '굉장히 재능있는 사람. 여자로서 유일하게 인정하고있다'고 언급하는 등 사생활 면에서 문제는 없어 보인다.

우타다 히카루에게 또한 '지켜주고 싶은 목소리. 이건 천성적인 재능이다'라고 칭찬하였으며, 마츠다 세이코2015년 데뷔 35주년을 기념해 31년만에 신곡을 만들어주거나, 이전에 무시했던 프로듀서를 통해 만들어진 '아이돌'이란 존재에게도 좋은 얘길 건내거나, 과거에 독설을 날렸던 인물들과도 친근하게 대담을 펼치는 등 현재는 나이를 먹으며 매우 둥글어졌다. 모모이로 클로버 Z는 최근에 특히 팬이라고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벤트에서 대담했을 때 모모클로풍의 캐치프레이즈로 자신을 '태어날 때부터 오카마 목소리, 마음은 때때로 오카마입니다. 마츠토야 유미!'라고 소개했다.

여담으로 마츠토야 유미와 친분이 깊은 오다 카즈마사는 마츠토야 유미의 정면에서 "여전히 노래 못부르는구나"라고 했다는 얘기가 있다. 사실 보컬 자체는 음색이 좋긴 하지만, 기교 자체는 특출나진 않다. 작사, 작곡 능력이 워낙 천재적이여서 뜬 케이스.

파일:유밍.png
라디오 방송에서 '안젤리나 졸리'를 '존졸리나 알리'라고 말하는 스푸너리즘도 구사했다고 고백했다.[29]

2020년에는 아베 전 총리의 사임 뉴스를 보고 울었다는 발언을 해 주목받았다. 이에 대해 모 정치학자가 '빨리 죽는 게 낫다'는 반응을 해 더욱 화제.


5. 디스코그래피[편집]



5.1. 앨범[편집]


1집 ひこうき雲 (1973)
2집 MISSLIM (1974)
3집 COBALT HOUR (1975)
4집 14番目の月 (1976)[30]
5집 紅雀 (1978)
6집 流線形‘80 (1978)
7집 OLIVE (1979)
8집 悲しいほどお天気 (1979)
9집 時のないホテル (1980)
10집 SURF&SNOW (1980)
11집 水の中のASIAへ (1981)
12집 昨晩お会いしましょう (1981)[31]
13집 PEARL PIERCE (1982)
14집 REINCARNATION (1983)
15집 VOYAGER (1983)
16집 NO SIDE (1984)
17집 DA•DI•DA (1985)
18집 ALARM à la mode (1986)
19집 ダイアモンドダストが消えぬまに (1987)[32]
20집 Delight Slight Light KISS (1988)
21집 LOVE WARS (1989)[33]
22집 天国のドア (1990)[34]
23집 DAWN PURPLE (1991)
24집 TEARS AND REASONS (1992)
25집 U-miz (1993)
26집 THE DANCING SUN (1994)
27집 KATHMANDU (1995)
28집 Cowgirl Dreamin’ (1997)
29집 スユアの波 (1997)
30집 Frozen Roses (1999)
31집 acacia(アケイシャ) (2001)
32집 Wings of Winter, Shades of Summer (2002)
33집 VIVA! 6x7 (2004)
34집 A GIRL IN SUMMER (2006)
35집 そしてもう一度夢見るだろう (2009)
36집 Road Show (2011)
37집 POP CLASSICO (2013)
38집 宇宙図書館 (2016)[35]
39집 深海の街(2020)


5.2. 싱글[편집]


