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위게테
우족은 태어날 때 한가지 욕심을 갖고 태어난다. 플레이아데스의 7자매 중 셋째로 태어난 타위게테 역시 다른 자매들과 마찬가지로 태어날 때부터 욕심을 강하게 갖고 태어났다. 타위게테가 가지고 태어난 욕심은 '과시'로, 아름다움과 화려함으로 누구보다 우월한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기와 질투를 즐겼다. 그들의 다양한 반응으로 과시욕이 채워졌을 때, 느껴지는 오싹오싹한 만족감을 좋아했다.
타위게테가 15살이 되던 해 어느 날. 타위게테는 자신의 처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 미칠 지경이었다. 치안이 나쁜 빈민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흙집, 음식을 살 돈이 없어 사막의 선인장을 잘라먹는 빈곤함, 이런 절망적인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철없이 울고 있는 막내 메로까지. 모든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못난 부모는 7자매나 낳아 놓고 들어오지 않은 지 벌써 2년을 넘었다. 필시 자식들을 버리고 도망갔을 것이다.
평소처럼 따분한 표정으로 창 밖을 바라보던 타위게테는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군인들과 분주히 거리를 청소하고 있는 사람들. 평소 좋지 않은 치안 덕에 텅 비어있던 거리에 사람들이 복작거리고 있었다. "오늘따라 밖이 시끄럽네. 이런 시골 변두리 빈민촌에 뭔 일이라도 있나?" 타위게테의 혼잣말에 메로를 업고 있던 아스테가 답변해 주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타위게테 언니. 일주일 뒤 있을 헤카이텔 대공의 시찰 행사 때문일 거예요." 아스테는 물음을 답변을 해주곤 다시 울고 있는 메로를 달래러 문밖으로 나갔다. '다른 자매들에 비해 유독 성숙한 아이란 말이지.' 친절한 여섯째 동생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는 타위게테의 옷깃을 잡아당기는 이가 있었다. 음침해보이는 후드를 눌러쓴 인영. 다섯째 켈라이노였다. '이 아이는 음침한 데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무덤덤한 표정으로 타위게테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니, 켈라이노?" "……언니에 대한 신탁을 알려주려고." 신탁의 힘을 지니고 태어난 켈라이노의 예지. 그 예지는 항상 정확히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졌다. "신탁? 뭔데?" "……" 타위게테는 우물쭈물 말하는 것을 꺼리는 켈라이노를 보고 있자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오, 답답하게 하지 말고 빨리빨리 좀 말할 순 없니? 켈라이노?" 켈라이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쓰고 있던 후드 모자를 벗고 말을 시작했다. "……일주일 뒤, …...언니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할 선택을 하게 돼." 켈라이노는 옷에 감추어져 있던 팔을 걷어 카드를 보여주었다. 정방향의 The Hanged Man 카드와 역방향의 Judgement 카드. "……첫 번째 선택지. 집 안에 있는다. 이 선택을 할 경우. 언니는 풍족하지는 않지만 꽤, 오래 살 수 있어." "우웩. 그건 정말 싫은데" 켈라이노는 이어서 두 번째 선택지를 전달해 주었다. "……두 번째 선택지. 집 밖을 나가, 새로운 기회를 잡는다." 켈라이노는 이번엔 정방향의 The Fool 카드와 역방향의 The Chariot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 선택은 언니를 완전히 새로운 운명으로 이끌 거야." 새로운 운명? 이 거지 같은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너무나 설레어 켈라이노의 팔을 붙잡은 타위게테가 그녀의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카드를 쥐고 있던 켈라이노가 중심을 잃어, 손에 있던 카드들이 땅에 흩뿌려졌다. "그렇게 말하면 당연히 두 번째 선택지를 고르는 게 좋은 거 아니야?" "……하지만 두 번째 선택을 할 경우 언니는 나중에 자매 중 한 명의 손에 파멸을 맞이하게 될 거야." "자매? 그 멍청한 사람들 중 그 누가 날 파멸시킬 수 있겠어? 아무도 내 적수가 되지 못하는 걸?" 켈라이노는 걱정되는 표정을 지으며 타위게테의 팔을 밀어냈다. "후회 없는 선택을 했으면 해. 그러면 난 이제 가볼게." 말을 마친 켈라이노는 떨어진 카드를 줍기 시작했다. 뒷면으로 떨어진 카드들 사이에 유일하게 앞면으로 놓인 카드가 있었다. "The Devil…..." 흠칫 놀라며 몸을 움찔거린 켈라이노는 타위게테의 눈치를 보며 마지막 카드를 챙겨 방을 나갔다. 