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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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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백동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강우석 감독이 제작하여 2003년 12월 24일 개봉한 한국 영화.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이면서도 역사에서 지워지고 숨겨진 684부대와 실미도 사건을 재구성하여 큰 주목을 받았다. 2004년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 감독상을 수상했다. 2004년 2월 19일, 역대 한국 개봉 영화 최초로 전국 천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라는 타이틀을 쥐게 되었다.
2. 예고편[편집]
3. 시놉시스[편집]
낙오자는 죽인다
체포되면 자폭하라
인간한계에 도전하는 지옥훈련… 31인의 살인병기 ‘실미도 부대’ 탄생
“주석궁 침투, 김일성 목을 따 오는 것이 너희의 임무다!”
북으로 간 아버지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 사회 어느 곳에서도 인간대접 받을 수 없었던 강인찬(설경구 분) 역시 어두운 과거와 함께 뒷골목을 전전하다가 살인미수로 수감된다. 그런 그 앞에 한 군인이 접근, ‘나라를 위해 칼을 잡을 수 있겠냐’는 엉뚱한 제안을 던지곤 그저 살인미수일 뿐인 그에게 사형을 언도하는데… 누군가에게 이끌려 사형장으로 향하던 인찬, 그러나 그가 도착한 곳은 인천 외딴 부둣가, 그곳엔 인찬 말고도 상필(정재영 분), 찬석(강성진 분), 원희(임원희 분), 근재(강신일 분) 등 시꺼먼 사내들이 잔뜩 모여 있었고 그렇게 1968년 대한민국 서부 외딴 섬 ‘실미도’에 기관원에 의해 강제차출된 31명이 모인다.
영문 모르고 머리를 깎고 군인이 된 31명의 훈련병들, 그들에게 나타난 예의 그 군인은 바로 최재헌 준위(안성기 분), 어리둥절한 그들에게 “주석궁에 침투, 김일성 목을 따 오는 것이 너희들의 임무다”는 한 마디를 시작으로 냉철한 조중사(허준호 분)의 인솔하에 31명 훈련병에 대한 혹독한 지옥훈련이 시작된다.
‘684 주석궁폭파부대’라 불리는 계급도 소속도 없는 훈련병과 그들의 감시와 훈련을 맡은 기간병들... “낙오자는 죽인다, 체포되면 자폭하라!”는 구호하에 실미도엔 인간은 없고 ‘김일성 모가지 따기’라는 분명한 목적만이 존재해간다...
4. 등장인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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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줄거리[편집]
1968년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부 124 부대 소속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 앞까지 침투했다가 실패한 1.21 사태, 그리고 주인공 강인찬(설경구 扮)의 깡패 지령 활동 중 타겟을 살해하며[2] 경찰에게 포획되는 모습이 교차되며 영화가 시작된다.[3] 그렇게 사형을 선고받은 강인찬은 어느 방에서 강인찬의 뒷조사를 읊는 최재헌(안성기 扮)의 회유를 받고서는 또다른 사형수 한상필(정재영 扮)과 함께 형식상의 사형은 그대로 집행된다.
그리고 여타 험악한 인물들과 함께 낯선 선박에 탑승하며 외딴 섬으로 이송되는 장면으로 줄거리는 이어진다. 탑승 인원들은 험악한 어투로 선박 내에서 주먹다짐까지 오가는 분위기였지만, 중사 조돈일(허준호 扮)이 총기 무력을 활용하여 단숨에 죄수들을 제압시킨 뒤 어찌저찌 실미도로 죄수 전원을 집합시키게 된다. 도착한 실미도에선 병영이 펼쳐져 있었고, 죄수 각자들에겐 기간병 하나씩 배정, 완수 후 새로운 삶과 명예를 약속하는[4] 최재헌의 회유에 따라 전원이 군복을 입으며 684부대가 완성된다. 이윽고 죄수들은 전부 훈련병이 되어 혹독한 훈련이 시작된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북파되어 주석궁에 침투해 '김일성의 목을 따오는 것'이었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지옥훈련을 통해 이들은 단 3개월 만에 북파 가능한 인간병기가 되었다.[5] 부대가 창설된 지 4개월 만에 첫번째 실전명령이 떨어져 바닷길로 북에 침투를 시도하지만 상부의 저지로 중도무산된다. 이후 3년 4개월간 '출정의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그들의 긴긴 기다림은 시작된다.