返事はいらない (1972)
きっと言える (1973)
やさしさに包まれたなら (1974)
12月の雨 (1974)
ルージュの伝言 (1975)
あの日にかえりたい (1975)[36]
翳りゆく部屋 (1976)
潮風にちぎれて (1977)
遠い旅路 (1977)
ハルジョオン・ヒメジョオン (1978)
入江の午後3時 (1978)
埠頭を渡る風 (1978)
帰愁 (1979)
ESPER (1980)
白日夢・DAY DREAM (1980)
星のルージュリアン (1980)
守ってあげたい (1981)[37]
夕闇をひとり (1981)
ダンデライオン~遅咲きのたんぽぽ (1983)
VOYAGER~日付のない墓標 (1984)
メトロポリスの片隅で (1985)
SWEET DREAMS (1987)
ANNIVERSARY~無限にCALLING YOU (1989)
真夏の夜の夢 (1993)[38]
Hello, my friend (1994)
春よ, 来い (1994)
輪舞曲 (1995)
まちぶせ (1996)
最後の嘘 (1996)
告白 (1997)
Sunny day Holiday (1997)
Lost Highway (1999)
PARTNERSHIP (2000)
幸せになるために (2001)[39]
7 TRUTHS 7 LIES~ヴァージンロードの波方で (2001)
雪月花 (2003)
ついてゆくわ (2005)
虹の下のどしゃ降りで (2006)
人魚姫の夢 (2007)
ダンスのように抱き寄せたい (2010)
夜明けの雲 (2011)
恋をリリース (2012)
ひこうき雲 (2013)
気づかず過ぎた初恋 (2015)
残火 (2016)
深海の街 (2019)
あなたと 私と (2020)
知らないどうし (2020)
雪の道しるべ (2020)
Call me back (2022)[40]


5.3. 베스트 앨범[편집]


YUMING BRAND (1976)[41]
ALBUM (1977)
Neue Musik (1998)[42]
sweet, bitter sweet YUMING BALLAD BEST (2001)
Yuming THE GREATEST HITS (2002)
SEASONS COLOURS -春夏選曲集- (2007)
SEASONS COLOURS -秋冬選曲集- (2007)
日本の恋と, ユーミンと (2012)
ユーミンからの, 恋のうた (2018)
ユーミン万歳!(2022)


6. 히트곡[편집]


  • 1973.11.05. ひこうき雲(비행기 구름)[43]
  • 1973.11.20. ベルベット・イスーター(벨벳 이스터)
  • 1974.04.20. やさしさに包まれたなら(상냥함에 감싸이면)[44]
  • 1974.10.05. 12月の雨(12월의 비) / 瞳を閉じて(눈을 감고) / 海を見ていた午後(바다를 보고 있던 오후)
  • 1975.02.20. ルージュの伝言(루즈의 전언) - 마녀 배달부 키키의 삽입곡.
  • 1975.06.20. 卒業写真(졸업사진) / 雨のステイション(비 내리는 스테이션)[45]
  • 1975.08.01. 『いちご白書』をもう一度('딸기백서'를 다시 한번)[46]
  • 1975.10.05. あの日にかえりたい (그 날로 돌아가고싶어)
  • 1976.03.05. 翳りゆく部屋 (그늘져 가는 방)
  • 1976.11.20. 中央フリーウェイ(주오 프리웨이) / 14番目の月(열네 번째 달)
  • 1978.10.05. 埠頭を渡る風(부두를 건너는 바람)
  • 1979.12.01. DESTINY
  • 1980.12.01. 恋人がサンタクロース(연인이 산타클로스) / サーフ天国, スキー天国(서프 천국, 스키 천국)
  • 1981.06.21. 守ってあげたい(지켜주고싶어) - 80년대 유밍 최대의 히트곡. 2022년 NHK가 주최한 '청취자가 뽑은 마음의 유밍송 랭킹'에서 1위를 차지했다.#
  • 1981.11.01. カンナ8号線(칸나 8호선)
  • 1982.06.21 真珠のピアス(진주귀걸이) / DANG DANG
  • 1983.08.25. ダンデライオン~遅咲きのたんぽぽ(댄디라이온~늦게 피는 꽃) / 時をかげる少女(시간을 달리는 소녀)[47]
  • 1983.12.01. ガールフレンズ(걸 프렌즈)
  • 1984.12.01. ノーサイド(노 사이드) / DOWNTOWN BOY / BLIZZARD
  • 1985.06.01. 今だから(지금이니까) <오다 카즈마사, 자이츠 카즈오와의 콜라보>
  • 1985.08.01. メトロポリスの片隅で(메트로폴리스 한 구석에서)
  • 1985.11.30. 青春のリグレット(청춘의 리그레트) / シンデレラ•イクスプレス(신데렐라 익스프레스)
  • 1987.11.05. SWEET DREAMS
  • 1987.12.05. ダイアモンドダストが消えぬまに(다이아몬드 더스트가 사라지기 전에)
  • 1988.11.30. リフレインが叫んでる(리프레인이 외치고 있어) - 유밍의 곡중에서도 영향력이 강렬한 곡이라 일컬어짐.[48]
  • 1989.06.25. ANNIVERSARY
  • 1989.11.25. LOVE WARS / WANDERERS / Valentine’s RADIO
  • 1990.11.23. 満月のフォーチュン(만월의 포츈) / 天国のドア(천국의 문)
  • 1992.11.09. 愛のWAVE(사랑의 WAVE) <칼스모키 이시이와의 콜라보>
  • 1993.11.27. 真夏の夜の夢(한 여름 밤의 꿈) - TBS드라마 '誰にも言えない(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의 주제곡으로 사용. JASRAC상 금상을 수상한 유명한 곡. 누계 판매량 143만장을 기록한 유밍의 최대 히트 싱글.
  • 1994.09.07. Hello, my friend - 누계 판매량 135만장을 기록한 유밍의 메가 히트곡 중 하나. 유밍 부부와 친분이 있었던 아일톤 세나의 추모곡으로 쓰여졌다.
  • 1994.11.25. 春よ、来い(봄이여, 오라) - 하마사키 아유미, 마키하라 노리유키, aiko, 한국에서 임형주, MC 스나이퍼 등이 커버.
  • 1995.11.13. 輪舞曲(윤무곡)
  • 1997.11.12. Sunny day Holiday
  • 2001.01.11. 幸せになるために(행복하기 위해서)
  • 2007.07.11. ミュージック(뮤직) <테라오카 요히토, 유즈와의 콜라보>
  • 2010.05.26. ダンスのように抱き寄せたい(댄스처럼 안아주고 싶어)
  • 2016.11.02. 宇宙図書館(우주도서관)


