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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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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2. 서론
3. 영향
4. 전개 과정
4.2.1. 제3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1805 ~ 1806)
4.2.2. 제4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1806 ~ 1807)
4.2.3. 이베리아 반도 전쟁 (1808 ~ 1814)
4.2.4. 제5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1809)
4.2.6. 제6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1813 ~ 1814)
4.2.7. 제7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5. 인물
6. 관련 학술 서적
7. 관련 문서
9. 외부 링크
10. 둘러보기
1. 개요[편집]
Napoleonic Wars[11] , Napoleonic Era[12]
프랑스 혁명과 프랑스 혁명 전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정복 전쟁. 독일 일대[13] 에서는 침략자 나폴레옹에 대항해 싸웠다는 이유로 이를 해방 전쟁(Befreiungskriege)[14] 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전쟁 이후 100년 동안 유럽은 국지적인 전쟁은 있어도 전 유럽이 휘말리는 대규모 전쟁은 없는 일종의 평화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2. 서론[편집]
프랑스 혁명과 프랑스 혁명 전쟁의 여파로 발생한 나폴레옹 전쟁은 하나의 단일 전쟁과는 거리가 있으며 1805년의 제3차 대프랑스 동맹, 1806년~1807년의 제4차 대프랑스 동맹, 1809년의 제5차 대프랑스 동맹, 1813년의 제6차 대프랑스 동맹 그리고 1815년의 제7차 대프랑스 동맹으로써 크게 5개로 구성되어 있다.
집권 기간 동안 프랑스의 재정을 안정화하고 체계적인 군대를 확립한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 제국과 러시아 제국과 같은 유럽 열강들과의 전쟁에서 크게 선전하고 프로이센 왕국을 상대로도 승리하며 전 유럽을 장악해 나갔다. 다만 영국이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스페인-프랑스 연합 함대를 격파함에 따라 영국 침공 계획은 좌절되었다.
이 전쟁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 중 하나는 바로 대륙 봉쇄령으로 바다 넘어 영국의 경제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프랑스에 의해 시행되었으며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나폴레옹은 스페인을 점령하고, 대륙 봉쇄령에 따르지 않는 러시아까지 침공하다가 러시아군에 의해 뼈 아픈 패배를 당하고 도리어 몰락을 자초하게 된다.
오스트리아 제국과 프로이센, 러시아 제국이 약화된 나폴레옹의 군대를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결정적으로 패퇴시키고, 이어서 영국이 합류한 연합군이 프랑스를 침공해 파리를 함락시켜 나폴레옹을 엘바 섬으로 유폐시켰으나,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한 뒤 프랑스를 다시 장악하는 일이 벌어졌으며 이에 제7차 대프랑스 동맹이 결성되어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을 최종적으로 격파하고 그를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시켰다.
나폴레옹 전쟁은 근대 유럽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남긴 사건 중 하나로 평가된다. 나폴레옹의 유배 이후 유럽에서 개최된 빈 회의를 통해 세워진 빈 체제는 유럽에 새로운 국경을 그렸다. 민족주의와 자유주의는 전세계로 퍼져나갔고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스페인 제국에 맞서 라틴 아메리카 독립 전쟁이 발발했으며 독일과 이탈리아는 각각 근미래 통일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리고 특히나 영국은 이 전쟁 이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세계적인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3. 영향[편집]
3.1. 시작과 끝[편집]
프랑스 혁명 전쟁과 워낙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지라 '정확히 어느 시점을 나폴레옹 전쟁의 시작으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존재하지만 대체로 1796년의 이탈리아 원정을 그 시발점으로 본다.
다만 제1, 2차 이탈리아 전쟁이나 이집트 원정 모두 프랑스 제1공화국의 정통성을 인정받는 프랑스 혁명 전쟁의 일부이기 때문에, 혁명 전쟁과는 관련없는 순수히 나폴레옹 본인의 야심으로 시작한 전쟁만으로 따지면 영국이 아미앵 조약을 파기하고, 제3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이 시작된 1803년이 시발점이다. 끝나는 시점은 이론의 여지없이 워털루 전투가 끝나고 프랑스가 항복했던 시점인 1815년.