켈라이노가 나간 뒤 타위게테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타위게테는 이 거지 같은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뻐서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그런 삶을 살려면 일단 선택이 뭔지 알아야 해. 켈라이노는 일주일 뒤라고 했지……' 타위게테는 아까 아스테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헤카이텔 대공의 빈민가 순찰!" 운명을 바꿀 기회라면 빈민가를 살피러 오는 헤카이텔 대공의 행차가 분명했다. 그녀는 헤카이텔 정도 되는 귀족을 만나기 위 해서 만반의 준비를 해야할 것을 느꼈다. "일단 이 거지 꼴을 좀 벗어나야지." 외모를 바꾸기로 결심한 타위게테는 방문을 닫고 조용히 집중하기 시작했다. 자매들에게 알려주지 않은 타위게테의 고유 능력인 변장술을 쓰기 위함이었다. '나는 품격 있는 귀족의 영애다. 나는 품격 있는 귀족의 영애다.' '어릴 적 보았던 그림책의 영애처럼 말하고, 행동하자.' 꼬질꼬질한 피부는 점점 백옥 같은 피부로 변해갔고, 헝클어진 분홍 머리는 비단결처럼 찰랑거리게 바뀌었다. 누더기 같은 옷을 제외하면 귀족의 영애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완벽했다. '좋아. 이 정도면 충분해. 이제 남은 건 헤카이텔의 뒷조사.' "헤카이텔 공작, 기다리고 있어. 당신의 약점을 낱낱이 찾아서, 날 가질 수밖에 없게 만들어 줄 테니" 먹이를 노리는 한 마리의 야수처럼 섬뜩하게 웃으며 거울을 쳐다보는 그녀였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헤카이텔의 정식 양녀가 생겼다는 공표 벽보가 나라 이곳저곳에 붙게 되었다.
| - 파멸하는 기만자
타위게테가 귀족의 삶을 살아온 지 벌써 7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위게타 드 로렌느'라는 이름을 수여 받은 타위게테는 본격적으로 공작가의 영애로서 삶을 누리고 있었다. 위게타는 평소처럼 변장술로 자신을 더 이쁘게 꾸민 후 헤카이텔 공작성 안의 연회장으로 향했다.
그녀가 도착해서 문을 열자 마주친 건 평소의 연회장이 아니었다. 깨진 샹들리에와 부서진 그랜드 피아노 사이에서 피 묻은 철 갑옷을 두른 쿠데타 세력의 병사들이 아무렇게나 음식을 손으로 집어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고 있는 광경이 눈에 펼쳐졌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사교회를 즐기던 귀족들은 차가운 주검이 되어 병사들의 발아래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었다.
피의 비릿한 냄새가 울려 퍼지는 연회장의 중앙에 쌓여있는 귀족들의 시체를 의자 삼아 누군가 앉아 있었다. 피에 젖어 쳐져 있긴 하나 본연의 아름다움은 빛바래지 않은 찬란한 분홍 머리. 평범한 우족과는 다른 커다랗고 검은 뿔을 지닌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드디어 오셨네! 이 연회의 주인공! 기다리느라 심심해 죽을 뻔 했잖아." 위게타를 쳐다보며 시체의 산을 천천히 내려오는 여성은 대뜸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아, 귀족들은 이렇게 인사하던가? 안녕하신지요. 소인은 아르키오네라고 하옵니다.” "우욱. 촌스러워." 헛구역질을 하는 소리와 함께 토하는 자세를 취하며 비아냥거리는 아르키오네는 위게타의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헤카이텔 대공이 주의하라고 일러주었던 세력 중 하나. 아덴 제국의 반란군을 이끄는 총대장 아르키오네. 그 이름을 들었을 때 자신의 자매라는 것은 바로 알아차렸으나, 욕심을 충족하기에 급급한, 천박하고 우매한 플레이아데스의 자매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경계하지 않고 있던 이름이었다. 그 이름의 주인공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위게타는 기죽지 않았다. "오호호, 이름에서부터 천박함이 느껴지는 것이와요. 하는 짓도 저급, 최악. 저 반란군 세력을 어떤 거짓과 더러운 짓으로 키워서 여기까지 도달했는지는 몰라도 속에서부터 나오는 저급함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지요." 당당한 표정으로 아르키오네와 맞서는 위게타에게 아르키오네는 웃기지도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 그러게. 자신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네가 말하니까 설득력이 있네. 그렇지 않아? 타.위.게.테?" 아르키오네의 말이 끝나자, 위게타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다시 웃음을 지으며 손에 든 우산을 고쳐 잡았다. "제 이름은 위게타 드 로렌느. 