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삼국시대에는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마한 거수국 중 하나가 소재했고, 이 거수국은 충청도 일대 마한 거수국들이 그랬듯 천안 목지국과 보다 긴밀한 관계였기에 3세기 중후반 경부터 4세기 초반까지 이어진 백제 VS 목지국 대결에서 목지국 편에 서서 백제에게 대항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4세기 초중반 경에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백제의 직접 지배령이 되었다. 그러나 4세기 말 광개토대왕이 거세게 아신왕의 백제를 몰아쳐대며 충청도를 종횡무진하던 시기에 고구려령이 된다. 이후 5세기 중반 나물 마립간의 신라가 경상도 서북부에서 고구려를 몰아낼 때 고구려군을 계속 추격하며 대파하던 시절에 신라령이 되지만, 475년 한성 공함 이래로 장수왕이 전력을 기울여 한반도에 전력투구하던 시절에는 다시 고구려령이 되면서 잉근내군(仍斤內郡)이 된다. 6세기 중반 신라진흥왕 때 신라 땅이 되었다가, 7세기 초중반 경 의자왕 때 백제령이 되지만 660년 백제 멸망과 함께 신라로 귀속된다.
8세기 중반 신라 경덕왕 때 지명을 한화하는 정책에 따라 괴양군(槐壤郡)으로 바꾸었고[6]
'잉걸불'의 '잉걸'이 '덩어리'라는 뜻이라서 덩어리 괴(塊) 자로 한역 되었는데 나중에 회나무 괴(槐)로 바뀌었으리라는 추측이 있다. 삼국사기에 나타난 괴양군(槐壤郡)·잉근내군(仍斤內郡)·괴주(槐州)에 대하여(기관 로그인 필요)
괴(槐) 자는 기본적으로 회화나무를 뜻하지만 관용적으로 재상, 정승, 대신을 뜻할 때도 있다.
9주 5소경 중 한주에 소속시켰다. 이후로는 890년대 후반에 태봉을 건국하기도 전인 궁예의 세력권에 들어갔고, 이후로는 태봉-고려의 흐름이 된다. 고려시대(940년)에는 괴주(槐州)로 불렸고, 조선 태종(1413년) 때 괴산으로 바뀌어 지금까지 이어진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청안군과 연풍군이 괴산군에 통합되고, 청주군에서 청천면이 편입되었으며, 충주군에서 감물면과 불정면이 편입되어 괴산군이 많이 확장되었다. 그러나 생활권을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통합한 탓에 구 청안군 지역과 괴산군청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그 후 증평읍과 도안면을 관할하는 도 직할 증평출장소를 개설하여 사정이 어느 정도 개선되었으나 갈등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2003년 결국 증평출장소가 증평군으로 승격되며 괴산군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이 외에도 증평군 전부와 청주시북이면 북부지역 및 오창읍 여천리 그리고 음성군 원남면과 진천군 초평면의 일부가 구 청안군에 속했다. 이름만 봐도 알겠지만 구 청안현 지역으로 말이 괴산이지 실제 생활권은 증평이다. 이 외에도 사리면 서부지역이 증평 생활권에 속하지만, 이쪽은 원래 괴산군 땅이었다. 어찌됐던 현재는 사리면 일원까지 증평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일례로 청안면과 사리면에는 괴산농협이 아닌 증평농협의 지점이 있다.# 그래서 증평군과 재통합을 하려는 괴산군 측에서 이를 근거로 삼고 있지만, 증평군 측에서는 진정 주민 편의를 위한다면 오히려 청안면과 사리면을 증평군으로 편입해야 한다며 반박했다.반# 괴산과 증평 모두, 1960--90년대 경부ㆍ경인라인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개발로 인해 소외된 지역이였지만, 괴산이 중원대학교 및 육군학생군사학교 이전 이후 별다른 인구증가 요인 없이 1읍 10면 4만 명 이하에 머무르는 동안 1읍 1면에 불과한 증평군이 지속적으로 인구가 증가하여 괴산군과 증평군의 인구 차이는 과거 5천 명 수준에서 이제는 역전당하기까지 한 상황이라 괴산 중심 통합논리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졌음이 사실이다.[8]
증평군의 언어는 청주 사투리이고 이에 준하는 문화도 완전히 다른데 두 지역이 통합이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괴산군에서는 이 지역을 증평군에 뺏기는 것을 막고 괴산군에 동화시키기 위해 여러 정책을 편다. 여# 예를 들어 사리면에 사는 학생이 증평군이 아닌 괴산군의 중학교에 진학하면 학습보조비를 지원하고, 상기 서술한 증평농협 청안지소와 사리지소를 괴산농협으로 가져오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증평농협 조합원의 60%를 차지하는 증평 주민들이 이에 동의할지는 미지수이다. #오히려 청안면과 사리면을 증평군으로 넘겨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을 수도 있다.