3.2. 이 시대의 의미[편집]
나폴레옹의 제국은 단순히 시대의 패자라는 것을 넘어 다른 쪽으로도 영향을 잔뜩 끼치기도 했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영국의 산업혁명이 유럽의 경제적 근대화를 촉발했다면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이 유럽의 정치적, 사회적 근대화의 흐름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근대 유럽이 전 세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고 다른 나라들도 근대 유럽을 모델로 근대화가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한국 같이 나폴레옹과 전혀 엮이지 않았던 비서구 국가들 입장에서도 엄청 중요한 사건이었다.
3.2.1. 군사적 영향[편집]
이 시대를 기점으로 군사학이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또한 전투식량 제작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병조림이 최초로 전투 식량으로 도입되었으며, 곧이어 통조림이 최초로 도입되었다.
3.2.1.1. 기술적인 측면[편집]
군사 기술적인 측면에서 이 전쟁은 상당히 보수적이다. 영국은 1807년 퍼커션 캡이 발명되었음에도, 특허료 주기 싫다는 이유로 계속 플린트락 소총을 고집했고,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기구를 통한 정찰을 도외시했고, 증기기관을 선박에 적용하는 것도 회의적으로 보았다. 참고로 이 시기에 최초로 증기 자동차가 발명되었다.
사실 어쩔 수가 없는 게 전쟁터에서는 새로운 무기보다 신뢰할 만한 무기를 더 선호한다. 퍼커션 캡 소총이 후장총만큼 획기적이지 않은 데다, 이 시기는 물론, 19세기 중반까지 기술 부족으로 증기기관은 안전성에 신뢰를 받지 못했다. 여기에 기구 역시 전장에서 사용하기 번거롭고 추락할 위험도 있기 때문에 외면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증기기관은 아직 광산이나 공장은 몰라도 바다에서 전투용으로 쓰기엔 미비했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흔히 기술의 혁신이 어쩌고 하는 제1차 세계대전 역시 일부 분야에서 "이미 만들어진 기술이 본격적으로 대량 도입"되거나, 혹은 "전쟁에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급히 개발을 추진한 기술"이 아니고서는 별 혁신이 없었다. 전쟁 중에 전쟁과 별개로 개발된 기술이 전쟁에 대거 도입되면서 계속해서 기술의 혁신을 불러일으키는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까지 가야 한다.
3.2.2. 정치적 부분[편집]
정치 부문에서도 군사 부문의 그것 못잖은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따라서 이후의 국제정세 또한 크게 달라진다.
3.2.2.1. 근대법의 탄생[편집]
현대 대륙법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나폴레옹 법전이 제정되었다.
3.2.2.2. 자유주의의 전파[편집]
또한 나폴레옹의 대규모 정복 활동을 통해 민족주의와 자유주의가 유럽 전역에 급속히 전파된다.
3.3. 이후의 유럽[편집]
나폴레옹 전쟁이 나폴레옹의 패배로 끝나게 되자 유럽 국가들은 이 시대 이후로 유럽은 엉망이 된 국경선과 더불어 나폴레옹 전쟁을 통해 확산된 자유주의와 혁명의 분위기를 잠재우기 위해 빈에서 회의를 진행한다. 오스트리아의 정치인 메테르니히의 주도하에 시작되었으며 회의에서 빈체제가 확립되었다.
한편 산업화 및 제국주의의 도래로 벨 에포크라는 일종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상술했듯이, 벨 에포크 시대에도 보오전쟁, 보불전쟁 등의 전쟁은 있었으나 그 기한이 짧고 국지적이라서 절대다수 유럽 국가는 평화를 누렸다. 그러나 정확히 100년 뒤, 인류는 유럽 대륙 전체를 휩쓸어버리는 또 다른 전쟁을 마주하게 되었다.