7. 타 아티스트에게 제공한 히트곡 목록[편집]



  • 1971년 카하시 카츠미 - 愛は突然に[작곡]

  • 1975년 아그네스 창 - 白いくつ下は似合わない, 愛を告げて[작사•작곡]

  • 1975년 Hi-Fi-Set - 卒業写真[49][작사•작곡]

  • 1975년 Bang Bang - 『いちご白書』をもう一度[50], 冷たい雨[작사•작곡]

  • 1976년 Hi-Fi-Set - 朝日の中で微笑んで[51][작사•작곡]

  • 1976년 미나미 사오리 - 青春に恥じないように[작사]

  • 1976년 미키 세이코 - まちぶせ - 이시카와 히토미가 81년 커버하여 히트함[52], 恋のスタジアム [작사•작곡]

  • 고 히로미 - 20才を過ぎたら, 恋のハイウエイ, 宇宙のかなたへ, 君のおやじ, 雨にひとり 등[작사]

  • 1978년 미나미 요시타카, 오누키 타에코 - 日付変更線[작사]

  • 1979년 나카무라 마사토시 - 日時計[작사•작곡]

  • 1979년 브레드&버터 - あの頃のまま[작사•작곡]


  • 1980년 사카키바라 이쿠에 - イエ!イエ!お嬢さん[작곡]

  • 1983년 하라다 토모요 - 時をかける少女[작사•작곡]

  • 1984년 이나가키 준이치 - オーシャン・ブルー[작사•작곡]

  • 1984년 야쿠시마루 히로코 - Woman "Wの悲劇"より[작곡]
마츠토야 유미가 자신이 작곡한 노래 중 최고라고 꼽은 곡이다. 마츠토야는 2018년 예능 프로 아라시니시야가레에서 "이 노래를 작곡할때 이 내렸던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 1984년 코바야시 아사미 - 雨音はショパンの調べ[작사][53]

  • 1985년 타하라 토시히코 - 銀河の神話[작곡]

  • 1986년 야마세 마미 - メロンのためいき[작곡]

  • 1993년 미즈키 아리사 - 今年いちばん風の強い午後, 君が好きだから[작곡]

  • 1998년 사이조 히데키 - 2Rから始めよう[작사•작곡]

  • 2001년 김윤아 - 봄날은 간다[54][작곡]

  • 2006년 하지메 치토세 - 春のかたみ[작사•작곡]

  • 2010년 아야세 하루카 - マーガレット[작곡]


8. 다른 가수들의 커버 목록[편집]



