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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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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기업인이자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의 공동정범.
2. 생애[편집]
1923년 충청북도 청주군 오창면 탑리 288#[1] 에서 이상섭과 김영념 사이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본군 육군정보학교,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2기를 졸업하였으며, 박정희와는 육사 동기 출신이다. 이후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근무하였다. 5.16 쿠데타 당시에는 준장으로 육군 방첩부대장(보안사/기무사의 전신)이었고 군사정부에서 중앙정보부가 창설되자 해외공작국장, 국제정보국장, 해외 담당차장보 등을 역임하였다. 1973년 육군 소장으로 예편, 이후락의 지시에 따라 김대중 납치 사건을 지휘하였다. 신직수, 김재규 휘하에서 1973년부터 1978년까지 중앙정보부 2인자인 중앙정보부 차장을 역임하였다. 실미도 사건의 실미도 부대의 예산 및 작전 책임자이기도 했다.
1979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제3기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으로 임명되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이후로 아내 장영자와 대화산업을 경영하였다.
1982년 해방 이후 최대 규모의 경제 사기 사건인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으로 징역 15년, 추징금 1억 6,254만 6,740원, 미화 40만달러 및 일화 800만엔 몰수를 선고 받았다. 이후 아내의 재범 사건의 공범으로 몰리며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되기도 하였다. 당시 장영자, 이철희 부부는 대기업들을 상대로 무려 6,404억의 어음 사기를 저질러서 전 국민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지금 물가로 환산해보면 개인이 30대 재벌들을 상대로 수조원대의 사기를 친 것이다. 감옥에 갔다 온 후 조용히 지내다가 2014년 향년 90세로 사망하였다.
일본제국의 스파이 양성 학교인 나카노 학교[2] 출신이란 주장이 있다. 일제 비밀요원 양성 나카노 학교 졸업생 명부 발굴…한국인 첫 확인
3. 미디어에서[편집]
- 제2공화국(드라마) - 최상훈
- 제3공화국(드라마) - 한영수
- 제4공화국(드라마) - 김수일
- 제5공화국(드라마) - 남영진
- 삼김시대(드라마) - 박상조
- 대한민국 정치비사 - 이경영(1958)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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