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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비상사태에서 넘어왔습니다.
말라야 비상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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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48년부터 1960년동안 영국령 말라야에서 공산주의자들과 중국 공산화에 자극받은 현지 화교 반군이 영국 세력 타도를 위해 일으킨 게릴라 전쟁이다.
2. 배경[편집]
말라야 공산당에서는 "반영민족해방전쟁" (Anti–British National Liberation War)이라고 불리지만 영국과 말레이시아인 다수에게는 "비상사태" 라고 불린다. 일본 제국의 침공 이후 영국령 말라야는 식량 가격이 폭등하고 주민 다수의 삶의 질이 급격히 하락하는 등 심각한 경제 재난을 겪었다. 일본 제국이 격퇴되고 나서는 쿨리로서 유입된 중국인 광부와 중국인 플랜테이션 농부들과 고무 생산에 종사하던 무슬림 말라야인 사이에 긴장이 높아지고 경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말레이시아 공산당이 폭동과 파업을 선동하며 반영 선전을 일삼는 등 정쟁 불안이 심화된다. 영국이 1948년 6월 17일 말라야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공산주의자들과 동조자들이 밀림 속으로 도망가 "말라야 민족 해방군" 을 결성했고 MNLA[1] 는 영국의 군사기지를 습격하기 시작했다. 이에 영국은 제초제 공중 살포를 통해 MNLA를 굶겨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민간인 보호에 관한 제네바 협정 위반이였다.
MNLA는 게릴라 전술로 교통 시설을 주로 파괴했다. MNLA의 지지도는 당시 말라야에 거주하던 가난한 중국인 이민자들에게 큰 지지를 얻었는데, 그만큼 MNLA의 게릴라 대원들 중 90%가 중국인이였고 10%는 말레이인, 인도네시아인, 인도인이였다. 여기에 화교 공산반군 수뇌부들은 직접 베이징으로 가 마오쩌둥을 알현하기도 했다.
3. 전개[편집]
중국의 공산화로 현지 공산주의 세력에 직접적으로 무기와 식량,물자 등을 공급할 수 있는 통로가 생겨 진압하려던 프랑스도 극심히 고전하고 결국 패퇴한 인도차이나 전쟁에 비해 말레이시아에서는 중국 공산당의 지원이 지리적 여건 등 때문에 미비했다. 여기에 이슬람교를 신앙하는 말레이인 다수가 가진 비무슬림인 화교에 대한 반감 때문에 반군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와 달리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했다. 클레멘트 애틀리 내각 역시 세계대전 후에도 식민제국을 유지하고 싶어했던 윈스턴 처칠 내각이나 네덜란드, 프랑스와는 대조적으로 식민지들의 자치 확대,종국적으로는 독립은 불가항력으로 보고 있었기에 말레이시아 비상사태는 인도차이나 전쟁이나 알제리 전쟁,인도네시아 독립전쟁 등에 비해 지저분한 식민지 전쟁이라는 인식은 덜했다. 결국 영국과 말레이군은 화교 공산반군을 축출하고 반란을 진압했다. 친 펑 등의 공산반군 수뇌부는 국외로 망명하게 된다.
4. 관련 문서[편집]
- 말레이시아 공산반란 -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중국의 지원을 받은 말라야 공산당이 일으킨 두번째 반란.
[1] 말라야 민족 해방군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