4. 전개 과정[편집]
4.1. 프랑스 혁명 전쟁 중[편집]
4.1.1. 제1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의 일부[편집]
- 이탈리아 원정 (1796 ~ 1797)
- 이집트 원정 (1798 ~ 1801) - 프랑스 혁명 전쟁의 일부
-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 (1799. 11. 9)
4.1.2. 제2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의 일부[편집]
- 제2차 이탈리아 전쟁 (1799 ~ 1800)
- 마렝고 전투 (1800.6.14)
4.2.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후[편집]
4.2.1. 제3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1805 ~ 1806)[편집]
4.2.2. 제4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1806 ~ 1807)[편집]
-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 (1806. 10.14)
- 아일라우 전투 (1807.2.7 ~ 2.8)
- 프리틀란트 전투 (1807. 6.14)
- 틸지트 조약
- 대륙 봉쇄령 (1806. 11. 21)
4.2.3. 이베리아 반도 전쟁 (1808 ~ 1814)[편집]
- 탈라베라 전투 (1809.7. 27 ~ 7.28)
- 부사코 전투 (1810.9.27)
- 살라망카 전투 (1812.7.22)
- 비토리아 전투 (1813.6.21)
4.2.4. 제5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1809)[편집]
- 에크뮐 전투 (1809.4.21 ~ 4.22)
- 아스페른-에슬링 전투 (1809.5.21 ~ 5.22)
- 바그람 전투 (1809.7.5 ~ 7.6)
4.2.5. 러시아 원정 (1812)[편집]
- 보로디노 전투 (1812.9.7)
4.2.6. 제6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1813 ~ 1814)[편집]
- 뤼첸 전투 (1813.5.2)
- 바우첸 전투 (1813.5.20)
- 드레스덴 전투 (1813.8.26 ~ 8.27)
- 라이프치히 전투 (1813. 10.16 ~ 10.19)
- 6일 전역 (1814.2.10 ~ 2.14 )
- 샹포베르 전투 (1814.2.10)
4.2.7. 제7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편집]
5. 인물[편집]
- 프랑스 제1제국
- 나폴레옹 1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나폴레옹의 26인 원수 (괄호 안은 제국원수 임명 연도다.)
- 장 란† (1804)
- 조아킴 뮈라 (1804)[17]
- 루이알렉상드르 베르티에 (1804)
- 앙드레 마세나 (1804)
- 장바티스트 베시에르† (1804)
- 에두아르 모르티에 (1804)
- 루이니콜라 다부 (1804)
- 니콜라 장드듀 술트 (1804)
- 미셸 네 (1804)[18]
- 장바티스트 주르당 (1804)
- 장바티스트 베르나도트 (1804)[19]
- 샤를 피에르 프랑수아 오주로 (1804)
- 프랑수아 조제프 르페브르 (1804)
- 프랑수아 크리스토프 켈레르만 (1804)
- 기욤 마리안 브륀 (1804)
- 카트린도미니크 드 페리뇽 (1804)
- 장 마티유 필리베르 세뤼리에 (1804)
- 아드리안 쟈노 드 몽세 (1804)
- 클로드빅토르 페랭 (1807)
- 오귀스트 마르몽 (1809)[20]
- 자크 마크도날 (1809)
- 니콜라 우디노 (1809)
- 루이가브리엘 쉬셰 (1811)
- 로랑 드 구비옹 생시르 (1812)
- 유제프 안토니 포니아토프스키† (1813)[21]
- 에마뉘엘 그루시 (1815)
- 루이 샤를 앙투안 드제†
- 앙도슈 쥐노
- 장 막시밀리앙 라마르크
- 조제프 보나파르트[22]
- 제롬 보나파르트
- 외젠 드 보아르네[23]
- 앙투안샤를루이 드 라살†(Antoine-Charles-Louis, Comte de Lasalle)[24]
- 샤를 드 라 베두아예르
- 피에르 캉브론
- 프랑수아 브뤼예†
- 제라드 뒤로크
- 앙리 그라티엥 베르트랑
- 조제프 푸셰
- 피에르 빌뇌브[25]
- 샤를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
- 조제핀 드 보아르네 ◆
- 마리 루이즈[26] ◆
- 사드 후작 ◆
- 피에르시몽 라플라스[27] ◆
- 조제프 푸리에 ◆
- 조제프 루이 라그랑주 ◆
- 마리앙투안 카렘 ◆
- 왕당파
- 오스트리아 제국
- 프란츠 2세
- 테셴 공작 카를 루트비히
- 슈바르첸베르크 공작 카를 필리프
- 요제프 라데츠키
- 요제프 알빈치
-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
- 루트비히 판 베토벤 ◆
6. 관련 학술 서적[편집]
링크, 링크2
- James Marshall-Cornwall, Napoleon as military commander, Penguin Books, 2002 : 양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이자 왕립지리학회 대표였던 제임스 마샬 콘웰이 쓴 책이다. 원본은 1967년에 출판 되었는데, 펭귄북스에서 2002년에 재발행하여 유통하였고 인터넷으로 구입할 수 있다. 나폴레옹 개인사와 함께 군사적인 성장과정을 서술하고 있으며 프랑스 혁명 전쟁부터 워털루까지 나폴레옹의 군사행적을 다루고있다.
