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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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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방송인 KBS K 개표방송, 시사 토크 프로그램인 일요진단 라이브, 북한 전문 시사 프로그램인 남북의 창, 재난 전문 시사 프로그램인 KBS 재난방송센터, 시사 프로그램인 시사기획 창, 9층 시사국은 제외한다. 해당 문서들 참고.
기자가 기사를 마칠 때의 바이라인은 "([장소]에서) KBS 뉴스 (이름)입니다"이다.
이전에는 로고를 캘리그래프식으로 통일감이 없이 제작해오다가 2010년 5월 10일부터 타이틀 로고의 폰트를 HY울릉도체로 바꿨고[6] , 2013년 9월 6일부터 뉴스 9만 유튜브 스트리밍을 시작했다. 그러나 현재 2018년 3월 13일까지의 모든 영상이 비공개 처리되었고, 3월 14일 방영분부터 볼 수 있다. 2018년 3월 23일부터는 KBS 24시 뉴스라는 이름으로 24시간 라이브 스트리밍을 시작했으며, 기존에 제공했던 KBS 월드 24 라이브 스트리밍과 동일하다. 1TV와 2TV의 모든 뉴스 프로그램의 실시간 수중계를 하며, 2020년 1월 1일 기준으로 빈 시간에는 KBS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수중계 혹은 재방송으로 채우고 있다. 종전까지 진행했던 뉴스 9의 라이브 스트리밍을 대체하기도 해서[7] , 뉴스 9 방송 시점에는 섬네일과 제목이 잠깐 뉴스 9로 바뀐다. 2018년 11월 5일부터 카카오TV로도 시청할 수 있다.
2002년에는 KBS 뉴스 자막에 사용하는 전용 서체를 개발하여 이 해 한글날부터 사용중이다.
2001년 10월부터 뉴스광장만 뉴스티커를 넣었으나, 2015년부터 모든 뉴스 하단에 뉴스티커를 넣었는데 2018년 4월 개편부터는 뉴스 9에는 제외되었다. SBS나 MBC와는 달리 TV나 KBS 온에어 홈페이지에서만 보이며 포털 생중계 및 다시보기나 유튜브에서는 아예 뜨지 않는다. 뉴스광장의 경우 본래 날씨와 날짜/시간도 뜨나 인터넷에서는 역시 안 뜬다.
2019년 1월 1일부터는 KBS NEWS(1TV)가 2018년 9월 10일자로 자막에 적용된 그래픽 요소에 맞게 타이틀을 모두 통일했다.[8] 이 브랜드를 마지막으로 모든 지상파 방송이 자체 뉴스 브랜드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2023년 3월 3일 특집 KBS 뉴스9의 방송 이후로 모든 뉴스의 디자인이 바뀌었다. 타이틀 범퍼에 각자 뉴스의 시작 시간을 알리는 부분만 밝은 빛의 하이라이트를 띄는 방식.[9] 뉴스광장은 가운데 정렬한 상태에서 KBS 뉴스광장이라고 세로로 써진 상태에서 시작 시간인 6시에 밝은 부분이 맞춰져 있고, 이와 같은 방식으로 뉴스라인W도 가운데 정렬한 상태에서 뉴스라인 W라고 세로로 써진 상태에서 시작 시간인 11시 50분에 밝은 부분이 맞춰져 있는 방식으로 쓰인다. 시간대가 있는 뉴스들(뉴스12, 뉴스5, 뉴스7, 뉴스9)은 각 시간대에 맞춰 밝은 부분이 드러나 있는 건 뉴스광장과 뉴스라인W처럼 동일하지만 뉴스12는 KBS NEWS 12, 뉴스5는 KBS NEWS 5, 뉴스7은 KBS NEWS 7, 뉴스9는 KBS NEWS 9라고 바뀌었다. 