그 사이 남북한의 상황은 처음 실미도 부대를 창설할 때와는 전혀 다르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남북 화해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하고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이 김계원으로 교체되는 등 급격한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구 시대의 유물'이자 '유령부대'가 되어버린 실미도 684부대. 교육대장이 '차라리 월남에라도 파병해달라. 저들의 전력이라면 충분히 공을 세우고도 남는다.'라고 건의했지만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거절당한다.
점점 684 부대가 푸대접을 받는 게 영화가 진행될수록 드러난다. 특수부대원들이 실미도에 갓 들어왔을 때의 식단은 흰 쌀밥과, 삶은 백숙 한 마리씩과, 소불고기, 생선튀김, 열무김치, 상추, 채소절임 등이 고봉으로 듬뿍 제공되는 등 영양학적으로 균형 잡히고 풍성한 식단으로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고기와 흰쌀밥을 자주 먹지 못했던 당대에는 대단히 화려한 식사였다. 거기다 정량배식이 아닌 자율배식이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2023년 현재 병영식 기준으로도 상당한 고퀄리티이며 주요 반찬은 현재에도 자율배식을 못한다.
그러나 남북 화해 무드가 조성된 이후부터는 대원들에게 보리밥에 똥국, 감자 쪼가리, 양념도 없는 김치가 전부인 열악한 배식이 되었고, 그마저도 양이 현저히 줄어 상필이 찬석에게 짜증을 내며 "밥을 더 퍼달라."고 할 정도였다. 시나리오에서도 처음 10개월에 비해서 684 부대에 대한 보급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너무 차이가 난다는 박 중사의 대사가 있으며, 작중에서도 교육대장인 최재헌 준위가 "684 부대원들에 대한 대우는 재소자만도 못하다"고 공군본부 관계자에게 항의하는 장면이[6] 등장한다.
군기도 마찬가지로 중반부 작전 취소 전까지는 훈련 중에도 대단히 매섭고 전형적인 특수부대의 모습을 띄지만, 작전 취소 후 하염없이 기약없는 출정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그저 부대 잡일을 하며 점점 말년병장처럼 늘어지는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 결국 대원 2명이 탈영을 해서 민간인 여교사를 강간하는 범죄를 저지르다가 포위되어 1명은 자살하고 다른 1명은 자살에 실패하여 체포되었다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다른 대원에게 살해당하는 일까지 터졌다.
결국 사태가 악화되자 부대를 정리하고 훈련병들을 전원 사살하라는 상부의 명령이 떨어지고 만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서라도 최재헌은 상부를 분주하게 돌며 월남전 파병이라도 제안하지만 끝내 전부 기각된 채 일주일만의 시간이 주어지고 작전을 이행할 수 밖에 없는 참담한 상황에 놓이고 만다. 차마 자신의 손으로 훈련병을 죽일 수 없었던 그는 강인찬을 물떠오라는 시시콜콜한 분부로 불러내어 바깥에서 작전을 엿듣도록 유도시킨 뒤 부대 수뇌부 둘에게 명령을 하달시키기 이른다. 이때 조돈일은 명령에 진심으로 당황하며 반대하는 자세를 취하는데 비해 박상근은 적극적으로 작전을 이행하려는 상반된 자세를 보이며[7] 권총을 겨누거나 멱살까지 잡히는 등 둘의 갈등은 더더욱 격화된다. 조돈일과 작전 동행이 불가능하겠단 판단을 내린 박상근은 조돈일을 출장을 구실삼아[8] 실미도에서 제거하는 계략을 성사시켰고, 독자적으로 부대원 사살을 집도하고야 만다.