- Gregory Fremont-Barnes and Todd Fisher,The Napoleonic Wars: The Rise And Fall Of An Empire, Osprey, 2004 : 국내에서는 플래닛 미디어가 <나폴레옹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번역/출간하였다. 울름전역때부터를 다루고 있고, 오스프리(출판사)에서 낸 책답게 군사 서술 위주이나 전쟁에 참여하였던 병사나 지휘관, 민간인들의 삶도 서술되어있는 등 입문서로 많이 추천되는 편이다.
- David G. Chandler, The Campaigns of Napoleon , Scribner (March 1, 1973) : 저자 데이비드 챈들러는 샌드허스트 및 군사지리학회와 군사역사학회, 왕립 군사학회에서 대표를 역임하는 등 군사사 특히 나폴레옹기 군사사 전문학자로, 이 책은 나폴레옹 전쟁 추천서로 각종 웹진에서 빠지지 않으며, 아마존닷컴 소비자 평점 5점 만점으로 나폴레옹 관련 서적으로 판매율도 독보적인 상위권에 올라있다고 알려져있다. 하드커버 양장본과 함께 아마존에서는 전자책도 판매하고있다.
- Vincent J. Esposito and John Elting, A Military History and Atlas of the Napoleonic Wars, Greenhill Books, 1999 : 원래 저자인 빈센트 에스포시토가 1967년에 냈던 책을 존 엘팅과 같이 작업하며 1999년에 재간행한 것으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나폴레옹 전쟁의 상세도면을 책 곳곳에 첨부한 책이다. 총 400페에지 가운데 컬러 도면만 169페이지에 달하며, 도면첨부때문에 책의 크기가 크고(254x330mm), 가격또한 만만치 않아 소비자 판매가격 정가가 150달러 정도다. 현재는 절판되었는지 중고서적만 유통되는데, 중고가격이 220-300달러에 배송비가 40-60달러로 한화로는 27~44만 원 정도의 높은 가격을 자랑한다.
- Count Yorck von War Art and Engineering, Atlas to Accompany Napoleon as a General, United States Military Academy, 1942 : 미육군사관학교에서 발행한 책으로 상세한 전투도면이 첨부되어있으며 가격은 위책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2010년에 재간행되었다.
7. 관련 문서[편집]
- 병종/군대
- 전술개념/군사(軍事)
8. 이 시대를 다룬 작품[편집]
- 도서
- 회화
- 음악
- 교향곡 제3번(베토벤) 일명 영웅 교향곡[42]
- 라데츠키 행진곡
- 1812년 서곡
- 만화/웹툰
- 영화/드라마
- 게임
- 나폴레옹: 토탈 워
-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43]
- 랑펠로
- 코삭
- 필드 커맨더 : 나폴레옹
- 마운트 앤 블레이드: Napoleonic Wars
- Commands & Colors Napoleonics
- 유럽전쟁 4
- Holdfast: Nations At War
- 로블록스 - Blood & Iron, Guts & Blackpowder[44]
- 유럽전쟁 6
- Europa Universalis 시리즈 - 1399년부터 프랑스 대혁명 시기 이후인 1821년까지 플레이 가능하다. 따라서 혁명 관련 시스템이 추가되어 있으며, 프랑스에겐 전용 이벤트가 추가되어 있다.