일반 스트레이트 뉴스나 뉴스특보는 뉴스9와 같은 디자인이다. 특집 편성 시에는 뉴스 시간대를 미지수 n 이라고 하자면 뉴스 시간대 쪽에 밝은 부분이 맞춰져 있는 건 동일하나 세로로 특집 n KBS NEWS라고 쓰여있다.[10][11]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은 송출을 하지 않는다.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송출을 하지 않는 이유는 수신료로 KBS 1TV의 채널, KBS 제1라디오, KBS 1FM, KBS제3라디오, KBS 월드라디오, KBS 한민족방송과 같이 운영되기도 하다.[12]
그 뿌리는 1945년 8.15 해방 이후 서울중앙방송국(현 KBS 라디오) 등에서 찾을 수 있으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 당시의 조선방송협회가 있다. TV 뉴스는 1961년 12월 31일에 KBS의 개국 이후 1962년 1월 15일부터 정규방송의 본격적인 실시에 맞추어 저녁 8시 30분에 10분 뉴스의 첫 방송을 시작으로 뉴스 프로그램 편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다만 수, 금요일에는 편성되지 않았고 일요일에는 뉴스가 밤 9시까지 30분 간 방송되는 등 편성이 불규칙적이었으며 비중 높은 뉴스의 편성은 여전히 라디오에만 의존했다. 1963년부터는 1년 6개월 동안 편성이 중단되었다가 1964년 8월 31일에 방송 개편에 따라 재개되었다. 다만 일요일에는 뉴스를 편성하지 않았다.
1968년 문화공보부 산하 서울중앙방송국, 텔레비전방송국, 국제방송국 3개 국이 통합되어 '중앙방송국'으로 출범하자 기존의 방송과 보도계를 '보도부'로 개편했지만, 강동순 전 감사의 저서 <KBS와 권력>이나 KBS 사우회가 쓴 <그때 그 시절 KBS 이야기> 등지에서 보듯 문공부 산하 조직 시절의 KBS 기자들은 '공무원' 취급을 받아 출입처 기자단에 가입이 안 되는 어려움이 있었다. 1973년에 공사화되면서 '보도국'으로 개편되어 방송총국 예하에 속했고, 휘하 부국장을 취재-편집 2개 분야로 나누고 해설위원실을 따로 두었으며, 취재부국장 휘하에 정경-사회문화-전국-체육 4개, 편집부국장 휘하에 편집-특집-외신 3개 부서를 각각 통괄토록 했으며 카메라취재반 및 특집제작반은 외곽 조직으로 했다. 반면 지역국은 한동안 방송과 관할이었으며 공사 출범 후 일부 지역국에 한해 '방송부'로 격상시켰다.
공사화 이후 신문사/통신사 등지의 외부 기자들을 스카웃하면서 언론사다운 조직으로 점차 거듭났다. KBS 뉴스는 스트레이트 뉴스 형식에서 벗어나서 기자가 리포팅하는 방식의 뉴스 프로그램이 보편화되었다. 1975년에는 워싱턴-도쿄-런던 3개 해외지국을 처음 두고 1977년 정경부를 정치-경제 2개 부서로 나누었다.
1980년 6월 카메라취재반 및 특집제작반을 '부' 단위로 승격시킨 후, 9월에는 총국제 폐지 후 이사 휘하로 바뀌었다. 동년 12월 '보도본부'로 승격되어 본부장-부국장-부장-차장 체계로 바꾸었고, 부국장도 라디오-제작-취재-체육-카메라취재-특집 등 6개 분야로 나누었으며 서무반도 두었다. 또한 정치부 등 취재 관련 부서들도 TV와 라디오로 각각 쪼개졌다.
