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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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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독립유공자 이계한은 그의 부친이며, 이치범 전 환경부 장관은 그의 사촌 동생이다.#
2. 생애[편집]
1949년 11월 28일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상몽리 140번지에서 독립유공자인 아버지 이계한과 어머니 덕수 이씨(1909. 9. 29 ~ 1991. 10. 10)[4] 사이에서 4남 6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용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67학번)를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재학 중이던 1971년 심재권, 장기표, 김근태 등과 함께 유신 정권의 대표적인 시국 사건인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에도 1980년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모진 고문을 당한 뒤 2년 7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이후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1983년부터 1987년까지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영삼, 김대중 양 김씨의 대통령 후보 단일화를 주장하며 통일민주당에 잔류해 정책연구실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열린 13대 총선에 출마하려 했으나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인해 피선거권이 박탈된 상태라서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는 출마하지 못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할 때 따라가지 않았다. 그리고 꼬마민주당에 몸담았다. 1992년 통합야당 민주당에 몸담지 않고 신정치개혁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남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홍사덕 후보와 민주자유당 김만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하자 같은 해부터 1995년까지 환경관리공단 이사를 역임하였다. 이 때부터 민주운동가에서 보수 정치인으로 전향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서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새정치국민회의 최두환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이후 김대중 저격수로 활동하였다. 대표적으로 의정 활동을 하면서 김대중의 셋째 아들인 김홍걸의 로스앤젤레스 호화 주택 거주와 국가정보원의 광범위한 도청 문제 등 김대중을 위협하는 여러 비리를 제기하였다. 이신범이 주장한 국정원의 도청 사실 또한 사실로 밝혀져 전직 국정원장 신건, 임동원이 큰 처벌을 받았다. 또한 김홍걸의 호화 주택 거주 역시 권력형 비리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들과 민주운동가들이 이신범의 문제 제기에 대하여 민주화운동가의 명예를 저버렸다는 등의 비난을 하였다. 이후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천년민주당 김성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6년 국민중심당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그러나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명박 후보 지지 선언 및 한나라당 복당 신청을 하였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덕룡, 문정수, 강삼재, 김정수, 심완구, 박희부, 노병구, 최기선 등 상도동계 일부 정치인들과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을 하였다.
2015년부터 한국LPG산업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2018년 과거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에 대해 마침내 무죄를 선고 받았고 2억원의 형사 보상금을 받게 되었다. #
2021년 20대 대선을 앞두고 최재형을 지지하면서 열린캠프에 합류하였다.# 그러나 최재형이 경선에서 낙선하자 국민의힘을 탈당하고 국민의당 국민의 도전 선거대책위원회에 합류하였다. 하지만 국민의당이 국민의힘과 합당하면서 도로 국민의힘 소속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