- March of the Eagles
- 성녀전기
- 미니어쳐 게임
9. 외부 링크[편집]
10. 둘러보기[편집]
[1] ~1806[2] 1805, 1809, 1813~[3] 1804~1807, 1812~[4] 1806~1807, 1812~[5] 1808~[6] ~1809, 1812[7] ~1804[8] 1804~[9]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때는 맞서 싸웠으나 이후 나폴레옹과 손잡고 영국,러시아와 맞서 싸웠다.[10] 초기에는 중립을 유지했으나 영국 및 스웨덴과의 갈등으로 나폴레옹 편에 붙었다.[11] 여러 차례의 전쟁, 전역이 나폴레옹이라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상호 연결되어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복수형으로 쓰인다.[12] 아예 하나의 시대로 취급되기도 한다.[13] 특히 프로이센 왕국과 오스트리아 제국[14] 정확히는 제6차 대프랑스 동맹과 프랑스가 벌인 독일 전역을 일컫는 명칭이다.[15] 당대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중세의 영향으로 모병제를 채택하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애시당초에 모병제와 징병제의 구체적인 구분과 확립이 매듭지어지지 않아서, 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단 한 번도 병력의 모집을 체계적으로 제도화한 국가가 없었다.[16] 직접적 관여자의 예시: 참전국의 국가수반, 군인, 정치인, 외교관 등.[17] 웬수 4호. 1800년 나폴리의 국왕 조아키노 1세로 즉위.[18] 웬수 3호. [19] 나폴레옹 입장에서 단연 웬수 1호. 그리고 명실상부한 전쟁의 최대 수혜자. [20] 웬수 2호. 이 양반의 전적 덕분에 전후 그 누구에게도 신뢰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21] 바르샤바 공국의 전쟁장관, 주 방위 사령관을 겸직하였다.[22] 1806년, 나폴리의 국왕으로 즉위. 1808년, 스페인의 국왕 호세 1세로 즉위.[23] 1806년, 이탈리아의 부왕(Viceré)으로 즉위.[24] 당대의 이름난 맹장 중 한 명. 경기병대를 이끌었으며, 여러 전투에서 활약하였다.[25] 나일 해전, 트라팔가르 해전 등지에서 넬슨에 맞선 프랑스의 제독.[26] 본래 오스트리아 인물이나, 나폴레옹의 두 번째 황후였다는 점에 주목하여 프랑스측으로 기재함.[27] 나폴레옹 집권기에 내무장관을 역임하기도 하였으나, 수학자로서의 면모에 주목하여 비관여자로 분류함.[28] 나폴레옹의 몰락에 큰 공을 세웠던 프로이센의 유명한 장군 게브하르트 레베레히트 폰 블뤼허의 성을 자신의 첫 증기기관차의 이름으로 땄다.[29] 아일라우 전투에서 활약한 장군. 나폴레옹을 상대로 백중세의 전투를 진행하였으며, 이 전투를 기점으로 연합군에게 나폴레옹도 해볼 만하다는 희망이 생기게 된다.[30] 조제프 보나파르트와 동일인물.[31] 이베리아 반도 전쟁에서 술트 원수를 상대로 분전했던 장군.[32] 이베리아 반도 전쟁에서 영국군과 함께 분전했던 장군.[33] 나폴레옹의 군대에 몸을 담기도 했었으나, 그보다는 페루의 총독, 그리고 아르헨티나 최초의 장군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34] 이탈리아 왕은 나폴레옹이 겸하고 있었다.[35] 이집트 원정 당시 나폴레옹에 맞서 싸웠다.[36] 이집트 원정 당시 아크레 공성전에서 니자므 제디드 군대를 이끌고 나폴레옹을 격퇴했다.[37] 이집트 원정 당시 나폴레옹에 맞서 싸웠다.[38] 이집트 원정 당시 피라미드 전투에서 맘루크를 이끌고 나폴레옹에 맞서 싸웠다.[39] 이집트 원정 당시 피라미드 전투에서 맘루크를 이끌고 나폴레옹에 맞서 싸웠다.[40] 나폴레옹 전쟁과 접점이 매우 많으므로 추가.[41] 시대는 동일하긴 하나, 존재하지 않는 용을 부리는 공군이 나오거나 적극적으로 해외로 확장을 진행하는 중국, 이미 200년 전에 정복당한 잉카 제국이 건재한 등 시대 배경만 가져온 것에 가깝다.[42] 본래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려던 작품이었다. 자세한 건 해당 항목 참조.[43] 나폴레옹이 주요 캐릭터 중 한 명으로 등장한다. 자세한 건 여기서를 보자.[44] 나폴레옹 전쟁 도중 좀비 사태가 터져 살아남아 탈출하는 게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