1981년 5월 아침방송 부활에 따라 아침뉴스 프로 <KBS 뉴스와이드>가 신설되었으며, 9월 본부장의 직급을 이사급으로 올리고 기술본부로부터 보도기술부를 넘겨받았고 이듬해 부본부장직을 신설했다. 1984년 7월 직제개편으로 기존 보도본부 산하 부 단위 부서들을 '센터' 혹은 '실' 단위로 묶어 뉴스센터-기획보도실-스포츠제작실 3개로 짰고, 보도관리부와 보도기술부를 따로 두었다. 또한 휘하 부서들도 취재1~5[13] , 촬영취재, 뉴스제작실, 라디오제작 등 8개 분야로 나눈 후 기존의 부국장-부장-차장 체계를 주간-부주간(실장 or 총감독)-담당 순으로 바꾸었다. 10월 29일 가을개편에 따라 뉴스 프로그램명 체계를 'KBS 뉴스센터'로 했다.
1985년에는 정치, 경제, 문화, 과학, 주간기획, 사회, 외신, 남북대화, 뉴스제작실, 총괄, 제작심의, 라디오, 네트워크 등으로 또 짰다가 1986년 11월 3일 추동계 개편에 따라 뉴스 프로그램명 체계를 과거의 'KBS 뉴스' 체계로 환원시켰고, 12월부터 뉴스센터와 스포츠제작실을 '보도국'과 '스포츠국'으로 각각 바꾸었고, 체계도 국장-부국장-부장-차장 순으로 되돌린 후 부국장직을 취재-편집-라디오편집-카메라 4개 분야로 짰으며, 영상편집부도 신설했다. 1988년에는 편집부국장을 TV-라디오로 각자 이원화한 후 1989년에는 통일문제연구소를 개설했다. 1990년에는 기획보도실을 '보도제작국'으로, 부국장을 '주간'으로 각각 바꾸고 1991년 조직개편 때 신설된 '방송총본부' 밑에 속했다가, 1993년 방송총본부가 폐지되어 다시 사장 직속이 되었다. 1994년 2월에는 보도국장 휘하에 국제주간직을 신설했고, <MBC 뉴스데스크> '카메라출동'에 맞설 코너를 만들고자 TV편집부 밑에 기동취재부주간직을 신설했다가 8월에는 기동취재부주간직을 사회부로 넘겼다. 1996년에는 취재주간을 취재1~2주간으로 나누고 1998년 5월에는 사회부를 사회1~2부로 나눈 뒤 기동취재부주간직을 떼내 '기동취재부'로 격상시켰으며, 12월 TV-라디오제작 2개 주간직을 '편집주간'으로 일원화시켰다.
2000년 'kbsnews.com'을 개설한 후 2002년 편집주간을 편집1~2주간으로 나눴고, 2004년 조직개편 당시 팀제 도입에 따라 본부-국(실)-부 단위를 '본부-팀' 체계로 개편했고, 보도전략기획, 보도운영, 해설, 1~2TV뉴스제작, 라디오뉴스제작, 인터넷뉴스, 취재1~4, 국제, 시사보도, 스포츠취재/제작, 스포츠중계/사업, 영상취재, 영상편집제작, 보도기술, 영상그래픽 등 19개 팀으로 했다. 2005년 4월 보도전략기획팀을 '보도총괄기획팀'으로 바꾸고 탐사보도팀을 신설했으며, 동년 12월 보도총괄기획팀을 '보도총괄팀'으로 또 바꾸고 인터넷뉴스팀을 '디지털뉴스룸', 취재1~4팀을 정치외교, 경제과학, 사회, 네트워크, 문화복지 5개 팀으로 다시 짰다.
2008년 12월 조직개편에 따라 '본부-국-팀' 체계로 다시 짠 뒤 보도-보도제작-스포츠-영상취재 4개 국으로 했고, 보도기술팀을 '주간' 단위로 바꾸었다. 2009년 편집주간직을 부활시켜 1TV 및 2TV 뉴스제작팀, 라디오뉴스제작팀, 인터넷뉴스팀을 휘하에 둔 후 2010년 6월 조직개편에 따라 팀 단위 조직을 '부'로 되돌리고 영상취재국을 '보도영상국', 보도제작국을 '시사제작국'으로 각각 바꾸고 구 제작본부 기획제작국의 <추적60분> 제작업무를 시사제작국으로 흡수하기도 했으며, 보도기술 업무를 제작리소스센터로 넘겼다. 또한 보도국 휘하 주간직도 취재-편집-인터넷뉴스 3개 분야로 했다.