한편, 자신과 전우들을 사살할 예정이라는 충격적인 정보를 입수한 강인찬은 부대원들에게 알리며 만반의 준비를 갖추게된다. 거사를 일으키기 직전 출장을 떠나는 조돈일에게 심상치 않는 분위기의 배웅을 보이자[9] 조근재는 다녀오는 길에 씹을거리라도 가져와달란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씬 또한 영화의 명장면으로 거론되는 편. 떠나는 길은 한층 엄중해진 경례로 마지막 인사를 건네면서 조돈일은 미심쩍은 표정을 짓는다.
결전의 날이 다가오자 훈련병들 입장이나 기간병들 입장이나 묵혀왔던 정으로 서로를 죽이길 주저하지만, 박상근은 이미 냉혈한이 되어버렸고[10]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 훈련병들은 서로를 다독이며 생존을 위한 전투를 개시하게 된다.
훈련병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자는척하다 점호가 끝난 밤중에 무장을 마치곤 인간병기로 길들여진 실미도 특수부대원들이 선제 공격을 가해 담당 기간병들은 속수무책으로 전멸당한다.[11] 이들은 단 십여분 만에 실미도를 장악한다. 극중 훈련 장면에서 이런 전투력의 차이를 계속 보여줬고 기습공격까지 했으니 개연성이 충분한 장면이다.[12]
각자들이 해안선과 온갖 시설을 돌며 기간병을 섬멸하는 동안 강인찬은 사령실에 굳건히 앉아있는 최재헌을 마주하게 된다. 둘은 총을 겨누면서도 이런 상황까지 갔어야만 했던 추궁과 회한 가득한 대답을 나누었고 끝내 "날 쏘고 가라. 아니면 내가 널 쏠 수 밖에 없을것이다"라며 최재헌은 모든걸 체념하고선 의연한 최후를 맞이한다. 강인찬은 자신을 살려준거나 다름없는 최재헌을[13] 차마 쏘지는 못하고 뒤돌아 가버린다. 하지만 권총 장전 소리가 들리고 화들짝 놀란 강인찬은 다시 전투 태세를 갖추었지만, 권총의 총구는 강인찬이 아닌 스스로의 머리를 향했고 그대로 방아쇠는 당겨지고 만다. 아무튼 슬픔은 뒤로한 채 전투는 훈련병 전원과 벼랑 끝으로 몰린 박상근이 대치하는걸로 끝맺었고, 과정에서 결국 실언을 내뱉은 박상근은 그대로 분노한 부대원들로부터 총알 벌집이 되어버리며 전투는 종료된다. 과정에서 조근재를 포함한 4명의 훈련병은 전사하고 만다.
그리고, 탈출 과정에서도 얼추 백 미터 이상 떨어져 보이는 해안경계 초병을 구보하며 한 방에 헤드샷 날렸다. 애초부터 이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투입된 이들도 공군에서 고르고 고른 특수부대 출신들임을 감안하면 더 무섭다. 또 실미도 대원들은 북으로의 침투를 대비해 자동소총인 AKMS사용법을 숙지해 두었고, 봉기시에도 그것을 사용했기에 반자동소총인 M1 카빈을 든 기간병을 쉽게 제압했다.
특수부대원들은 인천으로 상륙, 송도 외곽에서 시외버스를 탈취, 청와대로 향한다. 이 사건은 라디오에서 무장공비의 공격으로 보도되며 특수부대원들까지 듣게 된다.[14] 전군에 비상경계령이 발동된 가운데 이들은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자신들을 포위한 대한민국 육군 보병, 경찰기동대 및 특전사 병력들과 교전을 벌이고, 과정에서 일부는 사망하고 대부분 부상을 당한다.