충청북도청이 2013년에 실시한 경계변경 대상지역 실태조사에서 구 청안현 지역 중 금강 수계에 해당하는 괴산군 청안면 읍내·금신·문방·효근·조천·청용리, 역시 금강 수계에 해당하는 괴산군 사리면 노송·중흥·사담·방축·소매리가 편입 대상지역에 들어갔다.# 더군다나 2014년에는 괴산군 사리면에서 증평군으로 편입을 원한다는 플래카드가 내걸리기도 했는데, 괴산군에서는 현수막을 곧바로 철거하는 등 청안면과 사리면의 증평 편입 떡밥이 불거지지 않도록 경계한다. # 청안면과 사리면의 증평군 편입에 대한 내용은 행정구역 개편/충청 참조.
이 지역은 언어적으로 보면 충청 방언, 경기 방언, 동남 방언, 영동 방언 등 여러 방언의 영향을 받은 것을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뭐여, 그려 등 ~ㅕ로 끝나는 어미를 쓰는 경우가 많고 높임말을 쓸 때 해유체를 쓰기도 하는 등 충청 방언의 말투가 많이 쓰이는데, 이는 괴산의 서남부인 사리면, 청안면 쪽에서 두드러지고 해당 두 지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다.[9]
해당 두 지역은 청주 방언권 사용 지역이다.
한편, 동북부(연풍면, 장연면) 쪽으로 가면 강원 영동지역, 경기도 지역, 충북 북부지역(단양, 제천 등), 경북 북부 산간지역에서 쓰이는 억양을 들을 수 있다. 일단 청안면, 소수면에서 산을 넘어간 괴산읍이나 청천면 지역은 거의 경기 방언, 영서 방언에 준하는 편이다.[10]
이쪽은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충청북도 연풍군이었다. 문화원에 따르면 충주 방언권에 속한다고 하며, 강원도 영서 지방 말투와 상당히 비슷하다고 밝힌 바 있다.
연풍면 고사리(古沙里)에는 이화여자대학교 '고사리 수련관'이 있다. 1985년 11월 설립된 수련관은 휴양교육, 세미나, 워크숍 등의 장소로 쓰이고 있으며 2024년 연풍역이 개통되면 접근성이 향상될 예정이다. 괴산군은 이화여자대학교와 충북대학교, 충북도립대학교, 충북연구원과 공동활용 업무협약을 체결하여 시설, 자료, 정보 등을 서로 공유하기로 하였다.
장연면의 특산물로, 이 종자를 만든 이가 충남대학교 교수였던 최봉호 교수라서 이름 붙은 것.
등이 있다. 이외에도 미선나무 등의 천연기념물로도 유명. 여담으로 2010년 10월경에는 배추의 가격이 많이 올랐는데 이 지역의 절임배추는 값이 상당히 싼 편이라 큰 인기를 끌었고 지역 홍보에도 한몫했다.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는 괴산 고추, 고춧가루, 찰옥수수가 등록되어 있다.
흔히 언론 등지나 커뮤니티에서도 국내 최대 예산 낭비로 지적 받기도 하는 국내 최대 크기의 가마솥인 괴산군민가마솥이 동부리에 있다.연합뉴스 전 괴산군수인 한나라당김문배 군수가 추진한 것으로 둘레 17.85m, 높이 2.2m, 지름 5.88m, 무게 43.5톤으로 군 예산, 주민성금 합계 5억[14]
이렇게 예산이 많이 들어간 이유는 별 시원찮은 업체에 맡기는 바람에 실패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이라는 거액을 들여 2005년 완성했다. 이론상 군민 4만명의 밥을 한번에 지을 수 있지만 찰옥수수 1만개 찌기, 동지 팥죽 끓이기를 몇 번 시도했으나 원래 목적이었던 밥 짓는 용도로는 쓸 수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15]
한솥밥 문화를 알리기 위해 처음에는 실제로 4만분 밥을 지을 작정이었고, 어느 전문가는 가능할 것이라 발표했으나 결국 불가능한 걸로 결론났다. 너무 커서 겉은 타고 속은 설익는다. 게다가 무쇠솥이어서 꾸준히 관리하지 않으면 녹물이 나와 위생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세계 최대 가마솥으로 기네스북에 등재하려 했으나 호주의 질그릇이 더 커서 실패하고 말았다. 재질이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목록으로 등재하려고 했으나 세르비아의 쇠그릇이 더 커서 결국 실패. 예산 낭비의 대표적인 예로 결국 관광상품화도 포기되었으며 아직도 괴산의 애물단지로 남아 녹만 슬어가고 있다. 운반비는 2억 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이를 무리하게 추진한 김문배 전 군수의 최대 비판점으로 꼽히기도 하며, 이 때문에 재선을 못하기도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잊을 만하면 활용방안에 대한 논의가 나오지만 뾰족한 대책도 없다. 노숙자 무료 급식 만드는 용도로 쓰자는 말도 있는데 괴산은 시골이다보니 노숙자가 거의 없고 상술했듯이 밥을 지을 수 있는 기물조차 아니다.