2013년 인터넷뉴스 관련 부서들을 묶어 '디지털뉴스국'으로 짰고, 국제주간직을 부활시킨 후 <추적60분> 제작업무를 TV본부로 다시 넘기기도 했다. 2016년 5월 보도국-디지털뉴스국-보도영상국 세 곳을 합쳐 '통합뉴스룸'으로 출범시킨 후, 시사제작국은 제작본부 산하 TV프로덕션2로 옮겼다. 또한 탐사보도팀 및 데이터저널리즘팀은 보도기획부로 넘겼다. 2019년에는 시사제작국을 부활시키고 2021년에는 통합뉴스룸에서 영상부문을 떼내 보도영상국으로 재출범시켰다.
그러나 권위주의 독재정권 시절에는 이른바 땡전뉴스 등과 같은 정권찬양의 나팔수로 활약한 흑역사가 있다. 지금은 다 청산한 모양으로 보이는 듯 하지만 대통령이 아직도 KBS 사장을 임명하고, 이사회 비율이 여7 : 야4인 걸 보면 아직도 영향이 남아있기는 하다.
1. 개요[편집]
캐치프레이즈
KBS 보도본부에서 제작하는 뉴스 프로그램을 정리하는 문서. 메인 뉴스는 KBS 뉴스 9. '몇 시 뉴스'라는 개념이 박혀있으며 KBS 뉴스 ?라고 쓰고 KBS ?시 뉴스라고 읽는다.[3] 1TV 뉴스는 'KBS NEWS', 2TV 뉴스는 KBS 뉴스타임으로 사용 중인 브랜드가 서로 다르다. 이 문서는 KBS 뉴스 프로그램 전체의 설명을 다룬다.한국인은 KBS 뉴스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를 얻습니다.
1993년 10월 ~ 1996년 12월 KBS 뉴스의 슬로건[사진]
선거방송인 KBS K 개표방송, 시사 토크 프로그램인 일요진단 라이브, 북한 전문 시사 프로그램인 남북의 창, 재난 전문 시사 프로그램인 KBS 재난방송센터, 시사 프로그램인 시사기획 창, 9층 시사국은 제외한다. 해당 문서들 참고.
기자가 기사를 마칠 때의 바이라인은 "([장소]에서) KBS 뉴스 (이름)입니다"이다.
이전에는 로고를 캘리그래프식으로 통일감이 없이 제작해오다가 2010년 5월 10일부터 타이틀 로고의 폰트를 HY울릉도체로 바꿨고[6] , 2013년 9월 6일부터 뉴스 9만 유튜브 스트리밍을 시작했다. 그러나 현재 2018년 3월 13일까지의 모든 영상이 비공개 처리되었고, 3월 14일 방영분부터 볼 수 있다. 2018년 3월 23일부터는 KBS 24시 뉴스라는 이름으로 24시간 라이브 스트리밍을 시작했으며, 기존에 제공했던 KBS 월드 24 라이브 스트리밍과 동일하다. 1TV와 2TV의 모든 뉴스 프로그램의 실시간 수중계를 하며, 2020년 1월 1일 기준으로 빈 시간에는 KBS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수중계 혹은 재방송으로 채우고 있다. 종전까지 진행했던 뉴스 9의 라이브 스트리밍을 대체하기도 해서[7] , 뉴스 9 방송 시점에는 섬네일과 제목이 잠깐 뉴스 9로 바뀐다. 2018년 11월 5일부터 카카오TV로도 시청할 수 있다.
