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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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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반정의 공신이었던 김류의 손자이자 김경징의 아들.
부친인 김경징은 병자호란 때 다른 의미에서 맹활약(?)한 희대의 졸장이었으며, 아들 김진표도 그에 못지 않은 막장스런 인물이었다. 그나마 애비와 달리 자연사했다.
병자호란 당시 김진표는 일가족과 함께 강화도로 피신해 있었다. 부친 김경징 역시 김류의 천거로 강도검찰사가 되어 강화도로 이동했다. 이 때문에 김류는
는 비판을 받았다.[1] 청군이 바다를 건너 섬에 상륙하자, 김진표는 김경징과 더불어, 일가족을 내버리고 도망쳐 목숨을 부지했다.'온가족이 난리를 피하게끔 계책을 꾸몄다.'
《인조실록》에
라고 적혀 있다. 인조 15년 9월 21일 병술 2번째 기사. 《병자록》(丙子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등 야사에도 기록되어 있는 내용인데, 그 신빙성에는 논란이 좀 있다.'김진표는 병자호란 때 제 할미와 어미를 협박하여 스스로 죽게 했다.'
일단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석연치 않은데, 당장 제 목숨 아까워 도망치려는 위인이 다른 사람의 목숨을 운운할 여유가 있을 턱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나만갑은 김류의 모함과 참소에 의해 8년 가까운 세월을 귀양가거나 외직을 전전해야 했기 때문에,
(전략)
○ 김류(金瑬)의 아내 유씨(柳氏)(근(根)의 딸)ㆍ경징의 아내 박씨(효성(孝誠)의 딸)ㆍ진표(震標)의 아내 정씨(백창(百昌)의 딸) 및 김류의 첩 신씨ㆍ경징의 첩 권씨가 같은 날에 목을 매어 죽었는데, 아울러 정려하였다.《강화지》
○ 그때 경징과 장신의 어머니가 모두 성 안에 있었는데, 두 사람이 모두 자기 어머니를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 그 어머니가 마침내 적중에서 죽었다. 경징의 아들 진표는 그 아내를 다그쳐 자진하게 하고, 그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적병이 이미 성 가까이 왔으니 죽지 않으면 욕을 볼 것입니다.” 하니, 두 부인이 이어서 자결하고 일가 친척의 부인으로서 같이 있던 자들도 모두 죽었는데, 진표는 홀로 죽지 않았다.
○ 일찍이 경징의 아내 박씨가 경징이 자기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자주 간하니, 경징이 노하여 말하기를, “여자가 무엇을 아느냐.” 하자, 박씨는 울면서 말하기를, “나라가 깨치고 집이 망하면 또한 여자라 하여 스스로 모면할 수 있는가.” 하더니, 과연 이때에 이르러 한 집안의 부녀가 모두 목을 매어 죽었다. 혹자는, “진표가 다그쳐 죽게 하였다.”고 일컬었다. 대개 인심이 경징에 대한 분노가 쌓여서 그 어머니와 아내의 절개까지 아울러 깎아 없애려고 한 것일 뿐이다. 정씨는 백창의 딸이니, 그 친정의 혈통을 증험해 보더라도 남에게 닥달을 받아 죽을 사람은 더욱이 아니다.《강화지》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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