한편, 출장을 떠났던 조돈일은 상부를 분주히도 활보하고선 그들이 무장공비로 몰렸다는 소식을 접한듯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도 상부에 항변을 하고 버스가 군인들과 대치해있는 유한양행 앞으로 달려 들어간다. 현장에 도착하고[15] 대장 앞에서도 무장공비가 아닌 자신의 부하들이라며 직접 설득해 보겠다는 간절한 요청을 전했지만, 이미 너무 멀리 가버린 사태에서 전부 묵살당하고 조돈일 또한 버스가 국군과 대치하는 광경을 지켜볼 수 밖에 없게 된다. 부대원들은 마지막 총격질로 국군 정예부대까지 일부 사상을 입히는 등 살인병기로서의 능력을 발휘했지만, 끝내 수적 차이를 극복하진 못하고 전원이 부상을 입고 그렇게 죽음이 다가왔음을 알게 된 버스 안 대원들은 한상필의 제안으로 자신의 손목에 칼을 그으면서 그 피로 차내 곳곳에 혈서로 주민등록번호와 이름 등 자신들의 마지막 흔적들을 세상에 남긴다.[16] 대동하던 민간인과 인질들은 전부 버스에서 내리게 한 뒤 서로 수류탄을 던져가며 전원 자폭이라는 최후를 선택한다.
버스는 폭파되어 불구덩이가 된 버스를 향해 조돈일은 쉰 목소리로 인찬과 상필의 이름을 외치면서 사태는 전부 종결된다. 이 사건은 무장공비들의 소행으로 언론에 보도되고 윗사람들의 결재 서류들이 캐비넷에 그대로 봉인되어 세월따라 사건을 잊혀져가며 영화는 끝이 난다.
6. 평가[편집]
7. 흥행[편집]
8. 실제 사건과의 비교[편집]
영화는 실미도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제작되었고, 실제 사건과는 대략적인 전개는 비슷하지만 각색이 심하게 되어있어서 세부적인 면은 실제 사실과는 많이 어긋나기 때문에 이 점을 유의해서 봐야한다.
비록 영화 트레일러에 '실제 실미도 684부대 사건과는 무관합니다.'라고 대놓고 적혀있는데도 불구하고, 적어도 사건이 왜곡 수준으로 지나치게 바뀌고 심지어 원작이 되었던 소설 '실미도'의 내용들 마저 상당히 왜곡 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영화 유튜버 거의없다는 천만 관객 영화 부관참시 프로젝트에서 "실미도 사태가 비극적이라는 것을 알리는 척 하면서 사건들을 왜곡 시켜서라도 관객들을 억지로 울리며 감성팔이 하는 영화."라고 깠다. 특히 영화 감독이 강우석이어서 더욱 그랬다. 그래서 실미도 사건 유가족들과 생존 기간병들은 영화에서 사실을 완전히 왜곡시켰다면서 치를 떨었고, 지금도 영화 이야기만 나오면 손사래를 치는 지경이다.[17]
- 부대원들의 출신 성분
이후 모집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자 중앙정보부에서는 실제 전국 교도소에서 무기수, 사형수 차출을 고려했다. 그런데 법무부에서 수감자들은 나중에 죽으면 반드시 시신을 유족에게 돌려줘야 하기 때문에, 시신을 수습하기 어려운 북파 임무에 보낼 수 없다고 극력 반대하여 무산되었다고 한다.
영화와 같은 인력 선발은 오히려 당시 비슷한 목적으로 편성된 다른 부대에서 찾아볼 수 있다. 1.21사태 이후 창설된 보복부대(공군 산하 실미도 부대, 해군 산하 장봉도 부대, 육군 산하 선갑도 부대) 중에서 육군 선갑도 부대는 실제로 안양교도소에서 차출된 인원으로 부대원들을 구성했다. 이들은 김일성 사살 계획이 유야무야되었다고 살해당하는 일은 없었고, 해체 이후 부대원들은 다시 교도소로 돌아갔다.[23] 그렇지만, 졸지에 생겨버린 '대한민국 공군이 형벌부대 운영한다'란 착각은 지워지기 힘들어졌다.