  • 1974년 이토 사키코 - きっと言える

  • 1975년 Hi-Fi-Set - 海を見ていた午後


  • 1976년 미키 세이코 - 少しだけ片想い

  • 1977년 Hi-Fi-Set - 中央フリーウェイ, 雨のステイション

  • 1978년 야마가타 스미코 - あの日にかえりたい

  • 1979년 Hi-Fi-Set - DESTINY, 緑の町に舞い降りて







  • 1999년 NOKKO - COBALT HOUR

  • 2002년 aiko - セシルの週末



  • 2005년 히라하라 아야카 - 晩夏(ひとりの季節)






  • 2016년 Cocco - 何もなかったように[55]

  • 2016년 chay - 12月の雨[56]




9. 기타[편집]



  • 팝페라테너 임형주와의 친분으로 유명하다. 그를 한국의 양아들이라고까지 부르며 일본 내 후원자 역할을 톡톡히 한 바 있다. 2005년에는 경희대에서 열린 임형주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출연하기 위해 생애 처음으로 내한했다.

  • 집안이 기모노점인 부잣집인데다[57] 사회 명사들과 교류하는 등 엄청난 상류층 사람이다.[58] 어린 시절에는 가게의 직원이 무려 100여 명에 달했고, 자신과 언니의 머리를 빗어주는 직원도 있었다고 한다. 남편도 한 끝발 날리는 뮤지션에 자동차 평론가이니 만만치 않고.

  • 도쿄도 하치오지시에 위치한 아라이 오복점(荒井呉服店)이 마츠토야 유미의 친가이다. 그녀의 조부가 다이쇼 시대에 설립한 가게로, 어머니와 데릴사위로 들어온 아버지가 가게를 기업 수준으로 일궈냈다고 한다. 현재는 조카인 아라이 쿠미코가 사장을 맡고 있다.

  • 지브리 스튜디오의 장편 애니메이션에 노래가 무려 세 번이나 쓰인 바 있다. 마녀 배달부 키키에선 루즈의 전언(ルージュの伝言)과 따스함에 둘러싸인다면(やさしさに包まれたなら), 바람이 분다에선 비행기구름(ひこうき雲). 루즈의 전언을 제외한 나머지 둘은 각 작품의 OST.

  • 한국에서는 MC 스나이퍼[59]의 대표곡 중 하나인 '봄이여 오라'의 원곡자로 유명한데, 실제로 MC 스나이퍼와 그녀의 대표곡인 Knockin’ At The Door의 한국어 버전을 직접 부르기도 했다.

  • 자신과 동갑이기도 한 아베 신조 내외와 친분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2020년 아베의 퇴임과 관련한 발언으로 실랑이가 인 적 있다.

  • 자신이 라이벌이라고 꼽은 나카지마 미유키에 대해 2020년 예능에서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굉장한 노래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세계관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이가 나쁜 편이 사람들은 재미있을지도 모르지만,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녀에 대한 것을요."라고 말했다. #

  • 작사가 마츠모토 타카시와 많이 협업했다. 이 둘은 1980년대 마츠다 세이코의 많은 명곡을 만들어냈다. 2021년 마츠토야 유미는 "마츠모토 타카시씨 가사 안의 소녀성에 굉장히 감탄하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

  • 데뷔 50주년을 맞이해 2022년 12월 8일부터 2023년 2월 26일까지 롯폰기 힐즈 도쿄 시티뷰 모리 52층 전망대에서 ‘YUMING MUSEUM’을 개최하였다. 앨범과 콘서트 무대 의상부터 아라이 유미 시절에 사용한 피아노, 가발, 대학 그림 과제들도 함께 전시돼 있었다. 경치가 훤히 트인 곳에는 피아노가 한가운데 있고 그 위에 악보들이 흩어져 떨어지는 모습으로 연출됐다. 실제로 그 악보들은 유미가 직접 쓴 악보들.


