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경작하기에 적당한 땅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3000년 전부터 인간들이 정착하여 농사를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야마토 왕권에 의해 '쿠니(国)'와 '군(郡)'이 설치되어 모토아라강을 경계로 무사시국, 시모사국, 아야세 강을 경계로 무사시국 사이타마군(埼玉郡)과 아다치군(足立郡)으로 나누어졌다.
1868년 현재의 시역이 만들어지고, 학교와 우체국, 정촌사무소 등이 세워지기 시작한다. 이후 1889년4월 1일 정촌제가 시행됨에 따라 미나미사이타마군(南埼玉郡) 2정[3]
그렇게 쇼와 대합병이 끝나는 줄 알았지만 정으로 승격한 직후 보니 인구가 4~5만 명[9]
이는 당시 매우 많았던 것이다! 지금도 옛날보다는 아니지만 4~5만명 대의 정이 몇 개 밖에 없다. 게다가 그것보다 적은 시들도 널렸으니..
이나 되어서 4년 후인 1958년 짧은 정 생활을 마감하고 바로 코시가야시(越谷市)로 승격하였다. 이후 2003년 특례시에, 2015년중핵시에 지정되면서 오늘에 이른다.
사이타마시 오른쪽 아래에 있는 소카시, 코시가야시, 미사토시, 야시오시, 요시카와시, 마츠부시마치 등 동남부 5시 1정은 2018년부터 합병을 검토하고 있다. 이미 쇼와 40년부터 쓰레기와 하수도 문제를 공동으로 처리하고 있으며, 조정회의를 통해 꾸준히 광역적인 행정 과제를 논의하고 있다. 통합시 인구는 약 94만 명이고, 현재 조정회의의 회장은 코시가야시 시장이다.미사토시 홈페이지
[1] 추계인구 2021년 8월 1일 기준.[2] 당시 30만 이상이었던 도시는 현재는 사이타마시로 통합된 오미야, 우라와 등과 현재도 존재하는 카와구치시, 토코로자와시, 카와고에시 등 쟁쟁한 도시들밖에 없었다. 이는 현재도 같다.[3] 코시가야정(越ヶ谷町), 오사와정(大沢町)[4] 니카타촌(新方村), 사쿠라이촌(桜井村), 오부쿠로촌(大袋村), 오기시마촌(荻島村), 데와촌(出羽村), 가모촌(蒲生村), 오사가미촌(大相模村), 마스바야시촌(増林村)[5] 저 'ヶ'를 넣어도 읽는 법은 같지만 어째서인지 1954년 합병 후에는 잘렸다.[6] 당시 카스카베의 표기는 粕壁로 읽는 법은 같지만 한자가 달랐다. 이는 나중에 春日部로 바꾸게 된다.[7] 현 소카시[8] 옛 카와야기촌(川柳村)의 이하라(伊原), 무기츠카(麦塚), 우와야(上谷) 지역.[9] 이는 당시 매우 많았던 것이다! 지금도 옛날보다는 아니지만 4~5만명 대의 정이 몇 개 밖에 없다. 게다가 그것보다 적은 시들도 널렸으니..[10] 다만 주 배경은 카스카베시다. 이 곳은 보조 무대로 나오는 수준.[11] 다만 작중에서는 야쿠사시(谷草市)라고 언급된다. 이는 코시가야(越谷)의 谷와 소카(草加)의 草를 떼어 훈독한 후(훈독하면 '쿠사'.) 붙여 만든 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