- 부대원 선발
- 입대 사유
- 교육대장 외 2명의 중사 교관
- 사용 장비
- 훈련 도중 인원 손실
- 즉결처형자의 수
여기서 도주 중 체포된 부대원 2명은, 부대 창설 후 2개월여 뒤에 실미도 옆 무의도로 사역을 나갔다가 복귀하지 않고 민가에 숨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발각되어 끌려왔으며, 명령에 의해 다른 부대원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죽고 만다.
- 출동
- 작전 취소 이유
- 교관과의 관계
- 조 중사의 육지 방문
- 교육대장의 인성과 사망 경위
- 버스 탈취 후 행적
- 버스 자폭 이후의 부대원 근황
- 부대원 2명 탈출 후 강간
- 부대 상징물의 위치
- 기타 옥에 티
- 초반에 간부인적사항표나 부대원들이 자폭 직전 자신들의 주민번호를 남기는 장면에서 생년월일순(YYMMDD)의 현대식 주민번호가[35] 나오는데, 이는 1975년 주민등록법(법령 2777호)의 개정으로 13자리로 바뀌면서부터 도입된 양식이다. 당시 주민번호는 지역번호가 앞에 있는 12자리였다.
- 작중 군인들이 짬밥을 담아먹는 갈색 식판은 1980년대 이후 등장한 1식 3찬용 식판이다. 1970년대 당시에는 초록색의 1식 2찬용 식판을 사용했다.
9. 여담[편집]
- 허준호는 영화 실미도에 2번이나 캐스팅 되었다. 2000년 김호선 감독이 제작한다고 했을 때 출연 제의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역할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부대원이 주인공인 영화이지만 명령대로 따른 교관들을 대변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조 중사 역을 선택했다고 한다.
- 영화 내용이 주로 북파부대원들의 훈련내용인 만큼 체력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었는데, 출연자 모두 많은 운동으로 준비를 단단히 했다고 한다. 특히, 출연자들 중 가장 고령인 안성기는 영화 출연제의를 받을 때부터[36] 꾸준히 운동을 했는데 이미 그는 이전부터 근육질을 꾸준히 유지했었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37]
- 영화 제작발표회 당시 영화 성공기원 고사를 겸해 실미도 부대원 추모제를 지내기도 했다. 영화 완성된 후에도 영화 완성을 기념해 실미도를 찾아 위령제를 지냈다. 이때는 바람이 너무 강해 배가 섬에 들어갈 수 없어 섬이 보이는 곳에서 지냈다고 한다.
- 영화의 주 무대가 되는 '실미도 부대' 세트장은 제작비 10억 원을 들여 완공했다. 섬에서 섬에 위치한 산으로 촬영장비를 옮기는데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CH-47 헬리콥터를 이용하였다고 하는데 사실은 삼성항공에서 구입하여 운용중이었던 Mi-26이었다. 이건 실미도 DVD의 스페셜 에디션 DVD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링크. 애당초 CH-47는 세계 최대의 헬기가 아니다. 영화 관련 언론에서는 전부 시누크라고 표기하였다.
하지만 촬영이 완료되자 무허가 건물임을 이유로 관광지 가능성을 무시하고 모두 철거해버렸다. 만약 무인도라는 이유로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었다면 지금쯤 엄청난 관광명소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촬영장이었음을 알리는 안내판만 남아 있다. 이 일로 인해 인천 지역 관광수입 증대에 타격을 주었다는 이유로 인천시 중구 부구청장이 직위해제되기도 하였다.