[1] 결혼 전 본명은 아라이 유미. 활동명 또한 아라이 유미였으나, 결혼 후 마츠토야 유미로 활동 중이다.[2] 전공은 일본화.[3] 남편 마츠토야 마사타카도 소속된 2인 전용 기획사.[4] 유래는 데뷔 전 청소년기에 친분이 깊었던 중국계 일본인 사업가 'Sy Chen'이 유밍이라고 부른 것에서 따왔다. 당시 애니메이션 캐릭터 무민이 유행 중이였고, 중국어로 ‘유명’도 의미하고 있어 유명해지고 싶었던 그녀에게 지어준 것.[5] 왕년의 헐리우드 여배우인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에서 따옴.[6] 呉服屋. 기모노를 파는 가게[7] 14살에 작곡한 加橋かつみ - 「愛は突然に」[8] 도쿄 미나토구 아자부다이 3가에 위치한 'キャンティ'라는 가게로, 1960년부터 현재도 운영 중.[9] 60년대 일본에서 인기있던 밴드[10] 이때부터 살인적인 스케줄이 지속되어 한 번은 하네다 공항에서 쓰러진 적이 있었다고.[11] 훗날 사카모토 류이치, 타카하시 유키히로와 함께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라는 전설적인 일렉트로니카 밴드를 만들게 된다.[12] 마츠토야 마사타카는 현재도 마츠토야 유미의 조력자이며, 사실 이 때 은퇴하려고 했으나 전업주부로 살기 싫어 결혼 후의 이름으로 활동을 이어나가기로 결심했다고.[13] 시티 팝의 전신 정도 되는 음악적 기조로, 70년대 중반에 츠츠미 쿄헤이 등을 통해 장르화되었다. 마츠토야 유미 이전에 뉴 뮤직으로 유명했던 가수로는 오오타 히로미 등이 있다.[14] 표적이 된 학원(ねらわれた学園)의 1981년 실사판 주제가이다.[15] 우타다 히카루와는 생일이 같다.[16] 해당 곡은 마츠다 세이코도 불렀다.#[17] 또한 나카모리 아키나와 체커즈 등 많이 커버했다[18] LOVE WARS와 天国のドア는 역사상 최초로 더블 밀리언을 기록했다.[19] 1996년에 제작된 극장판 애니메이션 녹색나라 삐삐의 모험의 OST로 쓰였다.[20] 위 발표 기준으로 1위는 하마사키 아유미인데 오리콘 발표와는 너무 차이가 커서 신빙성이 애매하다. 오리콘 발표로는 마츠토야 유미가 1위, 하마사키 아유미는 200만장정도 뒤진 2위.[21] 유밍의 경력을 총망라한 올타임 베스트 앨범이다. 이 앨범은 롱런을 거듭해 2018년 100만장에 돌파했다. 나이 64세에 밀리언 앨범을 배출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22] 두사람은 2018 홍백가합전에서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즉흥적으로 일어난 일인데, 마지막 무대에서 "마음대로 신밧드"를 부르다가 전 출연진이 피날레를 위해 무대로 함께 나왔다. 쿠와타 케이스케가 나온 여러 가수들에게 마이크를 넘기다가 마츠토먀 유미에게도 넘겼는데 이때 마츠토야가 쿠와타에게 볼뽀뽀를 먼저 시전하고 불장난 댄스로 이어가면서 둘이 번갈아 노래를 불렀다. 쿠와타는 유밍상, 마츠토야는 쿠왓군 이라고 부르면서 불장난 댄스를 춘것. 참고로 이 사람이 쿠와타보다 2살 누나이자, 6년이나 선배(유미는 고등학교 졸업 직후에 데뷔했다)이다.[23] 1990년대에 활동한 뮤지션으로, 시부야계의 대표 그룹 플리퍼즈 기타의 멤버.[24] 근데 이 싱글. 발매 첫주에 1위를 찍고 밀리언을 달성했다.[25] 한국에서도 '코이비토요(恋人よ)'로 유명한 가수.[26] 실제로 마츠토야 유미는 처음 마츠다 세이코의 신곡을 작곡해달라고 마츠모토 타카시에게 부탁을 받았을 때 세이코가 곧 본인과 경쟁하는 라이벌이 될 것 같아 마츠다 세이코에게 곡을 써 주는 것을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계속된 설득 끝에 작곡을 해주기로 결정했는데, 이때는 '쿠레타 카루호'라는 가명을 이용해 곡을 써주기로 했다.[27] 나카지마 미유키는 현재도 미혼이다.