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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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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박경조 (朴耕造, The Rt. Reverend Francis Park Kyeong-jo)
제9대 한국관구장이자, 제4대 서울교구장. 신명은 프란시스이다.
그는 진보적 복음주의 성향의 성직자로, 김성수 주교와 함께 시대를 선도한 "대한성공회의 스타 주교"로 불리운다.
2. 경력[편집]
- 성북성당[5] 관할사제 (1976. 1. 15. ~ 1983. 5. 16.)
- 교무국 교육부장 (1983. 5. 16. ~ 1984. 4. 1.)
- 대학로성당 관할사제 (1984. 4. 1. ~ 1986. 11.)
- 서울교구 교무국장 (1984. 7. 31. ~ 1987. 8. 20)
- 서울대성당 주임사제 (1987. 8. 20. ~ 1989. 9.)
- 관구 교무원장 (1989. 9 ~ 1990. 10. 15)
- 수원성당 관할사제 겸 남부교무구 총사제 (1990. 10. 15 ~ 1999.)
- 독립관구 준비위원장 (1992. 7. ~ 1993. 4. 16)
- 중앙교무구 총사제 겸 서울교구 문화선교위원장 (2001. ~ 2004.)
- 서울교구 교구장 대리 겸 대학로성당 관할사제 (1999. 12. ~ 2005. 1.)
- 서울교구 부주교 (2005. 4. 7. ~ 2005. 11. 1.)
- 서울교구장 (2005. 11. 1. ~ 2009. 1. 15.)
1975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고, 80년대에는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6.29 선언으로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에는, 정의평화사제단 회장을 오랜 기간 맡으며 통일운동과 환경운동, 교회일치운동을 이끌어왔다. 이런 그의 성향은 대한성공회가 진보적으로 변화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받는다.
2004년 6월 교구의회에서 정철범 주교의 뒤를 이을 부주교로 선출되어, 2005년 4월부터 2005년 11월 까지 서울교구 부주교[6] 를, 2005년 11월부터 2009년 1월까지 서울교구장을 맡았다. 임기 중에는 NCCK 회장과 녹색연합 공동대표(2000 ~ 2012)를 역임하기도 하였다. NCCK와 한기총의 일시적인 화해를 이끌어냈고, 2008년 람베스 회의에서 한반도 평화 촉구를 위한 안건을 채택하도록 이끌었으며, 대한성공회 최초로 교단 차원에서 북한에 지원물자를 보낸 것 등의 업적이 있으나, 한 교구의 수장으로서 성공회 교세를 확장하는 데는 실패했다.
교구장 퇴임 후에는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모임의 연사로 자주 등장하여 목회자들로 하여금 성서 말씀으로 돌아갈 것을 역설하는 한편, 녹색연합 부설 녹색사회연구소의 이사장을 맡으며 환경보호에 대한 목소리도 더욱 높이고 있다. 2018년의 국민훈장 동백장 수훈도 환경보전에 앞장선 공로로 이루어진 것이다.
3. 여담[편집]
- 원래는 성공회 사제를 지망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고려대 재학 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김진만 교수[7] 의 권유로 신학교에 입학해 사제가 되었다.
- 역대 서울교구장 주교 중에 최단임이다.
- 거제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동남방언을 구사한다.
4. 둘러보기[편집]
[1] 6개월 26일[2] 3년 2개월 15일[3] 2년 6개월 20일[4] (사) 평화를일구는사람들(TOPIK) 고문으로서 수상.[5] 현 도봉성당[6] (=부교구장)[7] 1926 ~ 2013. 영문학자이자 성공회 평신도 신학자. 성균관대, 고려대, 한림대에서 영문학 교수로 재직했었고, 노년에는 성공회대에서 신학 연구에 매진했다. 신명은 베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