누구랑 헷갈리신 거 아니신가요? 오호호." 위게타는 아르키오네와 대화를 나누며 자신에 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살폈다. 또각또각. 위게타의 코앞까지 다가온 아르키오네는 다짜고짜 위게타의 뺨을 갈겨버렸다. 짝! "이……이……미…미친년이...!" 위게타가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자 변장술이 풀려 그녀의 원래 모습인 타위게테의 얼굴이 드러났다. 길게 늘어선 분홍색 머리와 감추어져 있던 검은색의 뿔, 아르키오네와 매우 닮은 모습에 그 상황을 지켜보던 반란군 병사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르키오네는 타위게테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이봐. 모습조차도 거짓이잖아? 지원을 기다리기 위해 시간을 끄는 있는 네 행동 하나하나가 전부 거짓이지." 이라고 말하며 아르키오네는 위게타의 복부를 걷어찼다. 퍼억! "억!" 강력한 아르키오네의 발길질은 타위게테를 무릎 꿇게 하기 충분했다. 배를 움켜쥔 채 쓰러진 타위게테는 호흡을 가쁘게 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땀과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아르키오네는 타위게테 목에서 시계를 거세게 잡아당겨 시계줄을 끊어버렸다. "이런 수작 부릴 필요 없어. 네 행동은 부질없는 것이거든. 여봐라! 내가 보관해 놓으라고 했던 그거. 지금 당장 가져오도록" "네!" 대답과 함께 한 병사가 무언가 감싸져 있는 천 주머니를 가져왔다. 아르키오네는 병사로부터 주머니를 열어서 무언가를 꺼내 타위게테의 눈 앞에 가져다 댔다. "이게 뭐게?"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 있는 헤카이텔 대공의 머리였다. "아…버님.." "하! 하하하하. 아버님이라니." 아르키오네는 웃음을 멈추고 섬뜩한 표정을 지으며 잡고 있던 타위게테의 머리를 쥐어 잡고 자신의 얼굴 코앞까지 잡아당겼다. 서로의 숨이 교차했다. "도와달라고 말해봐. 네가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바로 앞에 있잖아?" 타위게테는 덜렁거리는 헤카이텔의 머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타위게테가 아무 말이 없자 아르키오네는 잡고 있던 머리를 밀치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 나라는 오늘부터 새롭게 바뀔거야. 오늘부터 내가 아덴 제국의 황제니까." "……" "근데 말이지? 내가 황제가 되는 역사적인 순간에 황궁이 아니라 왜 이곳에 왔을 것 같아? 응?" "……" "맞아. 혼자 살겠다고 자매들을 버리고 간 셋째 언니가 얼마나 잘난 인생을 살고 있나 궁금하더라고." "……" "그래서 어려운 발걸음을 했는데 이런 한심한 모습이라니…플레이아데스 자매의 수치야." 아르키오네는 쓰러져있는 타위게테의 머리를 집고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나저나 볼수록 짜증나네. 이 몸과 같은 이 분홍색 머리." 스르륵. 말을 마친 아르키오네는 옆에 있던 병사의 허리춤에서 칼을 빼앗아 들어 타위게테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렸다. "하하. 이제 좀 봐줄 만 하네."
타위게테는 떠올랐다. 켈라이노에게 들었던 '자매의 손에 의해 파멸을 맞이할 것이다.'라는 예언. 아덴 제국에서 가장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면, 공작 영애라는 지위만 있다면 자신은 안전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결국 예언을 피하지 못하고 아르키오네에 의해 멸망할 운명이란 말인가. 이젠 정말 끝이라고 생각한 타위게테는 더 이상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털썩. "하, 정말이지 끝까지 실망스럽구나." 아르키오네는 축 처져 있는 타위게테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욕망을 실현하려는 열정, 자긍심, 자신의 힘, 부와 명예, 외모까지도 뭣하나 제대로 이룬 게 없는 반푼어치" 촤악. 빠각! "끼야아아아악!" 아르키오네가 휘두른 채찍에 타위게테 머리에 있던 두 개의 뿔이 부서져 땅에 떨어졌다. "하아, 재미없어. 이럴 거면 그 노망난 황제의 마지막 비굴한 모습이라도 볼걸 그랬어." '가자'라는 말과 함께 아르키오네는 타위게테를 걷어찬 뒤 병사들과 함께 연회장을 나갔다. 귀족들의 시체가 가득한 핏빛 연회장에 어둠과 침묵이 내려앉았다.
| - 복수를 결심한 악마
헤카이텔 공작성 안의 연회장에 한 여인이 쓰러져 있었다. 헤카이텔 대공의 영애 '위게타 드 로렌느' 였다. 타위게테는 몸을 힘겹게 일으켜 세워 벽 한쪽의 거울을 쳐다보았다. 피멍과 혈흔이 낭자한 끔찍한 몰골 그 자체. 추악했다.