[28] 미소라 히바리같은 경우만 하더라도 본인보다 훨씬 대선배이며 파급력과 영향력도 유미보다 훨씬 막강하고 쇼와 시대의 가희라고 불렸는데다가 역사에 한 축을 그을 정도였고, 사카모토 큐 또한 본인보다 훨씬 대선배인데다 파급력과 영향력도 유미보다 훨씬 막강하고 일본, 더 나아가 아시아 가수 최초로 빌보드 핫100 3주 연속으로 1위를 차지했으니 실제로 저런말을 했을지는 의문이다. 오자키 유타카는 비록 유미보다 후배이지만, 사후에도 앨범이 절판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판매될 정도로 끊임없이 재조명 및 재평가를 받는 걸 보면, 마츠토야 유미가 그렇게 무시해도 될 만한 아티스트는 아니다.[29] 해석: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라디오에서 안젤리나 졸리를 존졸리나 알리라고 말했다.[30] 아라이 유미 시절의 마지막 앨범.[31] 이 앨범을 시작으로 28집까지 17장 연속으로 차트 1위를 달성함.[32] 이 앨범을 시작으로 28집까지 10장 연속으로 100만 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함.[33] 22집과 함께 일본 역사상 첫 더블 밀리언 기록.[34] 21집과 함께 일본 역사상 첫 더블 밀리언 기록.[35] 28집 이후 처음으로 다시 차트 1위를 기록함.[36] 첫 차트 1위곡. 이 곡의 히트로 인기 가수 반열에 올랐다.[37] 주간 차트 1위는 못하고 2위에 그쳤지만, 80년대 유밍을 상징하는 히트 싱글.[38] 143만 장이 팔린 유밍 커리어상 최대 히트 싱글.[39] 현재 기준, 마지막으로 10만 장 넘게 팔린 싱글.[40] 데뷔 50주년 기념으로 AI 아라이 유미와 듀엣으로 발표.[41] 유밍 커리어상 첫 앨범 차트 주간 1위 기록[42] 판매 300만 장 돌파로, 일본 역대 앨범 판매량 15위를 기록.[43] 바람이 분다의 주제가[44] 마녀 배달부 키키의 주제가[45] 앨범 'cobalt hour' 수록곡. 졸업사진과 비 내리는 스테이션은 둘 다 Hi-Fi-Set이 부른 버전이 상당히 히트했다.[46] Bang Bang에게 제공한 곡. 70년대 일본 운동권 학생들 사이에서 반향을 일으켰다.[47] 하라다 토모요에게 제공한 곡[48] 여담이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소설집 '교통경찰의 밤'의 '천사의 귀'에서 진나이 슌스케 형사가 이 노래를 듣고 좋아하는 장면이 소설 도입부에 나온다.[작곡] A B C D E F G H I [작사•작곡] A B C D E F G H I J K [49] 유밍 본인의 셀프커버 버전이 유명하지만, 이쪽이 엄연한 원곡이다.[50] 유밍이 타 가수에게 제공한 곡 중 첫 차트 1위를 기록한 곡.[51] 유밍 본인이 4집 14番目の月에서 셀프커버함.[작사] A B C D [52] 타케우치 미유도 커버했다.[53] 참고로 이 곡은 이탈로 디스코 그룹 Gazebo의 I like Chopin의 리메이크다.[54] 1976년 발표한 あの日にかえりたい(그 날로 돌아가고 싶어)를 리메이크 했다는 설이 잘못 퍼지기도 했다. '봄날은 간다'는 OST를 위해 유밍이 새로 쓴 곡이다.[55] 립반윙클의 신부 삽입곡으로 쓰임.[56]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주제가로 사용됨.[57] 기모노는 한 벌에 몇 백만에서 비싸게는 몇 천만 엔에 달하는 굉장히 비싼 품목이다. 특히 도쿄의 전통있는 기모노 집들은 에도 시대부터 생겨난 거라 200~300년간 이어져 온 경우가 많다. 평범한 일본인들은 보통 부모로부터 기모노를 물려받거나 아예 기모노를 사기 위한 적금을 들기도 한다.[58] 장인정신이 강한 일본에서는 화과자, 기모노 등 가업을 이어가며 부를 축적하고, 명문가들의 경조사마다 납품을 해서 상류층과의 인맥도 두텁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과자가게, 한복집 아들 딸을 생각하면 안 된다.[59] 실제로 스나이퍼는 사카모토 류이치와 같이 작업한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