2002년에는 KBS 뉴스 자막에 사용하는 전용 서체를 개발하여 이 해 한글날부터 사용중이다.
2001년 10월부터 뉴스광장만 뉴스티커를 넣었으나, 2015년부터 모든 뉴스 하단에 뉴스티커를 넣었는데 2018년 4월 개편부터는 뉴스 9에는 제외되었다. SBS나 MBC와는 달리 TV나 KBS 온에어 홈페이지에서만 보이며 포털 생중계 및 다시보기나 유튜브에서는 아예 뜨지 않는다. 뉴스광장의 경우 본래 날씨와 날짜/시간도 뜨나 인터넷에서는 역시 안 뜬다.
2019년 1월 1일부터는 KBS NEWS(1TV)가 2018년 9월 10일자로 자막에 적용된 그래픽 요소에 맞게 타이틀을 모두 통일했다.[8] 이 브랜드를 마지막으로 모든 지상파 방송이 자체 뉴스 브랜드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2023년 3월 3일 특집 KBS 뉴스9의 방송 이후로 모든 뉴스의 디자인이 바뀌었다. 타이틀 범퍼에 각자 뉴스의 시작 시간을 알리는 부분만 밝은 빛의 하이라이트를 띄는 방식.[9] 뉴스광장은 가운데 정렬한 상태에서 KBS 뉴스광장이라고 세로로 써진 상태에서 시작 시간인 6시에 밝은 부분이 맞춰져 있고, 이와 같은 방식으로 뉴스라인W도 가운데 정렬한 상태에서 뉴스라인 W라고 세로로 써진 상태에서 시작 시간인 11시 50분에 밝은 부분이 맞춰져 있는 방식으로 쓰인다. 시간대가 있는 뉴스들(뉴스12, 뉴스5, 뉴스7, 뉴스9)은 각 시간대에 맞춰 밝은 부분이 드러나 있는 건 뉴스광장과 뉴스라인W처럼 동일하지만 뉴스12는 KBS NEWS 12, 뉴스5는 KBS NEWS 5, 뉴스7은 KBS NEWS 7, 뉴스9는 KBS NEWS 9라고 바뀌었다. 일반 스트레이트 뉴스나 뉴스특보는 뉴스9와 같은 디자인이다. 특집 편성 시에는 뉴스 시간대를 미지수 n 이라고 하자면 뉴스 시간대 쪽에 밝은 부분이 맞춰져 있는 건 동일하나 세로로 특집 n KBS NEWS라고 쓰여있다.[10][11]
2.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 없는 채널[편집]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은 송출을 하지 않는다. 광고방송(상업광고방송)을 송출을 하지 않는 이유는 수신료로 KBS 1TV의 채널, KBS 제1라디오, KBS 1FM, KBS제3라디오, KBS 월드라디오, KBS 한민족방송과 같이 운영되기도 하다.[12]
3. 역사[편집]
그 뿌리는 1945년 8.15 해방 이후 서울중앙방송국(현 KBS 라디오) 등에서 찾을 수 있으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 당시의 조선방송협회가 있다. TV 뉴스는 1961년 12월 31일에 KBS의 개국 이후 1962년 1월 15일부터 정규방송의 본격적인 실시에 맞추어 저녁 8시 30분에 10분 뉴스의 첫 방송을 시작으로 뉴스 프로그램 편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다만 수, 금요일에는 편성되지 않았고 일요일에는 뉴스가 밤 9시까지 30분 간 방송되는 등 편성이 불규칙적이었으며 비중 높은 뉴스의 편성은 여전히 라디오에만 의존했다. 1963년부터는 1년 6개월 동안 편성이 중단되었다가 1964년 8월 31일에 방송 개편에 따라 재개되었다. 다만 일요일에는 뉴스를 편성하지 않았다.