자신의 삶을 망쳐버린 아르키오네에게 화가 났다. 분노했다. 모두가 죽어 텅 비어버린 성에서 타위게테는 사흘 밤낮을 울부짖으며 이 현실을 저주했다. 털썩. 쉬어버린 목에선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울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죽음의 기운이 아른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터벅터벅. 그녀의 귀에 누군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겨우겨우 눈을 뜬 타위게테는 앞에 있는 사람이 흐릿하게 보였다. 칠흑같이 검은 사제복을 입은 자.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아아, 빛이 날 정도로 영광스러운 나날을 보냈던 타위게테 님. 아르키오네에게 패배하여 누구보다 추하고, 빛 바랜 모습이 되어버리고 마셨군요." 평소의 그녀였다면 너무나도 치욕적인 말을 꺼내는 이 자의 주둥아리를 당장 찢어버렸겠지만, 지금은 그저 한낱 추레한 패배자일 뿐이었기에 반박할 수 없었다. "허나 이 현실을 바꿀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당신을 이렇게 만든 아르키오네에게 복수할 힘과 망가져 버린 현실을 부수고 세계를 재창조하여, 당신을 추앙하는 자들이 가득한 세계를 만들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타위게테는 자신의 발아래 조아리고 있는 사람들과 아르키오네를 상상해보았다. 상상만 해도 짜릿했다. 다시 한 번 영광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그녀는 악마에게 영혼마저도 팔 수 있었다. "저희 '황혼재림회'에 들어오신다면 그 모든 것을 이뤄드리겠습니다. 물론 공짜는 아닙니다. 저희도 당신이 필요하거든요. 저희를 위해 일 해주셔야겠습니다." "…사...요..." 목이 쉴 대로 쉬어 버려 "그렇게 하겠사와요." 라는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핏기가 돌지 않는 몸을 겨우겨우 목을 움직여 힘들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음기를 띈 채 말을 하기 시작했다. "황혼재림회에 그 몸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십니까?" 일말의 망설임조차 느껴지지 않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걸 드셔 주십시오. 당신을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 시켜줄 물건이지요." 검은 사제가 손에 들고 있던 탁한 회색의 액체가 담긴 병을 열기 시작했다. 병이 열리자, 안에 있던 액체가 의지라도 지니고 있는 것처럼 저절로 흘러나와 타위게테 쪽으로 향하더니 그녀의 메마른 입술을 지나 목으로 들어갔다. 액체를 마신 타위게테의 주변에서 검은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하였다. 타위게테를 감싼 검은 안개는 금세 그녀를 뒤덮어 버렸다.
얼마가 지났을까. 검은 안개는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편안한 표정의 타위게테가 손을 모으고 누워 있었다. "훌륭하군요! 어서 일어나 악마로 다시 태어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해 보세요." 사제의 목소리에 타위게테는 살며시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몸이 가볍고 개운했다. 자신을 괴롭히던 상처와 피로, 아픔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전보다 훨씬 상태가 좋은 것 같다고 느꼈다. 타위게테는 서둘러 벽에 걸려있는 거울을 향해 달려갔다. 자신의 이곳저곳을 살피는 타위게테에게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뿔이었다. 아르키오네가 부숴버린 흉측한 뿔이 있던 곳에는, 산호 색을 띠는 아름다운 뿔이 솟아나 있었다. 두 번째로 머리카락이 보였다. 아르키오네에게 마구잡이로 베여버린 짧은 머리카락은 다시 풍성한 모습을 되찾고 벗어나 새로운 뿔과 어울리는 고풍스러운 핑크 베이지색의 그것이 되었다. 그 외 팔뚝에 새겨진 특이한 문양과 모든 것을 찔러 버릴 듯한 날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꼬리까지. 모든 것이 이전과 달랐다. 더 아름다웠고, 더 우월했다. 바뀐 자신의 모습과 느껴지는 새로운 힘을 만끽한 그녀는 한참이 되어서야 사제가 눈에 들어왔다. "오호호 정말로 고마운 것이와요. 제가 무엇을 지불해야 하는 지 알려주시와요." "그렇다면 황혼재림회에 대해 설명을 해드리는 것부터 해야겠군요."
조용한 연회장에서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러자 곧, 타위게테의 웃음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사교계를 휘어잡던 저에게 딱 맞는 역할이군요. 좋사와요.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사와요. 오호호호." 타위게테는 이 힘을 선물해 준 황혼재림회를 위해 헌신할 결심하며 앞서 걸어가는 사제를 따라 연회장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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