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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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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선 어기 문장.svg 조선 개국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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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8월 20일 태조에 의해 책록
좌명개국공신 (1등)
김사형
남은
남재
배극렴
오몽을
이제
이지란
이화
장사길
정도전
정총
정탁
정희계
조박
조인옥
조준
김인찬
이방간
이방원
이방의

협찬개국공신 (2등)
박포
유창
윤호
이민도
장담
정용수
조기
조반
조영규
조온
홍길민
조견
황희석



익대개국공신 (3등)
고여
김균
김로
손흥종
심효생
안경공
오사충
유원정
이근
이백유
이부
이서
이직
장지화
함부림
황거정
민여익
임언충
장사정
조영무
한상경
한충






조선 개국공신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 평간공(平簡公)
조견
趙狷

출생
1351년(충정왕 3)
사망
1425년(세종 7)
봉호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
시호
평간(平簡)
본관
평양 조씨
이름
윤(胤) → 견(狷)

거경(巨卿), 종견(從犬)

송산(松山)

1. 개요
2. 생애
3. 대중매체



1. 개요[편집]


조선개국공신으로 형인 조준과 함께 이성계를 추대하였으며, 세종 때까지 여러 벼슬을 지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형과 같이 조선의 건국에 참여하였으나, 조선 중기 일부 사서 및 야사에서는 형과 달리 고려의 충절을 지키는 신하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여말선초 배경을 한 사극에서는 후자를 채택하여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는 절개있는 신하로 그리는 경우가 많다.


2. 생애[편집]


1351년, 판도판서 조덕유와 오씨 사이에서 6남 중 막내로 출생하였다.

형들과 달리 유년기에 출가하여 승려 생활을 하다가 30대 초반에 환속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몇년 지나지 않아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조준과 함께 이성계를 추대하여 개국공신 2등에 책록이 된다.

태조 시기에는 경상도 도절제사, 지중추원사를 정종 시기에 삼사우복야 등을 역임 하였으며, 태종 집권 초에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유배 되었다가 사면되었다.

이후 명나라 사신, 충청도 도절제사, 수군 도절제사를 거쳐 평성군에 봉해졌다.

세종 초에 판우군도총제부사에 부임 하였고, 세종에게 궤장을 하사 받았으며 평성부원군으로 진봉되었다.

여기까지가 실록에서 전해져오는 조견의 이야기 이며, 조선 중기 시기에 기술된 사서에서는 형과 달리 지리산으로 숨어들어가 조선의 벼슬을 거부하면서 고려의 충절을 지켰다고 적혀있다. 다만 사서의 내용의 신빙성의 문제가 있어서 논란이 있는 편이다.


3. 대중매체[편집]


매체에서는 대부분 후대의 역사서에서 나오는 기술에 따라 고려의 충신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용의 눈물에서는 맹호림이 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