1968년 문화공보부 산하 서울중앙방송국, 텔레비전방송국, 국제방송국 3개 국이 통합되어 '중앙방송국'으로 출범하자 기존의 방송과 보도계를 '보도부'로 개편했지만, 강동순 전 감사의 저서 <KBS와 권력>이나 KBS 사우회가 쓴 <그때 그 시절 KBS 이야기> 등지에서 보듯 문공부 산하 조직 시절의 KBS 기자들은 '공무원' 취급을 받아 출입처 기자단에 가입이 안 되는 어려움이 있었다. 1973년에 공사화되면서 '보도국'으로 개편되어 방송총국 예하에 속했고, 휘하 부국장을 취재-편집 2개 분야로 나누고 해설위원실을 따로 두었으며, 취재부국장 휘하에 정경-사회문화-전국-체육 4개, 편집부국장 휘하에 편집-특집-외신 3개 부서를 각각 통괄토록 했으며 카메라취재반 및 특집제작반은 외곽 조직으로 했다. 반면 지역국은 한동안 방송과 관할이었으며 공사 출범 후 일부 지역국에 한해 '방송부'로 격상시켰다.
공사화 이후 신문사/통신사 등지의 외부 기자들을 스카웃하면서 언론사다운 조직으로 점차 거듭났다. KBS 뉴스는 스트레이트 뉴스 형식에서 벗어나서 기자가 리포팅하는 방식의 뉴스 프로그램이 보편화되었다. 1975년에는 워싱턴-도쿄-런던 3개 해외지국을 처음 두고 1977년 정경부를 정치-경제 2개 부서로 나누었다.
1980년 6월 카메라취재반 및 특집제작반을 '부' 단위로 승격시킨 후, 9월에는 총국제 폐지 후 이사 휘하로 바뀌었다. 동년 12월 '보도본부'로 승격되어 본부장-부국장-부장-차장 체계로 바꾸었고, 부국장도 라디오-제작-취재-체육-카메라취재-특집 등 6개 분야로 나누었으며 서무반도 두었다. 또한 정치부 등 취재 관련 부서들도 TV와 라디오로 각각 쪼개졌다.
1981년 5월 아침방송 부활에 따라 아침뉴스 프로 <KBS 뉴스와이드>가 신설되었으며, 9월 본부장의 직급을 이사급으로 올리고 기술본부로부터 보도기술부를 넘겨받았고 이듬해 부본부장직을 신설했다. 1984년 7월 직제개편으로 기존 보도본부 산하 부 단위 부서들을 '센터' 혹은 '실' 단위로 묶어 뉴스센터-기획보도실-스포츠제작실 3개로 짰고, 보도관리부와 보도기술부를 따로 두었다. 또한 휘하 부서들도 취재1~5[13] , 촬영취재, 뉴스제작실, 라디오제작 등 8개 분야로 나눈 후 기존의 부국장-부장-차장 체계를 주간-부주간(실장 or 총감독)-담당 순으로 바꾸었다. 10월 29일 가을개편에 따라 뉴스 프로그램명 체계를 'KBS 뉴스센터'로 했다.
