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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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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선 어기 문장.svg 조선 개국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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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개국공신 (2등)
박포유창윤호이민도
장담정용수조기조반
조영규조온홍길민조견
황희석
익대개국공신 (3등)
고여김균김로손흥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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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이백유이부이서
이직장지화함부림황거정
민여익임언충장사정조영무
한상경한충




조선 개국공신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 평간공(平簡公)
조견
趙狷
출생1351년(충정왕 3)
사망1425년(세종 7)
봉호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
시호평간(平簡)
본관평양 조씨
이름윤(胤) → 견(狷)
거경(巨卿), 종견(從犬)
송산(松山)

1. 개요
2. 생애
3. 대중매체



1. 개요[편집]


조선개국공신으로 형인 조준과 함께 이성계를 추대하였으며, 세종 때까지 여러 벼슬을 지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형과 같이 조선의 건국에 참여하였으나, 조선 중기 일부 사서 및 야사에서는 형과 달리 고려의 충절을 지키는 신하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여말선초 배경을 한 사극에서는 후자를 채택하여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는 절개있는 신하로 그리는 경우가 많다.


2. 생애[편집]


1351년, 판도판서 조덕유와 오씨 사이에서 6남 중 막내로 출생하였다.

형들과 달리 유년기에 출가하여 승려 생활을 하다가 30대 초반에 환속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몇년 지나지 않아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조준과 함께 이성계를 추대하여 개국공신 2등에 책록이 된다.

태조 시기에는 경상도 도절제사, 지중추원사를 정종 시기에 삼사우복야 등을 역임 하였으며, 태종 집권 초에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유배 되었다가 사면되었다.

이후 명나라 사신, 충청도 도절제사, 수군 도절제사를 거쳐 평성군에 봉해졌다.

세종 초에 판우군도총제부사에 부임 하였고, 세종에게 궤장을 하사 받았으며 평성부원군으로 진봉되었다.

여기까지가 실록에서 전해져오는 조견의 이야기 이며, 조선 중기 시기에 기술된 사서에서는 형과 달리 지리산으로 숨어들어가 조선의 벼슬을 거부하면서 고려의 충절을 지켰다고 적혀있다. 다만 사서의 내용의 신빙성의 문제가 있어서 논란이 있는 편이다.


3. 대중매체[편집]


매체에서는 대부분 후대의 역사서에서 나오는 기술에 따라 고려의 충신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용의 눈물에서는 맹호림이 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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