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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솔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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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率王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2. 정체


1. 개요[편집]


고려 후기의 승려인 무외국통 정오(丁午: ? ~ 1318년)가 지은 고석정기(孤石亭記)에만 등장하는 신라의 왕. 정오는 1288년 철원의 고석정(孤石亭)을 방문했는데, 여기서 신라비를 발견했다고 한다.

철원군에서 남쪽으로 만여 보를 가면 신선의 구역이 하나 있는데, 서로 전하기를, ‘고석정’이라 한다. 그 정자에는 큰 바위가 우뚝 솟아나 높이가 300척 가량 되고 둘레는 10여 장(丈)쯤 된다. 바위를 타고 올라가면 구멍 하나가 있어서 기어 들어가면 집같이 생긴 층대가 있는데, 10명쯤 앉을 수 있다. 옆에 돌비가 세워져 있는데, 신라 진솔왕(眞率王)이 놀러 와서 세운 비이다.(이하 중략)

동문선에 수록된 고석정기(孤石亭記)의 내용 中



2. 정체[편집]


아쉽게도 고석정비는 현존하지 않지만[1], 조선 중기의 문인 구사맹은 자신의 저서인 팔곡집에서 진평왕이 철원 고석정비를 새겼다고 언급하였다.

진평왕이 세운 비석이 맞다면 진평왕이 친정했던 603년 북한산성 전투 이후에 세웠을 것이라는 설[2]과 598년 ~ 614년 고구려-수 전쟁 때 신라가 고구려 영토를 뺏은 뒤 세웠다는 설[3]이 제기되었다. 平과 率의 자형이 비슷하므로, 이와 같은 오류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다만 여러 곳에 진흥왕 순수비를 세우고 국토를 유람했던 진흥왕일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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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6세기 말에 부서졌다가 17세기 초 이후에는 완전히 실전되었다고 한다.#[2] 황보경, 603년 北漢山城 전투 고찰, 2015.[3] 김진한, 鐵原 孤石亭 新羅碑와 新羅의 鐵原 進出,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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