결국 2023년 8월 14일 전국민을 상대로 이 가마솥의 활용방안을 찾는 아이디어 공모전을 실시했는데, 차라리 그냥 방치해 놓고 세금낭비 + 탁상행정의 본보기로 남겨두자는 말도 나오고 있다. 팝콘을 튀기거나 노천탕으로 쓰는 등의 약 40가지 아이디어가 접수되었고, 이중 18가지가 1차 관문을 통과했다고 한다.
특별한 군사시설이 없는 지역이었으나, 육군학생군사학교가 괴산읍으로 오면서 군인아파트인 문무아파트가 들어서는 등 읍내 경제에 도움이 되고 있다. 청안면에는 동원훈련장 및 괴산군 예비군훈련장이 있으며, 여기로 청주시 등 5개 시군 예비군훈련이 몽땅 통합되면서 해당 지역 예비군들의 불만이 크다.
2005년 7월 괴산군에서 괴산군민이 다같이 한솥밥을 먹자는 목적으로 지름 5.7m, 무게는 43.5 톤에 달하는 초대형 가마솥을 군 예산 및 주민성금 5억원을 들여 설치하였다.
하지만 정작 이 가마솥으로 밥을 하면 아래는 타고 위는 설익고 가운데만 밥이 되는 이른바 3층밥이 되버리면서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세계에서 가장 큰 그릇으로 기네스북에 도전했으나 호주에 더 큰 질그릇이 있어 기재되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2007년 이후로는 사용한 적도 없다고 하며 이에 대해 군민들은 솥을 만든 거 자체를 예산낭비 즉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데 반해 군청 관계자는 "(5억원 그게) 어마무시한 거냐? 대구나 부산에서 CI 만든다고 몇십억씩 날린것도 있는데 괴산에서 가마솥 만들어서 예산을 완전히 흥청망청 쓴 것처럼 이야기한다" 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게다가 가마솥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해도 이송 비용만 2억 원이 소요된다는 결과가 나와 지금까지도 방치되고 있다.
[1] 2023년 10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2] 괴산군 가선거구 (괴산읍, 칠성면, 문광면, 소수면) : 김영희 괴산군 나선거구 (감물면, 장연면, 연풍면, 불정면) : 장옥자, 김주성 괴산군 다선거구 (청천면, 청안면, 사리면) : 신송규 비례대표 : 송영순[3] 괴산군 가선거구 (괴산읍, 칠성면, 문광면, 소수면) : 최경섭 괴산군 다선거구 (청천면, 청안면, 사리면) : 김낙영[4] 괴산군 가선거구 (괴산읍, 칠성면, 문광면, 소수면) : 안미선[5] 괴산군 선거구 : 이태훈 (초선)[6] '잉걸불'의 '잉걸'이 '덩어리'라는 뜻이라서 덩어리 괴(塊) 자로 한역 되었는데 나중에 회나무 괴(槐)로 바뀌었으리라는 추측이 있다. 삼국사기에 나타난 괴양군(槐壤郡)·잉근내군(仍斤內郡)·괴주(槐州)에 대하여(기관 로그인 필요)[7] 괴(槐) 자는 기본적으로 회화나무를 뜻하지만 관용적으로 재상, 정승, 대신을 뜻할 때도 있다.[8] 증평군의 언어는 청주 사투리이고 이에 준하는 문화도 완전히 다른데 두 지역이 통합이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9] 해당 두 지역은 청주 방언권 사용 지역이다.[10] 이쪽은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충청북도 연풍군이었다. 문화원에 따르면 충주 방언권에 속한다고 하며, 강원도 영서 지방 말투와 상당히 비슷하다고 밝힌 바 있다.[11]평택을 포함한 충청도 전 지역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어르신들이 주로 많이 쓰신다.[12] 이 어휘는 충북과 경북, 영동 지방(영월, 평창, 정선 포함)에서 사용된다.[13] 장연면의 특산물로, 이 종자를 만든 이가 충남대학교 교수였던 최봉호 교수라서 이름 붙은 것.[14] 이렇게 예산이 많이 들어간 이유는 별 시원찮은 업체에 맡기는 바람에 실패를 반복했기 때문이다.[15] 한솥밥 문화를 알리기 위해 처음에는 실제로 4만분 밥을 지을 작정이었고, 어느 전문가는 가능할 것이라 발표했으나 결국 불가능한 걸로 결론났다. 너무 커서 겉은 타고 속은 설익는다. 게다가 무쇠솥이어서 꾸준히 관리하지 않으면 녹물이 나와 위생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괄호] ABC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16] 읍내가 중심부에 있기 때문에 읍내는 중첩 지역에 해당하며, 서남부 지역(청천면, 청안면, 사리면, 문광면, 칠성면)은 청주, 동북부 지역(불정면, 소수면, 감물면, 장연면, 연풍면)은 충주의 영향력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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