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루이스 산푸엔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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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대
칠레 군사평의회 의장 →
1. 1924년 군사 쿠데타로 대통령직 폐지
2. 대통령직 부활
3.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직 폐지 및 사회주의 공화국 체제
4. 대통령직 부활
5. 1973년 군사 쿠데타로 대통령직 폐지
6. 1980년 헌법 개정 국민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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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an Luis Sanfuentes Andonaegui
1858년 12월 27일 ~ 1930년 7월 16일

1. 개요




1. 개요[편집]


후안 루이스 산푸엔테스 안도나에귀는 1915년부터 1920년까지 칠레의 대통령이었다.

산푸엔테스는 작가이자 정치가인 살바도르 산푸엔테스 토레스와 마틸데 안도나에귀의 아들이다.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어 형 엔리케 살바도르 산푸엔테스에 의해 자라난 그는 칠레 대학교에서 변호사로 훈련을 받았다. 그는 1879년에 법학박사와 함께 졸업했다. 그는 1885년에 아나 에차자레타 (1865–1927)와 결혼했고, 그 부부는 5명의 자녀를 두었다.

1901년 페데리코 에라수리스 에차우렌이 이끄는 재무부 장관으로 승진한 산푸엔테스는 1906년부터 1909년까지 칠레 상원 의장을 지냈다.

1915년 칠레 대통령 선거는 자유민주당과 보수당의 연립 후보인 산푸엔테스와 자유동맹당의 지지를 받는 하비에르 앙헬 피게로아 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발전했다. 산푸엔테스는 사기와 선거 개입 혐의 중 단 한 표 차이로 피게로아를 이겼다. 국민회의는 그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소집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칠레는 중립을 지켰다. 갈등이 지속되는 동안, 국내 산업은 가장 큰 호황 중 하나를 가지고 있었고, 그 4년 동안 국가 산업은 53% 성장했다. 그러나 전쟁의 종식은 질산염 산업의 위기로 이어졌고, 이는 사회 불안의 물결로 이어졌다.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에 산푸엔테스가 파업 중인 탄광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원들을 상대로 강경노선을 펴는 것은 그의 진보적 개혁 후계자가 부상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었다.

산푸엔테스는 공직에서 은퇴하고, 탈카 근처의 카마리코에 있는 그의 사유지에서 아내와 함께 가정생활에 전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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