- 버스 탈취 장면에 사용된 버스는 영화 대우 BF105 모델을 기반으로 각각 2억 원을 들여서 2대를 특수제작하였다. 또, 버스운전사 역 연기자는 영화의 무술감독이었다.
- 박 중사의 갑작스런 인간성 변화는 감독의 의도였다고 한다. 단, 감독 스스로도 이것을 관객이 이해해줄지 의문이었는데 감독의 딸이 인상 깊게 보았다고 평하자 그대로 간 것이라고 한다. 또, 박 중사가 최초로 폭력을 쓰는 장면에서 폭행당하는 조교 역할은 실제 박 중사(이정헌)의 대학 후배였다고 한다.
- 교육대장(안성기)의 시계가 시대배경과 다르게 루미녹스인 점이 옥에 티다.
- 7개월간 강원도 - 부산 - 인천 - 실미도 - 제주도 - 부안군 - 파주를 오가며 장거리 로케이션을 감행해야 했다. 또한, 수중침투 장면은 지중해 몰타 MFS 스튜디오, 겨울 훈련 장면은 뉴질랜드에서 촬영했는데, 각각 경비가 7억 원, 5억 원이 소요되었다.[38]
- 위의 장면을 찍을 때 스텝들이 가짜 폭탄이라 전혀 뜨겁지 않을 거라고 배우들을 안심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배우들은 전원 상의탈의 상태였기에 폭탄이 터지자마자 앗 뜨거를 외치며 달려나갔으며, 눈밭에 구르는 장면도 사실 없었는데 등을 식히려고 다들 굴렀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 다들 등짝이 까져서 피를 봤다고 한다. 뉴질랜드의 저 눈밭은 쌓인 부드러운 눈이 아니라 오랫동안 쌓여서 얼고 서릿발이 날카롭게 진 눈이었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배우들의 고생이 상당한 영화였다.
- 명대사로는 "날 쏘고 가라."[39] 와 "비겁한 변명입니다!"[40] 가 있다. 마이너 하지만 "내가 왜 이름이 없어?! 나 한상필이야~!!"도 꽤 유명하다.[41] 촬영 전에는 부대원들의 대사를 북한 사투리(서북 방언)로 하려고 했지만 취소되었다.
- 역대 한국 개봉 영화 최초로 전국 1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다. 최종 관객 집계는 전국 1,108만 관객으로 2019년 기준 역대 흥행 21위이자 한국 영화론 18위이다.[42] 또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자 전국에 실미도 바람이 불어 실제 실미도 사건에 관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 당시 영화 관람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중년 남성들을 극장으로 향하게 만들어 화제가 됐다. 2004년 1월 문화일보 기사. 당시 극장에서는 40~50대 중년 남성 관객들이 숨 죽인 채 몰래 폭풍 눈물을 흘리는 진풍경을 쉽게 볼 수 있었다.
- 영화 촬영에 사용된 소품용 총기가 밀반입된 실제 총기로 밝혀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품용 총기는 공포탄만 발사되고 실탄은 발사할 수 없도록 총구에 초크라는 부품을 영구적으로 고정해서 총구를 좁혀야 하는데, 해당 총기들은 초크가 빠질 수 있는 상태여서 관련 법에 걸린 것. #
- 조용필이 부른 테마곡인 '태양의 눈'도 좋은 노래다.[44] 가수가 무려 조용필인지라 실미도라는 사건에 맞게 매우 장중하면서도 빠와가 넘치는 노래인지라 고음부가 꽤 많다. 이 때문에 해당분야에서 전설로 평가되는 중학교 동창들이 한 영화에 관계되는 희소성이 생겼다. 영화의 등장인물인 안성기와 조용필이 중학교 동창이기 때문이다.
