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배(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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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정치인.
2. 생애[편집]
1954년 전라남도 강진군에서 태어났다. 조선대학교부속고등학교, 조선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하였다. 5.18 민주화운동 때 박남선과 더불어 시민군 강경파의 지도자 역할을 했으며 계엄군의 광주 재진입 및 전라남도청 탈환작전 이전에 전남북도계엄분소장 소준열 장군 및 정시채 전라남도 부지사 등 계엄사령부와 협상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던 5.18 수습대책위원회의 회의장에 예비군 무기고에서 탈취한 권총을 소지하고 시민군 강경파의 주도권을 확립하였다. 진압 뒤 무자비한 고문을 당하여 얼굴에 상처가 나고 치아 2개가 부러졌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구로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주공화당 유기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할 때 따라가지 않고 민주당에 잔류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같은 해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특별보좌관에 임명되었다. 1997년 농지 용도변경 청탁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고 1999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1] 1998년부터 2000년 초까지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원내부총무를 역임하였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광주광역시장 민주평화당 후보로 공천을 받았으나, 후보등록 전 불출마를 선언했다.
2021년 7월경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선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 이후 윤석열 총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하자 실망스럽다며 지지를 철회했다. #
3. 선거이력[편집]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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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판결은 2000년 11월이 되어서야 대법원에서 상고기각으로 확정되어, 국회의원직을 유지한 채 임기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