1985년에는 정치, 경제, 문화, 과학, 주간기획, 사회, 외신, 남북대화, 뉴스제작실, 총괄, 제작심의, 라디오, 네트워크 등으로 또 짰다가 1986년 11월 3일 추동계 개편에 따라 뉴스 프로그램명 체계를 과거의 'KBS 뉴스' 체계로 환원시켰고, 12월부터 뉴스센터와 스포츠제작실을 '보도국'과 '스포츠국'으로 각각 바꾸었고, 체계도 국장-부국장-부장-차장 순으로 되돌린 후 부국장직을 취재-편집-라디오편집-카메라 4개 분야로 짰으며, 영상편집부도 신설했다. 1988년에는 편집부국장을 TV-라디오로 각자 이원화한 후 1989년에는 통일문제연구소를 개설했다. 1990년에는 기획보도실을 '보도제작국'으로, 부국장을 '주간'으로 각각 바꾸고 1991년 조직개편 때 신설된 '방송총본부' 밑에 속했다가, 1993년 방송총본부가 폐지되어 다시 사장 직속이 되었다. 1994년 2월에는 보도국장 휘하에 국제주간직을 신설했고, <MBC 뉴스데스크> '카메라출동'에 맞설 코너를 만들고자 TV편집부 밑에 기동취재부주간직을 신설했다가 8월에는 기동취재부주간직을 사회부로 넘겼다. 1996년에는 취재주간을 취재1~2주간으로 나누고 1998년 5월에는 사회부를 사회1~2부로 나눈 뒤 기동취재부주간직을 떼내 '기동취재부'로 격상시켰으며, 12월 TV-라디오제작 2개 주간직을 '편집주간'으로 일원화시켰다.
2000년 'kbsnews.com'을 개설한 후 2002년 편집주간을 편집1~2주간으로 나눴고, 2004년 조직개편 당시 팀제 도입에 따라 본부-국(실)-부 단위를 '본부-팀' 체계로 개편했고, 보도전략기획, 보도운영, 해설, 1~2TV뉴스제작, 라디오뉴스제작, 인터넷뉴스, 취재1~4, 국제, 시사보도, 스포츠취재/제작, 스포츠중계/사업, 영상취재, 영상편집제작, 보도기술, 영상그래픽 등 19개 팀으로 했다. 2005년 4월 보도전략기획팀을 '보도총괄기획팀'으로 바꾸고 탐사보도팀을 신설했으며, 동년 12월 보도총괄기획팀을 '보도총괄팀'으로 또 바꾸고 인터넷뉴스팀을 '디지털뉴스룸', 취재1~4팀을 정치외교, 경제과학, 사회, 네트워크, 문화복지 5개 팀으로 다시 짰다.
2008년 12월 조직개편에 따라 '본부-국-팀' 체계로 다시 짠 뒤 보도-보도제작-스포츠-영상취재 4개 국으로 했고, 보도기술팀을 '주간' 단위로 바꾸었다. 2009년 편집주간직을 부활시켜 1TV 및 2TV 뉴스제작팀, 라디오뉴스제작팀, 인터넷뉴스팀을 휘하에 둔 후 2010년 6월 조직개편에 따라 팀 단위 조직을 '부'로 되돌리고 영상취재국을 '보도영상국', 보도제작국을 '시사제작국'으로 각각 바꾸고 구 제작본부 기획제작국의 <추적60분> 제작업무를 시사제작국으로 흡수하기도 했으며, 보도기술 업무를 제작리소스센터로 넘겼다. 또한 보도국 휘하 주간직도 취재-편집-인터넷뉴스 3개 분야로 했다.
2013년 인터넷뉴스 관련 부서들을 묶어 '디지털뉴스국'으로 짰고, 국제주간직을 부활시킨 후 <추적60분> 제작업무를 TV본부로 다시 넘기기도 했다. 2016년 5월 보도국-디지털뉴스국-보도영상국 세 곳을 합쳐 '통합뉴스룸'으로 출범시킨 후, 시사제작국은 제작본부 산하 TV프로덕션2로 옮겼다. 또한 탐사보도팀 및 데이터저널리즘팀은 보도기획부로 넘겼다. 2019년에는 시사제작국을 부활시키고 2021년에는 통합뉴스룸에서 영상부문을 떼내 보도영상국으로 재출범시켰다.
그러나 권위주의 독재정권 시절에는 이른바 땡전뉴스 등과 같은 정권찬양의 나팔수로 활약한 흑역사가 있다. 지금은 다 청산한 모양으로 보이는 듯 하지만 대통령이 아직도 KBS 사장을 임명하고, 이사회 비율이 여7 : 야4인 걸 보면 아직도 영향이 남아있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