- 북한 군가인 적기가를 부르는 장면이 등장한다. 북한 군가라지만 1880년대에 영국 노동가요에서 출발, 1920년대 일본 사회주의자들을 거쳐 조선인 사회주의자들에게 퍼진 꽤나 유서깊은 노래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남한 운동권 학생들에게서도 제법 불려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가사는 북한 군가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MBC에서 방영했을 때에는 적기가를 무음처리하여 방영했다. 실제로 북파되면 북한군으로 위장하기 위해 북한군의 군가를 배웠다. 또한 제식훈련도 국군식과 북한식 2가지를 함께 배웠다. 이 장면이 문제가 되어 부대원들이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것으로 묘사했다고 유가족에게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45] 하지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기각, 패소했다. 판결문 대법원 판결문
- OST 중 작곡가 이지수가 만든 1968년 1월 21일이 한스 짐머가 작곡한 영화 The Rock의 OST 중 하나인 The Chase란 곡의 일부분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46] 다만 영화 OST, 특히 BGM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많은지 그냥 묻혔다.
- 2014년 화력시범 행사에서 20사단 이 영화의 OST를 쓰고 행사를 했다. 이 684부대라는 곡은 지금도 국방부 홍보 영상이나 예능 방송 등에 종종 쓰이곤 한다.
- 일본에서는 1년 뒤인 2004년 6월 5일에 개봉했으며, 일본판 타이틀은 SILMIDO 실미도(SILMIDO シルミド).
- 2017년 8월 24일, 46년만에 실미도 부대원들의 합동 영안식을 하였다. 실미도 부대원들 20여 명의 유해와 유해를 찾지 못한 4명 중 2명의 위패가 봉안소에 안치되었다. 총살자들의 경우 공군에서 유해 위치를 아직까지도 비공개로 하고 있고, 각종 소송과 진상규명단의 요구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 Why? 갯벌 편에서 대사로 이 영화가 언급된다. 대사 내용:"실미도를 주제로 한 영화도 있었는데, 너희 그거 봤니?", "그 영화는 초등학생 관람불가였다고!"
- 4번 문단에서 보듯 실제 사건에 대한 고증은 원작 소설까지 왜곡할 정도로 개판이라고 봐도 무관할 지경이지만 그래도 그 당시 2003년도 영화라 현재에 비하면 영화적으로만 보면 굉장한 수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증 부분에 있어서는 아쉬운 점이 많다. 실제로 블러디 선데이나 조디악처럼 고증에 충실하면서도 작품성을 인정받은 사례도 있으며 꼭 고증을 지킨다고 해서 흥행성이 떨어진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 일례로 상술된 박 중사의 인간성 변화와 그에 대비되는 조 중사의 태도 변화는 군대조직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있다면 굉장히 잘 짜여진 영화적 장치임을 알 수 있다.
- 조 중사는 684 부대원들을 군인으로서 대했기에 초반의 난폭한 행동들이 오히려 그들을 진심으로 부하들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실제로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버스를 탈취한 부대원들을 무장 공비라고 규정하며 살벌하게 대치하고 있는 군인들에게 거리낌 없이 내 부하들이라며 설득하게 해달라고 사정하다 끌려갈만큼 부대원들을 아끼는 모습을 보여준다.
- 반대로 박 중사는 684 부대원들을 그저 시대적 상황에 휘말린 불쌍한 범죄자들 정도로 생각했기에 초반엔 그들을 동정하지만 막상 그들과 자기의 목숨을 저울질하는 상황이 되자 누구보다 가차없이 684 부대원들을 죽이려 든다. 더 나아가 만약 박 중사가 크리스천이라는 설정이 단순 고증 때문이 아니라고 한다면, 박 중사는 그 자체로 일부 이중적인 종교인들의 행태를 고발하는 캐릭터로 볼 수도 있다. 물론 영화상으로 그가 크리스천임을 강조하는 장면은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49] 확대해석이 될 수도 있다.
- 2004년 쯤에는 인터넷에 해당 영화를 패러디한 설운도 포스터가 돌아다녔는데 등장인물의 얼굴들이 전부 설운도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